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사 청벚나무 가지에 연둣빛 꽃이 눈을 떴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왔던 것일까 가지 하나 길게 내밀어 법당에 닿을 듯하다 꽃이 맑다 매화나무는 목탁 두드릴 때마다 꽃잎으로 법구를 읊고, 청매화는 동안거 끝에 수피의 끝을 찢어 꽃망울 터트린다 저토록 신심(信心)을 다져왔기에 봄이 일주문에 들어설 수 있다 가지마다 허공으로 낸 구도의 길 제각기 가부좌 틀고 참선의 꽃들을 왼다 전각에서 내리치는 죽비소리 제 몸 쳐대며 가람으로 흩어지는 풍경소리 합장하듯 꽃잎들 맞이하고 있다 법당은 꽃들의 백팔배로 난분분하다 부처가 내민 손바닥에 청벚꽃잎 한 장 합장하듯 내려앉는다
출처: 불교신문(www.ibulgyo.com) -------------------------------------------------------------------------------------------------------------------------------------------------------------- 개심사 청벚나무 가지에 연둣빛 꽃이 눈을 떴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왔던 것일까 가지 하나 길게 내밀어 법당에 닿을 듯하다 꽃이 맑다
개심사는 충남 서산에 있는 사찰인데요, 그것과는 관계없이 개심(改心)이라는 말은 잘 못된 마음을 고치자는 뜻입니다. 마음을 정갈하게 하려는 개심사의, 그것도 청벚나무 가지에 연둣빛 꽃이 눈을 떴습니다. 청색의 가지에 연둣빛이 어우러집니다. 눈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겨우내 눈을 뜨기 위해 기다리던 한 사람이 보입니다. 참 맑은 사람입니다.
매화나무는 목탁 두드릴 때마다 꽃잎으로 법구를 읊고, 청매화는 동안거 끝에 수피의 끝을 찢어 꽃망울 터트린다 저토록 신심(信心)을 다져왔기에 봄이 일주문에 들어설 수 있다
스님이 목탁을 두드릴 때마다 매화나무 꽃잎은 한 잎씩 벌어지고 꽃을 터뜨리는 장면이 보이시나요. 조용한 산사에 생기발랄함이 피어납니다. 그러자 봄이 들이닥치는군요.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봄을 부르려고 꽃들이 피어났군요. 백석의 나타샤가 떠오릅니다. 눈이 와서 나타샤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나타샤를 너무 그리워하니까 눈이 내린다는 표현 말이죠.
가지마다 허공으로 낸 구도의 길 제각기 가부좌 틀고 참선의 꽃들을 왼다 전각에서 내리치는 죽비소리 제 몸 쳐대며 가람으로 흩어지는 풍경소리 합장하듯 꽃잎들 맞이하고 있다 법당은 꽃들의 백팔배로 난분분하다
가지들은 허공으로 쭉쭉 뻗어나가고 꽃들은 대롱대롱 매달려 봄을 맞이합니다. 풍경은 봄이고 스님들은 제각기 수행에 바쁩니다. 풍경소리도 그에 발맞추고요. 지금 법당은 꽃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조용한 산사가 야단법석이군요. 봄을 맞아 절을 찾아온 신도들이 보입니다.
부처가 내민 손바닥에 청벚꽃잎 한 장 합장하듯 내려앉는다 우리는 모두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지요. 그의 자비가 온 땅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종교적인 시라고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시라고 봐야 합니다. 여기다가 이념이 어떻니 신념이 어떻니 하는 말을 붙이면 그런 분은 조용히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자신의 신앙은 신앙대로, 시는 시대로.
조용한 산사에 불어오는 봄바람이 예사롭지 않은 시입니다. 마음이 푸근해지고 생기가 돕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봄을 불러올까요? 봄이 부처님의 자비로움을 더하게 할까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상관없습니다. 덕분에 우린 봄을 즐길 테니까요. 지금은 한여름 어스름입니다. 뜨거운 여름에 봄을 이야기하니까 더 설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