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사형수를 바꿔치다
위소보는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풍석범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을 어떻게 처치해야 할까? 그를 놓아 준다면 반드시 이 일을 황상에게 고자질할 것이다. 설령 나의 꼬투리를 잡지 못한다 하더라도 황상께서는 반드시 내가 부린 수작임을 짐작하실 것이다.) 그는 두 손을 뒷짐 진 채 화청에서 서성거리다가 다시 생각했다. (날이 밝기만 하면 모형을 죽여야 하는데 무슨 방법이 있어 그의 목숨 을 구할 수 있을까? 대명부(大名府) 사형터에서 사람을 가로챈다는 것 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사형터라, 사형터…) 갑자기 그의 뇌리에 한 토막의 연극이 떠올랐다. (법장환자(法場換子)! 즉, 사형터에서 아들을 바꾼다는 연극이 아닌가! 맞다. 설강(薛剛)이 화를 불러일으켜 온 가족이 멸족을 당하게 되었을 때 서 아무개라는 휜 수염의 늙은이가 자기의 친아들을 사형터에서 설 아무개라는 갓난아기와 바꿔치기 했지…) 그는 연극을 많이 보기는 했지만 극중 인물들의 이름은 제대로 기억하 지 못했다. 그러나 그 줄거리만은 똑똑히 외우고 있었다. 법장환자라는 연극을 생각하게 되자 곧이어 다른 한 토막의 연극이 다시 생각났다. (수고구고(搜孤救孤)! 이 이야기도 비슷한 내용이다. 정앵(程櫻) 이라고 부르는 검은 수염이 자기의 아들과 주군의 아들을 바꾸어 놓고 자기의 아들이 참사당하게 한 후 자기 주인의 아들을 구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아! 정말 다행이다. 다행히 모형의 나이가 내 아들의 나이와 같지 않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호두나 동추를 사형터로 보내 머리를 자르게 하고 모형을 바꿔치기 해야 하지 않는가! 친구의 의리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이와 같은 일은 나로서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좋아, 좋아!) 그는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풍석범을 다시 한번 힘주어 걷어차고는 말 했다.
[너의 운수가 나쁘지 않아 이 위 대인께서 너를 의붓아들로 거두어들이 도록 하겠다. 위 대인의 친아들은 모형과 맞바꾸기에는 너무 어리니 너 와 같은 의붓아들을 내세우는 것이다. 의붓아들이라면 죽어도 상관없 다.]
그는 친위병 대장을 불러서 은밀한 당부를 하고는 그에게 천 냥의 은자 를 내렸다. 그리고 다시 천 냥의 은자를 주어서는 일을 처리하는 나머 지 친위병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했다. 그 대장은 허리를 굽히고 고맙다 는 인사를 하며 말했다.
[대인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일체의 모든 것을 적절히 처리하겠으며 결 코 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위소보는 안배가 끝나자 내당으로 들어갔다. 일곱 명의 부인과 아들딸 들이 모두 태후에게 불리어 황궁으로 들어가고 없는지라 집안은 썰렁했 다. 그는 옷을 입은 채로 침대 위에서 한참 동안 누워있자 얼마 후 날 이 밝았다. 진시쯤 되었을 때 궁에서 성지가 떨어졌다.
[강양대도 모십팔은 대역무도하게도 대신에게 욕을 했으니 즉시 참수토 록 하되 무원대장군이며 일등 녹정공인 위소보가 참수형을 감독토록 하 라.]
위소보는 유시를 받들고 저택 밖에서 친위병들을 불렀다. 그러자 다륭 이 수십 명이나 되는 어전시위들을 데리고 모십팔을 압송해 왔다. 모십 팔은 눈가가 시퍼렇고 코가 부어올라 있었으며 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심한 고문을 받은 것이 분명하였다. 그는 위소보를 보자 마자 대뜸 욕을 퍼부었다.
[위소보, 이 뻔뻔스러운 작은 매국노야! 오늘 네가 나의 머리를 자르는 것을 감독한다지? 나는 조금도 억울하지 않다. 내가 그때 눈이 멀어서 양주의 갈보집에서 너라는 작은 매국노를 북경으로 데리고 온 것이 잘 못이었다.]
친위병들은 큰소리로 호통을 내질렀으나 모십팔은 더욱더 거칠게 욕을 해댔다. 위소보는 그의 그런 행동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륭에게 물었다.
[태가는 어떻게 되었소?]
다륭은 웃었다.
[어젯밤 내가 달려가 보니 태 도통은 이미 부인에게 할퀴어 온 얼굴이 상처투성이더군. 그가 나를 보자마자 그 낭패스러워하는 꼬락서니라니, 정말 가관이더군. 나는 어떻게 되었든 간에 나서서 그의 부인을 말렸고 또 그 여덟 번째 마누라를 내 집으로 모셔 나의 두 첩이 그녀를 벗하게 해주었다네. 태가는 고맙다고 하며 감격해서 어쩔 줄을 모르더구만.]
