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거센 황사에 묻혀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암담해 보였던 한국바둑이 1년 새 언제 그랬냐는 듯 변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각종 세계대회에서의 성적도 성적이지만 새싹들의 괄목상대가 더 반갑고 고무적이다. 사진은 궁륭산병성배에서 새 바둑여제로 떠오른 최정과 한국물가정보배 결승에 올르며 초단돌풍을 몰고온 박창명, 그리고 일찍이 영재로 기대를 모았던 이동훈이 드디어 명인전 결승에 올라 우화하느냐 마느냐의 일전을 남겨두고 있다. |
금년 들어 바둑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2년 전에 중국이 백령배를 창설하였는데 예선부터 본선과 결승까지 한국기사들이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를 시작으로 불기 시작한 중국발 황사에 휩쓸린 한국바둑계는 2013년에 단 한 개의 국제기전 타이틀도 따지 못하고 중국에게 모두 빼앗겨서 더 이상 ‘세계 최강’이란 말을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금년에는 중국발 황사 바람을 잠재울만한 변화의 따뜻한 바람이 불고 있다.
첫째로 국제대회의 결과가 향상되었다. 2012년 제1회 백령배에서는 32강에 한국기사가 8명, 16강에는 5명, 8강에는 박정환 단 한 명이 올랐고 여기가 마지막 진출이었다. 그런데 금년 제2회 백령배에서는 32강에 17명, 16강에 7명, 8강에 5명, 그리고 4강에 2명이 들었다. 준결승에서 박정환과 안국현이 커제와 추쥔에게 각각 패배 결승진출이 좌절된 것이 서운한 결말이었지만, 제1회 백령배의 결과와 비교하면 큰 발전이다.
작년에 창설된 중국기원 주최의 몽백합배의 결과와 금년 백령배의 결과를 비교하면 더 큰 발전이다. (몽백합배에서는 한국기사의 수가 32강에 6명, 16강에 2명, 8강에 0명이었다.) 올해 삼성화재배에서도 한국기사들이 32강에 11명, 16강에 7명, 8강에 4명, 4강에 2명이 올라가서 작년의 삼성화재배 결과보다 낫고 작년에 있은 어떤 국제기전의 결과보다 좋다.
둘째로 한국의 ‘90후’ 기사들이 괄목할 만큼 성장한 것을 들 수 있다. 나현(95년생)이 한국물가정보배에서 우승했고, 이동훈(98년생)이 명인전 준결승에서 이세돌을 2대0으로 제치고 결승에 올랐다. 그리고 안국현(92년생)이 백령배 4강까지 올랐었다. 변상일(97년생)이 농심신라면배 한국대표로 선발되었고, 천원전 16강 대결에서 이세돌을 물리치고 8강에 올랐다.
한국기원 랭킹의 10위 이내에 90후 세대로는 오래 동안 박정환 홀로 들어있었는데, 10월 랭킹 10위 이내에 김승재(8위)와 나현(9위)이 들어가서 처음으로 90후 세대 기사가 3명이 되었다. 여자 기사로는 최정(96년생)이 궁륭산 병성배의 결승에서 루이나이웨이를 물리치고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리고 최근에 가진 국제신예대항전에서 나현과 이동훈을 포함한 한국팀이 우승했다.
셋째, 이세돌과 구리의 10번기에서 이세돌이 6승2패의 압도적인 전적으로 승리했다. 예전의 10번기에서 4승 차이가 나면 치수가 고쳐졌던 것을 감안하면 일방적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이세돌과 구리가 자국의 랭킹의 1위에서 물러난 지도 오래 되었고 세계대회에서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하는 상항에서 이 10번기를 ‘세기의 대결’이라고 부른 것은 광고효과를 위한 과장인 측면이 있지만, 이세돌의 승리가 한국기사들의 사기를 북돋았고 한국바둑 팬들의 자존심을 높였다.
넷째, 14, 15회의 중국 갑조리그에 한국기사가 도합 11번 출전하여서 전승을 거둔 점이다. 지난 10월9일 벌어진 제15차 리그에서 박정환(대 스웨), 김지석(대 당이페이), 이세돌(대 추쥔), 최철한(대 멍타이링), 이동훈(저우허시)이 나서서 다 이겼다. 지난달에 있은 제14차 중국 갑조리그에서 박정환(대 장타오), 이동훈(대 저우루이양), 신진서(대 마오루이롱), 나현(대 왕하오양), 최철한(대 판윈뤄), 이세돌(대 양딩신)이 나서서 전승했다.
다섯째, 바둑이 전국체전의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이것은 바둑보급에 매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 강동윤과 김승재의 활약은 한국바둑의 중간 허리층이 두꺼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두 배로 의미가 있다. 강동윤과 김승재 최근 좋은 성적으로 주목할 기사 중에서 가장 고참인 강동윤과 김승재를 살펴보자. 이 두 기사는 작년까지 주로 속기로 진행된 한국바둑리그에서 매우 좋은 성적을 내왔으나 장고 기전인 국제기전에서 성적이 변변치 않아서 ‘속기형’ 기사라고 불렸다. 그런데 최근에 이들이 장고 기전인 삼성화재배의 8강에 올랐고, 제한시간이 1시간인 렛츠런파크배에서 8강까지 올랐다. 더욱이 강동윤은 장고 기전인 명인전에 8강까지 올랐다가 이동훈에게 져서 탈락했다. 이들에 관한 정보를 <표1>에 올렸다.

