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세상으로부터 성공적으로 도망친 '끊어진 실을 가진 마리오네트 인형'과 같은 |
숨을 몰아쉬며 하염없는 언덕을 오른다. 3시간을 오르다 쉬고, 또 2시간을 오르다 쉬니 입으로 힘껏 불면 흩어질 것 같은 구름 속 능선의 장관들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그런 호사스러움도 잠시, 어디쯤 왔나싶어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나를 에워싸 눈앞이 아찔하기만 하다.
강원도에서도 오지 중 오지 축에 속하는 이 달하치 마을은 그 정보를 외부에서 얻기 어려웠던 탓에, 장리에서부터 들어 가는 쉬운 길이 있었음에도 이를 알지 못해 배나 더 걸리는 '면옥치리' 뒷길로 올랐던 것이다. 다만 지도에도 표시된바 없고, 양양 주민들도, 관공서도 몰랐으니 그저 엉뚱한 길로 가지 않을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 밖에 없었다.
달 하 치
달하치 마을
찌는 듯한 7월의 여름 그리고 5시간 동안의 산행. 몸이 넋을 놓고 싶을 때, 초지의 웅성함을 비집고 분지 속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피곤함은 무시해도 좋을 듯 했고 두 눈과 정신 그리고 발걸음은 선예한 집중에 휘말렸다.
달빛 아래 첫 동네라 하여 마을 이름이 달하치라 했던가? 누가 지었는지 그 기운도, 운치도 손바닥을 짝! 소리 나게 마주치고 싶을 만큼 짝! 맞는 궁합이었다.
느닷없이 차려진 밥상
헌데 오지라 하더니 십여 명의 주민들이 한 데 모여 있다. 허여멀건 한 도시 놈이 한 짐 그득하게 짊어 메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이윽고 그네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다.
이 땅에, 이 산에 주인이 어디있겠냐만은 경산조수(耕山釣水)하려는 그들의 이유 탓에 이 불청객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을 터, 그래도 이해(利害) 보다 이해(理解)가 앞섰는지 말 한마디 채 제대로 나누기 전에 ‘날 더운데 들어와서 한 점 드슈~’라며 낯가림에 손 사레 치던 이 불청객의 어깨춤을 두 손으로 힘껏 밀어 자리에 앉힌다.
아실겝니다. 이 놈의 맛. 무진장 먹었답니다.
모인 사람들은 멀끔한 사람 반, 산(山)사람 반에 행색도 제각각이었다. 차려진 음식은 남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런 귀한 것이었으며 대접하는 양도 예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멀뚱하니 있어도 보이는 족족 물음이 생길 뿐이었다. 하지만 궁금하다고 초면에 대뜸 물어볼 수는 없는 일, 그저 마빡에 ‘궁금하오.’라고 써 놓고 있으니 법수치 마을에 산다는 멀끔한 사람이 농조로 귀띔 한다.
“날 더워서 법수치 사람이랑 달하치, 연화동 사람이랑 복날 비스무리한 모임을 갖는 거유. 잘 보시면 멀끔한 사람들은 법수치에서 온 사람, 꼬질꼬질하고 댕기머리 따서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달하치, 연화동 사람이요. 그나저나 이렇게 모여서 개 잡는 일이 흔치 않은데 운 좋으시네 그려.” 라고.
분명 농조로 이야기한 것은 분명한데 어찌 이리도 와 닿는 겐지,
어쨌든 몸은 박복했어도 입은 다복하더라.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 申선생님
넉넉한 이곳이 사람을 넉넉하게 만들었는지, 넉넉한 사람이 모여 넉넉한 마을이 되었는지 알 수 없어도 그 넉넉한 인심에 넉넉한 대접에 이 불청객은 마치 백년지객이라도 되는 냥 입도 마음도 넘치는 호강을 했다. 그러니 그런 그들에게 어찌 이곳을 오게 되었고, 어찌 서로를 알게 되었으며, 당신들의 인생사는 어찌 되느냐고 물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오메 가메 맘에 듦에 터를 놓은 사람들이고 스쳐가는 이도 인연 삼을 사람들이니 말이다.
