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한 시에서 현대세계는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으로 묘사된다. 건축기사이기도 했던 시인의 눈으로 보니 건축도면을 보듯 세계가 기하학적인 복합체로 보였던 것이다. 이 유명한 투시도는 직접적으로는 백화점이라는 현대건축물의 양상을 투시한 시적 도면이기도 하다. 큰 사각형 박스의 백화점은 사각형 문과 사각형 창문들의 복합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안에 또 다른 사각형 방들이 즐비하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사각형 방들이 있다. 이상은 도시를 사각형 문을 계속해서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각형 방들의 연속체로 이해했다. 경첩이라는 사물이 있다. 어떤 종류의 문이든 미닫이문이 아니라면 경첩이 있어야 밀고 당길 수 있어 문이 열린다. 이상이 그린 저 투시도의 모든 방들을 여닫으려면 역시 문에 경첩이라는 작은 사물이 붙어 있어야 한다. 창문도 마찬가지다. 경첩은 문짝과 문짝 옆의 건물 틀 일부를 금속판으로 이어 서로 맞물리게 하여 돌아갈 수 있도록 한 작은 사물이다. 작지만 모든 문의 형식에는 문과 옆널을 잇는 이 맞물림의 작은 요소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옛날에는 돌쩌귀라고 하여 암짝은 문설주에, 수짝은 문짝에 박아 서로 맞추어 꽂게 되어 있었다. 경첩은 건물뿐만 아니라 냉장고, 자동차, 장롱 등 박스 형태로 되어 문을 여닫는 모든 사물에 필수적인 사물이다. 기능적으로 절대적인 요소지만 크기는 아주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 이 사물의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아무리 커다란 문도 마찬가지다. 문짝과 건물·사물의 몸체면 일부를 ‘대칭적인’ 금속판으로 ‘이어주는’ 것이다.
문을 여는 일은 문을 뚫거나 부수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큰 문을 열려고 해도 작은 것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반대로 작은 문을 열 때에도 문짝은 전체 구조와 연결고리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 제대로 경첩이 달린 문은 문짝이 아무리 무거워도 살짝 공중에 떠서 아이들도 쉽게 밀거나 당겨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때 문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부드럽게 잘 돌아가며 안팎으로 개방된다.
기원전 사람인 전국시대의 장자는 진리를 ‘도추(道樞)’라고 표현했다. 여기에서 ‘추(樞)’는 ‘지도리’, 요즘 식으로 말하면 ‘경첩’을 일컫는다. 이상의 시대나 장자의 시대나 문을 만들고 여닫을 때 이 사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