▲ <표1> 강동윤과 김승재에 관한 정보 강동윤은 금년 9월 말까지 승률 78%(49승 14패)를 기록했고, 최근 4개월(6-9월) 동안에는 87%(26승 4패)의 아주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김승재의 주목할 최근 승리를 살피면 최철한(렛츠런파크배 32강), 탕웨이싱(국수산맥), 추쥔(삼성화재배예선), 우광야(삼성화재배 32강, 2회)에게 이긴 것이다. 그가 금년 9월 말까지에 거둔 승률은 72%(41승 16패)이다. 최근 4개월(6~9월) 동안에 거둔 승률은 77%(23승 7패)이다.
[그림1]에 강동윤과 김승재의 점수 변화를 그렸다. 최근 4개월 동안에 이들이 높은 승률을 기록한 것이 반영되어서 이 동안에 이들의 점수가 약 150점 정도 올랐다. 속기형 기사들은 22세 이후에 점수가 오르지 않는다는 필자의 분석이 있었는데, 이들이 속기형 기사를 탈피해서 장고 기전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한 것이 좋은 조짐이라고 본다.
 ▲ [그림1] 강동윤과 김승재의 점수 변화 신예 4현 필자가 2012년 2월 15일에 오로광장에 올린 ‘신예 4현’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아니한 신예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사들이 있는데 김정현, 안국현, 이지현, 나현이다. 이들의 이름이 모두 ‘현’자로 끝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정현과 이지현의 한자 이름은 어질현(賢)자를 쓰고, 나현은 검을현(玄)자, 안국현은 솥귀현(鉉)자를 쓰는데, 한글세대에게는 이런 차이는 관심 밖이다. 이들이 1991년 이후에 출생했고 2009년과 2010년에 입단한 주목할 만한 새내기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통칭해서 ‘신예 4현’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신예 4현 중의 선두주자인 나현은 2012년에 삼성화재배 8강전에서 쿵제를 이기고 4강에 올랐다가 준결승에서 구리에게 0:2로 퇴패했다. 입단한 지 얼마되지 않은 16세 소년이 이런 성적을 내자 중국 매체에서 ‘세계 최강의 초단’이라고 불렀고 국내에서 ‘초단(超段)’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 한국물가정보배에서 우승해 타이틀 보유자가 되었다. 그리고 <표2>에서 보듯이 나현이 한국과 중국의 여러 강자들에게 이겼다.

▲ <표2> 나현이 강자들을 이긴 대국들 신예4현 중의 하나인 안국현이 금년에 박정환과 나란히 백령배 4강까지 올라간 것은 시원한 뉴스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추쥔에게 막혀 결승진출이 좌절되었다. 안국현은 LG배 본선에도 올라있어서 기대를 걸만하다.
김정현은 작년 바둑리그의 MVP로 선정되었고 현재 렛츠런파크배 8강에 올라있다. 이지현도 렛츠런파크배 8강에 올랐고 금년에 75%의 높은 승률을 올렸다.