차츰 대화를 이어가며 기자의 신분을 알리고 목적을 이야기했다. 분명 세상에 알려질수록 그들의 소박한 유토피아는 더렵혀질 것이 분명한데도 모든 이들이 두드러기 없이 조금의 비딱함도 없이 호의적이었다. 덕분에 조심스럽지만 ‘사람들에게 이곳이 알려지는 일이 불편하지 않느냐?’ 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었다.
“이 땅이 내 것도 아니니 외지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오는 것을 밀어낼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외지 사람들로 인해 소란스러워지고 더럽혀진다면 그건 웃고 넘어갈 일만은 아닐 겝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긴 위치도 그렇고 애초부터 사람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저 오지다 해서 어쩌다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기는 하죠. 제 기억에 일반 분들은 올 초에 몇몇 분 오셨고 마지막으로 다녀간 분(기자)은 작년 겨울쯤이었어요.”
“암튼 그건 그렇고 사람 참 이상합디다. 어느 날인가 저 멀리서 사람이 오는가 싶으면 꼴도 보기 싫은데 막상 눈앞에 있으면 싫지 않은 맘이고, 또 반 년 넘게 일 년 넘게 한 사람도 오지 않을 때면 ‘아니 이 양반들 어째 한 명도 안 오는 거야’ 뭐 이런 기분이 드는 거죠. 허허” 라는 답이 오갔고 주위 분들도 동의하는 듯 미소로 끄덕이신다.
“달하치 왔으니까 연화동도 구경해야지.”
달하치, 연화동에서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신(申)씨 성을 가진 어르신이 이야기 하신다. 이내 따라 올 테면 따라오라는 듯 채 답을 드리기도 전에 훌쩍 자리를 뜨시더니 한참의 나이차가 무색할 만큼 저 멀리를 지나고 계신다.
달하치 마을에서 연화동으로 가는 길은 도보로 20분 남짓. 가는 길에는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계곡이 길을 안내한다. 누구든지 달하치의 계곡에 있노라면 그 물소리가 유난히 청량하게 느껴질 것이다. 지나치게 날카로운 세상의 소리에 파묻혀 있었으니 말이다.
소리뿐이랴. 1000m 고지의 최상류 아니던가. 그러한 위치 덕에 피부와 눈으로 느껴지는 것 또한 여느 계곡에 견줄 바가 아니다. 그래도 기자는 속세 사람인지라 겉 몸뚱이가 느낀 것만으로는 쉽게 믿지 못 하겠어 물맛을 시험 삼았다. 이땐 바가지도 필요 없다. 손은 더욱 더러울 테니 더더욱 필요 없다. 그저 빨대 삼은 입술을 계곡에 담가 한 홉 들이키면 매끈하게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시원한 물맛이 아주 그만이다.
또 어르신께서 이야기하시기를 버들치와 같은 1급수 서식 어종들을 이 달하치 계곡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하니 그 수질만큼은 두 손 두 발 다 들어야 할 판이다.
역시 이 서울 촌놈은 미련하고 둔했다. 평생을 앓고 있는 비염 탓에 항상 콧구멍 절반은 막힌 상태로 숨을 쉬기 때문에 늘 답답하게 반 쯤 목 졸린 기분으로 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도 자각하지 못하고 왜 인지도 따져보지 않은 채 마냥 ‘상쾌하다. 시원하다.’ 라는 말만 연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말이지만 이유가 달리 있었겠는가. 제 멋대로 예쁜 이곳저곳의 숲 때문이지.
달하치와 연화동의 화법은 독특했다. 의도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어딘지 사람을 위로해주는 마음이 느껴진다. 아마 의도하려 했다면 단박에 느껴졌으리라. 자연의 따뜻한 위로를 조금 더 경청하기로 한다. 방법은 호흡을 더욱 깊게 들이 쉬는 것과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 물론 눈을 감고 호흡을 잠시 멈추는 것 또한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다른 주민의 집을 소개해주시는 모습
“거기 첫 번째 집은 ○씨집 그 양반은 온지 석 달쯤 됐고, 그 옛날 집 같은 두 번째 집은 ○씨 집인데 그 양반이 여기서 제일 오래 살았지 한 사오십년쯤 됐을 거야”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도회지에 집을 두고 있지만 자연이 좋아서 산속에 묻혀 사는 자연인들이라고 한다. 흔히 착각할 수 있는 어둑한 은둔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속속들이 밝힐 수는 없지만 사회적으로 저명한 분들도 여럿 계셨다. 혁혁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오지 속 삶을 선택한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감춰진 기구한 사연을 캐묻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실례일 듯 했다.
