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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鷄龍山(병사골)
- 위 치 : 충남 공주시 계룡면, 반포면, 계룡시 두마면, 대전광역시 유성구
- 높 이 : 계룡산 847m, 장군봉 500m, 신선봉 642m
1. 일 시 : 2013. 2. 28. 07:30 ~
2. 장 소 : 계룡산(병사골코스)
3. 참석인원 : 26명
4. 탐방코스 : 병사골공원지킴터 - 장군봉 - 갓바위 - 신선봉 - 큰배재 - 남매탑 -
동학사주차장
5. 다녀온길 : 중앙고속춘천IC -영동고속만종 JC - 중부고속호JC - 경부고속청원JC -
호남고속회덕JC, 유성IC - 유성IC삼거리 - 박정자삼거리 - 병사골공원
지킴터(하차),동학사주차장(승차)
6. 오늘활동 상황
○ 07:30 --- KBS앞 출발(문막휴게소 경유)
○ 10:15 --- 박정자삼거리
○ 10:21 --- 병사골공원지킴터
○ 10:25 --- 단체기념사진촬영 및 일정안내
○ 10:30 --- 들머리진입
○ 11:11 --- 장군봉
○ 12:14 --- 지석골갈림길
○ 12:30 --- 점심식사(지석골갈림길)
○ 13:59 --- 큰배재
○ 14:09 --- 남매탑갈림길
○ 14:11 --- 상원암, 남매탑
○ 15:00 --- 동학사경내
○ 15:22 --- 일주문
○ 15:30 --- 동학사주차장
○ 15:35 --- 하산행사
○ 16:00 --- 동학사주차장 출발
○ 19:20 --- KBS앞 도착
7. 계룡산 살펴보기
□ 개관
- 68. 12. 31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계룡산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공주시, 계룡시에 걸쳐있는 충남 제일의 명산이다. 산 이름은 닭 鷄자와 용 龍 자를 쓴다. 금남호남정맥의 금남정맥에 위치한 산으로 능선이 닭의 볏을 머리에 쓴 용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계룡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으며, 풍수지리에서도 명산이며, 무속신앙과 관계 깊은 신비스러운 산이다.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삼불봉, 연천봉, 관음봉 등 열 댓 개의 봉우리, 기암괴석과 서쪽에 용문폭포, 동쪽에 은선폭포, 남쪽에 암용추, 숫용추 폭포를 어우르고 있는 명산명소이다. 봄에는 동학사 진입로변의 벚꽃터널, 여름에는 동학사 계곡의 신록, 가을에는 갑사와 용문폭포 주위의 단풍, 겨울에는 삼불봉과 자연성능의 설경이 장관을 이룬다. 계룡산에는 유서 깊은 절과 전설이 담긴 유적들이 도처에 많다. 동쪽의 동학사, 서북쪽의 갑사, 서남쪽에 신원사, 동남쪽에 용화사가 있고 갑사삼신괘불탱 등 국보 2점, 쇠로 된 당간과 당간지주 등 보물 7점과 신원사 오층석탑 등 지방문화재 9점이 있다
- 계룡산은 주봉인 천황봉에서 쌀개봉, 삼불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흡사 닭벼슬을 한 용의 형상이라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지리산, 경중에 이어 3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계룡산은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숲을 지닌 데다 교통의 요지인 대전 가까이 있어 전국적으로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다.
-계룡산은 조용한 산줄기 곳곳에 암봉, 기암절벽, 울창한 수림과 층암절벽 등 경관이 수려고 아름다운 자태와 더불어 고찰과 충절을 기리는 사당을 지닌 것으로도 이름 높다. 동쪽의 동학사, 서북쪽의 갑사, 서남쪽의 신원사, 동남쪽의 용화사 등 4대 고찰과 아울러 고려 말 삼은을 모신 삼은각, 매월당 김시습이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낸 숙모전, 신라 충신 박제상의 제사를 지내는 동학사 등이 그것이다.
- 계룡산은 흔히 봄 동학사, 가을 갑사로 불릴 만큼 이 두 절을 잇는 계곡과 능선 등 산세의 아름다움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갑사계곡은 계룡산 국립공원의 7개 계곡중 "춘마곡 추갑사(봄에는 마곡계곡, 가을에는 갑사계곡)"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단풍이 빼어난 곳이다. 5리숲 이라고도 부르는 갑사 진입로는 특히 장관이다. 갑사를 중심으로 철당간지주, 사리탑 등 불교 유적이 많다.
- 계룡산은 사계절 산행지로 봄에는 동학사 진입로변의 벚꽃터널, 여름에는 동학사 계곡의 신록, 가을에는 갑사와 용문폭포 주위의 단풍, 겨울에는 삼불봉과 자연성능의 설경이 장관을 이룬다.
- 계룡8경 중 제2경인 삼불봉의 설화는 겨울 계룡산 최고의 풍광으로 꼽힌다. 계룡산 겨울산행의 백미는 관음봉에서 삼불봉에 이르는 1.8㎞의 자연성릉 구간이다. 자연스런 성곽의 능선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협소한 길목이 자주 나타나 변화무쌍한 코스다.
□ 주요 볼거리
▶ 계룡 8 경
○ 제 1 경 천황봉 일출
-상봉이라고 불리는 계룡산 최고봉으로 한국통신 중계탑이 세워져 있고,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입산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 서면 계룡산뿐 아니라 대전을 비롯해 공주, 논산 일원의 산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풍광의 정상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 경이롭기 그지없다.
○ 제 2 경 삼불봉 설화
- 천황봉이나 동학사에서 바라보면 세 부처님의 모습을 닮았다 하는 삼불봉에 서면 자연성능을 거쳐 쌀개봉 -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비롯해 황적봉 능선, 연천봉 능선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듯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동학사계곡과 갑사계곡도 한눈에 들어와 계룡산의 전모를 볼 수 있다. 사시사철 아름다움 풍광을 맛볼 수 있으나 그 중 설화가 피었을 때가 압권을 이룬다.
○ 제 3 경 연천봉 낙조
- 연천봉은 자연성능이 시작되는 관음봉에서 갑사계곡과 신원사계곡을 가르며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에 솟아 있는 봉으로, 계룡산의 서쪽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봉이다. 서쪽으로 펼쳐진 논산과 공주 일원의 들녘을 바라보는 맛도 일품으로, 특히 저녁 노을이 물들 때는 산야는 붉게, 멀리 백마강 물줄기가 은빛으로 반짝이는 등 절경이 펼쳐진다.