위소보는 웃었다.
[그 여덟 번째 마누라의 모습은 어떻든가요?]
다륭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허허,대단해.]
위소보는 웃었다.
[형님은 색을 보고 다른 뜻을 품어 불난 집에서 노략질을 하는 것 아니 오?]
다륭은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형제는 안심하도록 하시게. 그대의 형이 그토록 못난 줄 아는가? 태가 는 비록 나의 적수이기는 하지만 그와 같은 일을 이 형은 결코 하지 않 을 것이네.]
즉시 두 사람은 모십팔을 압송해서 채소를 팔고 있는 저자거리 입구에 있는 사형터로 갔다. 다륭은 말을 타고 위소보는 커다란 마차를 타고 갔다. 모십팔은 소가 끄는 수레 위에 앉아 있었는데 두 손은 뒤로 묶여 있었고 목에는 나무 팻말이 매달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쓰 여 있었다. <흠범(欽犯) 모십팔을 즉시 참수한다.> 소달구지는 노새와 말들을 팔고 사는 시장 큰 거리에서 서쪽으로 나섰고 백성들은 다투어 모여들어 구 경을 했다. 모십팔은 길을 가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노래를 불렀 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십팔 년 후에 다시 영웅호걸로 태어나리라. 다시 모십팔의 이름 을 지니고 다시 참수를 당하리라!]
거리의 백성들은 큰소리로 갈채를 보내며 그를 칭찬했다.
[사내답다. 정말 굳센 사내다!]
말시장이 있는 큰 거리와 선무문(宣武門)의 큰 거리가 교차되고 있는 십자로의 입구, 즉 채소를 팔고 사는 저자거리 어귀의 사형터에 도달하 였다. 위소보는 이미 친위병들을 시켜 밤을 도와 차일을 쳐 놓도록 했 다. 차일의 앞뒤로는 친위병들이 지극히 엄밀하게 지키고 있었다. 다륭 은 강희의 당부를 받고 혹시나 천지회에서 사형터의 죄수를 낚아챌까 봐 이미 구문제독에게 알려서 이천 명의 관병들을 사형터의 사방에서 지키도록 했다. 모십팔은 늠름하게 사형터의 한복판에 버티고 서서 부 르짖었다.
[우리들은 모두 대한나라의 백성이다. 비록 화려한 강산을 오랑캐에게 점거당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오랑캐들을 모조리 죽일 것이다!]
위소보는 마차에서 내려 차일 안으로 들어섰고 마차 역시 차일바로 밖 에 섰다. 위소보는 자리에 앉았고 다륭을 옆자리에 앉게 했다. 다륭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범인은 대역무도한 말만 하는군. 이곳에서 사람의 인심을 선동하니 우리들은 빨리 이자의 목을 자르도록 합시다.]
위소보는 말했다.
[예!]
그는 호통을 내질렀다.
[범인을 데리고 오너라!] , 네 명의 친위병들은 모십팔을 차일 안으로 밀어넣고 그를 내리 눌러 서는 무릎을 끓도록 했으나 모십팔은 무릎을 꿇으려 하지 않았다. 위소 보는 말했다.
[무릎을 꿇게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다륭에게 말했다.
[형님, 저사람이 확실한지 한번 알아보십시오.] [틀리지 않네.] [이제 틀림없는 사람이란 것을 확인했으니 즉시 국사범 모십팔을 참수 하도록 하라.]
그는 먹을 듬뿍 먹인 붓을 들어 나무 팻말 위에다가 커다란 원을 그리 고는 그 나무 조각을 던졌다. 친위병 한 명이 그 나무 조각을 손에 들 고서는 모십팔을 끌어 내갔다.
[다형, 제가 형님에게 좋은 물건을 한가지 보여 드리죠.]
위소보는 소맷자락 안에서 한 묶음의 손수건을 꺼내서 다륭에게 내밀었 다. 손수건에 수놓아져 있는 것은 한 폭의 춘궁도(春宮圖)였는데 그 그 림 속의 남녀는 얼굴이 준수하고 아름다웠으며 그 자태에는 생동감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다륭은 이를 보자 그만 대뜸 그 춘궁도에 시선이 못박히고 말았다. 한 장의 손수건을 넘기자 그 손수건에는 또 다른 한 폭의 춘궁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체위가 매우 특이했다. 다륭은 웃으 며 말했다.
[이 모양은 정말 이상야릇하기 짝이 없군.]