▲ 신예 4현. 왼쪽부터 나현, 안국현, 이지현, 김정현. 신예 4현들의 금년도 활약상이 <표3>에 적혀 있다. 2012년 1월부터의 그들의 점수 변화가 [그림2]에 보인다. 처음으로 나현의 점수가 10월에 9500점을 넘어섰다. 김정현이 2012년에 슬럼프에 빠졌으나 그 해 10월부터 점수가 오르기 시작하더니 현재는 나현 다음으로 높다.

▲ <표3> ‘신예 4현’의 활약상 및 정보
 ▲ [그림2] ‘신예 4현’의 점수 변화 한국의 95후 신예 강자들 중국에는 1995년 이후에 태어난 ‘95후’ 기사들 중에서 강자들이 많다. 판팅위(96년생, 응씨배 우승), 미위팅(96년생, 몽백합배 우승), 커제(97년생, 백령배 결승 진출), 양딩신(98년생, 리광배 우승), 리친청(98년생, 엘지배 8강), 셰얼하오(98년생, 1회 백령배 4강)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이외에도 퉁멍청, 황윈숭, 판원뤄, 샤천쿤 등의 95후 강자들이 있다.
이에 비해서 한국에는 주목할 95후 기사로 이미 논의한 나현을 필두로 이동훈, 변상일, 신진서, 신민준을 든다. 나현을 제외한 95후 한국 신예강자들을 <표4>에서 살펴보자. 이동훈은 명인전 결승에 올라있고, 변상일은 농심신라면배 한국대표로 선발되었고 천원전 8강에 올라있다. 신진서와 신민준도 나름대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신민준의 승률이 53%밖에 되지 않는 것이 흠이다. <표1, 3, 4>에 나온 기사들 중에서 승률이 가장 낮다.

▲ <표4> 95후 신예 강자들
 ▲ [그림3] 95후 신예 강자들의 점수 변화 뉴스를 만든 90후 기사들 위에서 언급한 90후 기사들 외에 뉴스를 만든 기사로 최정(96년생)을 빠뜨릴 수 없다. 그는 궁륭산병성배 결승에서 루이나이웨이를 물리치고 타이틀을 획득했다. 또 개인전적에서 1승 5패로 뒤져 있는 천적인 위즈잉을 신예대항전에서 이겼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10월10일에 김승재를 바둑리그에서 이겼다. 그에 대해서는 여자기사들을 분석하는 글에서 자세히 살필 것이다.
뉴스를 만든 또 하나의 90후 기사가 박창명(91년생)이다. 그는 금년 1월에 입단했는데 한국물가정보배에서 준우승했다. 또 삼성화재배 예선에서 커제를 물리쳤다. 커제가 백령배 결승에 올랐고 10월 중국랭킹에 4위로 올라서 기세등등한 기사임을 헤아리면 박창명이 커제를 이긴 것은 주목할만하다. 9월 말까지 대국이 44국이어서 아직 정규 랭킹 자격에 미달하고 있지만, 임시 점수는 9300점 부근이다.
맺는 말 재작년과 작년에 비해서 금년에 한국바둑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기쁜 일이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 이유를 생각해 보면서 이 글을 맺으려고 한다.
첫째로 한국기사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자구책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장고 바둑을 위한 수읽기도 더 연습하고 공동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둘째로 한국기원이 위기를 대처하기 위한 정책을 도입했다. 국가대표팀을 창설하여 정기적 공동훈련을 가지게 했다. 한국바둑리그에서 장고 바둑의 비중을 높였다. 두 팀 사이에 치르는 5판 대국 중에서 한 대국이 장고 바둑이었다가 그것마저도 없어졌는데, 금년도부터 장고 바둑이 세 대국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국가대표팀에서도 장고 바둑을 두어서 훈련하고 있다.
또한 2012년부터 영재입단대회를 통해서 만 15세 미만의 소년들을 매년 2명씩 입단시키고 있다. 이의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신진서와 신민준이 잘 성장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 아직 뚜렷하게 내세울 것은 없다. 제2회 영재입단대회 출신인 설현준과 최영찬이 별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영재입단대회에 대해 비판한다. 영재입단대회로 뽑을 영재들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바둑 영재들이 희귀해진 것은 최근까지의 입단제도가 문제가 있어서 영재들이 바둑의 길을 포기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점진적으로 입단 연령 상한을 만 15세로 낮추면 바둑 영재들의 이탈이 줄어들 것이고 한국바둑이 향상될 것이다. [배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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