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나 지금이나 도시의 아이들은 어린시절
어찌 살았을까 많이 궁금해 한다.
시골 출신인 나는 아무래도 전기불 없이 호롱불로
시작해서 등잔불로ᆢ 그후 국민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전기가 들어오는 변천사를
겪었고 두메산골 아이들은 읍내나 도시의 아이들 삶이 궁금했다.
첫째 읍내, 도시의 아이들은 농사나 소 키우는 일을 안하고 놀거나 공부만 하는 생활이 아니었을까~?
물론 일부의 읍내나 도시의 친구들중 고생한 친구들도 있겠지만 문화.문명에서는 분명 우리보다
편한 생활을 했을거라 생각이 든다.
일단 읍내.도시의 친구들은 전기가 들어오니 TV도 빨리 접했을거 아닌가~?
마징가 Z.타잔.전우.육백만불의 사나이.소머즈
맥가이버등을 마음껏 보고 시골 아이들은 TV를 보려면 큰마음을 먹고 읍내까지
걸어서 나가 만화방에 가서 돈을주고 봐야하니 그것 또한 쉽지 않았다ᆢ
대부분의 시골 아이들은 끼니도 끼니지만 용돈
간식이 일절 없다고 보면 맞다.
들에 나가 싱아, 찔레 따먹고 산에 소꼴 베러 갔다가 운좋게 따
먹는 산딸기, 가을에 머루, 다래가 전부다.
그러니 평소 사탕 과자 빵 라면에 관심이 많고
먹고싶어 하지만 화중지병이라 즉.그림에 떡이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1년에 한 두번씩 미군부대에서
지원해 준다는 건빵을 나누어 줄때가 있다.
건빵을 나누어 주기 전날 선생님은 우리에게 내일
건빵을 나누어 줄것이니 봉지(봉투)를 가져오라고
말씀 하신다.
요즘은 각종 봉투가 넘쳐나지만 그시절에는 봉지도 워낙 귀해서
집에 오자마자 달력이나 사료 포대를
오려서 밥풀로 붙여 크게 만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3남매가 학교를 다니기에 형은
우리에게 건빵을 받으면 한개도 먹지 말고 그대로
가져오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수업이 끝난 방과후 선생님은 약수터의 물 떠먹는
손잡이 달린 큰 바가지로 큰 포대에 담긴 건빵을 퍼서 학생들이
준비해 온 봉지에 한 되빡씩 퍼 주셨다.
건빵을 받을때의 그 기분이란ᆢ
아마도 착한 어린이가 산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받는 기분보다 훨씬 더 좋았을 거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건빵 봉지를 열어보고 덮고를 반복하며 침만 꼴깍 삼키며 돌아
오던 기억이 생생하다.
저녁에 형의 명령으로 삼형제가 가져온 건빵을 한곳에 쏟아서 모으고
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동생들까지 삥~~둘러 앉아 건빵을 나누는데 총 몇개씩 나눌지
몰라 한명당 3알씩 돌아가며 반복적으로 계속~~ 배분을 한다.
그렇게 나눈 후 마지막 10알 정도가 남으면 그건
형이 혼자 싹 쓸어간다.
남아있는 갯수가 적어서 배분이 안된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ᆢ그걸로 배분 끝ᆢ
그렇게 배당을 받으면 1인당 50알 정도 되는데
형제들 성격상 먹어치우는 방법이 두 갈래로 나뉜다.
나눈 즉시 한번에 먹어치우는 스타일ᆢ
그게 형의 스타일이고 난 숨겨두고 아껴서 야금야금 3~4일 동안 먹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항상 난 손해를 본다
건빵을 다 먹어치운 형의 간접 협박에 난 절반 정도를 빼앗긴다.
우리딸이 1학년때 이 건빵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이야기를 듣던 딸이 화가 났던지
딸에게는 큰아빠가 되는 형을 나쁜새끼라고 욕을 했다ᆢㅎㅎ
세월은 흘러 난 군부대 방위병으로 입대했다.
우리부대는 보급부대여서 건빵이 넘쳐났다
어린시절 건빵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었기에 부대의 건빵을 집으로 가져와서 동생들에게도 실컷주고
그래도 풍부해서 후라이팬에 건빵을 넣고 설탕까지 뿌려 튀겨먹는 호사까지 부렸다.
요즘은 먹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라 치킨.피자
등으로 건빵은 쳐다보지도 않아도 전혀 아쉽지 않은 세상이니 아마도 요즘 초등생에게
건빵 사줄까 물으면 건빵이 뭐냐고 되묻는 아이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