Theme 새 세상이 오고 있다 Date 2014.12.28
Text Jhs 3,1-5
(1)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2)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4)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5)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1. 엊그제 윷놀이를 하며 우리 교회 송년회를 했습니다. 윷놀이를 하는데 한쪽은 한 동도 못 났는데 한쪽은 네 말 다 골인 지점에 걸 길 개 길을 남겨놨으니 뭐 누가 봐도 게임은 끝난 거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막판에 모 나고 윷 나고 하더니 말 한 개 가지고 골인 지점 바로 앞에까지 가 있는 말 다 잡아 버리고 역전해서 이기더라고요. 결국 김지국 장로님이 속한 팀이 우승을 하고 영주동 팀이 2등을 해서 어마어마한 상품을 받아갔습니다. 내년에는 진짜 더 어마어마한 상품을 준비해서 안 온 분들은 배가 아파서 땅을 치게 하겠습니다. 게임 중에 김지국 장로님이 그러셨나? 죽었다 살았다 하고 개를 쳐야 잡고 이기는데 그 잘 나오던 결정적인 순간에 안 나와서 땅을 치며 아쉬워하는 것을 보면서, “인생이란게 다 그런겁니다.” 그러시더라구요. 정말 그 말이 진리입니다. 지금 잘 나가고 있거나 혹 그 반대라고 해서 끝도 반드시 그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오늘이 금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 마지막 말고 진짜 마지막 날에는 주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우리 성도들입니다. 지금 막 앞서간다고 으스대는 사람들을 봐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길을 꿋꿋이 지키는 사람들이 신자들입니다. 2014년이 가면 2015년이 오듯, 지금 세상이 지나고 나면 분명 새 세상이 옵니다. 주님의 사람이라 불리는 사람은 다시는 연말이 없고 새해도 없는 그런 영원한 나라가 온다는 것을 깨닫고 그 나라를 소망하며 산다는 말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은 광야 방랑시대가 끝나고 가나안 정착시대가 열리는 교체기 얘기입니다. 이제 막 새 세상이 시작되는 순간을 민족지도자로 산 여호수아의 모습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으려 합니다. 은혜 받으십시다.
2. 첫 번째로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말씀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싯딤을 떠나... 유숙하니라”입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6,12), 아이 성(8,10)을 공격하는 때에도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데, 이는 큰일을 앞두고 항상 영적으로 먼저 무장했음을 보여줍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는 말은 자기관리에 철저하다는 의미의 다른 말일 것입니다. 자기관리란 몸매나 가꾸고 치장만 그럴듯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주어진 일에 잘 쓰임 받을 수 있는 준비상태로 만들어놓는 것을 뜻합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살까, 쉽게 살까, 수고하지 않으며 살까를 궁리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하면 조금이라도 더 주님 뜻을 따를 수 있을까, 주님의 사역에 쓰임 받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사는 삶의 표현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난다는 말인 것입니다.
이것은 다음 표현을 보면 확실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무엇을 했습니까?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와서 유숙하였다고 했습니다. 싯딤은 요단 동편 12km지점에 위치해 있는 모압 땅 골짜기인데 두 줄기의 개천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진(陣)을 치기에 적합한 곳입니다. 수2,1을 보면 거기에서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에 정탐꾼을 보내어 적정을 살피면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요단으로 이동해 와서 사흘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습니다. 떠났다는 말(히,나사)은 원래 ‘천막 말뚝을 뽑다’는 뜻의 말인데, 정착민이 아닌 유랑인으로서 천막생활을 하던 그들은 지난 40년간이나 다음 여행지로 갈 때 천막 말뚝을 뽑는 일부터 하며 살아왔었습니다. 유숙했다는 말도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 채 잠시 머무는 것을 뜻하는 말이지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고 보여주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이라야 아침마다 온 몸을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차오르게 하고 힘차게 이루어내야 할 과제를 향해 힘차게 맞닥뜨려 나가는 짜릿한 흥분을 느낄 수 있지요.