그는 계속해서 들추어 보았는데 손수건마다 수놓아진 인물의 체위는 가 면 갈수록 이상야릇했으며 어떤 것은 한 남자가 두 여자를 희롱하고 있 었고 또 어떤 것은 두 남자가 세 여자와 즐기고 있었다. 다륭은 그와 같은 그림을 대하자 하체가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형제, 이 보물은 어디서 난 것인가? 이 형에게 한 벌 팔게나.]
위소보는 웃었다.
[이것은 모두 형님에게 선물하는 것입니다.]
다륭은 마치 엄청난 보물이나 얻은 것처럼 싱글벙글하며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는 한 묶음의 손수건을 매우 정중히 품속에 갈무리했 다. 바로 이때 갑자기 밖에서 포성이 세 번 들려오고 친위병 대장이 들 어와 보고를 했다.
[시간이 되었으니 대인께서 참수를 감독하십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좋아!]
그는 몸을 일으켜 다륭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나가서 보니 모십 팔이 고개를 푹 떨군 채 맥이 빠진 사람처럼 사형터의 한복판에 꿇어앉 아 있었는데 마치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곧이어 고수들이 북을 치기 시작했고 북소리가 멈추어지자 붉은 옷을 걸친 희자수가 손을 번쩍 쳐 들었다가 귀두도(鬼頭刃)를 내리치자 범인의 머리가 싹둑 잘려져 나갔 다. 곧이어 희자수가 왼발로 머리통을 걷어찼다. 범인의 몸이 앞으로 푹 꼬꾸라지면서 모가지에서 더운 피가 쿨쿨 쏟아져 나왔다. 다륭은 말 했다.
[일은 다 끝냈군, 우리는 헤어지세. 나는 가서 황상께 아뢰야 되겠네.]
위소보는 목메인 소리로 말했다.
[다형, 이 사람은 나와 교분이 두터운 사이였지만 황상이 엄밀한 성지 를 내렸기 때문에 그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
그늑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닦으며 흐느껴 울었다. 다륭은 한숨을 내쉬 었다.
[형제는 정말로 의리가 있군. 그대는 그의 시신을 잘 수렴해서 안장시 켜 주게. 그러면 저승에 가서라도 마주 대할 수 있을 것이네.]
위소보는 대답하고 흐느껴 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위소보는 소맷자 락으로 눈물을 훔쳤으나 기실은 소맷자락 안에 숨기고 있던 생강으로 두 눈을 부벼서 두 눈이 빨개지도록 만들었고 눈물이 흘러나오도록 했 던 것이다. 그는 속으로 웃으면서 사람을 바꿔치기 하는 것에 성공한 것을 기뻐해 마지 않았다. 다륭은 그에게 몇 마디 위로의 말을 하고 그 를 마차 위로 부축해 올렸다. 그제서야 그는 마차를 타고 떠나갔다. 시위병들은 마차를 호위하며 곧장 공작부로 돌아갔다. 다른 몇 명의 친 위병들은 돗자리로 범인의 시체를 둘둘 말아서 한쪽 옆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관 안에다 집어넣고 관 뚜껑을 닫고 못을 박았다. 참수형을 구 경한 백성들은 다투어 이야기했는데 모두들 모십팔이 죽기 전에 크게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보니 정말 영웅호걸이라고 했다. 그러나 두려워 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꾸짖으며 국사범이 대역무도한 말을 했으니 화를 당하지 않으려면 결코 그를 칭찬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위소보는 공작부 앞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렸고 그 마차는 곧장 남쪽으 로 나아가 북경성을 벗어난 이후 곧장 남쪽 양주를 향해 갔다. 이윽고 위소보는 궁 안으로 들어가 복명하게 되었다. 그러자 강희는 즉 시 그를 불러 만났다. 그는 이미 다륭의 보고를 통해 위소보가 모십팔 의 목을 자르는 참수형을 감독하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사실을 알 고 있었다. 이때 그의 두 눈이 붉게 부어 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약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충심으로 군주를 위해 일한다는 것 이 매우 갸륵하다는 생각이 들어 부드러운 어조로 위로의 말을 했다.
[소계자, 그대가 잡아온 그 나찰병들의 대다수는 석방되어 제나라로 돌 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석방했네. 그러나 이백여 명은 중국에 남기를 원하더군.] [북경은 모스크바보다 훨씬 날씨가 좋을 뿐만 아니라 먹고 입는 것 또 한 나은 편이지요. 그야말로 모스크바에서 사황이 되는 것보다 신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강희는 미소지었다.
[나는 이 나찰병들로 아라사좌령(俄羅斯佐領)을 만들기로 했는데 이 나 찰병들은 그대가 통솔하도록 해주게. 그러나 그대는 그들이 북경에서 일을 일으키지 않도록 잘 다루어야 할 것이네.]
