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맡으며,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여행이 지자체별로 다양하다. 대구시 내 한복판의 '근대로(近代路)'가 바로 그런 곳 중의 하나이다.
'근대로의 여행'이란 골목문화따라잡기투어는 대구시 중구 대구제일교회 뒤편 동산언덕의 선교사주택을 출발해서 3·1운동길, 90계단, 계산성당, 이상화서상돈고택, 영남대로, 약전골목, 진골목 등을 차례로 걷는다. 100년의 역사를 따르는 이 골목길은 '100년사 골목'이라고도 불린다.
총 2㎞ 정도를 걷게 되며 약 2시간이 소요된다. 골목문화해설사가 동행, 강약이 강한 대구사투리를 섞어가면서 각 장소에 얽힌 사연과 일화들을 들려준다. 한 바퀴 돌고 나면 팔공산을 품은 도시, 섬유패션의 도시, 고속도로에 포위된 도시 대구에도 이렇게 속 깊은 데가 있었나 감탄하게 된다.
지난 8월 7일 오후 5시 근대로의 여행에 동참했다. 뜨겁게 달궈진 대지를 한바탕 소나기가 시원하게 식혀준 뒤에 골목투어는 시작됐다. 동산언덕을 지키고 있는 세 채의 선교사주택 중에서 스위츠주택 앞에 모인 대구시 내의 대학생과 일본에서 온 대학생 10여명이 골목문화해설사 이영숙(46)씨의 뒤를 따랐다.
현재 선교박물관으로 쓰이는 스위츠주택은 대구에서 본격적인 선교활동이 이루어지던 1910년경에 지어진 집이다. '비록 서양식 건축물이되 한국인들에게 위화감을 주지않으려는 뜻에서 기와를 올렸다'고 이영숙씨가 말했다.
스위츠주택 옆으로는 현재 의료박물관으로 변신한 챔니스주택과 교육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는 블레어주택이 나란히 서있다. 챔니스주택과 블레어주택 사이의 시비 앞에서는 누구나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가곡 '동무생각'을 불러보지 않을 수 없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계산성당(위)을 걸어서 지나노라면, 대구 속 100년 역사가 어느새 곁에 와 있다./ 이재우 기자 jw-lee@chosun.com
이영숙씨가 1922년 발표된 이 노래의 사연을 들려준다."박태준 선생이 계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사모했던 소녀는 신명학교 여학생이었답니다. 마산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할 당시 국어 교사였던 이은상 선생에게 짝사랑을 고백했다죠? 그 사연을 듣고 이은상 선생이 가사를 즉석에서 써줬답니다. 청라언덕이 이곳 동산언덕이고 백합은 그 신명학교 여학생이었죠."
아닌 게 아니라 스위츠선교사주택의 담장만 보더라도 푸른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으니 동산언덕의 또 다른 이름이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 자를 써서 청라언덕인 것은 결코 어색하지 않다.
동무생각을 콧노래로 부르며 3·1운동길, 90계단을 차례로 지난다. 계성학교, 신명학교, 성서학당, 대구고보 학생들은 청라언덕 솔밭에 모여 3·1운동을 벌였고 오늘날 그 길에는 독립유공자 명패가 모셔져 있다. 90계단 벽에는 대구의 과거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걸려 있어 걸음의 속도를 늦추어준다.
계단을 다 내려와 큰길을 건너면 계산성당에 닿는다. 두 개의 뾰족탑이 돋보이는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 계산성당은 고 박정희 대통령과 고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다. 그 당시 주례를 맡은 허억 초대 대구시장이 '신랑 육영수군과 신부 박정희양은…'이라고 신랑신부를 소개해서 성당 안이 웃음바다가 됐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이다. 계산성당은 고 김수환 추기경이 사제 서품을 받은 곳이며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저항시인 이상화 고택 전경. 빼어난 건축미는 없지만 고택에 들어서면 절로 숙연해진다. / 이재우 기자
성당 남쪽 마당에서 자라는 감나무인 '이인성나무'와 도로 바닥에 새겨진 이상화의 시, 태극기이상화서상돈선생 벽화 등을 차례로 감상하고 나자 발걸음은 이상화서상돈고택으로 이어진다. 현재의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 뒤편에서 태어난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애국 애족의 저항시를 남긴 시인. 단층 목조 기와로 지어진 현재의 집에서 이상화 시인은 1939년부터 1943년 작고할 때까지 거주했다.
이상화 고택 옆에는 서상돈 고택이 남아있다. 본채, 별채, 사랑채,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서상돈은 1906년 대한제국정부가 1300만원이라는 거액의 빚을 일본으로부터 빌려 쓰면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자 이를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며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한 민족운동가이다. 근대로 걷기 여행 중에 방문하게 되는 두 위인의 고택은 건축미를 보여주기보다는 민족정신을 일깨워주는 곳이니 나들이객들의 정신은 한층 차분해진다.
이제 근대로 걷기 여행은 막바지를 향해 치닫는다. 이영숙 해설사는 일명 과거길이라고도 불렸던 영남대로를 걷게 하고 약령시한의약문화관에도 데려간 다음 좁은 골목길로 안내한다. 소설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의 무대였던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벽화에서는 한 소년이 방문을 열고 화장을 진하게 한 두 명의 기생을 바라보고 있다. 그 소년은 다름 아닌 소설가 김원일이다.
'마당 깊은 집'에도 등장하는 정소아과건물까지 보고난 뒤 근대로 여행의 대미는 진골목에 위치한 미도다방(053-252-9999)으로 들어가 2,000원짜리 약차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맺는다. 모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미도다방 마담 정인숙씨가 손님들을 반가이 맞이한다. 27살 때 다방 주인이 돼 33년간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진골목을 오가는 모든 이들의 연인이기도 한 정인숙씨는 미도봉사회를 만들어 독거노인을 돕고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는 봉사활동도 열심히 펼친다.
◆대구광역시 중구 골목투어=매월 2·4주 토요일, 3주 목요일 오전 10∼12시, 하절기(7·8월)와 동절기(1·2월)에는 쉼. 그러나 10명 이상 단체로 신청하면 가능. 참가비 무료. 중구청 문화관광과 053-661-2194.
◆맛집=대청마루(국밥 5000원, 053-431-1818), 한빛고을(시래기정식 5000원, 053-425-6660)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맡으며,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여행이 지자체별로 다양하다. 대구시 내 한복판의 '근대로(近代路)'가 바로 그런 곳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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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읍성이 무너지고 생겨난 읍성길을 친구와 같이 둘러보며 걸었습니다. 향토 정보를 공유하고 재미있는 얘기와 즐거움 함께 나눈 대구 읍성길 투어.
"내가 주말에 느닷없이 내려가게 되더라도 운동화 갈아신고 바로 튀어 나와 주실 것이지?" 주말이라 나름 바쁘실텐데도 불구하고 그 약속 지켜주고 함께 동행해줘서 고마울 따름.
그 옛날 경상 감영이 있던 대구는 경상도의 요충지였던 곳. 경상 감영은 1601년 안동에서 옮겨온 이래 300년간 존재했었습니다.
감영을 둘러싼 읍성은 구한말, 당시 대구 군수였던 친일파 박중양이 일본상인들의 상권확보를 위해 고종황제의 윤허도 없이 독단적으로 성벽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1906년 대구읍성이 해체되고나서 그 자리는 길이 되어 동성로-서성로-남성로-북성로가 됩니다.
읍성 골목들은 이후 번영과 전성기, 몰락을 거쳐왔는데, 세월에 따라 옮겨다닌듯한...
진골목
"대형 건물숲 사이에 존재하는 마치 한줄기 시냇물같은 동네"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역사적으로 유서깊은 골목입니다. 서울로 치자면 피맛골 같은 골목이에요. 지체높은 양반들이 가마타고 느긋느긋 행차할 때마다 먹고 살기 바쁜 평민들 납작 엎드려있어야 하는것도 귀찮은 일일터, 피해가는게 상책아니겠습니까.영남제일관을 통과, 홍살문을 지나 경상감영으로 가는 큰길을 피해 장사치나 평민들이 다니던 길이었습니다.
좁은 골목 둘러 돌아가며 길어서 긴골목인데사투리로 발음하니 '길다→질다' 진골목입니다.진골목을 떠올리면... 고려시대부터 이 지역의 힘있는 호족세력으로서 근대 사회까지 부를 축척하고 터를 잡고 살던 달성 서씨를 빼놓을수는 없지요.

