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222건 ‘특허 요새’ … 약품 자동화기기 세계 2위로
제이브이엠 이용희 사장(맨 앞)이 직원들과 함께 대구 성서공단 본사 앞에서 파이팅을 외쳤다. 직원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게 제이브이엠의 국내외 특허장이다. [공정식 프리랜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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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인 김준호(63) 부회장이 협신의료기란 이름으로 회사를 연 게 1978년. 고교 시절 생계를 위해 약 배달을 하며 ‘좀 더 약을 쉽고 빠르게 포장할 순 없을까’란 고민을 했던 게 사업으로 이어졌다. 약 포장기계는 내놓자마자 히트를 쳤다. 국내에선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시장이었다.
그리고 32년. 풀빵 기계처럼 생겼던 초창기 수동 약 포장기는 이제 캐비닛 모양의 완전 자동화 제품으로 탈바꿈했다. 회사 이름도 협신에서 제이브이엠으로 바뀌었고, 매출 중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거두는 수출기업이 됐다. 국내는 물론 미국과 유럽 시장 점유율 1위다.
◆특허장벽 쌓아 해외 진출=약 포장기는 돈만 있다고 되는 사업이 아니다. 특허장벽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지뢰 밟기처럼 어디에 어떤 특허가 있는지 몰라요. 후발주자가 따라간다는 게 그만큼 어렵죠.”
이용희 사장의 설명이다. 제이브이엠 역시 일본 유야마 같은 선두주자들의 특허를 피해 기술개발을 이뤄냈다. 그 과정에서 법정 다툼도 있었다. 2001년 시작된 유야마와의 특허소송은 3년을 끌었지만 결국 법원이 제이브이엠의 손을 들어줬다. 더 진보된 기술이라는 이유였다. 제이브이엠은 직원 290명 중 연구인력이 80여 명이다.
기술뿐 아니라 마케팅도 해외 시장 개척에 큰 몫을 해냈다. 제이브이엠의 미국 대리점은 세계 굴지의 대기업인 미국 매케슨이다. 세계 병원·약국 시스템과 약품 공급업체 중 시장 점유율 1위의 매케슨과 2004년부터 거래를 했다. 김 부회장이 3년간 미국을 찾아 다닌 끝에 따낸 계약이다. “미국 시장에서 일본을 이기려면 가장 큰 회사를 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수출 제품 오른쪽 위엔 항상 ‘JVM’이란 회사 마크가 붙는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해외에 제품을 공급하는 경쟁사와 다른 점이다. “우리 브랜드가 안 찍히면 안 팔겠다”는 김 부회장의 고집이 먹혀 들었다.
미래를 한 발 앞서 대비한 것도 통했다. 3년 전쯤 수출할 때 충족해야 하는 기준인 GAMP(우수자동화시스템관리기준)가 바뀐다는 정보를 네덜란드 대리점을 통해 입수했다. 이를 토대로 새 기준에 맞춰 제품 규격을 바꿔놨다. 하지만 기존에 유럽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유야마·산요 등 일본 기업은 자기네 표준을 고집했다. 예상대로 GAMP는 바뀌었고, 일본 기업은 유럽 시장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이 분야는 의료정책과도 연관이 크다. 의약분업은 제이브이엠의 성장을 가져온 획기적인 기회였다. 병원 처방에 맞게 약을 찾아 조제해야 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다보니, 약국들이 자동화기기를 도입한 것이다. 제이브이엠은 미국 오바마 정부가 의료개혁을 추진하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걸로 보고 있다.
◆하반기부터 신제품 출시=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정제분류 포장시스템(ATDPS)이다. 의사의 처방 정보가 전산으로 전달되면 그에 맞는 약을 골라 자동으로 포장까지 해주는 기계다. 대형병원이나 약국에서 약을 타기 위해 30분씩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 게 바로 자동정제분류포장시스템(ATDPS) 덕분이다. 큰 약국은 2~3대, 대형병원은 10여 대씩 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3000만~4000만원대의 고가이지만, 기계 한 대가 사람 3.5명분 일을 대신 해준다고 한다.
개발 중인 신제품도 여럿이다. 유효기간에 따라 로봇이 약을 재분리해 주는 약품 보관창고, 여러 약이 섞여 있어도 종류별로 차곡차곡 정리해주는 장치, 실온이 아닌 냉동 상태로 약을 보관해주는 캐비닛 등이다. 그중에서도 하반기부터 캐나다·네덜란드에 수출할 제품이 자동약품검수시스템(VIZEN)이다. 조제된 약을 하나하나 읽어 제대로 포장됐는지를 자동 체크해 주는 시스템이다.