위소보는 크게 기뻐하며 무릎을 꿇고 고맙다는 인사말을 했다. 궁에서 나오자 귀순하는 나찰병들은 이미 태화문(太和門) 밖의 금수교(金水橋)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찰병들은 하나같이 새로 만든 청나라 병졸 의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매끈하게 몸에 맞는 것이 퍽이나 힘차 보였 다. 위소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기 은자 이십 냥을 나누어 주고 사흘 간의 휴가를 준다고 말했다. 나찰병들은 크게 기뻐했다. 강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나찰병들은 줄곧 청나라의 군중에 복무 를 했으며 충성을 다했고 달리 마음을 품지 않았다. 외국의 사신들이 북경에 왔을 때 중국 황제가 나찰관병을 거느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모 두 존경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나찰병들이 늙어 점차 죽어 가자 아라사좌령의 편제는 그제서야 황제의 결제를 받아 철 폐되었다.(나찰병들을 포로로 하여 청나라 군사에 편입시킨 상세한 사 정은 유정섭(兪正燮)이 지은 <계사류고(癸巳類稿)> 제9권 아라사좌령고 (俄羅斯佐領考)에 자세히 나옴. 소일산이 지은 <청대통사(淸代通史)>를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포로들을 북경으로 바치자 현엽(玄燁) 은 이들을 사면하여 좌령으로 편입시켰는데 바로 아라사의 부족병이라 할 수 있었다. 그 후예들은 아직까지도 존재한다.')
위소보가 공작부로 돌아왔을 때 공주와 나머지 여섯 부인들 그리고 세 자녀들은 이미 궁에서 나와 있었으며 하나같이 태후에게 적지 않은 상 을 하사 받아서 좋아하고 있었으나 유독 공주만은 즐겁지 않은 표정이 었다. 위소보는 그 사연을 공주에게 물어 보았다. 태후는 일곱 명의 부 인들에게 똑같이 대했으며 공주는 그녀의 친딸임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 의 다정한 말도 나누어 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물론 그 가 운데의 숨은 뜻을 알고 있어서 속으로 생각했다. (태후가 그대에 대해서 나쁘게 대하지 않은 것만 해도 너의 지아비의 체면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태후께서는 이러 모로 생각이 깊은 분이오. 그대에게만 특별히 잘 대 해 준다면 나머지 여섯 명의 부인들이 질투심을 일으킬 것이 아니겠 소.]
공주는 노하여 말했다.
[그분은 나의 친어머니예요. 나에게 좀더 잘해 준다고 해서 설마 그들 이 질투심을 일으키겠어요?]
위소보는 그녀를 얼싸안으며 웃었다.
[내가 그대에 대해서 특별히 잘 대해 준다면 그녀들이 질투심을 일으키 지 않을 것 같소?]
다른 부인들이 재잘거리면서 배꼽을 잡도록 웃음을 터뜨렸고 공주는 솔 직한 성격이라 모든 사람이 시끌벅적하게 떠들자 그제서야 그만 마음을 돌리었다. 이후 십여 일은 왕궁 대신들이 잔치를 베풀어 위소보가 공을 세운 데 대해서 축하를 했으며 연극을 보고 도박판을 벌이며 밤에는 매일 번갈 아 부인들을 바꾸며 즐겼다. 이날 다륭이 찾아와서 풍석범이 십여 일 동안 실종이 되었는데 그의 가 족이 이미 순천부(順天府)에 실종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다륭이 나직이 물었다.
[형제, 우리가 그날 밤 그를 죽어라 하고 때려 준 이후에 어떻게 했 지?] [그 후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지요. 그 녀석이 집으로 안 가면 어디로 가겠어요.] [그대가 그를 죽인 것은 아니겠지?] [만약에 내가 사람을 시켜서 그를 죽였다면 형은 옆에서 반드시 구경하 셨을 것입니다. 다형, 그대는 보았나요?]
다륭은 재빨리 말했다.
[아니, 아니. 우리들은 그저 그를 실컷 패주기만 했지 언제 죽였단 말 인가?] [그렇지요, 형제는 성지를 받들어 군사를 이끌게 된 이후 비록 부총관 의 일은 그만두었지만 어전시위들이 한 짓이라면 어떠한 일이든 여전히 형과 더불어 함께 책임을 지겠소이다.] [뭐, 별다른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걸세. 풍씨 집안에서는 그날 전봉영 태가가 사람을 보내 그를 데려갔고 그 후에 풍씨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일세. 순천부에서는 친히 태가를 방문하고 그날의 일을 물었네. 태가 는 매우 겸연쩍어하며 얼렁뚱땅 얼버무리면서 더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는군. 그러나 계속해서 묻자 수치가 분노로 변해서는 태가가 크게 신경 질을 부리는 바람에 순천부에서도 더 조사하지 못했다고 하더군.]
