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회화 뒤지지 않는 명품 변상도
초당 시기 조성 둔황 제220굴 벽화
‘관무량수경’ 내용을 도상으로 재현
불국 극락정토 모습 생생히 그려내
불교 사상 전파·대중화 중요 형식
그림① 둔황 제220굴 남벽 〈서방정토변상도〉 전체 모습. 초당시기에 조성됐다.
우리는 ‘상락아정(常樂我淨)’ 즉, 항상 즐겁고 아름답게 살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것이 이생에서 이뤄지지 못하면 저 생에서라도 이루기 위해 귀의삼보하고 있다. 저 생에서 상락아정을 이루는 곳이 바로 서방정토(西方淨土)다. 경전에서 설한 서방정토를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게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 바로 〈서방정토변상도〉이다.
〈서방정토변상도〉를 통해서 붓다 이래 묻 중생들이 갈망해온 서방정토가 어떤 곳이며 어떻게 해야 갈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연재에 이어서 〈서방정토변상도〉의 형식과 예술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둔황 막고굴 초당(初唐) 시기 석굴인 제220굴 남벽에 그려진 〈서방정토변상도〉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서방정토변상도〉에 대한 이해를 얻고자 한다.
이 〈서방정토변상도〉는 600년 이상 지속되고 변화해오며 축적된 표현형식과 예술적 역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제220굴은 초당의 가장 중요한 대표동굴 중 하나로, 1943년에 이 굴 표층의 송대에 그려진 천불 도안을 떼어내면서 잘 보존된 초당시기 벽화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때 동벽과 북벽에서 두 곳의 정관(貞觀)16년(AD 642년)의 묵서제기(墨書題記)가 발견되었다. 벽화는 잘 그려져 있는데, 이미 명확한 중원 양식을 띄고 있다. 둔황연구소의 초대 학장인 창슈홍(常書鴻)은 “220굴의 벽화는 구도나 채색에 있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교회 장식 회화에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220굴의 남벽에 그려진 〈서방정토변상도〉는 막고굴에서 가장 초기, 가장 큰 규모, 가장 높은 예술 수준을 가진 통벽의 변상도이다. 이 〈서방정토변상도〉는 직사각형으로 높이 3.45m, 길이 5.40m, 총 면적 18.63㎡의 크기이다. 전체 화면의 구성은 크게 3단으로 나누어지는데, 상단은 하늘, 타방불의 하강을 주된 모티프로 표현하고 있으며, 중단은 수국(水國), 아미타불 설법장면을 중심으로 하단은 지상으로 주악(奏樂)을 배치했다.
대담하고 장쾌한 파노라마적 공간에 펼쳐진 제220굴 〈서방정토변상도〉의 중심 주제는 중단에 그려져 있는 칠보연지 월대 누각 앞의 서방삼성설법회이다. 연못 위에 솟아오른 화려한 연화대좌 위에 가부좌한 설법인의 아미타불과 그 좌우의 협시보살입상이 자리 잡고 있다.
아미타불 양옆에는 대세지와 관세음보살이 연화좌에 앉아 있는데, 머리 위에는 화개가 있으며 그 옆에는 연꽃을 딛고 서 있는 보살이 있다. 협시보살 주변에는 앉거나 기립하고 있는 보살이 즐비하다. 그림 전체에는 크고 작은 35그룹의 보살군이 있는데 모두 150여 명이다. 대칭 균형의 미적 원칙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전체 화면에 배치하고 있다. 이는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잡상관(雜想觀)’ 내용에 근거해 충실하게 재현했다. 또한 보살좌상 1구씩은 다른 보살들보다 확연하게 큰 크기로 묘사했는데, 이미 남향당상 석굴의 부조에서도 삼존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보살입상을 협시로 둔 예는 맥적산 석굴의 불비상에서도 등장하고 있어서 이는 라호르 박물관 설법부조 계통의 영향으로 둔황 제220굴에서는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아마라바티의 설법부조나 양대(梁代) 불비상 등에서 설법을 듣는 보살들이 거의 대등하게 묘사되던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림② 둔황 제220굴 〈서방정토변상도〉 주악 장면 부분도.
화면 상단에는 아미타설법 장면 뒤에 위치한 두 그루의 보수를 중심으로 좌우에는 전각과 보탑 등이 펼쳐져 있으며, 그 사이사이로 구름을 탄 화신불이 협시보살과 함께 묘사됐다. 상부는 서방정토의 하늘로 푸른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 누각은 구름 위에, 안개는 보당(寶幢)을 감싸고 비천이 날며 꽃향기 가득, 천락(天樂)이 표표히 날고, 자명고가 울리니 시방(十方)제불이 구름이나 안개를 타고 법회를 들으러 오고 있다. 하늘 전체가 상서로운 구름, 향기로운 꽃, 천락보각, 불보살로 가득 차 있다. 위의 단락은 주로 서방정토 하늘의 자유롭고 즐거운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장면은 〈관무량수경〉의 9관에서 〈무량수경〉의 모습을 관하는 가운데 “무량수불의 원광 속에는 백만억 나유타 항하사의 화신불이 있고, 하나하나의 화신불에게는 매우 많아 헤아릴 수 없는 화신보살들이 있어 사자가 된다”고 한 표현을 연상케 한다. 이 장면은 화면의 왕생자들을 맞이하러 오는 아미타불 도상과 함께 아잔타 제17굴 〈도리천강하〉의 화면 중단 ‘삼도보계강하’ 장면을 계승하는 것으로, 이후 〈아미타래영도(阿彌陀來迎圖)〉 도상의 초기 예로서 주목할 만하다.
