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수에로 왕과 왕비 와스디가 베푸는 잔치
(에스더 1장 1-12절)
1-4.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왕위에 있은 지 제삼년에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왕이 여러 날 곧 백팔십 일 동안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
아하수에로 왕은 B.C. 485-464년까지 통치했던 페르시아 왕이었다. 그는 다리오와 고레스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친 다리오가 왕이 된 후 낳은 아들중에서는 맏아들이었다. 그는 다니엘 9:장 1절의 아하수에로와는 별개의 인물이다.
인도는 인더스 강 서쪽 지역, 즉 오늘의 파키스탄 지역을 가리키며, 이 지역은 아하수에로왕의 부친 다리오에 의해서 정복되었으나 아하수에로 당대에도 그곳 거민들과의 전쟁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었다.
구스는 오늘날의 이디오피아 지역 곧 나일강 상류 지역을 가리킨다. 이 지역은 캄비세스 왕에 의해서 정복되어 다리오와 아하수에로 시대에 이르러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로 정식 편입되었다.
백이십칠 지방은 세금 징수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구획된 행정 구역이었다.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왕위에 있은 지 제삼년에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수산 궁은 고대 엘람 지역에 위치했던 페르시아의 수도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페르시아 왕들은 수산에서 봄과 가을에만 통치를 하였을 뿐이고, 겨울에는 바벨론에서, 여름에는 메대의 악메다에서 정사를 보았다. 그럼에도 수산은 왕이 일년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었으며, 행정부 대부분의 기관들이 위치했었으며, 왕의 보호를 목적으로 철저히 요새화되었다.
즉위 삼년은 B.C. 482년이며, 그때는 애굽에서 반란이 일고 있었던 시점이기도 하다.
아하수에로 왕은 그리이스 정복을 위해 즉위한 이후부터 2년 동안 철저한 계획에 따라 무력을 증강해갔다. 따라서 이 잔치는 전쟁에 돌입하기 앞서 최후 점검을 하기 위한 목적에서 열린 것으로 추정된다.
잔치(미쉬테)는 마시다를 뜻하는 동사 쉬타에서 온 단어로서, 다량의 술이 제공되는 큰 연회를 가리킨다.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바사와 메대는 페르시아 제국을 구성하던 중요한 두 민족 이었으며 그 두 민족은 거의 하나라고 볼 수 있었다.
장수는 2천 명의 창을 가진 병사, 2천의 기병, 1만의 보병 등 총 1만 4천의 병력을 거느렸던 지휘관을 뜻한다.
귀족은 문자적으로는 으뜸되는 사람의 뜻을 갖으며, 왕의 곁에서 왕에게 필요한 조언을 하는 책사 등으로 이해되고 있다.
“왕이 여러 날 곧 백팔십 일 동안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모든 장수나 귀족 그리고 방백이 번갈아 가면서 상당한 기간에 걸친그 잔치에 참여했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에서, 아하수에로 왕은 금과 은으로 씌워진 장막, 금으로 된 긴 의자, 금으로 된 주발과 잔, 그리고 금주전자 등을 스파르타로부터 약탈하여 갖고 있었다고 전한다.
5-8.이 날이 지나매 왕이 또 도성 수산에 있는 귀천간의 백성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새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 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 금 잔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모양이 각기 다르고 왕이 풍부하였으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마시는 것도 법도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이는 왕이 모든 궁내 관리에게 명령하여 각 사람이 마음대로 하게 함이더라
“이 날이 지나매 왕이 또 도성 수산에 있는 귀천간의 백성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새”
이 날이 지난 것은 왕이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베풀었던 180일간의 잔치가 끝난 것을 가리킨다.
