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부요” 고후 9:6-15
https://youtu.be/9HIX16M7vf4
1. 키 큰 청년들이 서로의 키를 말하며 한 사람은 77, 한 사람은 79, 한 사람은 81이라고 말하며, 77인 청년이 자기가 작다고 말하며 기분이 나쁘다고 말하더군요. 그보다 더 작은 저도 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제일 작다고 말하길래, 저는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냥 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것 아세요? 잘하려고 하는데 부서지고, 최선을 다했는데 힘들어질 때가 있습니다. ‘모든 일에 부요’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큰 도움이 됩니다. 삶이 부서지는 이유는 잘못된 이해가 작동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모든 필요를 채우리라.’ ‘저 사람의 이런 부분이 달라져야 하리라.’는 생각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 넉넉하여”라는 말씀은 –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세워 부요케 하신다. - 는 의미입니다. 이 사람을 통해서 채우시고, 저 사람을 통해서 채우십니다.
2. 예수님은 열두 제자의 이름뿐 아니라 그들의 성격적 특징을 공개하셨습니다. 시몬의 별명은 베드로, 반석입니다. 무너지는 사람이지만 반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다음은 심각합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성질 거지 같은 사람’이라는 보어너게 즉 우레의 아들이라고 짓습니다. 최악은 유다입니다. 예수님을 팔 자라고 소개합니다. 당신 같으시면 배신자인 유다와 같이 신앙생활 하고 싶으시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이들을 향해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신다.’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그들을 원하십니다. 온전한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사람의 한 부분이 하나님 나라에 유익할 때 그것을 원하십니다.
3.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섬기고 베풂으로 나아간 사람이 그 다음 가난해지느냐 또는 더 부유한 마음이 되느냐의 지점을 구별하셔야 합니다. 섬김으로 시작하셨다면 이제 나를 통해 받으시기를 원하는 것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나에게 없는 것 말고요. 또한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의 부족함 말고요. 그러면 부요해 집니다. ‘저분은 저런 몫으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구나. 그럼 나도 그분과 같이 있기를 원합니다.’
4. 볼프는 이것을 베푸는 자들에게 베풀기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습니다. 넉넉하고 모든 일에 부요하다고 말해줍니다. 사실, 누구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못난 점, 당파나 음란 같은 자격 미달의 모습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돕고 드리는 손길을 보며 베푸는 자가 더 베풀어지는 자리로 옮겨가는 원리로 축복합니다. 예수님만이 모든 일에 부요하십니다. 내가 십자가에 죽어지면, 예수님이 주신 것으로 베풀고, 예수님께 드리는 그 모습만 품어집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부요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