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용서하기 싫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흔히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한다.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도 한다.
원수를 사랑하라고도
종교는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죄인을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고
오히려 사랑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다.
시간이 흘러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약해질 수는 있지만
자신이 당한 어떤 일은
분명 일어난 일이고 상처를 받은 일이기 때문에
가슴 속에 트라우마로 깊이 잠재되어 있다.
용서란
그 트라우마를 깨부수는 작업이다.
트라우마를 깨부수는 것이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에게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유익하기 때문에
용서는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한다.
결국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셈이 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죄인이 너무나 싫은데
용서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가하는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그리고 이해할 수도 없고 납득도 안 되고
당한 사실을 용납할 수 없는데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용서가 아무리
자신에게 좋고
자신의 깊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여도
내키지 않는 용서는 허울뿐인 용서이지
진정한 용서가 아니다.
하여
죄인을 용서하라고 할 때
또 죄인을 용서하고자 할 때
용서하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는 용서하지 않아야 한다.
그 죄인을 당장 이해할 필요도 없고
그 죄인을 사랑할 필요도 없다.
그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
우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본다.
그 사람의 성장과정과 생활환경 등의 생태적 조건을 살펴보고서
강한 의지의 소유자가 아니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이해되거나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병적인 상태에 처해 있었으므로
그렇게 할 수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지 살펴본다.
그렇게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고 나서
이해가 되면 의지가 박약하거나
심신이 병든 약자이라고 결정하고
측은지심이 생기는지 자신의 마음을 살펴본다.
그렇게 되면 조금은 자신의 마음이 누그러지고
용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더라도
용서할 수 없으면 용서하면 안 된다.
용서란 스스로 해야 하는 생각 주체의 결단이지
사회문화적 강요가 아니기 때문이다.
용서할 마음이 생기든 아니든 간에
그 다음 할 일은
공동체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용서할 마음이 생겼다면 그만이지만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면
자신이 보복을 할 것인가 그냥 용서하지 않고 내버려둘 것인가를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보복까지는 필요가 없다고 느끼거나
구체적인 보복은 아니더라도 심적인 저주를 원하거나 할 때는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런데 만일 구체적인 보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반드시 공동체의 규칙에 입각해서 실행에 옮겨야 한다.
다시 말해서
법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동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보복행위로 인해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친구나 이웃이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적인 보복은 많은 부작용을 낳기 때문에
반드시 그러한 보복은 실행에 옮겨서는 안 된다.
합법적인 방법으로 단죄를 하고 싶을 때는
이해관계가 없는 법률전문가와 상식적인 일반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좋지만
결국에는 당사자인 자신이 그 단죄행위의 책임을 져야하므로 신중하게 결정하되
공동체의 선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겨지면
신념과 용기를 갖고 임해야 한다.
그리고
용서를 하거나 심리적인 저주를 하거나
단죄의 행위를 행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그 죄인이 자신의 죄를 알고서 뉘우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그 사람이 진정으로 죄를 뉘우치고 있다면
당사자인 자신은 용서하고 싶은 쪽으로 기울 것이고
이것은 화해와 용서의 바람직한 모습이므로 권장할만한 결과이다.
그런데
그 사람을 만날 수 없거나 만나기조차 싫거나 할 때는
자신이 결정한 행동을 실행하면 된다.
그리고 끝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 일은 기도이다.
기도의 내용은
자신이 옳게 판단을 내리기를 신에게 기도하고
죄인에 대한 자신의 행동이 옳은 것인지를 묻고
옳은 길로 인도하길 기도하고
반드시 그 죄인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선한 사람이 되어 신의 용서를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생각이나 가치관 그리고 도덕기준이 다르다.
그러나 사람이 지켜야할 중요한 가치기준은 있다.
그 가치기준을 한마디로 말하면 생명사랑이다.
자신의 생명만큼이나 다른 모든 생명체의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
유일한 가치기준이다.
자신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편협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는
생명사랑의 가치를 잊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항상 열린 가슴과 머리로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존중하되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반생명적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용서하면 안 된다.
이는 악의 편에 서는 것이다.
악을 위해 봉사하는 약한 마음이 결코 선함이 아님을 잊지 말고
생명사랑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열린 생각과 용기를 가지고
사악한 영혼에 대처해야 한다.
사악한 영혼을 용서하기 전에
반드시 위에 말한 절차를 기억하고
정의롭게 대처해야 한다.
우리가 사악한 영혼을 용서하는 경우는
그 영혼이 참회하고 선한 영혼이 되고자 할 때이다.
우리는 항상
사악한 영혼이 선하게 되도록 기도해야 하지
우리 마음대로 그 사악함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용서는 신의 명령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바르고 선하게 행동하길 기도하고
모두가 선한 사람이 되길 기도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용서하고 싶지 않을 때는
용서하지 않아야 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 공동체 가치, 생명사랑, 기도의 차원을
빠트리지 말고 실행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알게 모르게 죄를 짓는다.
그러나
반드시 그 죄를 알고자 노력하고
참회하고 신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런 사람만이
타인의 죄에 대해 엄격할 자격이 있다.
사악한 영혼을 무조건 용서하고자 하지 말고
무조건 단죄하려고도 하지 말고
생명사랑의 가치기준을 기억하고 실천하면서
늘 기도하는 자세로 삶을 살면
사악한 영혼에 잘 대처할 수 있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