○ 제 4 경 관음봉 한운
- 관음봉은 계룡산의 중앙에 위치한 봉으로 정상에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계룡산을 대표하여 공주 10경에도 포함된 이곳에서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보면 신선이 된 듯 한 기분이 든다.
○ 제 5 경 동학사계곡 신록
- 동학사계곡은 자연성능과 쌀개봉 능선, 장군봉 능선, 황적봉 능선 등 계룡산을 대표하는 능선들 사이에 깊게 패어 있는 계곡으로 수림이 매우 울창하다. 특히 신록에 물든 동학사계곡을 걷노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젊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제 6 경 갑사계곡 단풍
- 예부터 "춘 동학, 추 갑사"라 했듯이 갑사계곡의 가을 단풍은 아름답기로 이름높다. 가을철 갑사에서 금잔디 고개로 오르다 보면 몸과 마음 모두 단풍에 물들고, 자연성능에서 갑사계곡을 내려다보노라면 울긋불긋한 단풍에 취해 단풍바다에 몸을 던지고픈 마음까지 들게 한다.
○ 제 7 경 은선폭포 운무
- 동학사계곡 상류에 있는 폭포로 옛날 신선들이 폭포의 아름다움에 반해 숨어 지냈다 하여 은선폭포라 불린다. 절벽과 녹음이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내는 이 폭포는 특히 안개가 자욱할 때의 풍광이 압권이다.
○ 제 8 경 남매 탑 명월
- 남매 탑이라고도 불리는 오뉘 탑은 계명정사 부근, 옛날 청량사 터에 위치해 있다. 멸망한 백제의 왕족과 호랑이가 업고 온 여인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하는 탑으로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이 가슴 저미도록 아름답게 느껴진다.
인기명산 100 중 8위
- 국립공원 계룡산은 주능선의 층암절벽인 자연성릉과 동학사 및 갑사의 울창한 수림으로 가을단풍이 절경이고 봄에는 동학사에 이르는 도로변의 벚꽃 또한 볼 만하다.
- 단풍이 절정인 10월과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순으로 많이 찾지만 지리적 접근이 편리하고 삼불봉의 겨울설경도 아름다워 사계절 두루 인기 있다.
산림청 선정 100 명산 선정
- 예로부터 신라 5악의 하나인 서악(西岳)으로 지칭되었고, 조선시대에는 3악 중 중악(中岳)으로 불린 산으로서 국립공원으로 지정(1968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 산 능선이 마치 닭의 벼슬을 쓴 용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계룡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정감록(鄭鑑錄)'에 언급된 십승지지(十勝之地)중 하나임. 신라 성덕왕 2년(724년) 회의화상이 창건한 동학사(東鶴寺)와 백제 구이신왕(420년)때 고구려의 아도화상에 의하여 창건된 갑사(甲寺)가 있음.
8. 등산기행
□ 산행안내준비
<계룡산국립공원안내도>
- 계룡산은 지난해 2012. 12. 6 겨울초입에 들면서 정기산행일정으로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예상외의 이상기후로 인하여 산행환경이 여의치 않아 산행일정을 뒤로 미루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겨울 막바지에 이르러 2월 마지막 주 정기산행일정으로 기회를 잡았다.
- 계룡산은 최근 몇 년 동안 매년 한 번씩 다녀온 산이다. 2009. 4. 2 동학사 - 갑사코스를 시작으로 2010. 12. 9 신원사 - 자연성능 - 동학사로 이어지는 심설산행을 다녀왔으며 최근 2011. 12. 1 수통골에서 빈계산으로 이어지는 종주코스를 다녀온바 있다. 그 당시 계룡산 장군봉에서 신선봉을 거쳐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수려한 연봉들을 원경으로 눈에 익혀 두었던 산이다. 진행방향 오른쪽으로 전개된 장군봉을 전후한 풍광이 너무나도 환상적이었다. 장군봉에서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의 암릉 코스가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졌기에 지금까지 그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이때나 저때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산중 하나이다. 지난해 11, 12월 정기산행일정을 짤 당시 계룡산국립공원에 입산통제여부를 확인해 본 결과 “우리 공원 관할구역 내에는 입산통제 구간이 없다”는 명쾌한 답변을 듣고 쾌재를 부를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한 해를 훌쩍 넘기고 계사년 두 번째 달 마지막 주 정기산행일을 맞이하여 재도전의 기회를 맞이하였다.
- 여기서 계룡산국립공원을 살펴본다. 鷄龍山은 닭鷄자와 龍룡자를 쓴다. 계룡산이라는 산 이름이 갖는 의미는 조선조 초기에 이태조가 신도안(계룡시 남선면 일대)에 도읍을 정하려고 이 지역을 답사하였을 당시 동행한 무학대사가 산의 형국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금닭이 알을 품는 형국)이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라 일컬었는데, 여기서 두 주체인 계(鷄)와 용(龍)을 따서 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백두대간 중 금남정맥의 끝부분에 위치한 계룡산은 천황봉을 중심으로 관음봉, 연천봉, 삼불봉 등 28개의 봉우리와 동학사계곡, 갑사계곡등 7개소의 계곡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 자태와 경관이 매우 뛰어나 삼국시대에는 백제를 대표하는 산으로 널리 중국까지 알려졌으며, 신라통일 후에는 오악(五嶽)중 서악(西嶽)으로 조선시대에는 삼악(三嶽)중 중악(中嶽)으로 봉해질 정도로 이미 역사에서 검증된 명산이다. 지리산에 이어 1968. 12 .31 두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 되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충남 공주시에 주로 위치하면서 일부가 대전광역시와 논산시, 계룡시에 위치하고 있다. 다양한 야생 동 · 식물과 국보, 보물, 지방문화재가 곳곳에 분포하고 있으며, 동학사, 갑사, 신원사 등의 고찰이 자리하고 있다.
<계룡산병사골코스등산지도>
- 병사골을 들머리로 한 코스는 경관이 수려하고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로 알려져 있다. 이 코스는 황적봉-천왕봉-쌀개봉 능선과 자연성릉(관음봉-삼불봉능선)과 더불어 험난하면서도 경관이 빼어난 바위능선으로 손꼽힌다. 특히 인위적인 시설물이 들어서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탐방로를 체험할 수 있어 인기를 끈다. 또한, 이 코스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신경 쓰이는 문화재관람료와 무관하기 때문에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 계룡산국립공원 내에는 오늘 코스 이외에 신원사1코스, 신원사2코스, 동학사1코스(편도) 동학사2코스, 수통골1코스(편도), 수통골2코스, 갑사1코스, 갑사2코스 등 지정탐방로가 있다. 코스 대부분이 눈에 익은 코스들이다. 동학사, 갑사, 신원사 나들목을 등산기점으로 대부분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 등산기점을 기준으로 연계코스 몇 개가 더 남아있기 때문에 앞으로 시기를 가늠하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다.
