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에 갈 아라랏산이 보이는 코르비랍 수도원 ...아르메니아 땅이었으나 1923년 소련이 튀르케예 영토로 인정해서
아르메니아인들에게는 민족의 성산이지만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예례반의 케스케이드에서 본 아라라트 산
튀르키예쪽에서 본 아라라트 산...아르메니아에서 보는 것과 반대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호텔 주변을 둘러보는데 규모가 제법 큰 호텔이다.
숙소에서 본 호텔 주변 아라랏산이 보이는 반대편
호텔로 들어오는 입구...포플러가 아름답다.
구 소련 시절에 지어진 호텔이다....양 옆의 돌들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용암의 일종인 응회암으로 돌 자체가 아름답기도 하다.
식사하기 전에 한 바퀴 들러보는 중이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더 묵게 되는데 ...수영장도 있지만 수영을 할 시간이 없다.
호텔에서 9시에 출발을 하고...
오전에는 아라랏산이 보이는 코비랍 수도원(Khor Virap Monastery)에서 아라랏산을 보고 에치미아진으로 가서 에치미아진 성당
을 보는 일정이다. 코비랍 수도원은 예레반에서 남쪽으로 50km 정도의 거리에 있으며 아르메니아에서 아라랏산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수도원은 튀르키에 국경 근처에 있으며 튀르키에에 있는 아라랏산과의 거리는 30km 정도로 튀르키에에 있는 아라랏산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희미하게 아라라트 산이 보인다.
아라라트 산은 예례반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 대부분에서 산이 보인다...53km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숙소를 나서면서부터 아라랏산을 보면서 가게 되는데 그 유명한 아라랏산을 직접 본다는 것이 참으로 감개부량하다.
지금은 모든 종교에서 졸업을 했지만 40여년 동안 기독교인으로 살아왔었기 때문에 구약 성서상의 중요한 이름 정도는 다
기억하고 성서의 내용도 기억하고 있는데 노아의 홍수와 관련된 그 아라랏산을 눈으로 보다니...
홍수가 사실인가 아닌가 그리고 방주가 아라랏산에 정박을 했는지는 지금도 확인된 바는 없지만 성서는 인류가 가장 많이 봤던
책이고 지금도 구약성서를 믿는 사람들(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이 지구촌 인구의 절반인 40억이 넘는 사람들이 그 내용을 사실로 믿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일 것이다.
옛날에는 아라랏산이 있는 땅이 아르메니아의 땅이었지만 소련과 오스만 터키와의 협상에 의해 1923년 튀르키에 영토가 되고
말았다.
예레반 시내...
아라라트 산을 보면서 간다.
햇볕이 강해지면서 꼭대기에 구름이 생겨난다.
시내를 벗어나고 ... 아라랏산의 두개의 봉우리가 다 보인다.
9시에 숙소에서 출발하여 아라랏산이 보이는 코비랍 수도원의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정도로 한 시간 정도 계속 아라랏산
을 보면서 온 셈이다.
주차장에 내리니 뜨거운 햇살이 작열을 하는데 다행히 수도원이 낮은데 있어서 가는데 힘은 들어보이지 않는다.
주차장 우측 옆에는 공동묘지가 조성이 되어 있는데 석관들과 십자가인 하츠카르(Khachkar)가 새로 만들어진 것부터 아주 오래된것들까지 다양하게 보이는데 이곳이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죽어서 묻히길 소망하는 곳이라고 한다.
코비랍 수도원 상가골목을 지나서 올라가게 되는데 코비랍 수도원은 수도원이 지어질 당시 아라랏산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지어
진 것처럼 보인다.
주차장에 우측에 있는 공동묘지...사진이 들어간 새로 만든 비석들이 보인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견딘 석관들과 카츠하르들
이 상점 골목을 통과하여 수도원으로 간다.
구름 한 점 없는 뜨거운 날씨이다.
올라온 곳의 상점들...
수도원 담벼락에 진열되어 있는 카츠하르...모양도 다양하고 세워진 시기도 다양하고...
오늘 우리 일행 복장은 엘로우로....
1662년에 지어진 ‘성모교회
코르비랍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문.
교회 내부...벽의 두깨가 상당한 것은 수도원이 외부의 침략시 요새로 사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성서의 내용이 벽화로...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내리는 장면이다.
지금의 이 건물은 1662년에 지어진 성모교회이다.
이 수도원의 역사는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아르메니아를 기독교로 만든 ‘성 그레고르’가 이곳의 지하 감옥에 13년
동안 갇혀 있던 데서 시작된다. 그레고르의 아버지인 ‘아낙’은 페르시아가 고용한 자객으로 아르메니아 왕을 죽였다. 어린 그레고
르는 카파도키아(튀르키예)에서 자라며 기독교 사제가 되었고 이후 이교(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아르메니아로 돌아와 기독교를 전
파하다 ‘티리다테스 3세(Tiridates Ⅲ)’에게 잡히게 된다. 왕은 그레고리이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죄와 이교를 전파한 죄를물어 전갈과 뱀이 우글거리는 땅굴에 가두었는데 그곳이 이곳 코르비랍이었다 한다. 코르비랍은 ‘깊은 또는 지하 감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당시 왕은 자신과의 혼인을 거부하는 ‘흐립시메’를 비롯한 33명의 수녀를 죽이는(이때 유일하게 살아남아 조지아로 도망간 수녀가 ‘니노’라는 설도 있다) 등 기독교를 탄압하고 있었는데 그레고르를 구원해 준 것은 티리다테스의 여동생 ‘호스로비둑트(Khosrovidukht)’였다고 한다. 그녀는 꿈에서 그리고르를 풀어주라는 계시를 받았고, 그것을 오빠에게 말해 그리고르를 석방시켰다고 한다. 호스로비둑트와 왕비인 아쉬켄(Ashkhen)이 이미 기독교 신자였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석방된 그레고르는 티리다테스의 병을 고쳐 주었고, 이를 계기로 세례를 받은 티리다테스가 301년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게 되는데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왕국이 탄생 되게 되었다.
