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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4
[K 생각] ㅡ 4.10 심판의 날
입틀막 정권, 도주 정권, 회칼 정권까지,
이제 끝이 보인다.
2. 2023
《시》
제때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면
수시로 좌충우돌, 사방팔방으로 흔들리지
개딸은 스스로 자각해 개딸이라 말하지만
수박은 속살이 부끄러워 자꾸만 감추려해
개딸과 수박은 서로가 배타적 선언지라서
개딸이면서 수박이라 말하는 건 모순이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무게를 느끼지 못하면
타인의 무게도 감히 재단을 못해 쩔쩔매지
재단사 도우미를 시다 즉 시다바리라 하지
시다바리 인생이 싫으면 무게 중심 있어야
무게의 중심 / kjm
3. 2023
[K 생각] ㅡ SVB, 기획 파산?
2,000여개의 은행 중 800여개가 도산할 처지가 되면 80여개를 미리 도산시켜 붕괴 도미노를 막을 기획을 세우리라.
마치, 밀림 속에서 거대한 불길이 번져오고 있는데, 방법은 각 요소마다에 맞불을 놓는 경우와 같다.
따라서 SVB(실리콘밸리은행)의 금요일 파산과 주말 이틀 동안에 바이든 옐런 파월의 일사불란한 수습은 미리 기획된 예정된 수순은 아니었는지.
판단의 단서는, 바이든이 어제(14일, 화요일) 나올 2월 CPI(소비자물가지수)에 대해, 파산,,다음날(11일)에 "CPI는 좋다"고 말했다는 점과, 워렌 버핏이 SVB 파산 며칠 전부터 지방은행들 주식을 팔아버렸다는 것.
수습이 성공할 지는 두고보면 알 일이겠지만 어쨌거나 미국의 다급한 상황은 읽혀진다.
SVB 파산이 기획한 사태라면, 더 이상의 뱅크런은 없겠으나, 도산하게 될 은행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지 않을까?
걱정은 우리나라다. 아무것도 하고 있질 않으니.
금리가 1년 만에 0.5%에서 4.75%로 4.25%p나 급격히 상승했는데 아무일도 안 생길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은 단지 희망일 뿐이지 옳은 해석은 아닐진대.
4. 2023
[K 생각] ㅡ 탐욕
이웃집 황금알 낳는 거위를 빼앗아 배를 가르려 하지만 집에서 기르던 황금 송아지는 누가 지키나? 탐욕에 눈이 멀어 셋 다 놓치겠잖아.
5. 2022
《시》
아픈 건 경험이 되지만
죽는 건 경험이 아니지
죽음 / kjm
《시》
대국으로 가는 문이 코앞에 열렸었는데
소국으로 남아있기를 선택한 국민이라니
뒤에 역사가들은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무지몽매 / kjm
6. 2022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 소리에 놀란 고양이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용감하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의연하게)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아름답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양심따라)
ㅡ 숫타니파타 中
《패러디》
소리에 놀란 고양이처럼
소리에 놀란 고양이처럼 (비겁하게)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초라하게)
똥물에 튀긴 파리떼처럼 (추잡하게)
박쥐처럼 밤에만 가라 (눈치따라)
ㅡ kjm
7. 2022
[인식의 문제]
많은 분들이 노동, 환경 등, 윤의 사회 전반에 관한 인식 문제를 지적하곤 합니다.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 즉 잘못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한 철학의 부재不在를 말하기도 합니다.
인식 문제는 논리 문제가 아닙니다. 더구나 흑백 논리 같은 이치 논리는 더더욱 아니고요.
가령, 1빼기 1은 0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1과 마이너스 1은 수학적 논리가 되지만, 0은 철학의 문제가 됩니다.
0은 "없다"란 뜻입니다. 1은 현실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 현실을 계산하기 위해 가상으로 설정된 것이 마이너스 1입니다. 경제(상업)에서 자산 개념에도 들어 있습니다. 부채(마이너스 자산)도 포함되니까요.