- 오늘 병사콜 코스는 병사골 - 남매탑 구간 5,2km/3시간, 남매탑 - 동학사 구간 1,7km/1시간, 동학사 - 동학사주차장 구간 1,65m/1시간으로 잡고 총 8,55km/5시간 코스로 준비하여 검증해 보기로 하였다.
- 오늘 사용한 등산지도는 계룡산국립공원에서 제공하고 있는 안내도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요즘 우리나라 모든 국립공원 홈페이지가 새로 단장되면서 등산지도 안내시스템이 새로워졌다. 지정탐방로를 비롯하여 개방된 모든 탐방로까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표기되어 있어 예전보다는 이용하기에 상당히 편리해졌다.
□ 산행안내
<속리산하>
- 지난주 치악산 정기산행일정 무산을 계기로 그날의 소회(所懷)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계룡산 산행 후 치악산 얘기를 거론하자니 다소 어색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날의 일상이 본인의 입장에서 매우 의미가 깊기 때문에 대강을 소개하면서 독자 제위 여러분들께 양해를 구해마지 않는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모두산악회에서 치악산국립공원 내 지정탐방로 중 구룡탐방지원센터에서 성남공원지킴터로 이어지는 23,8km 종주코스를 제외한 나머지 코스를 모두 다녀왔다. 지난주 치악산 성남공원지킴터에서 행구동공원지킴터까지 이어지는 13,3km/5시간 정기산행일정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치악산국립공원 내 종주코스 중 일부 남은 구간인 남대봉에서 향로봉까지 3,9km 섭렵에 대한 그동안의 기대가 함께 사라졌다. 지난주 치악산 정기산행을 계기로 치악산국립공원 내 지정탐방로에 대하여 마침표를 찍고자 했던 큰 기대가 어이없이 무너지면서 그 이상의 허탈감에 빠지기도 하였다. 지난주 치악산 정기산행 일정이 예정대로 이뤄졌다면 남은 종주코스는 지난해 2. 2일 행구동공원지팀터에서 향로봉 - 비로봉 - 구룡탐방지원센터로 이어지는 14,5km코스와 연계하여 2회에 걸쳐 섭렵한 것으로 만족하고자 하였다.
- 치악산 종주코스는 3년 전 둘째 사위와 동행하여 도전했다가 기상특보가 발효되는 바람에 성남공원지킴터 현장에서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악몽과 아쉬움을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코스이기에 지난주 목요일 정기산행일정 취소와 때를 같이하여 재도전을 결심하였다. 나들목이 동서로 길게 뻗어있기 때문에 승용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따른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렇더라도 금년 겨울이 다 가기 전에, 그동안 내린 눈이 다 녹기 전에 심설산행에 대한 평소에 품었던 소망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충동을 자제할 수 없었다. 또한, 3년 전과 현재의 체력을 가늠해보기 위해 단독 산행에 따른 위험부담과 나들목 접근성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실행에 옮겨 3년 묵은 숙원사항을 금년 첫 사업으로 갈무리하였다.
- 치악산 종주산행에 관심을 갖으시는 분들을 위해 운영일정을 간략히 소개하오니 참고하시고 상세한 사항은 개별상담으로 넘긴다.
◆ 언 제 : 2013. 2. 21.
◆ 등산코스 : 치악산종주코스(구룡주차장 - 구룡사 - 비로봉(정상) - 향로봉 -
남대봉 -상원사-성남공원지킴터(소요제원:등산로23,8m, 접근로
0,7km,계 24,5km / 8시간)
◆ 일 정
- 출 발 : 04:10분(승용차)
- 도 착 : 05:15분(구룡사소형주차장도착, 주차)
- 입 산 : 05:30분
- 하 산 : 13:30분
- 대중교통 : 성남 종점 13:50 시내버스 승차, 관설동종점하차
관설동종점 14:35 구룡사행 시내버스 승차(41번)
◆ 행정사항
- 구룡사주차장 들머리는 사다리병창구간 2,7km구간 난이도가 높지만 비로봉에서 향로봉까지 10,5km 구간이 내림구간으로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성남공원지킴터 들머리는 향로봉에서 비로봉 정상까지 대부분 오르내림의 연속이지만 오름 구간이 많은 점과 하산 후 구룡사주차장까지 대중교통 이용시간의 편의성을 감안하여 구룡사주차장을 들머리로 선정하였다.
<단체기념사진>
- 한겨울을 넘기면서 연이어 30명을 넘기지 못하는 저조한 참석률을 보였기 때문에 목요산행 신청방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봤다. 금주 월요일을 맞으면서 20명을 넘기는 상황이 전개되는 바람에 상당히 고무적인 분위기로 이어졌다. 아무튼 수요일까지 총무님의 수고로움과 계룡산이란 이름값에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신청인원은 30명을 훌쩍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임의 파기하신 분이 의외로 많아 오랜만에 맛본 큰 기대는 수포로 돌아갔다.
- 요즘 국립공원 일부탐방로가 입산 통제되기 때문에 계룡산국립공원 홈페이지 공지사항 방을 찾아 공지내용의 변동사항 여부를 확인한바 “2. 1 ~ 5. 15까지 봄철 산불조심기간임을 공지합니다. 탐방로 통제구간은 없으나 비법정탐방로에 출입은 통제합니다. 산행시 인화물질 소지 및 취사행위로 인한 자연공원법 위반 시 적발 조치함을 알려드립니다. 탐방객 여러분들의 많은 협조 부탁드리며 궁금하신 사항은 언제든지 계룡산사무소로 전화 (042-825-3002~3)하시면 성심성의껏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공지내용에 입산통제라는 달갑지 않은 불청객이 끼어있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 당일 계룡시 반포면 주간날씨는 구름 많고, 기온은 -2 ~ 8℃분포를 보일 것으로 예보하였다. 지난 1월말 이후 내내 평년기온을 웃도는 포근한 날씨가 이어졌기 때문에 오늘도 날씨 걱정은 접어두는 날로 치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었는데 예상대로 맞아떨어졌다.
- 막간을 이용하여 바람과 고도에 의한 체감온도 측정요령을 소개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산에서 체감온도는 바람과 고도에 따라 변화한다. 보통 초속 1m의 바람이 불때마다 평균 1.6℃씩 기온이 떨어지고, 높이 100m 올라갈 때마다 0.65℃ 정도씩 떨어진다.