그는 몸을 일으켜 위소보의 어껫죽지를 두드리며 말했다.
[형제, 그대는 복을 타고난 장수일세. 그 어찌 이토록 일이 공교롭게 되리란 것을 짐작이나 했겠나. 태가의 부인이 하필이면 빠르지도 늦지 도 않게 그날 밤 공교롭게 낭자군을 데리고 첨수정 골목으로 쳐들어올 지 그 누가 알았겠느냔 말일세. 이렇게 되면 모든 일에 대해서 태가가 책임을 지게 되겠지.]
그는 속으로 풍석범은 반드시 위소보에게 살해당한 것임을 짐작하고 있 었다. 어 일에 대해서는 자기도 약간 책임을 져야 할 판이었지만 전봉 영의 태 도통에게 화를 전가시킨 데 대해서는 크게 흡족하게 생각했다. 그는 태 도통의 본부인이 그때 나섰던 것이 공교로운 일이 아니라 위소 보가 시간을 맞추어서 사람을 보내 그녀에게 밀고했다는 사실까지는 모 르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위소보가 친위병을 파견하여 모십팔을 참 수하는 것을 감독하였을 때 차일 안에다가 밀실을 만들어 풍석범을 그 안에 숨겨 두고 있었다는 사실은 더욱더 짐작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모십팔이란 것을 확인하고 차일에서 끌어낼 때 위소보가 춘궁도가 수놓 아진 손수건을 꺼내서 다륭의 시선을 춘궁도로 모아지게 했고, 그 순간 수하인 친위병들이 재빨리 모십팔과 풍석범을 바꿔치기 했던 것이다. 이때 풍석범은 이미 인사불성이 되었고 온 얼굴에 피칠을 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옷차림도 모십팔과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사형터에서 고 개를 푹 숙이고 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만 참수형을 당하고 말았다. 풍 가와 모가 두 사람의 얼굴 모습이나 몸매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그 누구 도 이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친위병들은 모십팔을 안아서 차일 옆에 바짝 대 놓은 위 대인의 마차에 올려 태우고는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말을 쉬지않고 양주로 내려 보내었는데 황하를 지나게 되었을 때야 모십팔에게 모든 진상을 설명하고 다시 그에게 삼천 냥의 은자를 건네주었던 것이다. 모십팔은 목숨을 건지게 되자 마음이 크게 변했으며 위소보가 목숨을 돌보지 않고 자기를 구출해 준 것을 보면 결코 의리를 저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자연 나중에는 다시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위소보는 연일 손님 대접을 받는데도 그만싫증이 났고 천지회 의 형제들이 걱정되었다. 황제의 수단이 가면 갈수록 더욱 무서워지고 있는데다 자기가 공작부에서 복을 누리고 있는 이때에 청목당의 형제들 은 황제에게 일망타진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어찌 되었 든 간에 좋은 방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상의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었다. 그리하여 그는 부잣집 공자의 차림을 하고 쌍아로 하여금 시종으 로 분장을 하도록 하여 두 사람은 천교에 이르렀다. 그리고 사람들 가 운데에서 반 시진 동안 시간을 보낸 끝에 서천천이 등뒤에 약상자를 메 고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위소보는 즉시 찻집 안으로 들어가 서천천의 옆자리에 앉아서 나직이 말했다.
[서 형!]
서천천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얼굴 가득히 노기를 띄우고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졌으나 곧 그의 뒤를 따라 나갔으며 서천천이 줄곧 으슥한 곳으로만 가는 것을 보고 즉시 쌍아와 함께 멀리 서 뒤를 쫓았다. 서천천은 세 곳의 골목길을 지나고 두 곳의 조그만 거 리를 지나서 어느 조그만 골목길 앞에 이르렀다. 그 골목길의 입구에는 커다란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서 있었다. 그는 그 골목 안으로 들어가 더니 다섯 번째 집 대문의 고리를 잡고 몇 번 두드렸다. 문이 열리면서 안에서 번강이 나왔다. 그는 위소보를 보더니 잠시 어리둥절해 했으나 역시 얼굴 가득 노기를 띄우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앞으로 다가가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번형, 그 동안 안녕하셨소?]
번강은 싸늘히 코웃음치며 대답하지 않았다. 서천천은 얼굴 표정을 굳 히며 물었다.
[위 대인, 그대는 병마를 데리고 우리들을 잡으러 온 것이오?] [서 셋째 형, 어째서……어째서 그와 같은 농담을 하시오?]
