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기 기독교 사회를 위한 준비: “베네딕트 옵션”
(The Benedict Option: A Strategy for Christians in a Post-Christian Nation)
2019년 2월 7일 이춘성
로드 드레허(Rod Dreher)의 “The Benedict Option: A Strategy for Christians in a Post-Christian Nation”은 제목과 소제목만으로도 그 내용과 저술 목적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후기 기독교 국가의 기독교인들을 위한 전략이 베네딕트 옵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은 후기 기독교 사회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탄생 되었는지 그 사상적 역사를 분석하고 서술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한다. 이후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중세 수도원 운동을 일으킨 누르시아(Nursia) 출신의 수도사 베네딕트(Benedict)가 설립한 베네딕트 수도원과 수도규칙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베네딕트 옵션을 현대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과 실천들을 서술하고 있다.
1. 후기 기독교 사회의 근원
첫째로 드레허는 후기 기독교 사회의 출현을 단순히 현대에 단기간동안 일어난 변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중세의 실재론(realism)과 유명론(nominalism)의 논의를 설명하면서 실재론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자연과 인간들 간의 관계를 통해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찾았다면 유명론은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존재, 즉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와 의미의 체계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비판한다. 유명론은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이름을 부여할 때, 인간도 자연과 같은 하나의 대상이 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자연에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존재인 인간의 가치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 사실이다. 신의 유일한 대리자였던 교황만 아니라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권위가 모든 인간에게 열려 있다는 만인제사장적 의식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이 유명론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유명론은 성경 해석의 다양성을 통해 권위 있는 성경 해석을 약화 시켰다는 점에서 종교개혁 이후의 교파의 분열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유명론은 이후에 여러 분야로 전파되어 신의 간섭 없이도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의 가능성을 열었고, 이 결과 기독교인 학자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이신론을 받아들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만유인력과 고전 역학의 토대를 놓은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었다. 그는 하나님은 시계를 만들고 눈이 멀어서 더 이상 간섭할 수 없는 눈먼 시계 공처럼 세상을 창조하시고 더 이상 간섭하시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오직 신의 형상을 지닌 인간만이 이 세상에서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자연스럽게 계몽주의를 탄생시켰고, 기적과 신비로부터 인간을 계몽하여 과학으로 이끄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신이 간섭하지 않는 세상에서 신이 없는 세상으로 이동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둘은 표면적으로 서로 다른 삶의 양식을 생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중심인 사회에서 성경은 신의 초자연적인 계시일 수 없다. 성경은 단순히 인간이 결코 알 수 없는 초자연에 대한 묵상, 혹은 가능한 상상에 불과했다. 이러한 이유로 서구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었던 성경적 세계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사람과 환경,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되었고, 1960대 일어난 성 혁명은 기독교적 가치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가족관과 남녀의 성에 대한 이해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드레허는 미국사회의 낙태와 동성결혼의 합법화의 진행이 이러한 흐름 속에 자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낙태와 동성결혼이 서구 기독교의 몰락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2. 베네딕트 옵션의 출발점
둘째로 드레허는 이러한 서구 기독교의 몰락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반까지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누르시아(Nursia) 출신의 수도사, 베네딕트(Benedict)에 주목한다. 베네딕트는 서로마의 몰락과 함께 정치, 경제, 종교, 성적인 타락의 길을 가던 당시 기독교와 로마 사회를 수도원 운동을 통해 정화하고 다시 일으켜 세운 인물이었다. 그는 누르시아의 총독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14세에 동굴로 들어가 3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고 나와 자신의 고향 누르시아에 수도원을 세웠다. 이후에 자신과 같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수도생활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생활하였다. 그는 청빈, 정결, 복종의 3원리를 바탕으로 베네딕트 수도규칙을 만들었다. 수도규칙에는 기도와 예배, 성경 읽기, 노동 등을 매일 규칙적으로 행할 수 있는 원리들과 나그네 환대와 징계, 구제와 관련된 규칙들이 제시되어 있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당시에 세상의 흐름과는 정 반대의 생활 방식을 추구함으로서 어찌 보면 외딴 섬과 같은 공동체의 모습을 지녔지만, 그 영향력은 막대하였다. 그 이유는 베네딕트 수도원이 의도적으로 세상과의 단절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세상과의 단절을 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에 역행하는 세상을 향해서 창조의 원리에 따른 옳은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베네딕트는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자연스럽게 추구한 것이지 의도적인 단절을 원하지 않았다. 당시 베네딕트 수도원은 나그네를 대접하고, 병원을 운영했으며,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농사 짖는 법을 가르치는 등의 일을 감당하였다. 자신의 제산과 권리를 포기하고 이를 기꺼이 형제와 자매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감사하게 여겼다. 