☞ 평지 기온이 0℃일 때 1,000m 높이의 산에서 초속 10m의 속도로 바람이 분다면
☹ 높이 차이로 생기는 기온 차 : 10 x -0.65 = - 6.5℃
☹ 바람 때문에 생기는 기온 차 : 10 x -1.6 = -16℃
☹ 체감온도 : -6.5 + -16 = -22.5℃
- 빠른 길 찾기 정보에 따르면 춘천에서 병사골공원지킴터 까지는 검색정보 없음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인근의 박정자삼거리와 장군봉을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삼고 정보를 확보해 뒀다. 그 결과 박정자삼거리 까지 243,3km/2시간47분, 장군봉 까지 245km/2시간47분 소요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리상으로는 2km 미만의 근소한 차이를 보였지만 시간상으로는 동일하였다. 어차피 동학사나 병사골공원지킴터의 행정구역이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인만큼 박정자삼거리를 버스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입력하고 10:30대 들머리 진입을 목표로 춘천을 출발하였는데 예상시간대에 여유 있게 목적지에 도착하여 일상을 열었다.
- 오늘 나들목이 소재한 반포면과 학봉리에 대해 살펴본다. 반포면은 충청남도 공주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이다. 남부 지역은 계룡산국립공원의 일부를 이루는 높은 산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서부 지역에는 우산봉, 갑하산 등이, 동부에는 국사봉이 있다. 용수천이 면의 남북 방향으로 곡류하면서 유역에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이 하천은 사기소천이라고도 한다. 용수천에 합류되는 성강천, 송곡천, 봉곡천 일대에 소규모의 충적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북부 지역의 경계 지대에는 금강이 흐르며 도남천 · 마암천 · 원봉천과 합류하는 일대에도 소규모의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현재 공암리 · 성강리 · 송곡리 · 봉암리 등 13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 마한 때에는 유성(儒成) 쪽의 거흔국(巨釁國)과 접해 있었고, 백제 때에는 웅천, 신라 때 웅천주 웅주에 속해 있었다. 신라 선덕왕 때 동학사가 창건되어 계룡산 주변에 부락이 활발하게 형성되었다. 고려 때에는 공주목과 덕진현의 관할에 속하였고, 조선 초기에도 공주목과 덕진현의 일부 지역이었으며, 1750년대에 공주목 면리(面里)로 원봉리(元峰里)에 있는 반계, 반포의 이름을 따서 반포면이라 하였다. 1914년 덕진현 지역을 연기군과 대덕군에 이관하고 공암(孔岩) · 성강리(聖岡里) 등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95년 공주시에 편입되었다.
- 鶴峰里는 동쪽에 있는 학(鶴)이 나는 곳에 안식처가 있다는 학바위와 일봉(一峰)의 이름을 따서 학봉(鶴峰)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반포면(反浦面) 지역으로, 1914년 반포면 석봉리(石峰里)·사기소(沙器所)·동흘리(東屹里)·밀목티(密木峙)가 통합되어 학봉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가 되었다. 학봉리의 북부와 서부로는 해발 고도 400여m와 800여m의 산지가 있으며, 남부와 동부로는 해발 고도 500여m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서부에는 쌀개봉·관음봉(觀音峰)·삼불봉(三佛峰)이 동부에는 도덕봉(道德峰)]이, 남부에는 황적봉과 관암산(冠岩山) 등이 높이 솟아 있다.
- 문화 유적으로는 공주 학봉리 도요지, 청량사지, 보물 제1284호인 청량사지 오층석탑, 보물 제1285호인 청량사지 칠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7호인 숙모전(肅慕澱)이 있다. 동학사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7호인 동학사 삼성각(東鶴寺 三聖閣), 제58호인 동학사 삼층석탑(東鶴寺 三層石塔) 그리고 제59호인 삼은각(三隱閣) 등이 있다.
- 오늘 들머리인 병사골의 유래는 옛날부터 八兵士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병사골매표소로 운영되다가 국립공원 내 입장료 징수제도가 사라지면서 무인 공원지킴터로 이름을 바꿔 운영되고 있다.
<장군봉>
- 오늘은 들머리에 들면서부터 선발팀과 동행하였다. 탐방로가 단조롭고 안내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진로선도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였지만 병사골지킴터에서 상원암(남매탑) 5,2km구간은 처녀탐방구간이기 때문이다. 병사골공원지킴터에서 장군봉까지는 1㎞/ 40여분 정도 소요되었다. 탐방로는 눈이 다 녹아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도 산행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양호한 상황이었다. 우리고정 춘천과 너무나도 비교되었다.
- 정상에는 정상석은 없고 장군봉 정상을 알리는 표주와 해발 500m, 병사골 1km, 남매탑 4,2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또한 전망좋은 암반위에 설치된 장군봉에서 계룡산을 바라본 경관 안내판에는 황적봉, 천황봉, 쌀개봉, 관음봉, 삼불봉, 관암산, 백운봉, 금수봉 등을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연무나 박무 없이 시원하게 탁 트인 청명한 날씨 덕분에 사방으로 시원한 조망을 즐길 수 있었다.
- 장군봉이란 이름을 가진 봉우리도 신선봉과 마찬가지로 전국에 걸쳐 부지기수로 많다. 장군(將軍)이란 단어의 사전풀이는 “군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우두머리”를 이른다. 계룡산 장군봉 뒤편의 임금봉을 호위하는 형상을 갖춰 “입신양명(立身揚名)하는 장수의 길”이라는 속설에 관심을 갖는 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장군이란 이름이 붙은 것을 보면 이 봉우리의 형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다. 장군봉에 얽힌 전설이나 구전되는 얘깃거리를 찾아보려고 얘를 써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봉우리의 이름이나 그 형상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에 옷깃을 여미여 마음 숙연해 짐을 느꼈다.
- 장군봉은 계룡산 연봉(連峰)의 하나이다. 장군봉이라는 명칭은 봉우리의 형상이 장군(將軍) 또는 오줌통을 뜻하는 장군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장군바위라고 하는 커다란 바위가 떨어져 주변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계룡산국립공원의 동학사지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봉우리로서 홍색장석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룡산의 동쪽 능선에 놓여 서쪽으로 신선봉·삼불봉과 연결되며, 남쪽에 동학사 계곡이 있다. 동쪽으로 금강의 지류인 용수천이 골짜기를 따라 북쪽의 금강을 향하여 흐르고, 이 골짜기를 따라 공주와 대전을 연결하는 32번국도가 남북 방향으로 지나간다.
