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장군의 北征歌
白頭山石 磨刀盡 -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豆滿江水 飮馬無 -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었애 리,
男兒二十 未平國 -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後世誰稱 大丈夫 - 누가 후세에 대장부라 칭하리오,
성환종과 남이장군, (소운컬럼) 대한문학세계기자/박목철
경남기업 총수 성환종씨가 검찰 소환 하루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에게 남긴 유서 외에 주머니에는 8명의 명단이 적힌 메모가 있었다.
성환종씨는 몇 대에 걸친 정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고, 아마도 수백 명 아니 수천 명 이상의
유사한 사례의 명단이 있을 것이고, 이는 정치권에 한정된 명단이 아닌, 대한민국 각계에 걸쳐 폭넓게
많은 분이 연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분이 생을 마감하는 시점에 왜 8명만을 찍어서 명단을 공개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있다.
대표적으로 지명한 이완구 총리에겐 3천만 원을 선거 지원금으로 주었다고 했고,
대통령 비서실장인 김병기 씨는 명단 만 적혀 있을 뿐 돈의 액수는 적혀있지도 않다.
두 분만을 놓고 보면, 일반 서민의 정서상 맞지는 않겠지만, 정치 거물의 수뢰 액 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거액을 준 사람도 많을 터인데 굳이 삼천만 원을 꼬집어 생의 마감 순간에 공개해야 했을까?
돈 액수도 없는 김병기 실장은 또 왜?
또 하나 의문점은 성환종 씨가 죽기 직전까지도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변의 모든 이가 공통으로 성씨는 검찰의 소환에 응하고 구속될 것을 각오하고 준비했다는 증언이다.
(즉 정면 돌파로 난관을 극복하려 했다고 함)
사망 당일 몇 시간 전까지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배회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하였다.
그러던 그분이 선택한 것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이고, 8인의 명단이라는 -폭탄-을 남겼다.
그분과 가까웠다는 충청포럼의 모 씨가 방송에 출연해 많은 사실을 진솔하게 증언하는 것을 보았다.
별로 꾸밈이 없는 그의 솔직한 진술에는 현 상황에 대한 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여러 시사점이 있었다.
-성완종 씨가 구명을 호소한 모든 이의 공통된 대답은 대통령만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다-
라는 것과, 대통령과의 면담을 주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마 위의 8명이라고 성환종씨는 생각했을 것이고
최후까지 이들에게 매달렸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런 과정에서 따뜻한 위로나 최선의 성의를 보인 분들은 소위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언급된 사람으로
명단에서 제외되는 행운을 얻었으나, 냉정한 대응이나 최소한의 기대마져 냉정히 뿌리친 매몰참?
에는 저주의 메모로 대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론을 해 보았다.
현 사태를 보며, 조선조 최연소 국방부 장관(병조판서)에 오른 남이 장군이 문득 생각나서 이 글을 썼다.
남이장군은 17세의 나이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였고 삼십 이전에 무인 최고위 직에 오른 뛰어난 장수이다.
서두에 쓴 북정가 중 남아 二十 未平(평정할 평)國 중 平이라는 글자를 得(얻을 득)으로 고쳐
고변한 유자광의 모함에 빠져 거열(찢어 죽임)형을 당한 비운의 장수이다.
그가 처형당할 때의 나이가 27세였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기에 무당들이 섬기는 귀신이 되어
지금도 많은 신당에 모셔져 있기도 하다.
(무인으로 적진을 평정한다는 평과, 나라를 얻는다는 득은 아주 다른 의미이다. 한자를 고치면 역모가 된다)
그는 어처구니없는 모함에서 벗어나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모진 고문으로 다리가 부러져 나가자, 무인의 삶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살기를 포기한다.
누구와 역적모의를 했느냐는 왕의 친국에 자신을 문초하는 자리에 있던 영의정 강순(당시 79세의 노신)을 찍어
-저와 역모를 같이한 사람은 영의정 강순이며 그가 모든 지시를 했다- 라고 했다.
졸지에 영의정의 자격으로 국문장에 있던 강순은 끌려 나와 모진 고문을 당하고 같이 거열형을 당해야 했다.
형장으로 끌려가며 강순이 남이에게 푸념을 했단다.
-이 사람아 나와 무슨 원한이 있기에 나를 모함하는가?-
-대감은 내가 무고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한마디도 도와주지 않았지 않습니까?
나도 억울하게 죽는데 대감이 억울할 게 무엇입니까? 저승길에 동행이나 합시다. -
성환종씨는 개인적 치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의 소견이라 했다.
하지만, 회삿돈으로 많은 사람에게 뇌물을 주거나 공금을 마구 쓴 것은 사실인 듯하다.
본인은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쳐야 할 우리의 구태인 것도 맞다.
얻어야 할 교훈은 설사 법을 어겨가며 도와줄 수는 없더라도,
인간적인 조언이나 안타까움을 나눌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만약에 따뜻한 위로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해 도우려는 마음을 보였더라면,
목숨을 스스로 끊지 않거나, 8인의 메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영의정 강순이 죽은 것을 후세에 아무도 억울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젊은 나이에 처참한 최후를 맞은 남이 장군을 가엽다고 여기지 않던가?
-역사는 돌고 돈다 했다. 남이 장군과 강순을 현시대에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좋은 곳으로 극락왕생(천국에 드시길)하시라,
첫댓글
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