이러한 선한 실천의 원천은 이들이 매일 행하는 기도와 성경읽기 예배와 노동의 규형 잡힌 삶의 습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 베네딕트의 가능성을 최초로 발견한 인물은 드레허가 아니었다. 20세기 후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윤리학자인 알리스데이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가 바로 그 최초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를 다시 한 번 부흥하게 만든 그의 대표적인 저작 “After Virtue”는 1981년 출간되자마자 각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기독교 윤리학자인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도 이 책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인물이라고 평할 수 있다. 당시 무신론자였던 매킨타이어는 이 책의 결론에서 가장 이상적인 덕 윤리 공동체의 예로서 베네딕트 수도원과 수도규칙을 제안하였다. 이후에 2007년에 나온 개정 3판의 서문에서 그가 과거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였지만 지금은 아퀴나스주의자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비록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사상을 더 확장하고 깊게 발전시킨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후에 같이 공부한 외국인들에게 들은바로는 그가 이 책을 쓰고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했다고 한다. 도미니크 수도사로 알려진 아퀴나스의 첫 수도원은 베네딕트 수도원이었다.
드레허의 책의 내용을 읽어보면 시종일관 매킨타이어의 아이디어가 뼈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강조하는 핵심은 베네딕트 수도원의 외적인 수도생활이나 수도규칙을 그대로 답습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이들이 형성했던 성경적 덕(virtue)을 추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현대에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는 복음주의를 비롯한 보수적인 기독교는 회심과 그 경험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들은 상대적으로 회심 이후의 삶을 회심과 연결 짓지 못한 결정적인 오류를 범하였다.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비판한 사람이 소저너스의 창시자인 짐 월리스이다. 그는 그의 책 “회심”을 통해서 회심은 단회적인 경험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며, 삶의 태도가 완전히 변화하는 것이 회심의 완성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드레허나 매킨타이어 식의 바꾸어 설명하면 회심이란 나쁜 습관을 버리고 이와 상응하는 선한 습관을 지속적으로 실천함으로서 불변하는 성품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내용을 411년, 78세의 제롬(Jerome)이 젊은 수도사 로스티쿠스(Rosticus)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의 철학자들은 새로운 것을 주입함으로서 낡은 것을 떨쳐버립니다. 이들은 다른 쪽을 망치질하는 것을 통해 반대 쪽 못을 빼는 것입니다.… 우리도 반대 되는 덕들을 사랑하는 것을 배움으로서 우리의 잘못들을 극복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시편 저자는 “악을 떠나 선을 행하고, 평화를 추구하고 그것을 쫓으라”라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악을 미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악을 떠나면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선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선을 찾고 선이 우리 앞으로 날아갈 때,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해서 그것을 쫓아야 합니다. 선함은 모든 분별력(understanding) 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선은 하나님의 임재(habitation)입니다.”
제롬의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덕이란 이해의 대상이 아라 실천의 대상이다. 매킨타이어는 “History of Ethics”에서 윤리와 도덕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증명하려고 시도했던 과거 계몽주의자들의 시도가 결국 정서주의(emotivism)에 머물렀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정서주의란 개인의 감정이나 환경에 따라 도덕적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매킨타이어의 덕 윤리는 지역적, 언어적, 종교적 공동체 단위로 이들이 경험한 문화와 정서에 따라서 도덕적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이 근본원리는 도덕, 윤리란 이해와 증명,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덕을 통해 습득된다는 것이다. 이를 기독교적으로 설명하면 초자연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이 도덕과 윤리이며, 이는 인간이 순종하고 따라야할 것이지 이해한 후에 따를지 말지를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덕이란 어떻게 해서든지 이를 따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 그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따라야할 것이기에 어떤 반론 없이 자발적으로 따르는 것이며, 이 과정 가운데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명령은 신자의 마음의 비석(심비)에 성품으로 확고하게 새겨지게 된다. 이것이 성화이다. 드레허는 이 오래된 기독교의 원리를 베네딕트 수도원과 수도규칙을 통해 발견하였으며, 위기에 처한 후기 기독교 사회의 교회에 이것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3. 베네딕트 옵션의 영역
셋째로 드레허는 베네딕트 옵션을 신자들의 각 영역에 적용하도록 격려하고 그 가능성을 제시한다. 먼저 교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함을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근대의 중요한 특성들 중의 하나로 액체성을 꼽는다. 이는 현대인들의 거주지, 사상, 기술 등의 유동성, 다변화성을 상징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어떤 한 지역에 머물면서 지속적인 관계와 규칙적인 만남을 통해서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도태 될 것 같은 두려움을 준다. 이러한 이유로 세상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고 이를 따라가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현대인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우리와 우리 자녀에게 어떤 선한 습관을 형성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 못한다. 특히 성경적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모 외에도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더욱이 또래 공동체가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에다. 이러한 이유로 드레허는 신자들이 경제적인 손해나 개인적인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교회 공동체의 주변에 모여 살도록 격려한다.