<지석골갈림길이정표>
- 지석골갈림길에는 지석골 1,5km, 남매탑 2,6km, 장군봉 1,6km, 큰배배 2,0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오늘 후미 팀 11명은 신선봉과 남매탑 구간 일정을 접고 지석골갈림길에서 지석골지킴터로 하산하였다. 선발팀과 중간 팀은 여기서 합류하여 점심식사시간을 가졌다.
<신선봉>
- 장군봉에서 신선봉구간은 암릉 오르내림의 연속이다. 제법 난이도 높은 구간도 있었지만 그동안 쌓인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그 정도는 한겨울 심설산행이 아닌 이상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안타까운 것은 어느 바위가 갓바위 이고, 어느 봉이 신선봉인지 확인할 수 없는 현장의 상황이었다. 정상석까지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장군봉처럼 표주라도 설치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 신선봉은 계룡산국립공원에 속하는 계룡산 연봉(連峰)의 하나로 해발 642m이다. 지질은 대체로 편마상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쪽 사면은 홍색장석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에 동학사 계곡이 있는데, 이 계곡에는 신성봉을 비롯하여 계룡산계에서 발원한 작은 하천들이 흐른다. 신선봉 바로 앞쪽에는 남매탑 또는 오뉘탑으로 불리는 청량사지 쌍탑이 산 중턱에 서 있다.
- 신선봉이란 이름은 흔하디흔한 산봉우리 중 하나이다. 인터넷에 신선봉이라도 치고 들어가면 전국 각지에 그 이름이 널리 산재 해 있다. 神仙이란 뜻은 “중국의 신선 사상과 도교에서 이상으로 여기는 인간”으로 풀이한다. 신선이란 이름을 가진 봉우리는 지금까지 다녀오면서 만만한 곳이 한 곳도 없지 싶었다. 몇 주 전 도락산을 다녀오면서 언급한바 있었지만 神仙 字가 붙은 봉우리에 대해서는 무엇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달갑지 아니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봉에 서면 무엇인가 남다른 특별함을 갈구하게 된다. 대부분의 신선봉들은 신선과 관련된 전설이 깃들어 있거나 구전되어 내려오는 얘깃거리들이 전해지고 있었기에 기대를 걸었었는데 소개할만한 자료들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계룡산 일원에 성행하던 무속신앙에 관련된 얘기들을 짚고 넘어간다.
- 계룡산 신도안(新都內)에는 육, 해, 공군 三軍 本部가 있다. 삼군 본부를 계룡대라고 한다. 계룡대는 1989. 6. 20 이전하였다. 계룡대가 이곳으로 이전하기 전에 신도안에는 우리나라 토속신앙의 메카(Mecca)라고 할 정도로 많은 신흥, 유사종교 집단이 밀집해 있었다고 한다. 무속인 들의 말에 의하면 무속신앙은 우리나라 토속종교로서 우리민족과 수천 년을 두고 애환을 함께하여 왔으며 무속신앙이 현재까지 존속(存續)하고 있는 것은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만약 무속신앙이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면 무속신앙은 자연적으로 소멸됐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속인 들은 무속신앙이 미신으로 격하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의해서라고 주장한다. 일제가 우리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무속신앙을 의도적으로 격하시킨 것이며 화투도 우리민족의 갈등을 조장하기 위하여 이 때 보급 되였다고 주장한다. 충청남도에서 발행한 "계룡산지(鷄龍山誌)"에 의하면 해방이후 신도안에는 60여개의 신흥 종교집단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철거정책으로 인하여 종교집단은 뿔뿔이 흩어지고 현재는 신원사 인근에 형성된 나라굿당, 동자굿당, 서울굿당, 밤나무굿당, 등 굿당촌과 동월(東月)마을에 굿당집이 몇 채 있을 정도라고 한다.
<큰배재 이정표>
- 큰배재로 내려서기 직전 길게 이어진 계단을 지나면 큰배재에 이른다. 여기서 진행방향 왼쪽은 동학사주차장으로 곧바로 내려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남매탑으로 가는 길이다. 이 지점에 동학사주차장 3,4km, 남매탑 0,6m, 장군봉 3,6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상원암>
- 들머리에든지 3시간40여분 소요되었다. 상원암은 옛날에는 청량사라고 불렸으며 현재는 비구니스님이 참선. 정진하는 도량이다. 청량사지는 고려시대 절터이다. 계룡산 비로봉 아래의 산중턱 길 옆 남매탑이라 부르는 쌍석탑 옆에 위치해 있다. 현재 사역(寺域)으로 추정되는 곳은 남매탑 앞쪽의 빈터를 비롯하여 탑 오른편 지역이라고 한다. 남매탑 석탑 앞에서 거북이 모양의 주초석 20여 개가 수습되어 남매탑 앞에 진열해 놓았다. 탑 옆에는 세 점의 석재가 남아 있어 그를 근거로 절터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에서 청량사(靑凉寺)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편이 발견되어 청량사지라 부르게 되었다. 탑의 아래 터에는 부속 전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탑의 아래 터에는 계룡정사(鷄龍精舍)라는 작은 사찰이 들어서 있다.
