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널목은 철도와 도로가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고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지점이기도 하다. 강원도 태백에 가면'건널목'이라는 카페가 있다. 건물 앞에는 철길이 있고 건널목도 있다. 이 풍경 때문에 오랫동안 이 카페를 기억하고 있다. 2. 동생이 사는 게 참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웃음기를 잃고 수척해져 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나도 마음이 늘 편치 않았다. 문득 건널목 카페의 풍경이 머리에 떠 올랐다. '오늘, 건널목을 한번 건너보자'며 동생을 태우고 태백을 향해 차를 몰았다. 3. 태백을 마주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휑하니 지나갔다. 겨울을 뚫고 카페문을 열고 들어섰다. 따스한 기운이 확 밀려왔다. 아늑한 공간 안에는 쌉싸름한 커피 향이 가득했다.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뜨거운 커피를 주문했다. 아무 말 없이 커피가 나오길 기다렸다. 냄새 좋은 커피 향이 가슴을 적시고 따뜻함을 머금은 커피잔의 은은한 온도가 춥고 시린 두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차가운 바람이 쉬지 않고 지나갔다. 4. 건널목에 섰다. 빨간빛 신호등이 켜졌다. 잠시 멈춰 섰다. 신호가 바뀔 때까지 멈춰 서야 하는 짧은 순간이 마치 긴 휴식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숨을 고르고 쉬어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5. 초록빛으로 신호가 바뀌자 사람들은 제 각각의 걸음걸이로 건널목을 건너가기 시작했다. 나도 천천히 동생의 발걸음에 맞춰 나란히 걸음을 내디뎠다. 사는 게 녹록지 않은 탓일까 짧게 보이던 길이 참 멀고 길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건널목을 건너자 목적지를 향해 뿔뿔이 흩어졌고 우리는 차가운 겨울의 건널목옆에 덩그렇게 서있었다. 6. 매섭도록 춥고 시린 겨울이 몇 번이나 지나갔다. 이 몇 번의 겨울은 호되도록 뺨을 때리며 지나가는 겨울바람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꿋꿋하게 삶을 지켜낸 시간들이었다. 동생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고 활기가 있어 보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건너기 힘들었던 건널목을 잘 건너온 것이다. 7. 동생은 유능한 수학교사였다. 결혼과 함께 대구를 떠나 잠시나마 서울살이를 해야 만한 탓에 모든 걸 그만두었다. 사업을 하는 남편을 내조하는 미더운 조력자로 시부모님을 모시며 시댁과 가족을 위해 많은 헌신을하며 살았다. 또한 수많은 직원을 거느린 알찬 기업의 안주인이기도 했던 그녀에게 갑자기 찾아온 엄청난 경제적 손실은 동생을 까마득한 절망감 속으로 몰아넣었다. 죽음을 생각할 만큼 어렵고 힘들었던 고통을 나도 조금이나마 나눠 지기로 했다. 티끌만 한 마음의 보탬이지만 빈 들에 홀로 서있는 동생을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헤일 수도 없이 많은 근심걱정들로 얽혀있던 세월들이 거센물처럼 흘러갔다. 멀리서 바라만 보아야 했던 소망들이 곁으로 다가왔고 죽을힘을 다해 견디며 얻어낸 단단한 교훈들이 옹이처럼 박혀 이제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건널 수 있는 든든한 건널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8. 일요일에는 늘 동생과 식사하고 차를 마신다. 어느 날 동생이 말했다. 그 추웠던 태백의 건널목을 건널 때, 말없이 함께 걸어주었던 그 고마움을, 그 의미를 한시도 잊지 않고 새긴 탓에 잘 버텨내고 견딜 수 있었노라고. 9. 건널목은 이쪽 경계에서 저쪽 경계로 넘어가는 교차지점이다. 누구나 신호의 불빛에 따라 멈춰야 하고 건너야 하는 곳이다. 이런 건널목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주 마주치게 된다. 이미 건너왔으나 후회스러운 건널목도 있을 것이고 잘 건너왔다는 안도의 건널목도 있었을 것이며 또 앞으로 건너야 할 많은 건널목들도 있을 것이다. 뒤 돌아보면 태백의 건널목은 안도의 건널목이었고 건널목 카페에서 마셨던 그 커피 한잔은 내일을 견뎌내게 했던 뜨거움이었다. 건널목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수많은 사연들이 밟고 지나가지만 나에게 건널목이란 누군가의 곁에서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는 것이라는 의미로 새삼 다가온다.
첫댓글 다정하고 우애있는 언니의 역활을 잘 하는군요.
동생이 어려울 때, 건널목을 지키는 간수처럼 그 건널목을 잘 지나가게 도와준 얘기가 훈훈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앞에 내 글도 있으니 읽어주시지요.
감사합니다, 늘 좋은 말씀해주셔서...
건널목 저쪽에 무엇이 있을지 모를 때
함께 걸어주는 사람은 큰 힘이 되지요.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동생이 힘든일을 마주했을때 주저앉지않고 극복하라고 태백의 건널목에 갔었습니다.
벌써 10년이 지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