그러면 0(제로)이란 어떤 것일까요. 단순한 계산적 의미가 아닙니다.
가령, "미국 여왕"과 "유니콘"을 예로 들어봅니다. 둘 다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없다" 따라서 계산상으로는 0(제로)으로 표시(계산)합니다. 이것은 수학적 논리적 문제입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미국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 '미국 여왕'과,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유니콘'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인식의 문제고 철학의 문제인 겁니다. 즉, 일률적 계산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철학에선 '인식론'이란 분야가 따로 있습니다.
철학의 부재와 인식의 부재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깊이 있는 문제들에 대한 솔루션이 있을 수가 없게 됩니다.
가령, '최저임금제 폐지'만을 보더라도, 최저임금 계산만 겉으로 들여다봤지, 그것이 왜 생겼고, 그것이 야기하는 다른 문제들과의 연관관계와 영향들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한다는 겁니다. 그건 계산상으로 표시할 수 없는 문제니까요.
더 큰 문제는, 모든 문제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오로지 흑이냐 백이냐, 아군이냐 적군이냐, 합법이냐 불법이냐만을 가지고 재단한다면, 1을 해결하는 동시에 9의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다는 거지요.
아무튼 윤은 문제가 많은 인간 멧돼지로 보여집니다. 결코 마주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피하고 싶은.
윤의 인식의 모자람이나 철학의 부재는 우리 국민들의 고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8. 2022
[시스템이 무너지려 한다]
시스템적 오류를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외교 시스템, 교육 시스템, 대북 시스템, 군사 시스템, 경제 시스템, 의료 시스템, 환경 에너지 시스템, 복지 시스템, 인사 시스템, 다 망가지게 생겼어요.
시스템은 균형과 조화, 그리고 통일이 생명입니다.
잘난 놈, 못난 놈 가르는 게 아니라, 적합 적절 적정 적확이 요구되는 거죠.
그런데 여기저기 삐그덕대는 소리가 안 들리시나요?
여가부폐지서부터 의료 민영화, 복지예산 삭감, 대학 등록금 인상 등등 해서, 완전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죠.
어느 순간 도미노처럼 무너질 겁니다.
임기 내내 시스템 만지작거리다 끝날 것 같아요. 임기가 출발은 할 지도 의문이지만.
고소해야 하나요? 쩝 쩝~
9. 2022
[부조리]
"좀 더 조리있게 말해봐."
앞 뒤 잘 연결할 수 있게, 그래서 잘 이해할 수 있게 말하라는 뜻이죠.
그러려면 물리적 원인이나 논리적 이유를 가지고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근데 그게 좀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마치 아는 사람이 이사해서 집들이를 갔는데, 집 구조도 맘에 안 들고, 가구 배치도 맘에 안 들고, 그집 식구들도 불친절해 보이고, 이것저것 맘에 안 들고 불편한 심정이 들 때처럼요.
사람이 싫고, 집도 싫고, 그러면서 전부 싫은 거죠.
집은 우리 인간이 사는 세계를 지칭합니다.
세계를 이해하려고 해도 잘 알아지지가 않고, 불편하기도 하고, 곳곳에 위험들이 또 도사리고 있죠.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은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데, 무지 춥거나 무지 덥거나 날씨도 안 도와주고, 화재나 지진 해일 폭우 벼락 등도 아주 위협적입니다.
더구나 먹을 걸 쌓아놓으면 언놈들이 훔쳐가고, 마적떼가 나타나 살생도 저지르고, 멧돼지가 나타나 논밭도 다 망치고, 엄청난 메뚜기떼가 날아와 농작물들을 다 먹어치우고, 이웃 나라에선 조공을 강요하고, 기타등등
도무지 믿을 게 하나도 없어요. 믿을 놈도 없습니다. 좋은 놈도 있지만 나쁜 놈 이상한 놈들 천지죠.