번강은 재빠른 걸음으로 골목 밖으로 나가 살펴보더니 재빨리 집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위소보와 쌍아는 두 사람을 따라 마당을 가로질러 서 대청에 이르렀다. 그리고보니 이력세, 기청표, 현정 도인, 마언초, 전노본 등 몇몇이 모두 대청에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위소보를 보자 아! 하고 몸을 일으켰다. 위소보는 두 손을 맞잡았다.
[여러 형들, 그 동안 안녕하셨소?]
현정 도인은 노하여 부르짖었다.
[우리들은 그대에 의해서 해침을 받아 죽지 않았으니 괜찮은 편이지.]
그는 싹 하니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위소보는 한걸음 물 러서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그대는 어째서 나에게……나에게 이러시오? 내가 무슨……그 대들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이오?]
현정 도인은 큰소리로 노기를 터뜨렸다.
[총타주는 그대에게 해침을 받아 죽었고, 둘째 형 역시 그대에게 죽임 을 당했소. 그리고 며칠 전 그대는 또 모십팔을 죽이지 않았소? 우리… …우리는 그야말로 그대의 힘줄을 뽑고 가죽을 벗기고 싶은 증오심에 차 있소.]
위소보는 크게 다급해져서 재빨리 말했다.
[그런……그런 일은 없소.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오.]
현정 도인은 한 걸음 다가들어 왼손으로 위소보의 옷자락을 움켜잡더니 외쳤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들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대를 죽이려 했는데 ……그대라는 어린 매국노가 스스로 죽으려고 뛰어 들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총타주의 하늘에 계신 영이 돌보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군.]
위소보는 정세가 불리한 것을 깨닫고 즉시 몸을 돌려서는 신행백변의 재간을 펼쳐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서천천과 번강 두 사 람이 무기를 들고 그의 바로 등뒤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부득이 말했다.
[모두들 한집안의 형제와 다름이 없는데 어째서…어째서 이리 성급하게 구는 것이오?]
현정은 말했다.
[누가 그대와 같은 작은 매국노와 형이니 아우니 한다던가? 그대와 같 은 꼬마의 교묘한 변명은 더 들을 필요도 없다. 먼저 너의 그 개 같고 이리 같은 심장을 도려내서 총타주와 둘째 형을 제사지낸 후에 말하기 로 하자.]
그는 왼팔로 위소보를 잡아당겼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억울하오, 억울하오.]
쌍아는 그가 위급하게 된 것을 보고 품속에서 나찰의 단충을 뽑아 꽝, 하니 공포 한 방을 쏘았다. 대뜸 집안은 연기로 가득 찼고 그 즉시 쌍 아는 손을 뻗어 위소보의 등을 힘주어 잡아당겼다. 현정은 과거 서양 화기에 고통을 당한 적이 있었고 부친과 형들이 모두 그 화기에 맞아 죽었는지라 총소리를 듣자마자 크게 충격을 받아 위소보를 쌍아에게 빼 앗기고 말았다. 쌍아는 위소보를 잡은 채 대청 모퉁이로 몸을 날린 후 위소보의 앞을 가로막고는 단총으로 사람들을 겨눈 채 호통을 쳤다.
[그대들은 도리를 따지자는 거예요? 도리를 저버리자는 거예요?]
현정은 두 눈이 붉어지며 부르짖었다.
[모두들 달려들어 그들과 사생결단을 내도록 합시다!]
그는 검을 쳐들고 먼저 서둘러 달려들려고 했다. 그때 전노본이 손을 뻗쳐서 그를 잡고 말했다.
[도장,잠깐만!]
그는 쌍아에게 말했다.
[그대에게 어떤 도리가 있는지 어디 말씀해 보시지.]
쌍아는 말했다.
[좋아요!]
그녀는 위소보가 어떻게 하여 진근남과 여러 영웅호걸들을 구해서는 도 망을 치게 하였고, 또 어떻게 신룡교에 잡혀 통흘도로 가게 되었으며, 진근남이 어떻게 정극상과 풍석범 두 사람에게 살해를 당했으며, 풍제 중은 어떻게 음모가 탄로되어 자기의 총에 맞아 죽었고, 강희가 두 번 세 번 위소보에게 천지회를 없애라고 명령을 내렸으나 위소보는 그 명 령을 받들지 않았으며, 최근에는 또 어떻게 하여 사형터에서 사람을 바 꿔치기 하여 모십팔을 구해 냈는가 하는 사실들을 일일이 이야기했다. 그녀는 결코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지도 못했다. 그러나 군호들과 그녀는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터 이라 평소 그녀가 거짓말을 조금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 다. 거기다가 그녀가 그 즉시 말을 해댔으며 추호도 망설이거나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 이야기를 갑자기 삽시간에 날조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위소보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벼슬을 버렸으며 백작부가 대포에 맞아 날아가게 된 사실을 뭇사람들은 친히 목격하지 않았던가! 거기다가 풍제중의 행동들을 곰곰이 돌이켜보 니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 믿지 않을래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현정은 말했다.
