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아가다 자매님은 1940년 경기도 가평 구교집안에서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결혼 전 가평성당에서 봉사를 많이 하였다.
가평성당 상색공소 신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수녀를 지원하였으나 성소의 은총이 없었는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강원도 홍천으로 시집와 3남4녀를 키우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
그러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많은 빚을 지게되어 하루아침에 삶이 무너지게 되었다.
빚쟁이들에게 하루가 멀다고 시달리며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고초를 겪게 되었다,
매달릴 곳은 오직 하느님밖에 없었다. 사정이 안 좋아지자 주변 사람들도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시장에서 감자떡 장사를 시작하였다,
처음 시작이 순조롭지도 않았고 너무 힘든 상태에서
매일 하느님을 원망하며 눈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무렵
한 자매님의 권유로 레지오에 입단하야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장사하면서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있다는 든든함에
더욱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령관이신 성모님께서 나의 크나큰 백이 되어 주신다고 행각하니 모진 수모도 참을 수 있었고,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 나갈 수 있었다.
배당받은 활동을 두 명씩 짝을 지어 방문하러 가야할 시간이면
가게문을 다고 가거나 이웃에게 부탁하고 활동을 나갔다.
2시간 활동을 채워야 하므로 방문에 빠질 수가 없었다.
감자떡 장사가 잘되기 시작하여 유명해지면서 홍천의 토속먹거리가 되었다.
교구에서 상당 신축기금을 모금하러 서울이나 수도권에 방문할 때 판매 물품1순위가 되었다.
성당에 만드는 과정을 전수해 주고 재료를 실비로 공급하면서
홍천 감자떡이 알려지게 되었고 바빠지게 되었다.
어떤 분들은 장사가 바쁘니 레지오를 그만 두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지만,
레지오마저 그만두면 냉담하게 될 것 같아 힘들고 어렵더라도 끝까지 가자고 다짐하였다.
장사가 잘 되고 심적으로 안정이 되니 활동하는 것이 즐겁고 너무 행복했다.
활동 대상자를 만나 대화하고 성과가 안 좋으면 수녀님께 보고하고
수녀님과 함께 다시 방문하여 입교도 시키고, 냉담자도 회두시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출처- 레지오마리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