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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불교에서 나오는 단어들 -15
◆ 면벽面壁
면벽面壁이란?
좌선坐禪의 다른 이름으로
벽을 향하여 좌선하는 것을 말합니다.
달마대사가 526년에 중국에 와서
무제武帝(梁나라)를 만나 문답하고 나서
서로 소견이 맞지 않아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의 숭산崇山 소림사 少林寺에 숨어 있었습니다.
달마대사는 특별히 경론을 강설하지도 않고,
불상에 절을 하지도 않으며,
종일토록 석벽을 향하여 좌선하는 일로 9년을 지냈습니다.
이를 면벽구년面壁九年이라 합니다.
이렇게 9년이나 좌선한 뒤부터,
선승禪僧들이 선원에서 좌선하려면
습관적으로 벽을 향하여 면벽面壁 앉게 되었습니다.
◆ 목욕의례
《사분율四分律》에 따르면
“특수한 때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보름만에 목욕하라”고 되어있으며
《석문의범釋門儀範》에는
‘문수목욕일文殊沐浴日’이라 하여
한 달에 두 번 목욕일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그날이 언제인고 하면 비육일非六日입니다.
非六日 不得洗浣內衣
(비육일이면 부득세완내의하며)
그러나 요즘은 대체로 삭발일날,
혹은 매일 목욕과 삭발을 하고 있습니다.(승의 경우)
목욕은 신수스님이
“때때로 쓸고 닦아 진애塵埃가 끼지 않도록 하라”고 했듯이
마음의 때를 씻는 것과 같이
몸의 때를 씻는 것으로 수행생활의 일환입니다.
금기사항이 있습니다.
《사분율四分律》에는
‘우물이나 개울처럼 드러난 곳이 아닌 담이 막힌 곳,
나무와 풀이 막힌 곳,
물이 몸을 가리는 곳에서 옷으로 몸을 가린 채 해야 하며,
차례로 앉아 목욕할 것이며,
속살을 드러낸 이가 속살을 드러낸 이의 등을 밀지 말며,
속인俗人과 함께 목욕하지 말되,
불법승을 찬탄하는 사람이거든 같이 목욕해도 좋다’고 되어있습니다.
《교계신학비구호율의敎誡新學比丘護律儀》에는
입온실법入溫室法이 있어 목욕의 위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 처음 옷을 벗을 때 가사를 다른 옷 아래에 두면 안 된다.
◈ 욕실 안에 들어가면 정의淨衣는 벗어서 가사 걸이에 두어야 한다.
◈ 장삼이나 촉의(바지)는 벗어서 촉간觸竿위에 두어야 한다.
◈ 욕실에서 대소변을 보면 안 된다.
◈ 먼저 아래부터 씻고 다음에 위를 씻어야 한다.
◈ 조용히 해야 하며 웃고 떠들지 말라.
◈ 욕실 안에서 침을 뱉지 말라 등입니다.
◆ 목탁木鐸
불교의 여러 의식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불구佛具로
목어가 변형화 되어 생겨난 것이 목탁木鐸입니다.
이 목탁은 목어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그 형태 또한 고기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긴 고기 모양을 취한 목어와는 달리 둥근 형태로 만들어지며,
사실적인 조각이나 색칠보다는
앞부분의 긴 입과 입 옆의 둥근 두 눈으로 고기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결국 목탁은 목어에서 유래된 것이므로,
그 소리를 듣고 목어에 얽힌 전설이나
잠을 자지 않는 고기를 연상하여
더욱 열심히 수행할 것을 유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목탁木鐸’이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둥근 형태의 목탁도
‘목어木魚’라고 표기합니다.
이것은 목탁이 목어에서 유래되었음을 입증하는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
만드는 재료로는 대추나무가 가장 좋으나,
굵은 대추나무를 구하기 어려우므로
박달나무·은행나무·괴목槐木홰나무등을 많이 이용합니다.
종류로는 큰 목탁과 직접 들고 치는 작은 목탁이 있습니다.
큰 목탁은 다시 매달아 놓고 치는 것과
포단蒲團(부들로 둥글게 틀어서 만든 방석)위에 놓고 치는 것이 있습니다.
