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정치의 한 변수로 나타난 것은 극우 기독교 세력이다. 극우 기독교 세력은 한국의 극우 정치를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대통령선거와 총선에 깊이 개입하고 있으며, 점점 더 큰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극우 기독교 세력은 뉴라이트 세력과 힘을 합치고 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전략적 동맹의 형식과 성격을 띠고 있다. 아래에서는 극우 기독교의 정체를 분석한다.
세계 지배적 종파 유형으로서 극우 기독교 근본주의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극우 기독교는 근본주의의 한 유파이다. 대체로 근본주의는 신이 세운 세상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세계에서 퇴각하여 자기 안에 유폐하는 은둔형 종교로 나타나지만, 극우 기독교는 무너진 신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세상에 개입하여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세계 지배적인 유형의 종교로 나타난다.(1)
그러한 세계 지배적 유형의 근본주의 세력은 1970년대 말 미국에서 등장했다. 그것은 1920년대 말에 근본주의적 기독교가 원숭이 재판에서 패배한 뒤 세상에서 퇴각하고 나서 50년이 지나 일어난 일이었다. 근본주의 기독교는 레이건의 정치적 보수주의를 뒷받침했고,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한국의 근본주의적 기독교는 오랫동안 세상에 대해 오불관언(吾不關焉)의 태도로 일관하다가 미국보다 약 10년쯤 뒤에 세계 지배적 종교 유형으로 등장했다. 근본주의적 기독교 지도자들은 한국의 민주화 이후 에큐메니칼 그룹이 헤게모니 세력이 되는 것에 격렬하게 반발하고 저항했다.(2) 그들은 에큐메니칼 그룹이 태동할 때부터 속속들이 좌경화되었다고 믿었고, 그 세력과 친화성을 지닌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친북 좌편향에 빠져 국가 안보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2004년을 전후로 해서 반공·반북·반핵 등 정치적 이슈를 내세우고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광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극우 기독교의 광장 점거는 대형교회의 지도급 인사들과 교인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지도부가 관여했다. 극우 기독교인들은 정치 세력화의 길로 나가고자 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최근 전광훈을 중심으로 하는 극우 기독교인들이 준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극우 기독교가 발호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기독교 성장세가 멈추면서 모든 기독교 교단의 수많은 교회가 위기의식에 빠져든 데서 찾을 수 있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동안 예장(합동), 예장(통합), 고신, 기장, 감리회, 기성 등 6개 주요 교단의 교세는 868만 명에서 684만 명으로 약 21.2% 감소했다.(3) 교인수효와 헌금의 감소는 교회 지도부의 헤게모니를 약화했고, 심지어 그것을 와해시킬 염려가 컸다.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교회 지도부는 교회 내부를 단속하여 그들의 헤게모니에 대한 공격의 소지를 없애고자 했고, 교회 바깥에서 교회를 공격하여 교세를 약화한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을 교회의 적으로 설정하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자 했다. 타종교, 동성애, 페미니즘 등은 가장 손쉽게 교회의 적으로 설정되었다. 교회는 그 적들을 공격하면서 성서 무오설과 근본주의 신학의 기조를 강화했다. 종교적 배타성과 타종교에 대한 공격, 차별 금지법에 대한 완강한 반대와 저항, 이성애에 바탕을 둔 가부장적 가족 관계의 정상성에 의문을 던지는 페미니즘의 배척 등은 기독교가 극우화하는 것을 나타내는 몇 가지 중요한 징표들이다.(4)
극우 기독교와 뉴라이트의 결합
극우 기독교는 미국 선교사들의 한국 선교 때부터 반공·친미적 태도를 내면화하였고, 그러한 반공주의와 친미주의는 한국 전쟁 이후 공고화했다. 극우 기독교는 반공과 친미를 내세운 이승만 독재를 맹목적으로 지지했고,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는 박정희 군사정권을 지지했다. 국가조찬기도회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교회의 이름으로 뒷받침한 극우 기독교는 정권으로부터 여러 가지 특혜를 받았고, 정치적 보수주의를 철벽처럼 옹호하는 종교적 보수주의의 아성이 되었다.(5) 그러한 역사적 배경을 놓고 보면, 2004년을 전후로 해서 광장으로 나온 극우 기독교가 종북세력의 색출과 처단을 구호로 내세운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극우 기독교는 교회의 물질적 성장이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는 표지라고 내세웠고 교회의 성장을 이끈 지도자를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추켜세웠다.(6) 교회의 물질적 성장을 예찬하는 것과 세속적 성공과 번영을 찬양하는 것은 똑같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했다. 성장주의와 번영주의는 극우 기독교의 중요한 신학적 코드로 새겨졌다.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서는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 지위 향상의 축복이 있고, 마침내 천국 입장의 축복까지 내린다고 했다. 경제성장과 물질적 번영의 배후에 도사린 구조적인 억압과 모순은 극우 기독교에는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7)
극우 기독교는 경제성장과 물질적 번영을 최우선으로 삼는 정치세력과 손을 잡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친화성(8)을 내세우는 극우 기독교는 자본주의에 맞서는 세력을 사탄의 세력으로 생각했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어떤 경우든 용납할 수 없다고 믿었다.(9) 경제성장과 물질적 번영을 내세워 자본주의적 억압과 모순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가당치 않은 것으로 치부되어 배척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극우 기독교는 뉴라이트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뉴라이트와 세계관적 동맹을 맺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극우 기독교가 뉴라이트와 결합하는 데 결정적인 징검다리를 놓은 김진홍 목사는 이명박의 정신적 멘토였고, 2005년에는 뉴라이트 전국연합을 창설하여 2011년까지 상임대표를 맡았고, 박근혜 정권을 열렬히 지지했으며, 2020년부터 전광훈 집회를 강력하게 거들었다. 그는 뉴라이트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데 앞장섰고, 기독교 신앙의 언어로 이를 가다듬어 기독교 극우파 운동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했다.(10)
극우 기독교는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특별한 소임을 수행하도록 미국을 세웠다고 믿는다.(11) 따라서 극우 기독교는 세상의 혼란을 헤쳐 나가기 위해 미국이 내세우는 가치동맹을 지지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극우 기독교 세력이 시위를 벌일 때마다 성조기를 들고나오는 것은 그러한 신념의 표현이다. 급기야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으로 여겨졌고, 미국이 나토의 틀에서 벌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한국을 끌어들이려는 시도에조차 응할 태세를 보였다.
물론 극우 기독교는 일본에 대한 태도를 아직 정리한 적이 없다. 그러나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수행하는 하나님의 미션을 위해 한국과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그 믿음을 신학적 언어로 가다듬어 친일 신학을 수립하지 못할 까닭도 없다. 그렇게 되면, 뉴라이트는 그들의 세계관을 종교적 언어로 번역하는 든든한 우군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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