연못 위의 아미타불 설법장면 주변으로는 난간을 두르고, 뭍에서 설법을 듣는 보살들의 무리를 배치하였다. 좌우 끝단으로는 중층에 누각을 두어 전체적으로 남향당상 석굴 〈서방정토변〉 부조의 구도가 변화 계승하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서방삼성은 칠보연지에 있으며, 칠보연지는 팔공덕수의 수국에 위치하는데, 이 칠보연지에는 푸른 파도가 일렁이고 녹색 연잎에 붉은 연꽃이 피어 있고, 화생 동자는 연꽃에 있거나 또는 연꽃 안에 있으며 물에 있는 연화 동자는 원앙 같은 물새와 함께 놀고 있다. 수국 주변 보지(寶池) 난간에는 공작, 앵무새, 두루미, 등의 아름다운 새들이 날개를 퍼덕이거나 목을 길게 빼고 함께 소리를 내고 있는데, 한없이 기쁨에 찬 정경이다. 중단은 주로 서방 극락정토 중 서방삼성, 구품왕생, 연화화생, 화왕생(和往生), 서방극락정토로 화생한 보살 천중(天衆)이 법문을 듣는 향락(享樂)의 내용을 묘사하고 있다.
하단은 서방정토의 지면으로 칠보 난간의 누각 바닥에는 금모래가 깔리고 유리로 장식하고 있다. 아미타 서방삼성 앞에는 거대한 노천 무대가 있는데, 양쪽에는 대형 양탄자 위에 2개 조의 악대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좌우로는 모두 16명으로 각각 거문고·장고·비파·고금·공쾌(艙욧)·완현(阮弦)·횡적(橫笛)·배소(排簫)·장구·동발(銅鉢) 등 각종의 악기를 연주하는 천녀를 표현하였다. 이는 북과 징의 교향악으로 이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아름다운 관현악의 연주가 들리는 듯하다. 좌우 외곽으로는 아미타불이 여러 협시보살들과 중앙으로 향해 걸어오는 듯 한 내영 모티프가 묘사됐다. 중앙의 두 개의 둥근 꽃담요 위에는 한 무리의 무기(舞技)가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목에는 영락을 걸었으며 긴 치마를 입고 손에는 리본을 잡고 담요를 살포시 밟고 회전하며 사뿐사뿐 춤을 춘다. 무대 양쪽 누각 아래에는 춤과 음악을 보는 보살 천중이 있다. 하단은 주로 서방극락정토의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는 즐거운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무악천녀들의 모티프와 연관해 〈관무량수경〉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보배나무가 나란히 줄을 지어 있으며, 줄기와 줄기가 마주보고, 가지와 가지가 이어져 있으며 바람이 때때로 불면 다섯 가지 소리를 내니, 미묘한 궁宮, 상商의 음악소리가 저절로 조화를 이룬다. 나무는 바람이 천천히 불면 아름다운 법음을 내어 널리 시방의 모든 불국토에 울려퍼진다. 제6천의 만가지 음악도 무량수국의 일곱가지 보배 나무들이 내는 한 가지 음악에 비하면 그 훌륭함이 천억분의 일 밖에 안된다.”
“광명대의 양쪽에는 각각 백억의 꽃송이로 이루어진 깃대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악기가 장엄하고 있다. 광명으로부터 여덟 줄기의 맑은 바람이 불어와 이 악기를 울리면 괴로움, 공, 무상, 무아의 도리를 말한다.”
“여러 보배 국토에는 각각 500억 개의 보배 누각이 있으며, 그곳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신과 인간들이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또 악기들은 허공에 매달려 하늘의 보배로 된 깃대와 같으며 치지 않아도 저절로 울린다. 이 모든 소리들은 부처님과 불법, 승가를 생각할 것을 말한다.”
이러한 요소는 당대에 유입되어 중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서역 문물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극락세계의 지극한 즐거움을 당대 사람들이 즐겼던 서역문화, 특히 쿠차의 음악과 무용을 통해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수대(隨代)의 산서성 태원 우홍(虞弘)묘에서 출토된 소그드 석곽에 새겨진 연희장면이 연상된다. 이는 하늘에서부터 지상에 이르는 불국극락정토의 여러 가지 즐겁고 환희한 모습을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변상도는 실제적으로 불교 사상의 전파와 대중화의 중요한 형식이며, 불교의 각 종파가 각자의 불교사상과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 채택한 예술적 방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토변상도의 계승과 변화는 그 출발에서 형성에 이르기까지 중국 정토종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당대 이후의 서방정토신앙은 〈아미타변상도〉와 〈무량수경변상도〉 중에서 〈서방정토변상도〉의 고정된 패턴이 돼 600년 이상 지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