칠 일 동안 잔치는 180일간의 잔치와는 그 성격상 매우 다르다. 즉, 180일간의 잔치는 중요한 신하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 회의적 성격까지 내포한 것이었으나, 여기의 이 잔치는 서민까지도 그 대상으로 삼았던 순수한 유흥적 성격이었던 것이다.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 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 금 잔으로 마시게 하니”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은 페르시아의 왕들이 특별히 선호하던 제왕색이었다. 자색 가는 베줄로 메는 것은 긴 휘장을 땅에까지 늘어뜨려 고정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대리석기둥은 뜰 중간에 위치했던 궁전의 옆에 별도로 세워진 기둥을 가리킨다. 자색 가는 베줄을 대리석 은 고리에 메었다는 것이다. 왕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낸다.
걸상은 편안히 기대어 앉을 수 있었던 긴 의자이다. 이 의자의 골조는 그리이스 등에서 가져온 귀한 금속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표면은 금과 은으로 덮혀졌던 것 같다.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은 에머랄드 처럼 생긴 돌과 조개 안에서 발견되는 진주와 같은 귀한 것으로 만들어졌음을 나타낸다.
금잔은 아하수에로 왕의 재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왕이 풍부하였으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마시는 것도 법도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왕이 풍부하였다는 말은 왕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풍부하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고, 질서를 바탕으로 백성들에게 대한 호의가 좋다는 의미도 될 수 있을 것이다.
9-12.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제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령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관을 정제하고 왕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왕후 와스디는 일곱 책사 중의 한 사람이었던 오타네스의 딸 아메스트리스이다. 따라서 이 와스디라는 호칭은 본명이 아니라 다만 그녀의 성품을 나타내주기 위해 사용했던 별칭이었을 것이다.
와스디가 이처럼 남자들과 별도로 잔치를 배설한 까닭은 남자들의 잔치분위기는 여성들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며, 남자들의 잔치장소인 '후원 뜰은 여자들까지 참석하기엔 장소가 협소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제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령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제칠 일은 백성들을 위해 베푼 잔치의 마지막 날이었다. 한편, 주흥이 일어나서는 술로 인해 기분이 좋았다는 뜻이다.
아하수에로 왕이 일곱 사람을 와스디 왕비에게 보낸 것은, 일곱이라는 숫자가 완전한 수 혹은 신성한 수로, 자신의 와스디에 대한 명령이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는 단호한 취지를 와스디에게 암시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왕후의 관을 정제하고 왕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를 모든 이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탁월성을 과시하려는 욕망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
와스디가 술취한 손님들 앞에서 왕후로서의 위엄을 손상당할까 염려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많은 신하와 백성들 앞에서 왕이 직접 하달한 명령이 먹혀들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게 되었던 때문에 진노하게 된 것이다. 진노의 정도가 불붙는 것 같았다고 표현한다.
(요약 정리)
아하수에로 왕은 페르시아 제국과 권력의 위용을 뽐내려고 큰 잔치를 베풀었지만, 뜻밖에 자신의 가정에서 암초를 만난다. 왕의 큰 잔치는 즐거움을 주고 쾌락을 주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재앙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왕이 잔치에서 술을 많이 먹고 취해 있었다. 그는 주흥에 취해서 왕후 와스디의 아름다움을 대중 앞에 자랑하려고 했다. 왕후 와스디에게 왕복을 갖추어 입고 단장하고 나오라고 명한 것이다. 당시 관습에는 다른 남자들에게 모습을 보이는 것은 품위에 손상이 가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왕은 백성들과 방백들 앞에서 무리한 요구를 했지만, 왕비는 왕의 명령에 대해 거절해 버리고 말았다.
왕이 신하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무안을 당했던 것이다. 도리어 자신의 왕비 불순종함으로 신하들 앞에서 큰 모욕을 당한다. 그 동안 6개월 동안 자신이 능력의 왕이라고 큰 잔치를 배설했지만, 왕비의 불순종으로 왕의 체면이 꾸겨져 버린 것이다. 왕은 마음에 분노가 불타오르듯이 가득했다고 한다.
유흥에 취하여, 취중에 내린 결정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역사를 일으킨다. 에스더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