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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뵈 집사의 헌신
2014년 7월 20일 / 대예배 / 롬 16:1ㅡ2
롬 16:1-2 / 겐그레아 출신인 우리의 자매 뵈뵈 부인이 곧 여러분을 방문하러 갈 것입니다. 그분은 교회의 열성적인 일꾼입니다. 2) 주님 안에서 일하는 형제 여러분의 자매로서 따뜻이 맞아 주십시오. 여러분이 도울 수 있는 한 힘껏 그분을 도와주십시오. 그분은 나뿐 아니라 어려움을 당한 많은 형제들을 도와주었습니다.
로마서 16장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략 26명 정도가 됩니다. 그 중에 여자 이름이 6명이 기록 되어 있는데, 제일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름이 여자로써 뵈뵈입니다.
뵈뵈는 본문에서 보여 주는 데로 겐그레아 교회의 열심히 있는 여성도입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뵈뵈를 로마 교회에 천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천거(薦擧)한다는 말은 단순히 소개 한다는 뜻 이상으로 그 사람에 대해 보증하며 추천한다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낯선 곳으로 일을 위해 가게 되면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추천이 없으면 불안합니다. 그러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중간에서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믿을 만하다. 이 사람을 내가 보증한다.’ 이렇게 추천을 하면 서로 반갑게 맞이하고 일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게 됩니다.
흔히 낯선 사람을 알고자 할 때, 이력서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력서만 가지고는 그 사람에 대해 다 알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중간에서 추천을 해 줄 수 있다면 아주 좋을 것입니다.
만일 귀인이 여러분을 귀한 자리에 조건없이 천거하여 일을 하게 되었다면 천거해 주신 그 귀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실 것입니다. 사람을 추천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중의 하나입니다. 조금 더 표현한다면 은행에 보증을 서 주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계의 수도라고 할만한 로마교회에 겐그레아 교회에 있는 자매 뵈뵈를 추천합니다. 겐그레아는 그리스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고린도 바로 옆에 있는 작은 항구 도시입니다. 이 항구 도시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겐그레아 교회는 고린도 교회와 비교해 볼 때 작은 교회였습니다. 겐그레아 교회처럼 작은 교회는 고린도 교회의 그늘에 가려져서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교회였을 것입니다.
이 작은 겐그레아 교회가 일반 사람들의 눈에도 뜨이지 않는다면 사도바울 같은 대 사도의 눈에는 오죽 했겠습니까? 주위에는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고린도교회 등 큰 교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유명한 교회들에 비하면 겐그레아 교회는 아주 작고 무명한 교회였습니다.
뵈뵈는 이 작고 무명한 교회에 속해 있는 여자 집사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작은 교회에 속해 있는 뵈뵈가 사도바울의 눈에 뜨였을까요? 아주 놀라운 통찰력과 안목을 가지고 있는 사도 바울에게서 추천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귀한 신앙을 가져야 할까요?
사도 바울의 적극적인 신임을 받고 로마교회에 추천을 받았던 뵈뵈를 함께 생각하면 우리도 하나님께 추천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1. 자매 뵈뵈
사도 바울은 뵈뵈를 ‘우리의 자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뵈뵈는 사도 바울 뿐 아니라 바울의 동역자들이 ‘자매’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자매란 육적인 혈연관계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여자라는 말입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자로 그리스도 안에서 피를 나눈 형제요 자매란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2:48-50에 보면 예수님께서 영적인 가족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 12:48-50 / 예수께서 물으셨다. ‘누가 내 어머니요 내 형제냐?’ 49)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보라, 이들이 내 어머니요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누구나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 배우고 훈련된 사람 즉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가족으로 지칭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가족입니다.
막 3:35 /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네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뵈뵈는 마음과 뜻과 생각을 같이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이루기 위해 헌신한 여성도입니다. 뵈뵈가 자매라고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세상에 즐거운 것이 많지만 그런 것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사도바울과 같이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자신의 일생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해 드린 성도였기에 뵈뵈를 우리의 자매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 뵈뵈를 다른 교회에 추천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뵈뵈는 우리의 자매라고 불릴 만큼,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헌신했던 성도였습니다.
2. 교회의 일꾼 뵈뵈
교회 안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구경꾼, 말꾼, 일꾼이 있습니다. 구경꾼은 언제나 방관자로서 예배 참석만으로 만족해 합니다. 교회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말꾼은 입만 가지고 일하며, 손과 발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꾼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아가며 묵묵히 일을 합니다.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입니다. 사도 바울도 뵈뵈를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라 부릅니다. 일꾼은 집사로도 번역됩니다.
여기에서 뵈뵈가 사도 바울의 눈에 뜨이게 된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겐그레아 교회는 작은 교회이며, 이름없는 교회입니다.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가 비록 작은 도시의 교회이며, 소수의 사람이 모이는 교회이며, 이름없는 교회이지만 이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인 줄 알고, 이 교회를 위하여 자기 생애를 드리며 교회를 충성되게 섬겼습니다. 그것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말입니다. 만일 바리새인처럼 봉사ㆍ충성했다면 사도 바울이 천거를 했겠습니까?