왜 그런거죠? 설명 좀 해줬으면 해요. 이해가 되야 말이죠. 조리가 있었으면 해요.
근데 이게 원래 불가능한 일이에요. 세계가 인간을 위해 있는 게 아니거든요.
결국 아쉬운 놈이 먼저 손 내민다고, 인간이 세계에 굽히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덤벼들어서 원하는 걸 찾고 얻어야 하는거죠.
이때 드는 감정이, 부조리입니다. 뭔가 이질적인 것이 이빨 사이에 끼어들었을 때처럼.
그런 일들이 살면서 수없이 반복되요. 형태만 바꿔가면서. 삶 자체가 부조리하다고 느끼죠.
그러다보니 태어난 것부터가 부조리해요. 왜 태어났는지, 왜 먹는지, 왜 일하는지, 왜 아픈지, 왜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죽는지, 전부가 부조리한 것 뿐이죠.
그래서 세계와 나, 나와 친구, 나와 가족, 나와 국가, 나와 애인, 나와 일, 모든 관계에서 실패했다고 여기죠. 경제적 용어로 표현하면 관계의 파산인 겁니다. 납득이 잘 안 되는 거죠.
인간소외, 부조리한 삶, 관계의 단절, 이런 것들이 부조리란 단어로 집약되는 겁니다.
내가 하는 것이 어떤 것에도 영향을 주지 못할 때 느끼는 좌절과 절망 역시도. 그래서 관종도 생기고 일베도 생기고 화살촉도 생기는 거 같습니다.
관계가 생략된 삶이란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없죠. 그래서 부조리는 관계의 부조리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관계의 부조리 / kjm
10. 2022
《시》
그대, 잘 지내나요. 말없이 떠나 온 후로. 좀처럼 소식이 없었네요. 두고 온 것이 있었을텐데. 무엇인지 잊었어요. 세월이 이만큼 흘렀으니.
그댄, 잘 사시나요. 세상이 많이 혼란스러워. 그대 걱정을 해보네요. 후회는 없었다 해도. 가끔은 이렇게 생각나요. 부족했던 절 용서하세요.
그대, 잘 계시나요. 이제야 소식을 전해요. 너 없어도 살 수 있다. 떠나며 자신했건만. 그래도 다시 한 번. 미워도 다시 한 번은.
미워도 다시 한 번 / kjm
2020.3.15
11. 2022
[진보와 보수의 갈라짐]
진보와 보수가 갈리는 시점과 이유..!!
미래는, '전망'이다. 전망은 언제나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
현재는, 삶의 중심축이며 '문제적 삶'이다.
과거는, 현재의 문제적 삶을 해결하기 위해서 끌어오는 기록의 '선택적 해석'이다. 바로 이 점이 진보와 보수가 갈라지는 시점이 된다.
가령, 박정희를 선택해서 해석했을 때 나타나는 영웅적 카리스마를 신화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여기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논리적 구분이 배제된다.
또, 김대중을 선택하는 해석이 되면 가해와 핍박, 즉 독재적 일방의 권위와 민주주의적 다양성의 대립이 뚜렷해지고, 연대를 강조하게 된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누구를 선택해서 현재로 끌어올릴 지가 정치의 관건이 되고, 각자가 정립한 이론으로 무장해서, 현재의문제적 상황들에 서로 다른 각자의 해법을 제시한다.
미래를 전망함에 있어서, 가시권 안으로 들어오는 상황에선 보수가 힘을 받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진보가 추진력을 얻는다.
보수는 변화를 싫어하고 있는 것을 지배하려 하며, 진보는 변화의 흐름에 쉽게 동반해서 새롭게 바꾸려 하는, 각각의 경향성을 가진다.
