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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맨발로(오늘도 나는 맨발로 걷는다)
저-임우희/출-학이사/독정- 2023년 5월 18일 목
1. 표제어 <맨발로>에 대하여
표지에 진흙 길을 맨발로 걷는 발자국이 쿡쿡 찍힌 사진이 실려 있다. <매물도에서>를 읽다 보니 표제어가 된 <맨발로>를 어떤 마음으로 걸어왔는지가 잘 그려진다. 자연에로의 회귀성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 오늘도 맨발로 걷는 작가의 삶을 진솔하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
2. 책을 낸 작가의 마음을 쫓으며
‘책을 내며’ 머리말에 <시간과 순간의 조화, 자정도 되고 승화도 되는 수필은 삶의 끝 날까지 가장 소중한 벗>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60년 넘게 살아온 삶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고통을 이겨낸 서사로 빛났다.
“고통은 내면에 생수가 흐르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는 문장의 긍정적 표현에 전율했다. 유난히 어려움을 겪으며 삶을 승화시켜 온 서사(스토리)는 어느 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고의 시간이었겠다. 그런 삶을 바탕으로 해서 현학적이지 않게 전개해 나간 수필들에서 수기의 진정성을 느꼈고, 고백문학의 품격을 보았다. 내가 품격이라 함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서 느꼈던 신에 대한 감사와 주위 사람들에 대한 경애의 마음과 결을 같이 하고 있음이었다.
3. 작품 톺아보기
작가의 추억 속 사진첩을 넘기듯 눈에 훤히 보이듯 그려놓은 글에서 따스한 인간애로 조곤조곤 들려주는 착한 심성의 이야기가 영혼에 힐링으로 다가온다. 고귀한 분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는 거울로 작가의 글들을 정리해 보았다. 그중에 가장 감명 깊게 읽은 글은 <고장 난 시계>였다.
<인생은 시계다. 가끔 병이 나도 바늘 하나, 갈아 넣으면 또 제 갈 길을 간다. 나는 팔 남매의 맏며느리다. 대가족의 병시중을 하다가 ‘신장암 말기’가 된 자신 앞에서 시아버지는
“너희 형수를 살려내야 한다. 형수는 부모와 똑같다.”
하면서 울면서 말씀하셨다. 시동생들은 아버님의 지휘 아래 내외가 한 조가 되어 병실을 지켰다. 아버님은 나가시면 맛있는 것을 사 오시고. 어머님은 투병하는 며느리를 위해 모든 수발을 다 들어주셨다. 또 다리를 주무르지 않으면 다리에 쥐가 나고 경련이 나서 주물러주시며 밤낮으로 얼굴과 몸을 닦아주고 정성으로 간호해 주시니 내가 짐이 된 셈이다. 결국 나는 이렇게 부모님께 모든 사랑을 돌려받고 있었다. 항암 치료 들어가기 전 학교 선생님을 뵈러 초등 3학년 아들 교실에 갔더니 종합 발표회였다. 아들이 “엄마를 살려 주세요”라는 웅변을 해서 최우수상을 받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데 담임선생님이 부둥켜안고 있었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슬픔과 용기가 용솟음쳤다. 나는 살고 싶었다. 저 아이에게 희망을 주고 싶고 등불이 되고 싶었다. 더 이상 내 불행에 함몰되지 말고 사력을 다해 투병 생활을 하되 씩씩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자. 최소한 좋은 습관이라도 남겨주자며 결심했다. 말기 암 환자가 방송통신대학에 합격하고 세월이 흘러 3년 뒤 “지금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암세포가 거의 소진 단계입니다.”는 주치의의 말을 듣고 가을 국화의 은은한 향이 뼛속으로 스며들고 비둘기의 구구거림이 아기 코끼리 걸음마로 들리는 듯 느긋한 졸림이 행복으로 다가왔다.
이후 한 달에 두 번 남편이 우리 가족이 축복받은 은혜를 사회에 나누자며 불우시설에 시계 수리를 해주러 다녔다는 이야기다. 명품이었던 내가 고치고 고쳐 제대로 된 몸은 아니지만 가족의 정성만 들어가면 역할을 다할 수 있다. 헌 시계가 눈에 익어 더 편하다. 고통은 나의 내면에 생명수가 흐르도록 길을 열어 주었고. 시간, 사랑, 관계의 축복을 내려 주었다. 겨우내 굳은 땅을 쟁기가 엎어 물이 스며들게 하듯이, 나의 아픔이 굳은 마음을 녹여 사랑을 심어준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 이 글을 읽을 때 눈물이 절로 났다. 눈 가득 고이던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이유가 뭐였을까?
