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독경
박순심
천 년을 넘도록 돌에 말을 새겨 온
선운산
비가 오면 바위는
적막을 한 겹씩 입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나무들은 잎으로 계절을 넘겼다
처마 끝, 풍경이 허공을 두드리면
소리는 멀리 흩어지지 않고
돌의 귀에 오래 머물렀다
마애불은 눈을 감은 것이 아니었다
너무 많은 세월을 새긴 얼굴은
말보다 먼저 침묵을 품었다
가을이 깊어질 무렵
더는 삼키지 못한 붉음을
조용히 땅 위로 밀어 올렸다
꽃무릇이었다
잎은 꽃의 빈자리를 안고
꽃은 잎의 빈자리를 지켰으며
한 뿌리는
끝내 둘을 붙들었다
선운산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해마다 삼키지 못한 말을
꽃무릇에 맡겼다
첫댓글 상 받은 글이네요.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