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벗고 난간 위에 올라서서 눈을 남고 두 팔을 벌리면 소매 속에서 깃털이 삐져나오는 내게서 새가 우는 날의 기록 새의 뺨을 만지며 새하는 날의 기록
공기는 상처로 가득하고 나를 덮은 상처 속에서 광대뼈는 뾰족하지만 당신이 세게 잡으면 뼈가 똑 부러지는 그런 작은 새가 태어나는 순서
새하는 여자를 보고도 시가 모르는 척하는 순서 여자는 죽어가지만 새는 점점 크는 순서 죽을 만큼 아프고 죽겠다고 두 손이 결박되고 치마가 날개처럼 찢어지자 다행히 날 수 있게 되었다고 나는 종종 그렇게 날 수 있었다고 문득 발을 떼고 난간 아래 새하는 일종의 새소리 번역의 기록 그 순서
밤의 시체가 부푸는 밤에 억울한 영혼이 파도쳐 오는 밤에 새가 한 마리 세상의 모든 밤 밤의 꼭지를 입에 물고 송곳같이 뾰족한 에베레스트를 넘는 순서
눈이 검고 작아진 새가 손으로 감사 쥘 만큼 작아진 새가 입술을 맞대어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는 새가 새의 혀는 새순처럼 가늘고 태아의 혀처럼 얇은데 그 작은 새가 이불을 박차고 내 몸을 박차고 흙을 박차고 나가는 순서
결단코 새하지 않으려다 새하는 내가 결단코 이 시집은 책은 아니지만 새라고 말하는 내가
이 삶을 뿌리치리라 결단코 뿌리치리라
물에서 솟구친 새가 날개를 터는 시집
시방 새의 시집엔 시간의 발자국이 쓴 낙서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연필을 들고 가느다란 새의 발이 남기는 낙서 혹은 낙서 속에서 유서
이 시집은 새가 나에게 속한 줄 알았더니 내가 새에게 속한 것을 알게 되는 순서 그 순서의 뒤늦은 기록
이것을 다 적으면 이 시집을 벗어나 종이처럼 얇은 난간에서 발을 떼게 된다는 약속 그리고 뒤늦은 후회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