첫째, 아픈 형수를 위해 대가족이 형수의 병시중에 매달리던 가족애(시부모의 병수발과 시동생들의 병수발에 헌신했던 며느리였기에)가 눈물겹게 아름다웠다.
둘째, 아들이 “엄마를 살려 주세요”라는 웅변을 해서 최우수상을 받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 는데 담임선생님이 부둥켜안고 있는 것을 보고 삶에 용기를 내었다는 이야기
셋째, 신장암 말기 환자에게 “지금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암세포가 거의 소진 단계입니다.”는 주치의의 말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잘 살아온 만큼 가족들이 사랑으로 되돌려줄 기회가 되었고, 아들의 눈물 앞에 새 힘을 얻는 어머니가 되었다. 웃음 앞에 암세포가 물러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렇게 가족들의 사랑과 기도는 웃음보다 더 큰 특효약이 된 것 같았다. 임우희! 수필가가 둘레에 베풀며 살아온 사랑은 하느님께도 사랑받는 삶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달라붙는 온갖 암도 물리치게 했다. 『맨발로』 숭고하게 걸어온 그녀의 삶 이야기가 이 책의 독자들 삶도 더욱 폭넓게 이끌어 줄 것 같다. 참 아름답고 감동적인 책이었다.
4. 수려한 문장과 묘사에 대하여
작가의 글마다 작위적인 목소리가 아닌, 차분하고 평온한 목소리가 들린다. 글의 끝맺음 부분에서도 글을 애써 멋있게 지어 쓰려고 하지 않는 자세를 배우게 된다. 원대한 것이 아닌, 소소한 일상의 주변 이야기가 글감으로 들어앉을지라도, 작가는 서정을 진술이 아닌 묘사(표현)로 가져와 작품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묘사와 서사 어느 한 편으로 들추어봐도 수작이라 감탄이 절로 나와 고운 문장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옮겨봤다.
<일상에서>
-우산을 쓰고 산에 오른다. 풀잎에 수정 물방울이 달려있다. 소나무 껍질 사이에도 물을 머금어 흙냄새와 함께 기분 좋은 자연의 오묘한 향이 코를 실룩거리게 만든다. 비가 오니 산길은 온통 내 차지다. 살아가는 중에 뜻하지 않은 기쁨이 틈틈이 있다. 특별하지 않아도 결혼 40주년이 된 지금 내 속의 나와 잘 조화를 이루어 가는 시기. 이 세상 모든 사람 앞에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지만, 기쁜 시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나 자신에게도 편한 사람이 되는 것이 소망이다.=
※ 작가는 일상의 편안함에 감사하고 있다. 우리가 모두 이런 평안에 감사할 수 있음은 축복이리라. 문장이 좋아 따로 적어봤다.
<무섬 마을의 태극 다리>
흙탕물이 무섭게 소리를 내지른 용트림하던 기억이 가슴을 오싹하게 만든다. 어른들은 작전을 짜셨는지 옆으로 손에 손을 잡고 물살이 흐르는 대로 흔들리듯이 휘청거리며 건너오셨다. 개울을 건널 때는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한다. 힘보다는 서로서로 균형을 잘 맞추고 물을 거스르지 말고 물살을 따라서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 겁이 많은 나는 아버지의 목에 붉은 손자국이 날 만큼 꽉 붙잡고 그 긴 흙탕물을 거스르지 않고 휘청이며 건넜다. 그때 나의 아버지는 세상 어떤 위험에도 맞설 수 있는 거인이요. 장군이었다.
※ 물살이 거세어도 어른이라는 책임감으로 학교에서 하교하는 자녀들을 데리러 오는 아버지들이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졌다.
태극 모양 다리에도 무수한 사연이 있었으리라. 다리는 아마 꽃가마 속 신부의 고운 자태도 훔쳐보았을 것이다. 먼 길 떠나는 꽃상여도 이 다리를 건넜으리라. 아침에는 물안개를 맞으며 일터로 가고, 밤에는 쏟아질 듯 걸려있는 별을 바라보았을 성싶다. 태극 다리를 건너 학교에 가고, 돌아올 때는 신나게 물장구도 쳤을 어린 시절의 기억은 늘 애틋할 것이다. 세월은 되돌릴 수 없고, 덩그러니 노인들만 남은 마을에는 고즈넉한 풍경이 더해져 쓸쓸함도 묻어나지만, 무섬마을 외나무다리라는 존재 자체로 위안을 주는 우리 모두의 고향 같은 곳이다.
*이 부분은 지배적 인상 묘사 기법이 뛰어난 문장이었다.