<남매탑>
- 큰배재에서 내려오면서 0,6km 지점, 동학사에서 울라가면서 1,7km 지점에 나란히 서있는 2기의 탑이 남매탑이다. 보물 제1284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량사지(淸凉寺沚)의 5층석탑과 보물 제1285호로 지정되어 있는 7층 석탑이 바로 남매탑이다. 오뉘 탑으로 불리는 두개의 탑은 원래는 청량사지 쌍탑이다. 해발 약 590m 지점에 있는 상원암 바로 옆에 있는 이 탑의 사지는 근처에서 청량사(淸凉寺)라는 막새기와가 발견되어 청량사지라고 부르고 있다. 청량사는 임진왜란 때 병화로 전각이 모두 소실되었고 이 탑만 유일하게 남아 오늘에 이른다. 일명 남매 탑 또는 오뉘 탑이라고도 불린다. 이 두 기의 석탑은 1950년대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1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두 탑의 상세한 설명은 아래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 5층석탑(보물 제1284호] : 청량사터에는 칠층석탑과 오층석탑 등 2기의 석탑이 남아 있는 데, 이 두 탑을 가리켜 오누이탑 혹은 남매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옛날에 상원이라는 승려가 어려움에 처한 호랑이를 구해주자, 호랑이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처녀를 업어다 주었다. 상원은 처녀와 남매로서의 관계만을 유지하며 수도에 정진하였고, 처녀의 아버지가 그 갸륵한 뜻을 기려 두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 탑은 그 중 오층석탑으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얹은 모습이다. 바닥돌과 그 위에 둔 기단의 아랫돌은 각 4장의 돌로 짰다. 특이 한 점은 기단의 가운데기둥을 별도의 돌로 끼워두었다는 것이 다. 탑신의 각 층 지붕돌은 얇고 넓어서 균형과 안정감을 잃고 있다. 1·2층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2단인데, 모두 딴 돌을 끼워 넣은 구조이다. 3·4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따로 한 돌씩이며, 4층의 지붕돌받침은 아래층들과 달리 1단의 돌로 만들어져 있다. 4층 지붕돌 위에 5층 몸돌이 있으나, 지붕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둥근 머리장식이 남아 있다. 전체적인 수법으로 보아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 비인오층석탑(보물 제224호)으로 이어지는 백제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일부 없어진 부분이 있지만 위로 올라가면서 과감하게 생략된 부분이 있고,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시대에 와서 한 절에 각기 특징 있는 두 가지 유형의 백제탑을 세운 것은 역사적, 미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 7층석탑(보물 제1285호) : 단층 기단위에 세운 7층석탑으로 현재 7층 옥개석 위에 노반만 남아있으며 전체적으로 폭이 좁고 높이가 높은 형태이다. 2매석으로 구성된 하대석 위에는 우주와 면석을 별석으로 조성한 중대석을 두었는데 면석 1매는 결실되었고 1매는 뒤에 보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2매석으로 구성된 상대석은 다른 부재에 비해 치석수법이 거칠고 부연등의 조식이 없는 단순한 형태로 일부는 후보(後補)된 것으로 추정된다.1층 탑신은 1매석으로 되었고 한 면 중앙부에는 장방형(61×34×17cm)의 감실이 표현되었으며 다른 한 면에는 감실을 조성하다만 듯 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1층 탑신위에는 2매석인 별석의 옥개석 받침부가 있는데 그 중 1매는 후보된 것으로 추정된다. 1층 옥개석은 투박한 2단의 층급받침이 있고 낙수면은 5층석탑에 비해 경사가 심한편이며, 상단에는 간결한 1단의 탑신 받침이 있다. 2층 탑신은 후보된 것이며 2층 옥개석은 1층 옥개석과 같은 수법이나 1층 옥개석에 비해 낙수면의 경사가 좀 더 심한 편이다. 3,4층 탑신은 후보된 것이며, 5층 탑신은 2매석, 6,7층 탑신은 1매석으로 구성되었고 5, 6, 7층 탑신은 우주가 조각되어 있다. 3, 4, 5, 6층 옥개석은 1층 옥개석과 같은 수법이며, 7층 옥개석은 층급 받침이 1단으로 줄어들었으며, 7층 옥개석 위로는 노반이 남아 있다. 단층기단위에 세운 석탑으로 전체적인 조성수법으로 보아 '미륵사지석탑'에서 '익산왕궁리오층석탑'으로 이어져 오는 석탑조성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일부 결실된 부재가 있기는 하나 상층으로 올라가면서 부재가 생략되거나 세부 조각수법이 정연하지 않는 등 고려중기의 시대적 조형수법을 잘 나타내고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 남매탑 주변은 제법 넓은 광장이 있어서 탑을 구경하거나 경배하며 소원을 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옹기종기 모여앉아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로 붐볐다. 병사골, 상신리, 박정자삼거리, 상가 등의 들머리 산행길이 이곳 남매탑에서 만나게 되기 때문에 평소 산객이 많은 편이다. 남매탑을 뒤로하고 동학사로 내려오는 1.7km 구간은 대부분이 가파른 너덜지대지만 등산로 정비를 잘 해놓아 부담 없이 하산할 수 있었다. 이 구간 역시 눈이 다 녹아 봄기운이 감돌았다.
<동학사>
- 들머리에든지 4시간30여분 소요되었다. 오늘 일정에는 동학사는 경유하지 않을 참이었다. 그러나 동학사입구까지 선발팀과 동행한 관계로 시간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동학사 경내를 두루 돌며 예전에 눈 팅으로 만족해야만 했던 숙모전과 승가대학도 잠시 들려 외관이나마 살필 수 있었다.
- 동학사는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에 있는 절이다.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724년(성덕왕 23) 상원조사(上願祖師)가 암자를 지은 곳에 회의화상(懷義和尙)이 절을 창건해 상원사(上願寺)라 했다. 936년 신라가 망하자 대승관(大丞官) 유거달(柳車達)이 이곳에 와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절을 지으니 승려들이 모여들어 사찰이 커지면서 이름을 동학사로 바꾸었다. 1394년(태조 3) 고려의 유신 길재(吉再)가 고려 태조와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고, 1457년(세조 3)에는 김시습(金時習)이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단종의 제단을 증설했는데, 다음해 이곳에 들른 세조가 단종을 비롯해 세조찬위 때 억울하게 죽은 280여 명의 성명을 비단에 써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招魂閣)을 짓게 하고 인신(印信)과 토지 등을 하사했으며 동학사라고 사액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728년(영조 4) 신천영(申天永)의 난으로 모두 소실된 것을 1814년(순조 14) 월인선사(月印禪師)가 예조에 상소하여 중건했고, 1864년(고종 1) 보선국사(普善國師)가 옛 건물을 모두 헐고 건물 40칸과 초혼각 2칸을 지었다. 1904년 초혼각을 숙모전(肅慕殿)이라고 개칭했다. 6·25전쟁 때 거의 파괴된 것을 1975년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무량수각·삼은각·숙모전·범종각·동학사·동학강원 등이 있는데 동학강원은 운문사의 강원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비구니수련도량으로 유명하다.
- 동학사는 1금당 1탑의 당탑가람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대웅전 마당 가운데 아담한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어 당탑가람의 면모를 갖춘 것. 지방문화재자료 58호인 이 탑은 남매탑이 있는 청량사지에 있던 것을 옮겨 온 것이라 한다. 신라 성덕왕 23년(723) 회의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이 절집의 대웅전은 볼만하다. 정면 3칸. 좌우, 중앙의 분합문에 새겨진 국화, 대나무, 소나무, 난초, 운학의 문양은 굵고 힘이 있어 보는 마음이 통쾌하다. 육중한 팔작지붕의 처마와 부연, 그 아래 화려한 공포. 유연한 배흘림기둥 아래 초석이 연꽃으로 양각되어 대웅전의 기품을 더한다.
- 공주의 동학사(東鶴寺)는 계룡산의 동쪽에 자리 잡은 절로 건너편의 갑사, 신원사와 함께 계룡산을 대표하는 3대사찰로 꼽히는 절이다. 현재는 비구니 승가대학으로 비구니들의 수행사찰 역할을 하고 있다. 동학사는 계룡산의 등산로에 자리 잡고 있어, 휴일이면 등산을 겸한 행락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동학사 입구 박정자삼거리에서 동학사 주차장까지 길 양안으로 벚나무가 즐비하여 이때에 맞춰 벚꽃축제가 열린다.