연 화 동
달하치와 연화동을 나누는 삼거리
삼거리라 불리는 곳을 지나, 10여분 뒤 연화동에 도착했다. 과거 100여 년 전에는 근처에 은광이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곳이라고 한다. 당시 근처에는 꽤나 흥했던 주막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연화(蓮花)주막’이었고 그것이 유래되어 지금의 ‘연화동’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단다. 지금은 그 호사스러웠던 시절일랑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외딴 오지가 되었고, 사는 이라고는 홀아비 아닌 홀아비 2명만이 살고 있을 뿐이니, 그저 시간이 무상할 따름이다.
어르신의 집에 다다르자 느닷없이 튀어나와 으르렁 거리는 녀석들
어르신께서 집을 소개해주신단다. 달하치, 연화동을 자랑스러워 하셨듯 몇 년째 공사 중이라던 자신의 집 또한 그러하신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터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청량하기 이를 데 없는 풍광아래 널찍하고 고즈넉한 밭과 집이 있고, 그 시원한 시야만큼이나 바람도 잘 들어 한 여름 땡볕 아래서도 시원하니 노곤한 몸이 금세 잠이라도 들것 같다. 굳이 잠들려고 노력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그런 달콤한 잠 말이다.
해도 바람도 모두 잘 들어 한 여름에도 시원했던 어르신의 집
헌데 그 집이 상당히 호사스러워 보임은 의문이었다. 집 앞에는 1.5톤 트럭이 세워져 있었고, 내부에는 상하수도 시설은 물론 TV, PC, 심지어 비데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궁금해 영문을 물어보니, 전기, 전화는 배전시설이 통과하는 곳이기에 설치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고, 차가 들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장마 때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공사가 산 곳곳에 있어 임산도로가 일찍이 열려 있었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수 시설은 계곡에 바로 흘리지 않고 땅에 웅덩이를 파 자연 정화가 될 수 있도록 장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오지라고 해서 막무가내로 들어와 앉아 사는 것이 아니라 허가를 받아야 된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달하치 연화동 사람들은 도 닦으러 온 사람들도 아니고, 그저 자연 위에 살림살이를 얻은 자연인일 뿐이니 우리가 달리 어찌할까를 걱정하고 눈을 흘길 필요는 없는 일일 것이다.
집 앞에 세워져 있는 '5슬 벗고 1하고 있으니 출입을 禁함'
어르신은 이곳에서의 삶과 매력을 이렇게 설명하셨다.
“약초 뜯으러 가기도 하고, 삼림욕하기도 하고, 날 좀 덥다 싶으면 저기 계곡에서 멱 좀 감으면 되고, 가끔가다 한 번씩 시내에 나가기도 하고“
“벌거벗고 있어도 뭐라 할 사람 없고, 듣기 싫은 정치 얘기 같은 거 듣지 않아도 되고 이런저런 잔소리들에 간섭 받지 않아도 되지. 다만 쌀같이 기본적인 것들은 여기서 나지 않아 사와야 하는데 토종 꿀 양봉한 수입으로 해결하면 되지.”
마을 주민들 모두가 어르신과 동일한 생활 방식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위와 같은 틀에서 크게 다른 방식을 갖고 있어 보이진 않았다. 다만 분명히 다른 것은 독백의 시간에 갖는 사고 정도일 것이다.
○선생님이 사시는 곳, 만만찮은 경치다.
시원한 약물?을 대접하신다.
취재가 마무리되어 갈 때 쯤, 자리를 옮겨 집에 들기 전 갈래 길 언덕 위에 있는 다른 한 분의 집도 소개해주신단다. 집 주인은 다소 퍽퍽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우리네 투박한 정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쭈뼛쭈뼛 머쓱하게 집 앞 마당에 앉아 있으니 약초를 모아 다린 귀한 음료를 대접 하신다. 별것 아닌 듯 보였지만 달콤, 쌉쌀, 새콤, 시원한 맛이 아주 일품인지라 앉은자리에서 설렁 설렁 네댓 사발은 마신 듯하다. 뭐 맛도 좋았지만, 사실 약초라는 말에 더 솔깃했다.