대체로 매달아 놓고 치는 것은
대중을 모으기 위해서 사용되거나 끼니때를 알릴 경우에 사용되며,
놓고 치는 것은 법당에서 염불, 예배, 독경 할 때 사용됩니다.
그리고 놓고 치는 목탁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손잡이 대신 고기 몸체의 비늘과 머리 부분 등을 나타내기도 하고
용두어신龍頭魚身의 형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현재에도
포단 위에 이와 같은 목탁을 얹어 놓고,
스님네가 앉아 두드리면서 염불하거나 독경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적에는 이와 같은 형태의 목탁을 사용하였으나,
차츰 손잡이가 있는 목탁을 많이 사용하여
오늘날에는 놓고 치는 목탁을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손잡이가 있는 우리나라 목탁.
그 목탁은 언제나 손과 함께 합니다.
왼손에는 목탁을,
오른손에는 목탁채를 쥐고 있습니다.
왼쪽의 목탁은 불변의 체體요,
오른쪽의 목탁채는 움직이는 용用입니다.
중국의 선종禪宗에서는
전통적으로 왼쪽을 체,
오른쪽을 용으로 삼았던 것도 상기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스님들은 이 둘의 마주침으로부터 생겨나는
목탁 소리에서 체와 용의 일체화를 읽었습니
다.
이것이 우리 조상들의 슬기입니다.
체와 용의 엄밀한 구분이 이루어지면서
수행자와 일체를 이루는 불구는 오직 이 목탁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목탁은
어느 곳에라도 들고 다니면서 두드릴 수가 있습니다.
절하며 굽힐 때나 절한 뒤 일어날 때,
법당에서,
거리에서,
상가집에서…,
목탁과 구도자는 언제나 한 몸입니다.
목탁과 구도자는 언제나 한 몸이 되어
그 소리와 함께 ‘너·나 없이 모든 중생이 함께
성불하는 길로 나아가기를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큰 목탁이든 작은 목탁이든
모두 일정한 법도에 맞게 치도록 되어 있고,
목탁 소리 그 자체가 서로의 약속이 되기도 합니다.
보통 길게 한 번을 치되,
처음에는 소리를 크게하여 차츰 줄이면
공양供養(식사) 준비가 완료되었으니 오라는 뜻이고,
두 번을 길게 치면,
논밭을 갈거나 공동의 작업을 하기 위해 모이라는 신호이며,
세 번을 길게 치면,
학습이나 입선入禪의 시간이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벽에 사찰의 경내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뭇 생명을 깨우고 청정함을 깃들게 하는 도량석道場釋이나,
새벽 예불 때에는 어둠이 가고 밝음이 오는 것을 상징화하여
처음에는 작은 소리로 약하게 두드리다가 차츰 크게 두드리게 되며,
저녁 예불 때에는 해가 지고 어둠이 깃든 것을 상징화하여,
처음에는 크고 세게, 끝을 작게 두드리게 됩니다.
밝음과 어두움,
체와 용을 함께 거두고 일체화시키는 이 목탁,
목탁은 속이 비어 있습니다.
속을 비게 하여 공심空心이 되게 합니다.
또한 속을 비게 하여 나무채로 두드릴 때
울리는 소리가 나게 합니다.
그것이 곧
공음空音이요,
원음圓音이며,
불음佛音입니다.
스스로의 진실을 체험하고
성불을 염원하는 그 숱한 구도자들.....
그들이라면 목탁과 목탁 소리에서 공한 마음을
공한 기도를 올려야 한다는 가르침을 읽을 수 있을겁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이 비어 있으므로 공한 마음이요,
그 공한 마음으로부터 삿됨이 없고,
허망됨이 없는 공음空音이 우러나올 때,
모든 중생의 업을 녹이고
모든 중생에게 청량과 해탈을 심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목탁처럼 공한 마음이 되어서 모든 중생을 수용하고,
목탁과 같은 공한 음성으로 중생의 업장業障을 녹이고
미혹을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차시기 바랍니다.
2023년 07월 27일 오전05:00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雲月野人 진각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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