<숙모전>
- 숙모전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이지만 보일러 주유관계차 출입하는 주유소 직원을 따라가 번개에 콩 복가 먹듯 눈 팅하고 나왔다. 비구니스님들께서 참선. 정진하는 시간인 듯 방마다 신발만 가지런히 정돈된 채 쥐죽은 듯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숙모전은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단종의 영혼과 세조에게 항거한 충신열사의 혼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사우이다, 숙모전은 동학사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숙모전은 억울하게 죽은 단종과 사육신, 금성대군을 비롯하여 김종서 등 신라, 고려, 조선의 충절인 280여 위를 배향하고 있는 사우이다. 숙모전은 1456년(세조 2)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은 사육신의 시신을 김시습이 혼자 수습하여 몰래 장사 치루고 동학사로 돌아와 삼은각 옆에 단을 쌓고 초혼제를 지낸 초혼단이 그 시초이다.
- 초혼단은 1728년(영조 4)의 무신란 때 신천영(申天永)이 초혼각과 동학사를 방화하여 폐허가 되었다가 여러 번 중건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1827년(순조 27)에야 일각을 세우는 데 그치고 말았다. 1830년(순조 30)에 동학서원의 건립이 추진되면서 서원이 창건되었다. 서원에는 삼상(三相)·육신(六臣)과 삼은(三隱)·계림백(鷄林伯)을 제향하고 단종과 여러 절신을 따로 모셔 군신의 자리를 나누었다. 그러나 서원은 6년 후 훼철되었고 1864년(고종 1) 사찰이 대대적으로 중건되면서 가람 40칸과 함께 초혼각 3칸이 마련되었다. 1904년(고종 41)에는 초혼각을 숙모전(肅慕殿)이라 개칭하고 사액하였으며, 단종의 비 정순황후를 단종 위패에 합독(合櫝)하였다. 그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김복한(金福漢)·최영조(崔永祚)·송계헌(宋桂憲) 등의 주동으로 제수(祭需)와 중수비를 모아 증축에 착수하여 완공하였고, 1921년에는 다시 두 배로 중건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숙모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초익공 형식의 사당 건물이다. 정면은 띠살 사분각으로 배공시킬 수 있다. 숙모전 전정 동·서변에 늘어선 동·서무는 정면 6칸, 측면 1칸의 건물이며, 1883년(고종 20)에 충청좌도어사 우석에 의해 건립되어 군신을 나누어 봉사하게 하였다. 숙모전은 신라, 고려, 조선 삼대의 충절인이 배향되어 있어 일반적인 서원 사우의 특징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유교와 불교가 한자리에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사료이다.
<동학사 승가대학>
- 동학사 홈페이지 승가대학 소개내용 전문을 옮겼다. 관심 있으신 분들께서 읽어보시기 바란다. 지금의 동학사 승가대학은 금강산 유점사에 있던 율봉스님의 제자 만화보선스님이 1864년(고종1년) 제자 호봉용암스님 등과 더불어 동학사로 옮겨와 대웅전·승당·요사·대방등을 새로 중창하고 강원을 개설한 것이 동학사 강원의 전신이자 시초가 되었다. 근세 우리나라 선풍을 드날렸던 경허성우스님이 만화보선스님의 강맥을 이어 1871년 강백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데, 유교와 노장사상 불교경론을 두루 섭렵하여 당시 전국에서 학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하는 전래가 있다. 또한 경허스님은 1879년 지금의 동학사 실상선원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한국전쟁 발발 후 1956년 대현스님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경봉용국(鏡峰容國)스님을 모시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초의 현대식 비구니 전문 강원을 개설했다. 7년 후인 1963년 제1회 대교과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동학사 승가대학은 승가와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비구니스님들의 모교로, 지금까지 많은 학승과 수행자들을 배출하고 있다. 그동안 동학사에는 많은 선지식들이 주석하며 승단의 교육을 담당하였고, 그에 버금가는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동학사 승가대학은 2011년부터 조계종단이 시행한 교육제도를 도입하여 명실상부한 대학의 면모를 구비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다양한 변화의 시류에 부응하는 새로운 교육방침을 수용하고 전통의 기존 강원교육 방식의 장점을 합하여 학인스님들을 지도하고 있다. 동학사는 학인스님들의 교육학습의 질을 높이고 더 큰 신심을 고양시키기 위하여 종단이 인정한 조계종의 교수아사리 스님들을 모셔 모든 학년의 내·외전수업 강의를 전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인들은 양질의 수업을 받음은 물론 승가 최고의 전문가들에 의해 불교에 대한 안목을 넓히며 성장해 나가고 있다. 내적으로는 전통적인 강원에서 배웠던 어록과 경전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승가고유의 학습 방식인 ‘논강’의 장점을 도입하고, 외적으로는 현대식 교육을 받은 전문 교수아사리 스님들이 미래의 안목을 열어 대안을 제시하며 이 시대가 요구하는 철저한 자기 주도적 토론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동학사는 그야말로 온고지신하는 교육의 산실이다. 현재 1학년은 치문, 선학개론, 세계불교의 이해, 계율, 2학년은 서장, 대승불교개론, 세계불교사, 중관사상, 3학년은 금강경, 선수행론, 대승불교 실천론, 불교와 동서철학, 선종사, 4학년은 화엄경을 수학하고 있다. 그리고 전 학년 공통으로 영어와 일어, 상용염불의례를 공부하고 있다. 또 한편, 현 시대에 맞는 수행자이면서 재가불자를 이끌어 갈 사표로서의 역할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운영지침을 강구하고 있다. 따라서 본연의 임무와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도하기 위해 꼭 필요하고 적절한 교육과정을 제공하기 위한 일환으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하나의 예로 구르지예프가 우주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고 자기 삶이 객관적인 목적을 알도록 일깨우는 수련중심으로 발전시켰던 에니어그램을 도입하여 자신의 성격을 이해함으로써 자기개발과 성장의 기회를 갖도록 하는 특강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특강은 자신의 재능과 소질을 좀 더 발휘할 수 있고 기질적 지혜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이는 내적 여정을 통해 자신 속에 내재된 성격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 인격적 통합을 이루도록 해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나와 상대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며 공동체로서의 다양성, 균형성, 통합성을 이해함으로써 시너지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커리큘럼들은 우리 삶의 에너지에 대한 균형을 이루게 하고 참 자기를 발견하도록 안내하며, 통찰적 지혜를 통해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다양한 공부와 수행을 병행하는데 있어 수행자의 건강과 여가활용도 크게 중요하다는 인식아래 요가와 사군자, 서예도 함께 배우고 있으며, 본 강원의 원훈중 하나인 이타의 실천을 위해 논산훈련소 법회 및 수계 봉사활동, 간호사관학교 법회에 참여하여 이웃들에게 부처님의 법을 전하고 있다. 전통의 강원교육방식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호응하는 새로운 교육프로그램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생활수행까지 겸하고 있기에 동학사는 그야말로 敎와 禪을 함께 아우르는 實踐行을 실현하는 교육의 장이다.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공부가 즐겁기 때문에 스스로 찾아서하는 동학사 승가대학 학인들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 동학사를 지나던 한 도인이 지었다는 게송이 동학사 한 켠의 돌에 새겨져있다고 한다.