바로 이 때문에 뵈뵈가 사도 바울의 눈에 뜨이게 된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가셨을 때 두 렙돈을 드린 가난한 과부를 지켜보셨듯이, 사도 바울도 이름 없는 작은 소수의 사람이 모이는 이 겐그레아 교회의 여집사 뵈뵈를 지켜보았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안목(眼目)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결국 큰일에도 충성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 때문에 겐그레아 교회에서 충성한 뵈뵈를 로마 교회에 추천하며, 그녀 편에 로마서를 전달할 수가 있었습니다.
눅 16:10 /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 참고로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느 9:7-8 /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아브람을 선택하여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해 내시고, 그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8) 주께 향한 그의 진실한 마음(충성)을 보시고 그와 계약을 맺으시면서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이 사는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그에게 약속을 하시고 그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말씀은 변함없으십니다!
3. 사도의 보호자 뵈뵈
사도 바울은 뵈뵈를 여러 사람들에게 ‘나의 보호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보호자’란 말은 후견인, 후원자 등 여러가지로 번역하는데, 좀 어려운 말입니다.
만약 그가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다는 파트너쉽과는 좀 다릅니다. 그러나 뵈뵈는 바울의 선교사역에 있어서 꼭 필요한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동등한 입장에서의 동역자나 짝을 뜻하는 파트너쉽은 아니지만, 바울 선교의 어느 부분의 빈자리를 채워 주었던 중요한 인물이었음을 본문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울이 고린도에서는 자급전도를 했습니다.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지만 그의 본업은 어디까지나 전도자이기에 누군가가 그를 도와야할 경제적 후원자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호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전도자가 전도를 해 나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그 옆에 그를 돕는 경제적인 후원자가 있어야 하고, 때로는 정신적으로도 그를 위로해 주는 후원자가 있어야 합니다. 요새 같은 다원적인 세대에 있어서는 지식적으로도 많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뵈뵈는 사도바울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정확한 목표를 가지고 일하는 복음 전도자를 위해 효과적으로 일하게끔 도우는 보호자입니다. 또한 여러 사람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병약한 사람을 간호하고, 심약한 사람을 위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어려운 사람을 세워주고, 주위의 많은 어려운 자들에게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신앙적으로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 뵈뵈는 열린 눈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여자 집사였습니다. 뵈뵈는 눈을 열어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찾았고, 마음을 열고 섬겨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찾았습니다. 뵈뵈는 도우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뿐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였던 모범적인 성도입니다.
마 6:1-4 / 칭찬을 받으려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베푸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아무런 상도 받을 수 없다. 2)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하는 것처럼 하지 말라. 그들은 자기들의 자선행위를 드러내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분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3) 그러니 네가 어떤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때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라. 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4) 모든 비밀을 아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
■ 우리도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 어느 날 아침 구두 수선공인 콘라트는 매우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는 작업장을 청소하고 난로에 불을 붙인 후 식탁에 식탁보를 깔았습니다. 오늘 그는 일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아주 고귀한 손님 한 분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 손님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는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지난 밤 꿈에 주님께서 "내가 내일 너에게 손님으로 가겠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제 그는 따뜻한 방안에서 식탁에 앉아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그의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가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들었다고 느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오셨나보다."라고 생각한 그는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은 우편배달부였습니다. 우편배달부는 바깥의 추운 날씨 때문에 완전히 꽁꽁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편지를 내밀고는 난로 위에서 끓고 있는 뜨거운 차를 갈망하는 눈초리로 쳐다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우편배달부를 안으로 불러 들여 차 한 잔을 대접하고는 온통 얼어 버린 그의 몸을 녹이도록 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다시 추위 속으로 걸어갔습니다. 우편배달부가 집에서 나가자마자 그는 재빨리 찻잔을 치우고 탁자 위를 깨끗이 정돈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그의 손님이 오는지를 보기 위해 창가에 앉았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곧 오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서 입니다.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주님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한 어린 소년을 보았습니다. 그는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유리창 가까이 갔습니다. 그는 어린 소년의 조그마한 볼에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즉시 어린 소년에게 달려가 우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곧 그는 소년이 수많은 인파 속에서 어머니를 잃었으며 더 이상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급히 쪽지 위에 무엇인가를 쓴 다음 탁자 위에 올려놓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쪽지 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주님 저를 기다려 주세요. 저는 곧 돌아옵니다.' 그는 문을 잠그지 않은 채 소년의 손을 잡고 그를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집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멀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두워진 후에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 창가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매우 놀랐습니다.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방망이질 쳤습니다. 이제 드디어 주님께서 그에게 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자신과 같은 집의 위층에 사는 한 부인을 자신의 방 창가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그녀는 피곤에 지치고 슬퍼 보였습니다. 그는 부인의 어린 아들 페트야가 아팠기 때문에 부인이 삼일 동안 한 숨도 자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할 정도로 곤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인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페트야는 고열에 시달리며 조용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페트야는 어머니조차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부인은 자신을 도와주는 그에게 미안해했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남편이 불행한 사고로 죽은 후부터 이 어린 아들과 단 둘이 살아왔기 때문에 도와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인을 도와 페트야를 젖은 수건에 돌돌 싼 다음 부인이 잠시 쉬는 동안 아픈 아이의 침대 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그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자정이 훨씬 지나서였습니다. 그는 매우 실망하여 피곤한 몸으로 침대에 누었습니다. 하루는 다 지나갔습니다. 결국 주님께서는 오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그는 갑자기 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목소리였습니다. "콘라트야 내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어서 고맙구나. 나에게 집으로 가는 길을 가리켜 주어서 고맙구나. 그리고 도움과 위안을 내게 주어서 고맙구나. 콘라트야! 내가 오늘 너의 손님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나는 무척 기뻤단다."
