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선정(禪定)의 중요성
걸림없는 지혜 생겨나는 원천
부선정일문(夫禪定一門)은 최위급�(最爲急務)니라 약불안성정려(若不安禪靜慮)면
도저리(到這裏)에 총수망연(總須茫然)이니라 소이(所以)로 탐주의정랑(探珠宜靜浪)이요
동수위응난(動水取應難)이라 정수징청(定水澄淸)이면 심주자현(心珠自現)이니라
고(故)로 <원각경(圓覺經)>에 운무애청정혜(云無碍淸淨慧)는
개의선정생(皆依禪定生)이라 하고
<법화경(法華經)>에 운재어한처(云在於閑處)하야 수섭기심(修攝其心)하되
안주부동(安住不動)을 여수미산(如須彌山)이라 하니라.
대저 선정만이 가장 급한 일이다. 만약 참선해서 정려(靜慮)하지 못한다면
여기에 이르러 모두 망연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구슬을 찾으려면 마땅히
물결을 고요하게 해야 할 것이니, 물이 움직이면 구슬을 찾기 어렵다.
물이 고요해서 맑고 맑아지면
마음 구슬이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원각경(圓覺經)>에서는
“걸림없는 청정한 지혜는
모두 선정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법화경(法華經)>에서는
“한적한 곳에서 그 마음을 닦아 섭수하되 편안히 머물러
부동하기를 수미산과 같이 해야 한다”라고 한 것이다.
이 문단에서는 선정의 중요함을 밝히고 있다.
선정력을 호지하여 일상선정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선정을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한 것이다.
참선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일념정려(一念靜慮)하는 것이다.
일념정려란 일념으로 마음을 고요히 한다는 뜻이다.
마음을 고요히 한다는 것은 잡념이 없이 오로지 한 생각에 몰입하는 것이다.
오직 일념정려함으로써 생각이 깊어지고 판단이 분명해서 이치에 통달하게 된다.
의문이 끊어지지 않아 일념이 되고 몰입하고 몰입하여 더 깊어지면 삼매다
생각이 산만하면 성공할 수 없다매사에 일념으로 몰입하지 않고는
한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가 없다.
몰입이란
의문이 끊어지지 않아서 일념이 되는 것이고
몰입하고 몰입하여
더 깊어지면 삼매이다.
일념이 안 된다는 것은
생각이 산만하다는 것인데 생각이 산만하면서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성공하는 사람은
매사에 항상 어느 것 하나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그 생각이 끊어짐이 없고 의문도 끊어짐이 없어
실수가 적고 결국에는 큰 공을 이루게 된다.
참선을 하여
일념이 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집중력이 증가하면서
만물을 그대로 비추어 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대주혜해(大珠慧海) 선사는 <돈오요문(頓悟要門)>에서 선정에 대해서
“망념(妄念)이 일어나지 아니함이 선(禪)이요,
앉아서 본성(本性)을 보는 것이 정(定)이니라.
본성이란 너의 무생심(無生心)이요,
정이란 경계를 대(對)함에 무심하여
팔풍(八風)에 움직이지 아니함이니라”라고 하였다.
여기서 팔풍(八風)이란,
이로움과 손실,
헐뜯음과 영예로룸,
칭찬함과 비웃음,
괴로움과 즐거움을 말한다.
선정이란
앉아서 망념이 없이 본성을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온갖 경계에
동요됨이 없어야 참 정을 얻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천만 부처님이 나타나 나를 칭찬하여도 부동하고,
온갖 마구니가 나타나 나를 괴롭혀도 부동한 경지야 말로
진짜 정을 얻은 경지인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육조 혜능선사는 <육조단경>에서
“선지식이여, 어떤 것을 선정이라고 하는가?
밖으로 상을 여읜 것이 선(禪)이고
안으로 산란하지 않은 것이 정(定)이니,
만일 밖으로 상에 집착하면 안으로 마음이 곧 산란해지고,
만일 밖으로 모습을 여의면 마음이 곧 산란하지 않느니라.
본성은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고요하지만
다만 경계를 보고 경계를 생각하므로 곧 산란해지는 것이니
만일 모든 경계를 보고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참된 정(定)이니라.
선지식이여, 밖으로 모습을 여읜 것이 곧 선(禪)이요
안으로 산란하지 않은 것이 곧 정(定)이니
밖의 선(禪)과 안의 정(定)이 선정(禪定)이 되는 것이다.
(善知識아 何名禪定고
外離相이 爲禪이오
內不亂이 爲定이니
外若着相하면
內心卽亂이오
外若離相하면
心卽不亂이라
本性이 自淨自定이언마는
只爲見境思境하야
卽亂이니 若見諸境호대
心不亂者는 是眞定也니라
善知識아
外離相이 卽禪이요 內不亂이 卽定이니
外禪內定이 是爲禪定이라)”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밖의 온갖 경계를 보고도
안으로 마음이 산란하지 않는것이 선정인 것이다.
곧 밖으로는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롭고,
안으로는 헐떡거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밖으로는 부귀영화와
희노애락에 끌리지 않아야 하고,
안으로는 온갖 번뇌를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본문에서 대저 선정만이 가장 급한 일이다.
만약 참선해서 정려(靜慮)하지 못한다면
여기에 이르러 모두 망연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참선수행해서
선정을 얻지 못하면 지혜를 얻지 못하고
지혜를 얻지 못하면 그 수행은 헛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을 할 때 선정을 얻는 것이 사실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인 것이다.
좌선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선은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한결같아야
하지만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부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좌선을 통하여 선정을 얻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거 결제를 통하여
방석 한 장 위에 스스로 몸을 묶고 마음을 묶는 것이다.
본문에 ‘만약 참선해서 정려(靜慮)하지 못하다면
그 속에 이르러 모두 망연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수행자가 참선해서 정려하면 조금의 틈도 없게 된다.
여기서 망연하다는 것은 아득하다는 뜻으로 길을 잃고
돌아갈 기약이 없다는 말과 같다.
길을 잃은 사람이 길을 찾고,
산만한 사람이 일념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 바로 참선이다.
안선정려(安禪靜慮)란
좌선해서 안주하여 고요히 사유한다는 뜻이다.
안선(安禪)은
마음을 가라앉혀 좌선하는 것이고,
정려(靜慮)란
고요히 사유한다는 의미로 사유수(思惟修)와 같은 뜻이다.
정(靜)은
동하지 않고 고요함이니
곧 지(止)의 뜻이 있고,
려(慮)는
고요한 자리에서 생각한다는 뜻이니
곧 관(觀)의 뜻이 있다.
따라서 정려의 의미는 참선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
참선이란
자기의 소견에 얽매이지 않고 관념과 지식에 국집하지 않으며,
탐진치 삼독심이 없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니,
정려가 깊어져야
사념(邪念)이 없어져서 진실이 드러난다.
진실한 마음으로
참구하고 참구하면 삼매가 현전(現前)하여 만물에 접응(接應)하고
모든 일에 상응하게 되어 대자재를 얻게 된다.
선을 수행하는 사람의 일상생활은
항상 자신의 부족함만 보이고
다른 사람의 허물이 보이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안정을 얻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