[그렇다면 오랑캐 황제의 성……성…제기랄 성지 가운데는 어째서 위 향주가 총타주를 죽였다는 말이 있지?]
그가 위 향주라고 이름을 고쳐 부른 것을 보면 그는 마음속으로 이미 어느 정도는 믿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쌍아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것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기청표가 말했다.
[그것은 오랑캐 황제의 음모이외다. 위 향주로 하여금 본희와의 관계를 딱 끊고 차후로는 죽으라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오랑캐의 벼슬아치 노릇을 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외다.]
서천천은 말했다.
[기 형제의 말이 맞는 듯하오.]
그는 검을 검집에 넣고 두 무릎을 꿇더니 위소보에게 엎드리며 말했다.
[우리 한떼의 멍청이들은 너무나 경솔하여 그만 위 형제에게 죄를 지을 뻔하였구려. 만번 죽을죄를 지었으니 기꺼이 벌을 받겠소.]
그러자 나머지 군도들 역시 덩달아 무릎을 끓었다. 현정은 자신의 뺨을 때리며 욕을 했다.
[죽어 마땅해, 죽어 마땅해!]
위소보와 쌍아는 재빨리 무릎을 끓고 답례했다. 위소보는 가까스로 놀 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여러 형들은 일어나시오. 모르고 한 죄는 죄가 아니오. 일시 오해가 있었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겠소?]
군호들은 몸을 일으키며 다시 사과를 했다. 위소보는 다시 의기 양양해 졌고 손과 발을 움직여 가며 신나게 옛 얘기들을 했다. 그가 이야기한 것은 물론 재미있고 박진감이 넘쳤으며 벌어지는 일마다 아슬아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군호들이 들을 때는 쌍아가 이야기하는 것만큼 믿음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군호들은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이 력세가 입을 열었다.
[위 향주, 진 총타주는 불행히도 간악한 자의 해침을 받아 천지회에는 우두머리가 없어진 격이 되었소. 열 당의 형제들은 줄곧 총타주를 추대 하는 일에 대하여 의논하고 있었소. 우리 청목당의 형제들은 그대를 총 타주로 추대하고 싶소이다. 다만 나머지 아홉 당의 형제들이 이에 승복 하지 않거나 또는 마음에 의심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지라 모두 들 그대가 한 가지 큰공을 세웠으면 하고 생각하오.]
위소보는 연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나는 총타주 노릇을 할 수 없소.]
그러나 그는 호기심이 일어서 물었다.
[그런데 무슨 큰 공을 세우라는 것이오?]
이력세는 말했다.
[세 번왕의 난은 이미 평정되었고, 대만도 오랑캐에게 정복당했으며 북 방의 나찰인 역시 위 향주에 의해 대패됐으니 우리의 반청복명의 위업 은 점점 갈수록 어렵게 되었소.]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소.]
그는 속으로 말했다. (매우 어렵게 되었다면 모두 좀 게으름을 피우는 셈치고 반청복명을 하 지 않으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이력세는 말했다.
[오랑캐의 황제는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매우 똑똑하고 부지런 한 데다 가 사람의 인심을 모을 줄도 알고 있소. 천하의 백성들은 이제 명나라 에 대해서는 점점 잊어 가고 있소. 만약 이와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아무래도 오랑캐가 차지한 이 강산이 더욱 오래 지속될 것 같소.]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소.]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소현자가 이 강산을 오래 차지하고 있는 것도 별로 나쁜 일은 아니 지.) 이력세는 말했다.
[위 향주는 매우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소. 그렇기 때문에 모두들 그대 가 계책을 세워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궁 안으로 잠입해 들어가 오랑캐 황제를 찔러 죽였으면 하고 생각하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이건‥··‥이 일은 행할 수 없소이다.]
번강은 말했다.
[실례지만 위 향주에게 묻겠는데 이 가운데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있소 이까?] [황궁은 시위들이 너무나 많고 거기에다가 효기영, 전봉영, 호군영(護 軍營), 화기영(火器營), 건예영(健銳營), 호창영(虎檜營) 등등이 어가 를 보호하고 있소. 단지 시위만 하더라도 어전시위가 있고 건청문시위 (乾淸門侍衛), 삼기시위(三旗侍衛) 등이 있소. 그날 신검무적 귀신수 나으리도 그토록 영웅다웠는데도 실패하여 목숨을 잃었는데 나야 더 말 해 무잇하겠소? 황상을 찔러 죽인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운 일 중에서 도 가장 어려운 일이외다.]