드레허는 특별히 교육에 대해서 강조한다. 그는 공교육이나 사교육에서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자녀를 빼내어야 할 때가 가까이 왔다고 말한다. 이는 다소 급진적일지 모르지만 드레허가 주장하는 교육이란 덕을 함양할 수 있는 고전적 교육의 부활을 의미한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고대 그리스-로마식의 교육을 기독교화한 중세식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드레허는 현대의 교육이 사람을 기능적인 존재로 만드는 도구화 된 교육이라고 규정한다. 인간적인 가치를 함양하고 선한 덕을 구축하는 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드레허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 현대의 교육 환경은 각자의 옳은 것을 인정하고 학교가 이를 어떤 한 방향으로 향하게 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그게 선생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현대 학교에서 선생은 도덕적 인도자가 아니라 기능 전수자 혹은 정보 전달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의 교육에서 선생은 하나님을 향하여 학생들을 인도하는 순례자이자 수도원의 수도원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인들이 현대의 학교 시스템에 아이들을 전적으로 맡겨 놓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불충이며,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이를 땅에 묻어두는 것과 동일한 악하고 무익한 행동인 것이다. 그러면 드레허의 주장처럼 홈 스쿨이나 또 다른 기독교 학교를 구상해야 할까? 그리고 그 막대한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더하여 교회는 드레허가 주장하는 그런 기독교 교육을 할 수 있는 영적이며, 현실적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상은 높지만 현실은 녹녹하지 않다. 이런 후기 기독교 사회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심리적 안정과 물질적 복을 기독교의 핵심인 것처럼 가르쳐 온 교회이기 때문이다. 결국 소수의 남은 자,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기독교의 본질로 돌아가고자 하는 기독교인들 개개인들이 일어나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드레허가 마지막으로 베네딕트 옵션을 적용해야한다고 주장한 두 가지 영역은 후기 기독교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현상인 성(동성애)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폰 기술이다. 이 이유도 동일하다. 성 혁명과 동성애는 전통적인 공동체인 가정을 파괴함으로서 기독교회가 구축한 윤리적 체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또한 스마트폰 기술은 공동체 안의 상호 대화를 단절시키고 공동체의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빼앗고 있다.
4. 우리의 선택
이상에서와 같이 드레허의 베네딕트 옵션은 기독교적 가치와 성경적 원리를 전 방향에서 지키고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고자하는 몸부림이다. 이전에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적극적인 정당 참여와 투표를 통해 입법과 정치권력을 선하게 사용하는 것이 기독교적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혹하다. 효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승리감은 잠시일 뿐, 오히려 권력에 빌붙은 기독교라는 오해와 비방만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일을 계속해야 한다. 다만 그 일을 할 사람들이 반드시 다수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소수라 할지라도 베네딕트 옵션에 헌신된 예수님의 참 제자라면, 그리하여 어떠한 타협도 없이 성경적 가치를 위해 헌신할 사람이 있고 이를 견고하게 지지하는 기독교인 공동체가 있다면, 그가 할 사람과 세상을 낚는 어부로서 역할은 가희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세상이 그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더 머물고 함께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향하여 매일 우리를 이끌고, 우리의 자녀와 동료 기독교인들의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드레허의 베네딕트 옵션은 어쩌면 한국 교회에는 과격하고 급진적인 방식으로 배척받을지 모른다. 아니면 다른 신학이라고 무시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물 밖에 나온 물고기가 아직도 자신이 물에 있는 것처럼 파닥거리는 상태에 있다면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때, 베네딕트 옵션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노아의 방주일 것이다. 과연 우리의 선택은 무엇일까?
https://csl-christian-ethics.tistory.com/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