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한국 제일의 포교전법도량이며 조계종의 총본산인 대한불교 조계종의 직할교구 본사이다.
일제때인 조선불교 선교양종의 사찰 및 승려를 통할하는 '조선불교 조계종 총본사 태고사법'이 인가를 얻어 조선불교 조계종이 발족되었다. 현재의 서울 조계사인 태고사를 총본산으로 삼았다. 31개 본산을 통제하기 위해 총본산을 두고 전국의 사찰을 총괄적으로 관할하고자 설치했다,
현재는 각 종단마다 중앙행정기구(조계종의 경우 총무원)를 두어 총본산을 대신한다.
조선말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 당시 사대문 안에 절을 세우는 의미도 있었다. 조선왕조 내내 유교 성리학을 숭상하고 불교는 억제하는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시내 사찰도 산으로 추방당하거나 방화로 없앴고 서울 사대문 안에 절이 생기는 건 조선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게다가 1895년까지는 승려는 천민으로, 도성 출입마저 원칙적으로 금지되었다. 억압받던 한국 불교계에 사대문 안에 절을 세운다는 것은 의미가 컸다,
원래는 일제강점기 때인 1910년 전국 승려들의 의연금으로 1911년 한용운과 이회광이 중동중학교 자리에 각황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여 4대문 안에 최초로 자리잡은 사찰이 각황사(覺皇寺)였다. (이 사찰을 지금의 위치에 옮겨 지은 것이 지금의 조계사(曹溪寺)이다). 1915년 포교와 교육사업을 위해 31본산 연합사무소를 설치. 1922년 1월 조선불교 선교양종 중앙총무원을 설치했으나, 같은 해 5월 조선불교 선교양종 중앙교무원이 설치됨에 따라 각황사 안에는 상반된 두 개의 종무기관이 존립하게 되었다. 1925년 총무원과 교무원은 타협을 보고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으로 통합되어 통일적인 중앙 통할의 종무기구가 세워졌다.
1929년 1월 3일 104명의 승려가 각황사에 모여 조선불교선교양종 승려대회를 열어 종헌을 비롯한 교무원 규정과 교정회법, 종회법 등을 제정하였다. 1937년 3월 각황사를 현재의 자리로 옮기는 공사를 착공하여 1938년 10월 준공한 뒤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太古寺)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하여 절 이름을 태고사라고 하였다.
그 뒤 불교계의 중심 사찰로 명맥을 이어 오다가 1954년 일제의 잔재를 몰아내는 불교정화운동이 일단락된 뒤 1955년 태고사를 조계사로 개칭. 현재까지 대한불교조계종의 행정 중심 사찰이 되고 있다. 시설로는 대웅전, 불교회관 ,불교정화기념관 ,상원사 동종, 사리탑(진신사리)이 있다.
대웅전은 1910년에 건립된 법당으로, 크기는 조선시대의 왕궁 건축과 비길 만하지만, 건축이나 미술사적 가치는 별로 없다. 내부에는 삼존불(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다. 대웅전 뒤뜰의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은 지하 1층,지상 4층의 현대식 콘크리트건물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을 비롯한 포교원, 교육원 등 여러 행정기관이 입주해 있다.
그 밖에도 이 절에는 극락전를 비롯해 관음전, 일주문, 종각과 10층석탑, 사적비, 종각 등이 있다. 10층석탑은 1930년 스리랑카의 달마파라가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탑이다. 또 경내에는 수령 약 500년으로 추산되는 백송(白松, 천연기념물 제9호)과 수령 약 400년의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또한 24시간 경내 개방을 통해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혹은 불자든 아니든 간에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들를 수 있으며, 불교 관련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마련하였다.
일주문 기둥에 걸려 있는 주련은 송천 정하건 선생의 필적이다. 주련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은 뜻이다.
以心傳心是何法 (마음에서 마음에 전하는 법이 그 무슨 법인가)
佛佛祖祖唯此傳 (부처와 부처 조사와 조사들이 이 법을 전했을 뿐)
曹溪山上一輪月 (조계산 꼭대기에 둥근 달처럼)
萬古光明長不滅 (만고에 이 지혜광명 영원히 멸하지 않네.)