군호들은 그가 거절하는 말을 듣고 불쾌하게 생각했는데 그가 다시 황 상이라 칭하는 말에 더욱더 노기가 끓어올라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얼굴에 노기를 띄었다, 번강은 형제들을 한번 바라보더니 위소보에게 말했다.
[위 향주, 오랑캐의 황제를 찔러 죽인다는 것은 물론 지극히 어려운 일 이나 그대가 대국을 이끌어 나간다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법도 없을 것 같구려. 우리 형제들이 궁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야말로 한 사람도 살아 나올 생각은 하지 않겠지만 어쨌든 위 향주의 편안무사함은 보장 할 수 있을 것이오. 그대는 본회를 위하여 적지 않은 공을 세웠고 본회 의 십여 만 명이나 되는 형제들 가운데 그대에 미치는 사람은 단 한 사 람도 없을 것이외다. 천지회와 오랑캐와는 불공대천지 원수이외다. 금 후 반청복명의 무거운 짐은 모두 위 향주께서 짊어지시게 되었소.]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일은 나로선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일이외다. 황상께서는 나보 고 천지회를 멸하라고 했지만 나는 이를 행하지 않고 있소이다. 그것은 의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오. 그대들이 나에게 황제를 찔러 죽이라고 한 다면 그 역시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외다. 그 역시 의리를 배반할 수 없기 때문이오.]
현정은 노하여 부르짖었다.
[그대는 한인인데 어째서 오랑캐 황제에게 의리를 지킨다는 말씀이오? 그것이야말로……그것이야말로……]
그는 매국노라는 욕을 하려고 했으나 끝내 참고 말하지 않았다. 번강은 말했다.
[이 일은 매우 중대한 일이오. 위 향주가 즉시 대답하기가 어렵다는 것 은 있을 수 있는 일이외다. 그러나 그대가 자세히 생각해 보고 다시 여 러 사람들에게 분부를 내리도록 하시오.]
위소보는 재빨리 말했다.
[좋소, 좋소. 내 자세히 생각해 보기로 하겠소이다.]
서천천은 그가 조금도 성의없이 대답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아무쪼록 위 향주께서는 고 총타주의 뜻을 잊어버리지 말고 또 나라를 잃게 된 참화를 잊지 않도록 바라오. 무릇 우리 한인들은 결코 오랑캐 의 노예가 될 수 없소.]
위소보는 말했다.
[맞았소. 맞았소. 그것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것이오.]
그러나 군호들은 그의 말이 솔직하지 못한 것을 보고 모두 다 잠자코 있었다. 위소보는 이 사람을 쳐다보았다 저 사람을 쳐다보았다 하며 웃 으면서 입을 열었다.
[여러 형들은 어째서 말씀을 하지 않으시오?]
군호들은 여전히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흥미가 없다는 생 각이 들었고 바늘방석 위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잠시 헤어지도록 합시다. 나중에 내가 자세히 생각해 보고 다시 여러 형들과 상의하도록 하죠.]
그는 몸을 일으켰다. 군호들은 골목 어귀까지 그를 전송하였으며 공손 하게 절을 하고 작별을 고했다. 위소보는 저택으로 돌아오자 상방에 앉 아 답답한 심정을 달랬다. 이튿날 오후가 되자 궁에서 다시 성지가 내렸는데 황상께서 그를 부른 다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즉시 서재로 가서 배알을 했다. 강희는 물었 다.
[풍석범이 갑자기 실종되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위소보는 깜짝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어째서 그 일을 나에게 묻지?) 그는 말했다.
[황상께 아룁니다. 풍석범이 실종된 그날 밤에 소신은 줄곧 다 총관과 어전시위들과 함께 놀았습니다. 그 이후 들어 보니 전봉영 태 도통이 풍석범을 데려갔는데 어찌된 노릇인지 그 후 풍석범이 실종되었다고 하 더군요. 이들 대만에서 항복해 온 사람들은 남의 눈치를 보고 일을 처 리하는 것이 이상야릇하기 그지 없습니다. 몰래 불측한 도모를 꾀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소신이 자세히 조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강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좋아, 풍석범의 행방을 분명히 알아보도록 한 이후 즉시 보고를 하도 록 하게. 나는 대만에서 항복해 온 사람들에게 그들의 안전을 지켜 주 겠다고 응낙했네. 그런댜 그 사람이 갑자기 실종이 되었으니 내가 책임 을 지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나는 천하 사람들에게 신의를 잃는 것이 아 니겠는가?]
위소보는 이마에서 구슬 같은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생각했다. (황상의 이 한 마디는 정말 무거운 것이다. 설마 하니 그는 내가 풍석 범을 죽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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