아라라트 산이 잘 보이는 포토존...위에 올라가면 더 잘보이지만...
아라스 강을 중심으로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로 국경이 이루어져 있다.
수도원 어디에서도 아라랏산이 잘 보이지만 수도원 옆으로 올라가면 아르메니아 깃발이 서 있는 언덕을 볼 수 있는데 그곳에 올라
가면 건너편 튀르키예와 좌측으로 이란과 아제르바이잔까지 볼 수 있다.
해발고도 5,137m에 달하는 아라랏 산은 터키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특히 도우베야즛 근처에 있는 봉우리가 아라랏 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아으르 다으’라고 부른다. ‘아으르 다으’는 터키어로 ‘아픔의 산’이라는 뜻이다. 시내에서 아라랏 산을 바라보면 두
개의 봉우리가 보이는데 오른쪽이 해발고도가 3,896m에 달하는 큐축 아라랏 산(작은 아라랏 산)이고, 왼편의 봉우리가 해발고도
가 가장 높은 뷔윅 아라랏 산(큰 아라랏 산)이다. 아라랏 산 정상에는 언제나 만년설이 덮여 있어서 더운 여름에는 보기만 해도 시
원함을 안겨 준다.
아라랏 산은 《구약성서》에서 대홍수가 끝난 후 노아의 방주가 표착했다고 알려진 곳이다.(다음백과)
대 아라라트산으로 해발 5,137m
소아라라트 산으로 해발 3,896m
수도원 뒤에 있는 국기가 있는 언덕...올라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올라간다.
햇빛이 뜨거움에도 불구하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다.
십자가...
꼭대기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주차장 쪽 ...아르메니아 쪽이다.
예레반 쪽이다.
수도원 맞은편은 이란 쪽이다...좌측은 아제르바이잔으로 이란이나 아제르바이잔이나 국경이 바로 가깝다.
죄측 아라라트 산 기슭부터 이란 땅이다....건너편은 튀르키예땅이고...
주변을 둘러보다...
주차장 근처는 거대한 공동묘지로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가 없고 이곳에 묻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고...
주변을 사진을 찍어 본다.
아쉽지만 내려오고...우리 일행들은 올라온 사람을 보지 못했는데...힘이 들어서 인가??.
꼭대기(?)에서 내려오면서 교회 내부를 더 둘러보고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포토존이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 가야 한다면
서 사진을 찍고 에치미아진으로 출발을 한다.
저 돌들이 이곳에 묻히기를 염원했던 사람들이 흔적일 것이다.
수도원을 둘러싸고 있는 담벼락..완전한 성벽이나 마찬가지이다.
버스를 타러 내려가고...
기념품 가게를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이 돌은 무슨 돌인지....
이런 그림도 판다....아라라트산
수도원...
누군가의 비석이거나 관이었거나...
길가에 있는 누군가의 무덤..1967~2019년이니 회갑을 채우지 못했다....꽃병을 땅에다 묻었더라면 꽃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
뎨...
바람 한 점이 없어 깃발이 그대로 있다.
버스로 열심히 돌아오고...햇빛이 강해서리
언덕너머로 설산의 봉우리가 보인다.
이 곳은 새로 조셩된 곳??
버스에서 내려서 일제히 사진을 찍는다.
이곳은 아라랏산 두개의 봉우리와 수도원이 한꺼번에 나오는 포토존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 번 사진을 찍어보고...
에치미아진으로 출발을 한다.
시간이 넉넉하고 교회건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교회 내부를 더 둘러볼 수도 있었을 것이나..교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면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보고 갔더라면 좋았을 번 한 곳
주교 복장을 한 ‘그레고르’의 초상화... ‘그레고르’는 아르메니아에서 사도교회의 불을 밝힌 사람(the Illuminator) 또는 개척자로 불
린다고 한다. 현재의 에치미아진(Echmiadzin) 교회 자리에 순교자 묘지를 만들었고, 이게 나중에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모태교
회로 발전했기 때문이란다. 이후 314년까지 왕과 사도교회를 위해 봉사하다가 328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예배당 옆, 바닥에 뚫린 구멍... 그레고르가 13년 동안이나 갇혀 지냈다는 ‘지하 감옥’이다. 감옥은 철제계단을 이용해 내려갈 수 있
다. 한 사람이 겨우 내려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통로다. 그러니 동시에 오르내리는 교차 이동은 불가능하다. 내려가거나 혹은 올라오는 사람들이라도 있을라치면 반대편 사람들은 그 이동이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지하 감옥은 6m 깊이에 폭이 4.4m라고 한다.
‘성 그레고르’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따르는 기독교 신자들이 밤마다 몰래 도왔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저 구멍을
통해 먹고 마실 것을 넣어주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https://youtu.be/YrBmAgBAU7w?si=JlF_Skkl2VwWTUN9....노아의 방주가 진짜라는 유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