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2010.01.31.
딸이 외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마음이 바뀌었는지
산에 같이 가자해도 잘 안따라 나서더니 지난주(1월24일) 일요일에는 동서네랑
안양의 관양고등학교뒤로 관악산 같이 갔었는데 딸이 혼자 참석하더니
오늘 또 같이 가겠다는구나.
홍제동의 딸네집에서 만나 인왕산 올라 창의문 숙정문 삼청공원으로 내려오는 산행이다.
홍제역에서 처제네 태우고 딸네 아파트에 주차하고 15분 기다리니 사위와 내려오는구나.
교문앞 학생이 지각한다더니...
젊은이들 일요일은 늦잠자는 날인데 극성(?)맞은 부모덕에 늦잠은 커녕 아침도 못먹고 따라 나서네.
아파트 뒤로 바로 인왕산 오름이라 같이 오르는데 젊어 그런가 처음에는 잘 오르는구나.
딸은 지난주에는 자기 사진 찍지말라더니
오늘은 사진 찍어도 별말이 없고 아빠 여기서 사진 찍어 주세요 하기도 하는구나.
커다란 거울이 있어 거울에 비치는 모습 사진도 찍으며 지난다.
오른쪽 소나무 사이로 기차바위를 보며 올라
북한산이 조망되는곳에 앉아 동서가 좋아하는 커피 한잔씩 마시고
딸은 전날 먹은게 체했나 불편해 하니 이모가 지압을 해준다.
기차바위로 가는데 밧줄밖 왼쪽으로 나가 지나가는 일행 사진 찍어 주는데
위험하다고 줄 안으로 들어오라 야단들이다. 특히 젊은이 둘이서.
늙은이가 주책스러운건가.
그래도 포즈는 잡아주었구나.
인왕산 북사면은 희끗희끗하고,연무로 조망은 대체로 흐리다.
오른편에는 병풍같은 수직의 거대한 바위가 늘어섰고
계단올라 오른쪽으로
적갈색 비둘기 두마리,
동서는 적갈색 비둘기는 처음 본단다.
동서가 옛날에 근무했던
청와대를 가리키는데
오늘은 연무가 끼어 잘 모르겠다.
꼭대기의 못생긴 주먹바위 보고
다시 내려와
왼쪽으로 성곽길을 걷는다.
북악산(342m) 바라보며 과일 나누어 먹고.
다음주는
처제의 맏딸 지원이가
남한산성 트레킹 하고
닭백숙 사준다네
마다할 이유가 없지.
성곽길 따라가니 반달 모양의 돌에 시인 윤동주의 시가 새겨있는곳에 이른다.
이동네랑 윤동주시인이 무슨 인연이 있는지.
왼쪽으로 뾰족한교회는 처가 영화인지 드라마에 나온 교회 같단다.
창의문(彰義門)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으로 "올바른 것을 들어내게 한다" 는 뜻이란다.
그러나 창의문은 북소문으로 불린적은 없었고 계곡 이름 빌어 자하문(紫霞門)으로 불렸다.
태종 13년(1413년) 풍수학자 최양선(崔揚善)이
창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아서 길을 내어 지맥을 통하게 하면 안된다 하여
두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하였다 한다.
영조 17년(1741년) 이곳을 수축할때 훈련대장 구성임(具聖任)이
인조반정(1623년)때 의군이 진입한 곳이라 건의하여 문루를 건축하였다.
서울의 4소문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단다.
창의문에서 신분증 제시하고 인적사항 기록한 후에 입산패찰 목에걸고 숙정문 방향으로 간다.
데크목 계단길의 연속이고 우측이 청와대라 그런지 촬영 제한하는 곳이 많고
허가되는 곳도 방향에 따라 제한 받았다.
돌고래 쉼테에 잠시 쉬는데 동서가 악어바위인가 하니 경비병이 돌고래바위 라 알려준다.
12시10분 백악산(白岳山 342m) 정상에 올랐다.
정상석도, 북악산을 옛모습으로 복원했다는 안내 비도, 김소월의 진달래가 씌여있는 비석도 있었다.
옛말에 굽은 나무가 사당 지킨다더니 굽고 큰 소나무도 많다.