시인 조지훈은 그의 시 <별리>에서 자신이 처가 동네 무섬을 “십 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가고”라고 노래했다. 내성천 모래 속을 높새바람이 스친다. 세월의 속도는 내 마음의 속도를 따라간다. 조급하게 살면 한없이 모자라지만 느긋하게 따라가면 넉넉하고 살아갈 만한 삶이다. 이네 나의 가슴에도 태극 모양 다리 하나쯤 지니고 살고 싶다.
5. 좋은 작품 열편 스포일러
① <어머니의 임종>은 아름다웠다.
-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시어머니를 보살피며 교대하고 돌아왔는데, 시동생이 “엄마가 형수를 다시 부르라고 해요.” 해서 갔더니 편안한 모습으로 “내 돈으로 야쿠르트를 5만 원어치 사서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들, 간병인들에게 다 사드렸다.”고 하신다. “마지막 집중치료실에서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 참 아름답게 보였다. 아버님은 제가 좀 더 잘하게요.“ 했더니 “이젠 더 잘하지 마라. 그만큼 받았으면 되었다. 너의 건강이나 챙겨라. 내 마지막 부탁이다. 내 부탁을 꼭 명심해라.” 하며 야쿠르트를 한 병 주셨다. 다시 가보라고 하셨다. 어머니 가슴 속에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남편과 고대하고 2시간 뒤 남편의 울먹이는 전화가 왔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울고 또 울었다. 함께했던 지난날들이 가슴속이 아리도록 다가왔다.
※ 시모님이 며느리에게 얼마나 고마워하며 살아오셨는지가 짐작이 되는 장면이었다.
<말년에 아버지는 매일 아침 나에게 전화하셔 항상 똑같은 말“네 목소리가 보약 한 재다.” 하셨다>는 말씀에서도 딸이 얼마나 든든하고 살갑게 대했는지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시집과 친정 부모님들께 두루 부드럽고 상냥한 딸로 살아왔다.
② <엄마의 손수레>를 보면 어린 날 어려운 생계를 위해 연탄 가게를 하는 어머니를 도운 이야기다. 손수레와 논에 빠져 연탄을 뒤집어쓴 채 소달구지 끌고 가던 이웃 아저씨를 만나 살아난 이야기. 논 주인집을 찾아가서 모내기해 둔 논을 연탄으로 망쳐 놓았다고 하자
“온 가족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고 칭찬하면서 손을 잡고 등을 토닥여 주며 칼국수까지 얻어먹은 기억을 적었다.
※ 온 가족이 함께 살려고 노력하는 마음과 아름답고 너그러운 이웃의 정에 독자들 마음도 따스해진다.
③ <낙조>
-부도를 맞은 아버지가 저녁때가 늦었는데도 돌아오시지 않아 찾으러 갔을 때 아버지는 두 팔을 벌려 환한 얼굴로 나를 안았다. 등 뒤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를 느꼈다. 기울어진 가세를 짊어지고 혼 힘을 다해 일어서려고 하는 가장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졸업 후 가계를 돕겠다고 했다.-
※가정의 위기 앞에 온 가족이 마음 뭉쳐 힘이 되는 따스한 가정의 온기가 좌르르 펼쳐지는 풍경이었다.
④ <노숙자와 와인>
오십 대 노숙자가 매장에 들어와 “소줏값 2,000원만 주시오.” 해서 3000원을 꺼내어
“소주 말고 라면이라도 사서 드세요. 그런데 3,000원어치만 놀다 가세요.”
하며 잡아 홍삼차를 내어놓고
“저랑 나이도 비슷하지 싶은데, 오늘 친구처럼 옛이야기 한번 해봅시다.”
하며 적포도주와 견과류를 내어놓고 마시다 보니 그도 대학을 나와 아이를 낳고 여자와 헤어진 채 졸업 후 손대는 일마다 꼬여 노숙자 신세가 되었단다.
3년 후 깔끔하게 차려입은 신사가 찾아왔다. 보니 그 노숙자였다. 작가가 처음으로 인간으로 대우해 줘서 결심하고 여러 친구를 만났는데, 한 친구가 중장비 회사 상무 자리를 추천해 주어 그 일을 하고 있다며 매장의 천삼을 사 갔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해 준 한 번의 친절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준 사례였다. 작가가 이런 자세로 사람을 대해왔기에 교황님이 꿈에 나타나 암도 물리쳐 주셨을 것 같다.