마냥 내버려둬도 시간이 가면 오를 것이라는, 절대 내려가지는 않는다는 믿음과 함께, 느긋한 기대를 갖고 전망하는, 부동산에 천착한 보수와 달리, 내일 오를 지 내릴 지 모르는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열광하는 진보의 불안정하게 보이는 전망이 공존한다.
누가 옳으냐 그르냐, 누가 잘하냐 못하냐, 누가 유능하냐 무능하냐 하는 것들은 현상적 이해일 뿐, 본질적 구분은 아니다.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본질은 '경향성'에 있다.
경향성에는 선악도 미추도 없다. 단지 진위의 판명은 결과로 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에 있다.
나쁜 결과를 만들었다면, 사과하고 반성하는 책임이 뒤따라야 하는데, 대개는 정치적 권력 향배에만 치우쳐, 진보와 보수 모두 가릴 것 없이,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기에 바쁘다. 그러다보니 선동과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선거 때가 되면 서로를 악마화 해서 광기를 뿜어낸다.
사회 전체가 광기의 시간을 견뎌야 하고, 그 시간이 지나가면 여기저기 깊은 트라우마가 남게 되는 것이다.
양쪽 서로가 승리만 생각했지, 패배한다는 생각을 도외시했기 때문에, 패배하게 되면 열정적이었던 사람일수록 멘붕 상태가 된다.
그럼에도 패자에 대한 치유와 위로보다는, 승자의 오만과 패자에 대한 정치적 보복을 생각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말로는 화해와 통합과 협치를 말해도, 내심은 복수의 칼을 품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보복과 복수를 적나라하게 표현해서 겉으로 드러내는 얼치기들도 생겨난다.
정치의 본령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란, 살리기 위해 하는 것이지, 죽이려는 게 아니다.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어 굶어죽게 만드는 것이 정치인가? 전쟁나게 해서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것이 정치인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도록 방치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는 게 정치인가?
언제부터 정치 행위가 양아치짓처럼 바뀐 건가? 언제부터 정치인들이 박쥐처럼 기회주의자들이 되었는가? 언제부터 미래에 대한 아무런 전망도 없이 아무나 권력을 욕심내게 되었는가?
과거에 대한 이해, 현재의 문제적 삶, 미래를 열어갈 전망을 다시 한 번 성찰해보시기를 권한다.
※ 소설가 나우주님이 주신 자료의 도움 덕분에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12. 2020
['예측 불확실성'에서 '통제 불확실성'까지]
코로나19의 팬데믹이 가져온 낯선 세계가 지금 펼쳐지려 합니다.
낯선 세계라고 하기엔, 이미 '불확실성의 시대'에서의 '불확실성의 경제'까지 고루 예견됐었다는 사실이죠.
우리의 정치 개혁이 '촉진룰'의 적용을 계기로 시작되었다면, 지금 세계의 경제는 코로나19라는 '촉발제'를 계기로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현재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하나는, "예측이 가능한가?"이고, 다른 하나는, "통제가 가능한가?"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문제의 해결에는 '불확실성'이라는 걸림돌이 작용합니다.
따라서 이 불확실성의 제거 없이는 문제 해결이 요원하며, 불확실성의 제거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들어 있습니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생각하다보니, 예전에 보았던 <논술의 일곱가지 열쇠>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그러면 코로나19 해결의 일곱가지 열쇠는 과연 무엇이 될까요?
먼저, 문재인 정부의 승부처였던, 투명성과 개방성, 그리고 신속성, 이 세 가지가 되겠네요.
그리고 하나를 더 얹자면, 정치성 배제와 순과학성을 들 수 있습니다.
다른 두 개는 제거해야 할 것으로, 각국에서 벌어지는 행태로서의, 인종주의와 민족주의 및 자국우선주의에서 시작되는 혐오와 증오의 정치사회적 편견이 되겠네요.
마지막 한 가지는, 경제 문제로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로라면 세계 무역 시장은 고사하고 말 것입니다. 세계 주식 시장도 반토막 나기 십상이구요. 어쩌면 70%쯤 폭락했다가 반등해서 그나마 반토막일 겁니다.