진골목은 종로 홍백원 우측에서 중앙시네마 뒷편길을 통해 국일따로국밥 왼편길을 지나 경삼감영으로 이어지던 길이었고 도로가 뚫리면서 지금은 골목이 잘려나간 형태입니다.

여성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합니다. 이를 기념하는 비가 세워져 있네요.진골목 일곱부인의 패물에서 시작된 애국적인 사연.

왼쪽편의 붉은 벽돌집부터 시작해서(진골목식당,보리밥식당,미도다방) 서병국(해방전 영남권 최고 갑부)의 친척인 서병원의 저택이었어요.
진골목에는 코오롱 , 금복주, 평화클러치 창업주등 대구의 유지들이 살았었어요..현재 대청마루라는 국밥집은 코오롱 창업주 이원만 회장이 살던집이라 합니다.
대구역 인근부터 이곳 진골목까지 많은 일본인들의 거주로 인해 집들은 일본식 느낌이 전해져오구요, 종로통에 터를 잡았던 화교(건축업자 모금문등)의 영향으로 당시 중국식 붉은벽돌로 지어진 집들과 담벼락을 많이 만날수 있습니다.(당시 화교 건축기술자들은 남산초교 인근에 벽돌공장을 지어 붉은벽돌을 팔았습니다.)

80년대, 개발되기전 대구 변두리 골목길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중앙로만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인데 동성로와는 완전 180도 다른 광경이구요 여길 모르는 사람들은 "아 대구 시내에도 이런곳이 있었구나" 싶을것입니다.


1937년에 지어진 대구 최초의 양옥 주택인 정소아과는 지금의 정필수원장이 1947년에 사들여 2009년초까지 병원으로 사용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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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모습과 영화를 그려볼 수 있는 곳이기에 잘 정비되고 다듬어져 근대상의 흔적들이 앞으로도 꾸준하게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대구 진골목의 명물. 1982년 문을 연 정인숙여사의 미도다방.당시 대구,경북지역의 유명인사들의 명소가 되었던 곳이에요.단골이었던 전상열 시인이 타계 직전 '미도다방'이란 시를 발표하기도 했었죠.
차 한잔 마시고 가고 싶었지만...다음에 넉넉한 시간과 여유를 갖고 내려와 이곳에 들려 따끈한 약차 한잔 마실거에요.국토해양부에서 지정한 살고싶은 도시만들기 시범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대구시에서 2010년 3월부터 종로, 진골목이 가로환경개선사업을 착수된다고 합니다.
바닥포장도하고 수목도 심고하니 옛스런 분위기를 깨끗하게 잘 살려줄거라 기대..밤에는 어두워 다니기 불편했는데 가로등 설치로 인해 야간 마실도 문제 없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