새 세상은 또 얼마나 흥미진진한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정탐꾼들의 보고에 의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우리의 소문, 하나님과 함께 하여 요단 동편 모든 민족들을 굴복시킨다는 이야기를 듣고 단단히 빗장을 걸어 잠근 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 간담이 서늘해져 마음이 녹아내리고 있는 성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사흘 동안 내내 모세의 후계자로 세움을 받던 때로부터 자기에게 맡겨진 과업과 책무를 떠올리며 마음이 오직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데서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묵은 시대를 보내고 새 시대를 맞는 때, 과거를 뒤로 한 채 새 세상을 향하여 나가는 때에 여호수아가 보여준 삶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마음입니까? 어떤 자세입니까? 다가오고 있는 새해는 하나님께서 내게 도전하라고 뭔가 이루어내라고 맡겨준 세상입니까? 아니면 억지로 어쩔 수 없이 떠밀려가고 있는 세상입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 믿음의 무장을 살펴보십시오. 믿음의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 매십시오. 구원의 투구는 제대로 착용되었는지 점검하십시오. 의의 흉배는 제자리에 붙어 있는지도 확인하십시오. 무엇보다도 갑절이나 어려운 새 세상을 위해 스승에게 있던 영감보다 갑절의 것을 간구했던 엘리사처럼 성령의 충만함을 부르짖어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두려움과 공포로 마음이 녹아내리게 하는 세상으로 보이던 새해가 철옹성을 무너뜨리고 또 한 번 하나님의 승리의 전설을 만들어 낼 기회의 세상으로 보일 것입니다.
3. 두 번째로 영감을 받는 말씀은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요단의 말뚝마저 뽑아들고 그 뒤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는 '법궤'(레16,2), '증거궤'(출30,6), '여호와의 궤'(수4,11), '하나님의 궤'(삼상3,3), '주의 능력의 궤'(대하6,41)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십계명 돌 판과 만나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동안에도 줄곧 언약궤가 앞서 가고 그 뒤를 따라 행진하였었습니다. 법궤란 이름은 하나님의 법과 도리를, 증거궤란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을, 여호와의 궤 혹은 하나님의 궤란 이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능력의 궤란 이름은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바, 이를 뒤따르라는 것은 곧 하나님의 법과 말씀과 함께 하심과 권능만을 믿고 순종하라는 것을 뜻합니다. 무엇보다 그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과의 거리를 2천 규빗, 약 1km 정도 유지하라고 하였지요. 그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거룩성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와 임재와 권능을 의심하거나 시험하려 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이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지만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멘.
여호수아는 해발 2,852m인 헬몬 산에서 발원하여 갈릴리 호수까지 28km를 흘러 내린 후, 거기서 다시 해면보다 380m나 아래인 사해까지 약 300km나 거세게 흘러 내려가는 요단강을 묵묵히 바라보면서 사흘 동안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오직 언약궤를 따라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범람하는 요단강물이 막고 서있는 가나안 땅처럼 어쩌면 내가 가야 할 길도 그렇게 건널 수 없는 무엇인가로 막혀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새 세상을 저 앞에 보여주시기는 하는데 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혹시 내 눈에 길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할지라도 그것은 길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시119,105을 보십시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궤를 멘 제사장이 물에 들어가서니 요단강 강물이 끊기고 새 세상으로 가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건널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강을 건너는 길은 말씀입니다. 가정과 일터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길도 말씀을 붙잡을 때 열립니다.
우리 맨날 노래하잖습니까?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보이고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세상 염려 내게 엄습할 때에 성령으로 힘써 싸워 이기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굳게 서리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 권능의 하나님은 분명히 성도와 함께 하십니다. 그 분을 바라보고 따라가기만 하면 길이 열립니다. 다른 곳을 봐서도 안 되고, 뒤 돌아서도 안 됩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말씀을 따르는 순종과 복종의 믿음이 승리의 길, 복의 길을 엽니다. 갈 길이 막막하여 답답하다면 하나님을 앞세우세요. 그리고 그 뒤를 따르세요. 말씀은 순종을 통해 열매를 맺습니다(신1,3-8) 하나님께 생각과 마음을 점령당하십시오. 성령님께 사역의 주도권을 빼앗기십시오.(행13,1-3) 그것이 다가오고 있는 새해 새 세상을 승리하는 세상으로 만드는 비결입니다.
4. 마지막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스스로 성결케 하라”입니다. 세 세상을 앞두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결'(히,코데쉬)을 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환경과 구조의 변화에 앞서 사람의 변화를 먼저 꾀합니다, 그것도 ‘너’가 아닌 ‘나’의 변화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을 정복하는 문제를 두고 묘책과 비책을 구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성결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거룩함과 순종으로 가는 여정입니다. 공동체의 성결과 전적 순종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조건입니다. 사1,15을 보십시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새 세상을 맞는 여러분, 우리는 진심으로 불신과 불순종과 탐욕과 고집을 회개해야 합니다. 최악의 상황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저 인도하시는 만큼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양쪽의 승패를 가를 대전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북군의 사령관 링컨이 고심하는 것을 보고 부하 장군 왈 "각하!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십니다." 그러자 링컨 왈, "그것은 적군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중요한 것은 과연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회개만이 살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