▶ 바울은 뵈뵈를 추천하면서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롬 16:2 / 주님 안에서 일하는 형제 여러분의 자매로서 따뜻이 맞아 주십시오. 여러분이 도울 수 있는 한 힘껏 그분을 도와주십시오. 그분은 나뿐 아니라 어려움을 당한 많은 형제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매,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그리고 주의 종들에 대한 보호자로 헌신했던 뵈뵈의 입장을 고려하여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그녀가 소용되는 바를 무엇이든지 도우라고 말합니다. 얼마를 도우라는 것이 아니고 그녀가 필요한 대로 도우라는 것입니다. 정신적, 경제적으로 그녀가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계속해서 도우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 13:20 /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내가 보내는 사람을 환영하는 것은 곧 나를 환영하는 것이며 나를 환영하는 것은 곧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환영하는 것이다.
마 10:41 / 만일 너희가 예언자를 하나님의 사람이라 하여 환영한다면 너희는 예언자가 받는 것과 같은 상을 받을 것이다. 또 만일 너희가 선하고 믿음이 깊은 사람을 믿음의 사람이라 하여 환영한다면 너희는 그들이 받는 상과 같은 상을 받을 것이다.
로마 교인들에게 생소한 뵈뵈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영접하고 그를 도우면 그것이 곧 바울을 영접하는 것이요 바울을 영접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됩니다.
이방 선교에 있어서 바울 사도의 역할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물심양면으로 도우는 뵈뵈와 같은 조력자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절대적인 역할은 못한다 할지라도 뵈뵈와 같이 돕는 자로 봉사와 헌신은 다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 때에도 이렇게 돕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눅 8:1-3 / [예수를 따르는 여인들] 그 후 예수께서는 갈릴리의 여러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며 하나님 나라가 온 것을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셨는데 열두 제자도 동행하였다. 2) 귀신들과 여러 가지 병에서 고침을 받은 여자들도 예수를 따랐는데 그들 중에는 일곱 귀신이 나간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3) 헤롯궁의 살림살이를 맡은 신하인 구사의 아내 요안나, 그밖에도 수산나를 비롯한 여러 여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바쳐 예수와 제자들을 섬기고 있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뵈뵈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매로써, 교회의 일꾼으로써, 바울과 여러 사람의 보호자로써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모범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녀가 복음 사역에 전적으로 헌신된 삶을 통해 신약에서 기억되고 있는 여러 신앙의 인물 중에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뵈뵈의 아름다운 신앙을 본 받아서 오고오는 후대의 모든 신앙의 사람들에게 믿음의 아름다운 삶의 자취를 남기시며 여러분의 이름이 많은 신앙인들에게 기억될 만한 이름들이 되어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 예화 하나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재미있는 동화가 있습니다. 주인의 집에 잔치가 벌어졌는데, 누가 갈 것인가에 대해 동물들이 회의를 했습니다. 멍멍이를 불렀습니다. 요즘 주인의 기력이 몹시 쇠한 거 같으니, 보신을 위하여 탕으로 올라가주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개가 대답하기를, 내가 주인을 위하여 희생을 하는 것은 좋지만, 내가 없으면 누가 이 집의 재산을 지켜 줄 것인가? 밤에 도둑이 들면 내가 짖어야 하는데 안 된다고 했습니다. 동의 했습니다. 의장이 개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닭에게 삼계탕은 어떠냐고 물렀습니다. 닭은 내가 가는 것은 좋지만, 내가 아침에 일찍 시간 맞추어 울어야 주인이 깨시고, 일어나야 나가서 일을 하시니 내가 이 집에 꼭 필요하다. 누가 알을 낳아서 주인을 줄 것이며, 누가 아침마다 시간 맞추어 주인을 깨어 줄 것이냐고 했습니다. 다음 순서는 소에게 넘어 갔습니다. 아무래도 네 갈비로 주인을 대접해 드리라고 했습니다. 잔치 상에 갈비가 제일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소 역시 변명을 했습니다. 이 집의 농사를 누가 지으며, 이 많은 농토를 누가 일구겠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소도 지나갔습니다. 돼지에게 삼겹살로 주면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돼지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무런 할 말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비장한 각오로 알겠습니다. 죽을 짐승은 저 밖에 없네요. 가마솥에 물이나 끓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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