당초 VIZEN을 개발할 때, 네덜란드 대리점과 제이브이엠이 각각 만들어 시제품을 비교한 뒤 더 나은 걸 쓰기로 했었다. 개발을 마친 지난해 상반기, 비교한 결과 성능은 물론 크기와 가격 면에서도 제이브이엠이 단연 앞섰다. 네덜란드 대리점에선 자신들의 개발품을 포기하고 100% 수입하기로 했다. 이 제품은 올 3월부터 나올 예정이었지만, 환헤지 상품인 키코(KIKO)에 발목이 잡히면서 일정이 많이 늦춰졌다.
2008년에만 평가손실이 1020억원에 달했다. 그해 788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한때 코스닥시장에서 황제주로 불리며 6만원대로 치솟았던 주가는 1년도 안 돼 1만원 아래로 급락했다. 경쟁사가 이를 틈타 악성 소문을 퍼뜨렸다. “제이브이엠 기계 사면 애프터서비스를 못 받을 수 있다”는 거였다. 해외 대리점에서 괜찮으냐는 문의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다 지난해 법원이 키코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한숨 돌렸다. 주가도 3만원 안팎으로 회복됐다. 물론 본안 소송은 아직 1심 판결이 진행 중이어서, 키코에서 완전히 해방된 건 아니다.
키코 사태를 겪으면서도 다행이었던 건 이탈하는 직원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 회사 장홍석 경영관리본부장은 “회사의 미래가 보였기 때문에 키코로 어려울 때도 직원들이 안 떠났던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매년 4~5%였던 연구개발 비용을 지난해엔 10%로 확 끌어올렸다. 어려울수록 움츠리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투자에 집중했다. 그 결실은 하반기부터 가동될 제2공장에서 확인할 예정이다.
대구=한애란 기자
사진=공정식 프리랜서
이용희 제이브이엠 사장 “네덜란드에 자회사 설립 … 유럽 시장 집중 공략”
복지·장학사업에 관심이 큰 김 부회장이 “사회공헌활동을 할 시간을 낼 수 있게 도와달라”며 몇 년 전부터 사장직을 제의했다고 한다.
이 사장이 온 시점은 키코 사태로 회사가 휘청해 주가가 1만원 아래로 급락했던 때다.
“그 전엔 올 생각이 없었는데, 키코 때문에 회사가 어렵다기에 돕기로 결심했어요. 도전할 만하다고 생각했죠.”
그가 사장 취임 이후 가장 강조한 건 사람에 대한 투자다. 지난해부터 자체적인 학점 이수제도를 만들었다. 연간 8학점의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승진을 할 수 없게 했다. 과거보다 더 멀리 내다보고 직원들에게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학교육 학비도 보조해준다. 해외 비즈니스가 갈수록 늘고 있어 영어는 필수다. 전 직원 마라톤과 해병대 훈련 등 정신무장 기회도 만들었다. 전 직원이 품질과 원가혁신 활동을 벌이겠다고 서약하는 행사도 했다.
“사실 가장 두려운 게 우리 스스로 해이해지는 거예요. 경쟁자가 계속 생길 텐데, 도전정신을 잃으면 안 되죠.”
제이브이엠은 매년 20~30%의 빠른 성장을 보여온 회사다. 지난해엔 다소 부진한 15% 성장에 그치며 주춤했다. 올해는 하반기에 대구 성서공단에 새로 지은 제2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면서 예년 같은 성장세를 회복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초 올해 매출 목표는 전년보다 30% 증가한 800억원. 이 사장은 “제2공장 가동이 늦어지면서 상반기에 부진했기 때문에 하반기에 이를 만회하겠다”고 말했다.
이달 초엔 네덜란드에 자회사도 세웠다. 시장이 더 커질 유럽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기 위해서다.
전문가가 본 제이브이엠
제이브이엠은 국내에서 자동정제분류포장시스템(ATDPS)이란 시장을 초기에 선점했다. 국내 시장 점유율은 90%가 넘는다(2008년 94%). 해외에선 유럽(점유율 80%)과 북미(74%)에서 압도적인 점유율 1위다. 일본 제품에 비해 값이 비싸지만 품질이 우수하고, 시스템 호환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매출로만 따지면 세계 1위는 일본 유야마다. 시장 규모가 큰 일본 시장에서 유야마의 점유율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시장을 빼면 실질적인 세계 1위는 제이브이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사는 ATDPS를 주력으로, 약국 자동화 솔루션의 풀라인업을 구축할 계획이다. 국내에서 약국 자동화 솔루션의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인구고령화로 병원의 처방 횟수가 늘면서 조제 건수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 약사 1인당 평균 인건비가 4000만원을 넘는 시점이 다가오는 데다, 약사들의 높은 이직률로 인력 관리도 쉽지 않다.
서구 선진국 시장도 확대될 전망이다. 약물 과다복용이나 약물 관련 사고가 늘면서 선진국의 조제방식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병 단위 포장을 한국과 같은 개별 포장 방식으로 바꾸도록 권고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개별 포장 방식으로 바꿀 것으로 권고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