東方精氣生佛天 (동방의 정기가 부처님의 하늘에서 생겼났나니)
鶴亦願舞諸佛下 (학 역시 모든 부처님 아래 춤추길 원하였도다)
寺僧心念通佛靈 (절 승려들의 마음이 부처님의 영지에 통하니)
刹那見性成佛地 (찰라에 성품 깨닫고 부처님의 지위 이룸이라)
<동학사 계곡>
- 동학사에서 주차장까지 내려오는 1,65km구간은 일정 마지막 구간으로서 상당히 지루함을 느끼는 구간이다. 한여름 숲이 우거지고 수량이 불어나면 불거리가 제법 상당한 곳이지만 겨울도 아니요, 봄도 아닌 어정쩡한 계절 탓에 그저 삭막하고 썰렁한 분위기가 연출되어 눈길 할 새도 없이 그냥 지나쳤다. 동학사계곡은 충남 제1의 계곡이다. 여름의 동학사 계곡은 사철 제일의 수량을 자랑하며 시원한 계곡물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깊지도 얕지도 않고 비좁지 않은 넉넉한 계곡. 가족단위나 단체 모두 탁족을 즐기거나 물놀이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계곡 주변의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면 식당에서 제공하는 평상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계곡 언저리 음식·숙박단지 부근에 야영장이 마련되어 있어서 야영도 가능하다.
- 계룡산 최고 황금트래킹 코스는 동학사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주차장에서 시작된 트래킹은 기념품가게와 식당가를 차례로 지나고 계곡을 따라 난 길을 물소리 새소리 벗 삼아 걸으며 매표소와 일주문을 차례로 지나 거의 평지와 같은 길 걷기를 1.65km. 천황봉, 쌀개봉, 관음봉, 삼불봉 등 계룡 명봉들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깊은 계곡 아늑한 터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 동학사에 이르게 된다. 육중한 팔작지붕의 처마와 부연. 그 아래 화려한 공포. 유연한 배흘림기둥 아래 초석이 연꽃으로 양각되어 기품을 더하는 동학사의 대웅전은 정면 분합문에 새겨진 국화, 대나무, 소나무, 난초, 운학의 문양이 굵고 힘이 있어서 보는 마음을 사로잡는다.
□ 산행을 마치고
- 오늘 병사골코스를 다녀옴으로서 계룡산국립공원 내 탐방로 중 남은 구간은 갑사 - 연천봉 - 관음봉 - 은선폭포 - 동학사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코스와 상신탐방지원센텨 - 신선봉 - 동학사주차장코스가 남은 셈이다. 위 두 코스를 기본코스로 잡고 계절특성을 감안하여 인근의 명소를 연계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었다.
- 계룡산은 충남 제일의 명산답게 올 때 마다 새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사계절 즐길 수 있는 산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기에 기대를 걸었었는데 역시 기대에 어긋남은 없지 싶었다. 장군봉에서 남매탑으로 이어진 4,2km구간 암릉코스에서의 스릴과 짜릿함, 시원한 조망은 아직도 눈에 삼삼하다. 춘천에서 3시간대의 양호한 접근성이 장점으로 꼽히지만 역시 산세의 수려함이 돋보이는 산으로 입증된 셈이다. 계룡산 동쪽의 동학사, 서북쪽의 갑사, 서남쪽의 신원사, 동남쪽의 용화사 등 4대 고찰과 아울러 고려 말 삼은을 모신 삼은각, 매월당 김시습이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낸 숙모전, 신라 충신 박제상의 제사를 지내는 동학사 등을 품고 있음은 이 산이 주는 매력 포인트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오늘은 우리 모두님들에게 우문(愚問)일지는 모르겠으나 질문 하나를 남기기면서 현명하신 모두님들의 현답(賢答)을 구해마지 않는다. “모두님들 힘든 산을 왜 오르십니까?” “정상에 올라갔다가 반드시 내려올 것이 뻔 한데 왜 힘들게 또 올라가십니까?” “이번 주도 오르고, 다음 주도 또 오르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지도 않으십니까?” 이렇게 질문을 던져놓고 다시 생각해 봐도 원 뻥의 싱거운 우문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각자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한 질문일 듯싶기에 삭제하지 아니하고 독자의 숙제로 남긴다. 1924년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앞두고 엔드류 어빙과 함께 정상 600미터 지점에서 실종된 George Marlow Lee는 에베레스트원정을 떠나기 전, 필라델피아의 한 강연에서 어느 부인의 “당신은 왜 위험하고 힘들며 죽을 지도 모르는 산에 가십니까?” 라는 질문에 “산이 그곳에 있으니 오른다.(Because it is there.)”라는 불멸의 명언을 남긴 후 75년만인 1999년 에베레스트 정상부근에서 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George Marlow Lee(조지 말로리)가 남긴 명언과 같은 답을 구하자는 뜻이 아님을 십분 이해하시고 각자의 답을 구해 보시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는 산이 좋네! 나쁘네! 산이 높네! 낮네! 코스가 기네! 짧네! 길이 좋네! 나쁘네! 걸음걸이가 빠르네! 늦네!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누구는 좋네! 나쁘네! 먹을거리가 많네! 적네! 등의 흑백논리식 타령에서 벗어나 산을 올라, 산에서 만큼은 자연과 동화되어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고 여유 있게 각자 주어진 여건 하에서 자연을 벗 삼아 풍류(風流)를 즐길 만큼 즐길 줄도 알아야 되지 않겠는가? 란 평소의 소박한 소망을 피력해 본 것이오니 부담 없는 숙제로 거둬 주시기 바란다.
- 해빙기를 맞이하여 일부구간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산행해 주시고 일정운영에 협조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리면서 속리산하에서의 일상정리를 여기서 마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