이제부터 내림길이다.4~5분 내려가니 목련이 벌써 통통한 봉오리가 되어 있다.
눈이(함박눈은 아니었지만) 간간히 흩날리더니 성곽길이 희어졌다.
성곽에서 돌출하여 곡장을 만드는데 일직선의 성벽보다 돌출하였으니 방어에 유리하단다.
곡장으로 들어가 보는데 딸과 사위는 그냥 지나쳐 갔나보다.
오른편에 커다란 향나무도 볼만하고.
촛대바위에 오니 전망대까지 있지만 촛대 닮지도 않았다.
건너편에서 봐야 한다네.
그러니 촛대바위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거로구나.
숙정문(肅靖門 12:44)은 북대문으로
남대문인 숭례문(崇禮門):예를 숭상한다는 뜻과 대비하여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름 지어졌단다.
태조 5년(1396년) 처음 성곽을 쌓을때에는 지금보다 약간 서쪽이었는데
연산군 10년(1504년) 보수하면서 옮겨졌단다.
숙정문은 사람들의 왕래 보다는 4대문의 격식으로 만들어 사람의 왕래는 없었으며 비상문으로 만들었단다.
태종16년(1416년) 기우절목(祈雨節目 기우제규칙)을 만들면서 북은 음이고 남은 양이라 보아
가뭄이 심할때 숙정문을 열고 숭례문을 닫았단다.
숙정문은 오랫동안 문루가 없이 월단(月團:무지개 모양의 석문)만 남아 있었는데
1976년 북악산 일대 서울성곽을 보수할때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란다.
건너편으로 삼청각이 보이니 동서는 세월 좋을때 드나들던 생각이 나나 보다.
사위내외는 삼청공원으로 바로 가고 우리는 100여m 더 가 말바위 들려 가기로 한다.
한참을 가도 말모양 바위가 안보여 식사하는 이에게 물으니 이 일대가 말바위란다.
바위는 여기저기 있지만 진행방향으로 표지판이 보여 가보니 말(馬)과 말(末)로 소개 되어있다.
소나무가 지면으로 거의 누웠구나.
말바위 내려가 뒤돌아 본 바위.
조금 내려와 사위부부 만났네.
하산길
삼청공원 내려오는 길 우측은 총리공관 청와대가 있고,거리는 젊은이로 넘친다.
먹자촌 같구나 일식집도 많고 사위와 딸이 맛있는 집 찾나본데 여의치않아
동서가 추천하는 홍합밥을 먹고 후식으로 와플을 먹었느데 후식값이 정식의 반 가까웠다.
처제부부는 지하철로 가고 딸네와 한차로 홍제동 들려 우리차로 집으로 왔다.
첫댓글 경남에서 서울의 산들은 항상 그림의 떡 입니다. 언젠가 한번 가보아야 할텐데...
피장파장입니다. 남녁산 바라기 하지요.
처음 보는 사위와 따님인데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암튼 따님과 사위 그리고 동서네와의 서울 성곽길 잘 보았습니다. 지지난주 서울갔는데 딸이 연세대 부근에 원룸이 있고 아들은 고려대 부근이라 북악산 터널을 통과한 기억이 납니다. 그때 통과한 산이 바로 북악산이 아닌가 합니다.
딸은 아비와 판박이로 닮았고 사위도 퉁퉁하니 비슷해 보이나 봅니다.
아들딸을 서울 동서에 두고 굴 구경도 하셨구려.
서울성곽 길이 18km이 넘는다는데 시가지는 거의다 없어졌지요.
서울에 북한산도 가볼만한곳이 군데군데 많은데 지척에 두고도 게으름 때문에 못가보고.....
경기도민도 가는데 부지런을 떨어보시지요 다두님.
큰일 치루시고 모처럼 행보 하셨군요 남다른 의미가 깊은 산행ㅇ였겠습니다^^항상 건안 하십시요 ,,그런데,,선배님 주책은 그만 부리십시요 위험한디 뭐할려고 그리 가서 사진 찍으십니까
항상 건안하겠습니다.
별로 안위험한디.
한줄로 가는 곳은 뒤에서는 뒷사람 엉덩이만 앞에서는 제일 앞사람만 나오는디.
그랑께로 옆으로 가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