⑤ <기적>
-여중 2학년 때 엄마의 안경다리가 부러져 슬퍼할 때 엄마의 안경다리를 해줄 수 있다며 대구로 나갔다가 돌아올 때 차를 잘못 타서 택시를 타고 대구역에 도착해 열차표를 사려니까 돈이 부족해 아버지 또래 신사분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도와달라고 했다. 흔쾌히 표를 사주셨다. 공책을 꺼내서 그분의 성함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고 내 이름과 아버지 성함,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드리고 몇 번이고 인사를 드렸더니 “다음엔 혼자 다니지 마라. 조심해서 가거라.” 며칠 뒤 아버지와 같이 찾아가서 돈을 갚았고 엄마가 준비해 준 선물도 드렸다는 이야기였다.
※ 어려움에 처해도 차근차근 길을 열어가는 작가의 침착함에 놀랐고, 온정을 베풀어 준 그 신사분에게도 감사의 마음에서 허리가 굽혀졌다. 그 인연으로 친척같이 오가는 사이가 되었다니 한번 맺은 인연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며 사는지 독자들은 감동하며 배우게 된다.
⑥ <삶 속의 옥시토신>-그리스어로 ‘일찍 태어난다’ 뜻이다. 삶은 신비로 가득하다. 시간과 생각의 틈 사이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묘약이 있다. 횡재한 기분이다. 돌아보니 생활 속에 옥시토신은 수없이 숨어 있다.
※ 작가의 이 말에 앞쪽에서 읽은 <노숙자와 와인>이야기가 다시 살아났다. 그 장면도 불편하고 귀찮은 노숙자와의 시간을 친절로 힘을 실어준 옥시토신 같은 사랑을 만든 일이었지 않은가? 그래서 작가는 행복한 사람으로 지금까지 복 받고 살고 있는 것 같다.
⑦ <새벽>
종이 울리는 어둑새벽에 엄마는 학교 가는 나를 위해 냄비 밥을 했다. 지금도 쌀밥 익어가는 냄새는 추억 속의 엄마가 된다.
※ 유년의 따스한 사랑을 기억하는 작가는 행복한 아이였다.
⑧ <숨 고르기>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 달빛 품은 블루 위스키 한 잔이 생각난다. 아침 이슬 맺힌 나팔꽃처럼 생기 도는 날이 좋다. 사는 맛도 바로 숨 고르기 기술이다.
※ 작가의 인생을 보는 담담함이 독자들에게 위로를 주는 장면이다.
⑨ <신발 한 짝>
-좋은 신발은 좋은 곳에 데려다준다. 겨울에 새 신발을 신고 기찻길을 걷다가 석탄을 넣어 운행하는 꽥 차에 태워주어 탔는데 타고 보니 신발 한 짝이 떨어지고 없었다. 봄에 잃어버린 신발이 궁금하다고 하며 찾아가 찾았는데 집에 있던 한 짝과는 달리 일그러진 채 제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젠 버리자고 했지만 나는 그 운동화와의 이별이 오래도록 남았다. 삶의 언덕길 따라 “오늘 일은 신발 한 짝이 훔쳐 가버렸네.”하며 웃으시던 솔바람 같은 아버지가 있다.
※ 작가는 신발 한 짝과 얽힌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름답게 그려내었다.
<대파 새싹>
자른 파대에서 진액이 눈물처럼 뚝 떨어졌다. 뿌리만 남은 것을 빈 화분에 흙을 담아 깊숙이 묻어두었다. 가끔 물 한 번 준 것이 전부다. 그런데 오를 아침에 파란 잎이 뿌리를 밀고 쑥 자라났다. 파란 새싹이 무슨 새해 상징이라도 된 듯 보인다. 눈 맞춤 해본다. 대파는 생으로 사용할 땐 알싸한 매운맛과 특유의 향이 있고, 익히면 단맛을 내어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본인이 암 수술로 힘겨운 병원 생활 중일 때 시어머님이 큰 보자기를 들고 와서 운동하도록 도와주셨는데, 엘리베이터까지 내려오는 여덟 계단이 베를린 장벽보다 아득했다. 어머님이 허리와 다리를 주물러 주셔야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온몸이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서로 부둥켜안았다. 지금은 남편과 부지런히 운동하여 맨발 걷기에 4년째 접어들고 있다.
잘린 뿌리에서 난 대파가 처음보다 싱싱해 보인다. 아픔과 괴로움을 묵묵히 함께해 준 가족들에게도 찐한 고마움이 있다. 이젠 더 천천히, 뒤돌아보지 않고 살고 싶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 파 한 뿌리를 통해서 일상 속 인상적인 삶을 암시적 묘사로 인생을 관조해 보는 성찰이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