인사동과 견지동 사이를 가로지르는 큰 도로변에 접해 있는 조계사의 일주문에 해당한다. 수많은 인파로 붐비는 조계사이지만 정작 이 문의 평방 위에 걸려 있는 '大韓佛敎總本山曹溪寺'라고 적힌 편액은 송천 정하건 선생 최고의 역작이라고 부를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이다. 추사 김정희 이후 한국 최고의 서예가인 검여 유희강 선생의 제자로 해서체의 대가다.
일주문 주련과 사적비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직접 지으신 글을 송천 정하건 선생이 쓴 것이다. 일주문 주련의 글귀와 1만 자 가까운 사적비도 지관 스님이 직접 지은 것이고 글씨는 송천 선생이 적은 것이다. 송천 정하건 선생이 쓴 조계사 사적비.
일주문 좌우에 철재사천왕상이 위치해 있다.
대웅전 동편 측면에 위치한 '수송동 백송'은 천연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어 있는 희귀한 소나무이다. 수령 500년 정도로 추정하는 이 백송(천연기념물 제9호)은 조선시대에 중국에 갔던 사신이 가지고 와서 심었다고 한다. 나무 껍질이 큰 비늘처럼 벗겨져 밋밋하고 흰 빛이 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가 14m 정도이며, 밑동부분의 둘레는 1.85m 정도이다. 조계사 뜰 안 대웅전 옆 가까이 서 있고, 대웅전 쪽으로 뻗은 가지만 살아있다. 원줄기에는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한편으로 길게 위로 올라가면서 나 있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백송은 5그루이다.
아미타부처님과 약사여래부처님이 봉안되어 있는 경우에는 대웅전이라는 명칭보다 더 격이 높은 대웅보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조계사는 창건 당시부터 석가모니부처님 한 분을 모셨기 때문에 대웅전이라고 불러져, 2006년 삼존불(석가모니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아미타부처님, 우측에는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 이후에도 이전에 부르던 명칭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조계사 삼존불은 각각 5m 20cm정도의 크기로 2006년 11월 14일 봉불식(부처님을 새로 모시는 의식)을 가졌다. 세분 부처님은 현재 단층 규모의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으로서는 국내 최대 크기다. 현재 대웅전 삼존불을 바라보고 서 있는 곳에서 우측에 위치하고 있는 목조석가모니부처님은 창건 당시 전라남도 월출산 도갑사의 부처님을 모신 것이다. 창건 당시 모셨던 목조 불상 조성 시기는 조선 초기(1460년대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조계사 대웅전 편액은 전남 구례 화엄사에 있는 대웅전 편액을 탁본하여 조각한 것을 대웅전 낙성 당시에 단 것이다. 글씨는 조선 시대 선조대왕의 여덟 번째 아들인 의창군 이광(1589~1645)의 것이다.
대웅전 앞마당에 자라고 있는 회화나무는 수령 400년 정도되는 보호수이다.
회화나무는 백일홍, 향나무와 함께 선비 집안을 상징하는 나무였다. 옛날 선비들은 과거 시험을 응시하러 가거나 합격했을 경우 집에 회화나무를 심었다. 또한 회화나무을 집안에 심으면 학자나 큰 인물이 난다고 하여 우리 선조들이 학자수라고 부르면서 길상목(吉祥木)으로 손꼽아 온 나무로 꽃을 괴화(홰나무 槐)라고도 부른다. 회화나무의 한자는 괴(槐)이지만 우리는 이 나무를 회화나무 혹은 줄여서 홰나무라 부른다. 회화나무의 꽃을 괴화(槐花)라고 하는데 중국에선 괴(槐)를 회로 발음하기 때문에 회화나무가 되었다. 즉 회화는 중국식 발음 ‘회’에 ‘꽃 花’를 붙인 이름이다.
‘홰나무 槐’는 ‘나무 木’과 ‘귀신 鬼’를 합한 것인데, 나무가 귀신을 물리친다고 믿어 집이나 절 같은 곳에 많이 심었다.
