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십자가로 인생 전체가 바뀐 자의 복
06/20화(火)고후 4:7-12 /요 14:5-6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고후 4:7)
매슬로우는 인간에게는 다섯 가지 기본욕구가 있는데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만족이 없어 늘 갈증 속에서 목말라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나의 백성이 두 가지 악을 저질렀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전혀 물이 고이지 않는 물이 새는 웅덩이를 파서 그것을 샘으로 삼은 것이다”(렘 2:13)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린 것과 스스로 터진 웅덩이를 판 것 때문에 늘 두려움, 불안, 불평, 짜증이 몸에 배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채우기 위해 만든 것이 종교입니다.
십자가 죽음으로 인생 전체가 바뀌면 어떤 축복이 오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고후 4:7). 인간은 그릇입니다. 그릇은 내용물을 채워야 합니다. 그 내용물이 주님으로 채워질 때 능력이 옵니다.
▣그릇으로 살아가면 나(자아)에게서 해방 됩니다.
루터는 ‘나’라는 ‘자아’는 마귀보다 무섭고 교황보다 더 무섭다고 했습니다. 나(자아)는 사단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종인 나’는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을 때 예수가 주인이 됩니다. 나는 질그릇이고 주님만 보배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사랑을 받을 때가 아니라 내가 남을 사랑할 때 옵니다. 내가 나쁜 사람을 만나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해서 불행한 것입니다. 나를 만나서 아픈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주 끔찍한 일입니다.
▣주님의 그릇으로 살면 환경에서 자유 합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고후 4:8-9) 세상보다 크신 분이 내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시니 그가 형통하더라’입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어떤 환경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혔지만, 주님이 함께하시니 자유합니다. 옥문이 열렸지만, 도망하지 않으니 그를 통해 간수가 구원받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든 감옥 밖에 있든 주님이 함께하시니 진정한 자유자가 된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절대 부정에서 절대 긍정의 삶을 살게 됩니다.
나의 억울함을 짊어지고 예수가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이 내게 허락하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께 매달리면 주님께서 그 십자가를 같이 져주십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부정의 환경이 절대 긍정으로 변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가 살 때 사망에서 자유 합니다.
“그리하여 죽음은 우리에게서 작용하고 생명은 여러분에게서 작용합니다.”(고후 4:12)
옛사람(자아)이 죽어야 내 속에 있는 예수(생명)가 나를 통해 상대에게 전달됩니다. 내 인생은 하루하루 죽음으로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십자가에서 자아 죽음으로 하루를 끊어내면 육신이 끊어질 때 자동적으로 천국과 연결됩니다. 날마다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And...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실존적인 두려움과 결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를 찾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예수가 길이요, 진리, 생명입니다. 예수를 만나 하나님 나라를 체험할 때 본질적 욕구가 채워집니다. 이때 참 만족이 옵니다. 기독교 복음(유토피아)은 내 마음에 와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고민은 잘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뭔가 새롭게 바뀌어야 하는데 잠시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참 절망스럽기도 합니다.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을 다 갖추어도 사람이 바뀌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풍부한 것 때문에 더욱 교만해질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생명을 바꾸셨습니다. 인간은 생명이 바뀌면 변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인간 모두는 자신이 추구하는 갈망(욕구)을 가지고 삽니다. 그 욕구가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갈망이 커지면서 탐심으로 변합니다. 자식, 돈, 권력, 명예, 성공, 이것이 우상숭배가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떠난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대부분 우상숭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전부가 아닌 하나님 플러스 성공, 하나님 플러스 권력, 하나님 플러스 무언가를 자꾸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인데 그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은 뿌리가 하늘에 달려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문제가 와도 기도하면 해결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에 거할 때 육신의 죽음이 오면 바로 하늘에 있는 하나님 나라로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이 오는 순간 스데반처럼 하늘 보좌에 계신 주님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참 감사한 일이 많습니다. 많은 일 중 하나는 침묵 속에서 주님이 하시는 일들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그들이 만난 하나님을 체험. 때로는 영적인 독서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실제로 그 음성에 순종했을 때 기적을 체험합니다. 특히 깨달아지는 것 중 하나는 모든 환경을 하나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인간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하나님 관점으로 바라보면 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들입니다. ‘참 놀랍다’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문제 때문에 불평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그 문제 때문에 감사합니다. 문제의 해답은 이미 하나님 안에 다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문제가 해결되고 문제 해결자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왔다면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기도의 무릎을 꿇고 주인 되신 주님께 그 문제를 그대로 올려드리십시오. 인간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더 꼬이게 됩니다. 문제가 왔다는 것은 “너, 나를 주인의 위치에 올려놓아라”입니다. 그냥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됩니다. 종은 어떤 문제도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내가 해결하려던 것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이미 문제를 해결해 놓으신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피조물이 할 일은 오직 감사뿐입니다. 감사한다는 것은 대상을 신뢰한다는 고백과 같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요즘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움직이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어진 하루를 감사로 누리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사인을 주실 때까지 멈추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흐름에 집중하라십니다. 그냥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이 하실 일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걸 원하시고 순종하다 보니 주님이 일을 이루어 가심을 보게 됩니다. 그냥 내게 주어진 환경에 순종하면 그 나머지는 주님이 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착각을 합니다. 내가 무언가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아야 합니다. 나가고 싶은 마음이 쓰나미처럼 밀려와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신앙입니다.
요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합니다. 주어진 하루에 감사합니다. 그러다 사람을 보내시면 그분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누립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모든 결과는 하나님 몫이고, 주어진 과정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주님이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것이 가장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에 물들어 열심히 노력하고, 많은 결실을 맺어야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가 죽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이렇게 인생 전체가 바뀌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런 축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
https://youtu.be/tqvaGtNJMo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