두 분은 연화동 단짝인 듯 보였다.
이어 어르신과 집주인이 농을 던지는 것을 시작으로 모두 함께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申曰 “○선생, 수영이나 갈까?”
○曰 “아휴~ 가만히 있어도 선선한데 뭘 가요. 난 동면(冬眠)이나 할 랍니다.”
申曰 “그나저나 기자 양반들 여기서 하룻밤 자고가요. 저녁 같이 먹고 밤에 감자도 삶아 먹고 합시다. 그리고 방도 내가 요 며칠 전에 누구 올 일 있어서 깨끗이 치워놨어요.”
我曰 “네……. 그런데 회사에 들어가 봐야 될 거 같아요.”
申曰 “에이,그냥 여기 뭐 핸드폰도 안 터지는데 그냥 산 속에서 길 잃어버렸다고 하면 되지 뭐.”
시골 마을이라고 하더라도 여간해선 받기 힘든 배려였다. 인사치레 아닌 진심이 느껴졌고 뿌리치는 것이 한 없이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기자가 유별나게 예뻐서는 아니었음이다. 분명 어르신뿐만 아니라 달하치 연화동 사람들 모두는 찾아오는 이가 있다면 하룻밤 묵을 수 있는 방은 어렵지 않게 내어줄 것이다.
하지만 켜켜이 쌓인 내면의 때가 자욱한 도시사람인 기자는 이러한 배려의 이유를 온전히 헤아릴 수 없었다. 다만 조심스레 추측해 보건데 이토록 사랑스러운 자연을 그네들 혼자서만 느끼는 것이 아쉬워서가 아닐까?
“그럼 어쩔 수 없지. 잘들 가 봐요. 내려갈 때 아까 삼거리에서 곧장 밑으로 내려가면 되고. 그리고 예쁜 꽃 있다고 괜히 옆길로 빠지다가 잘못하면 뱀한테 물립니다. 멧돼지도 있어요.”
달하치 연화동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꽃과 그 향기가 만발하는 봄이란다.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쉬우신지 연신 ‘여긴 봄에 좋지’라고 이야기 하신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설 무렵, 어려운 걸음 했다며 더 챙겨주실 것 없는지 안절부절 하시던 어르신은 얼마간 분주하시더니 시원하게 얼린 깨끗한 약수 한 병을 손에 쥐어 주시며 집 앞 골목까지 배웅하시고 이방인이 떠난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모처럼만에 느껴지는 묘한 아쉬움이 뒤를 따랐다. 이제 다시 세상 모든 것을 관념화시키고 분리해야 한다는 그런 기분 때문이었다.
.
.
.
돌아오는 길. 그들의 남다른 삶에 대해서 어떠한 긍정도 부정도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가수에게 최고의 찬사는 그의 음악을 들어 주는 것이며, 작가에게 최고의 찬사는 그의 글을 읽어 주는 것이 듯, 인생에서 제일의 찬사는 그저 삶을 사는 것이니 말이다.
달하치와 연화동 기본정보
소요 경비 : 양양 터미널 -> 장리 (마을버스 \2,100)
숙박 : 말만 잘하면
주의할 것 :
1. '여친 손 붙잡고 가볼까?' 라는 생각
2. '주민들이 알아서 먹여주고 재워주겠지' 라는 생각
찾아가는 길 :
제법 오래된 어느 서적에서 이 마을에는 냉장고도 없고 외지와도 닿기 어려워 고기 맛을 보기 어려우니 고기를 사오면 환영받는다고 이야기했단다. 하여 객들마다 고기를 손에 쥐고 오는 일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기가 들어와 냉장고에 고기를 보관하고 먹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않아 번거로이 사올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만큼은 꼭 써달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진짜로.
첫댓글 무슨 드라마 같은데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한번 놀러가야겠군요
달빛아래 첫동네며 100년전 연화정 주막이름을 받은곳~ 세속을 떠나 자연에 파묻혀 사는것이 정말 부럽습니다 만 우리같이 속세에 물든 사람은 엄두도 못낼 그림의떡 입니다 만 기회를 잡아 눈요기라도 실컨 하고싶네요
그런데 이글를 쓴 기자의 性別 궁금한데 이름이 없고, 또한 글末尾에 꼭 써달라는고 신신당부 한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