정치도 생물이지만, 시장도 생물입니다. 위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거나, 위기가 겹치면 반드시 패닉이 찾아 옵니다. '공포의 경제학'에선 그렇습니다.
누구나 혁신을 말하지만, 과연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혁신을 일으켰는 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혁신은 불확실성을 내포하므로, 호기심에 달려들다가도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과도한 욕심 때문에 시장 자체를 망가뜨리곤 합니다.
편가르기 문화와 벽 쌓기 문화에서 나오는 근거없는 우월 의식이나 배타주의는 상호 신뢰감을 떨어뜨려 결국에는 적대적 대결을 가져와 공멸에까지 이릅니다.
성공은 누적되며 서서히 단계적으로 나타나지만, 파멸은 누적돼왔던 것들이 합쳐져 순식간에 찾아오는 것이죠.
언젠가 제가 말했던, "망하는 기업에서 장부 뒤적이는 거 봤나?"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이 위기라면, 불확실성의 확산과 통제 가능성에 대한 회의에서 오는 불안감과 공포 때문일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금융자본주의 모순과 약점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신자유주의에서 보호무역주의로 넘어가려는 데서 오는 충돌의 결과인 셈이기도 하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궁극적인 것은, 코로나19의 재난 수습 역량 부족에 따른 피해에 대한, 감당할 여력의 유무입니다.
* [두 개의 관점] ㅡ kjm / 2049.8.18 (생략)
* https://naver.me/Gwmzr8yl
* [나쁜 사마리아인들 7 : 시장의 역설]
ㅡ kjm / 2019.10.26 (생략)
* [이카루스의 역설과 혁신]
ㅡ kjm / 2019.3.19 (생략)
13. 2019
[맹목적인 이권 추구는 독배]
왜 그렇게들 권력을 탐할까요? 그리고 권력을 추종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요?
국회의원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온갖 비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권력에 반드시 뒤따르는 것이 '이권'입니다. 이 이권 때문에 권력에의 집착과 추종자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권성동 의원을 보십시오. 강원랜드 채용 비리에 대해 들어 보셨지요? 그리고 요사이 김성태 의원의 딸이 KT에 부정 입사한 사건을 보셔도 알 것입니다.
하다못해 국회의원도 그럴진대 대통령이란 권력을 잡으면 얼마나 큰 이권이 생기겠습니까?
전두환은 그 이권을 참 많이도 부정하게 챙겨주었습니다. 그로인해서 그때 엄청난 이권을 챙겼던 이들이 아직도 추종자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명박 역시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방위산업 등으로 엄청난 이권을 스스로 챙겼고 이를 숨기기 위해 추종자들에게도 이권을 많이 챙겨 주었습니다.
박근혜는 최서원(최순실)을 통해서 '이권 장사'를 하다가 들통나서 결국 탄핵까지 당했습니다.
"부패 공화국", "비리 공화국"이란 말이 그래서 생겨난 겁니다.
이 때는 "(그 많은 이권 중) 하나라도 못 챙기는 놈이 등신이다"라는 소리들로 넘쳐났습니다.
태극기부대, 어버이연합 등과 같은 각종 사이비 보수단체들은 그런 이권들을 나눠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런 이권을 하나도 챙기지 못했던 이들이 그들을 추종한다는 건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ㅋㅋ
작년 이맘때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83%였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것이 지금 45%까지 내려갔습니다.
다양한 해석들이 있습니다만, 궁극적으로는 문 대통령께서 이권엔 관심이 없고, '공정 사회'니 '정의 사회'니 하면서 이권을 챙겨주지를 않으니 떨어져 나간 것 아닐까요?
정말로 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45%가 이권과 상관 없이 문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사실이죠. 이건 가히 철통같은 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권과는 무관한 45%의 지지자 속에 남을 것입니다.
K / 2026.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