중국 주나라 봉건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무덤에 각각 다른 나무를 심었다. 흔히 선비로 일컫는 사(士)의 무덤에는 회화나무를 심고, 천자의 무덤에는 소나무를, 제후의 무덤에는 측백나무를 심었다.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늘푸른 나무지만 사(士)의 무덤에 심은 회화나무는 잎이 떨어진다. 그래서 사는 천자와 제후와는 다른 위치(신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특히 중국 주나라에서는 궁궐(外朝)에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심었다. 삼공(곧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은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향해 앉았다. 우리나라 경복궁 광화문 앞의 화화나무 세 그루는 조선총독부 때문에 사라졌지만, 창덕궁 돈화문 안에서 3그루의 회화나무를 만날 수 있다. 아울러 유학자들 집에서도 종종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볼 수 있다. 퇴계 이황을 모신 도산서원에도 죽은 회화나무가 아직 남아 있다. 옛날 천원 권 지폐 뒷면에서는 아주 무성한 회화나무를 볼 수 있다.
부처님 진신사리 1과가 봉안된 팔각십층석탑. 대웅전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극락전. 극락전 내부 불단에 모셔진 아미타삼존불,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좌우협시로 모신 모습이다.
불전사물이 있는 범종각.
대웅전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관음전 위치.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관계로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다 보니 가람배치에는 소홀할 수 밖에 없었는 듯 기형적인 사찰구조이다.
한국불교의 1700년 역사와 전통을 대표하는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대한불교조계종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하고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直指人心 見性成佛 傳法度生)”을 종지로 하고 있다. 조계사 경내에 위치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건물 안에는 불교중앙박물관과 공연장, 국제회의장 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교육원, 포교원, 중앙종회 등이 입주해 있다.
소의경전은 금강경(金剛經)과 전등법어(傳燈法語)이며, 참선 수행을 근본으로 하면서도 간경과 염불, 주력 수행을 포용하여 통불교의 전통을 형성하고 있다. 한편 조계종이 가장 수승한 수행법으로 받들고 있는 간화선 수행은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독특한 수행법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은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등 삼보사찰을 비롯해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 8대 총림, 33관음성지와 함께 전국에 약 3천여 개의 사찰을 관장. 또한 비구스님, 비구니스님 등 1만 2천여 명의 승려가 조계종의 각 사찰에서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고 있다.
@삼보사찰 – 해인사 법보, 송광사 승보, 통도사 불보사찰
@5대 적멸보궁-속초 설악산 봉정암, 태백 함백산 정암사, 평창오대산 상원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 양산 영취산 통도사
@8대 총림(선원, 율원, 강원, 염불원 등 종합수도장) –
가야총림 해인사, 조계총림 송광사, 영축총림 통도사, 덕숭총림 수덕사, 팔공총림 동화사, 쌍계총림 쌍계사, 금정총림 범어사, (고불총림 백양사 )
@교구본사
1.조계사 2.화산 용주사 3.설악산 신흥사 4.오대산 월정사 5,속리산 법주사 6.태화산 마곡사 7.덕숭산 수덕사 8.황악산 직지사 9.팔공산동화사 10.팔공산 은혜사 11.경주 불국사 12.가야산 해인사 13.지리산 쌍계사 14.금정산 범어사 15,영축산 통도사 16.등운산 고운사 17.모악산 금산사 18.백암산 백양사 19.지리산 화엄사 20.조계산 선암사 21.조계산 송광사 22.두륜산 대흥사 23.한라산 관음사 24.도솔산 선운사 25.운악산 봉선사
@33관음성지
1.낙가산 보문사 2.조계사 3.화산 용주사 4.덕숭산 수덕사 5.태화산 마곡사 6.속리산 법주사 7.모악산 금산사 8.능가산 내소사 9.도솔산 선운사 10.백암산 백양사 11.두륜산 대흥사 12.금오산 향일암 13.조계산 송광사 14.지리산 화엄사 15.지리산 쌍계사 16.금산 보리암 17.팔공산 동화사
18.팔공산 은해사 19.가야산 해인사 20.황악산 직지사 21.등운산 고운사 22.함월산 기림사 23.경주 불국사 24.영축산 통도사 25,금정산 범어사
26.설악산 신흥사 27.양양 낙산사 28.오대산 월정사 29.사자산 법흥사 30.치악산 구룡사 31.여주 신륵사 32.수도산 봉은사 33.삼각산 도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