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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벌건 대낮, 집에 아무도 있을리 없단걸 너무도 잘아는 봉춘은 늘그랬듯, 집안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먹잇감을 찾아 돌아다닌다. 마지막손에 쥔패를 행운이라 여긴 자신이
상대의 술수에 돈을 다 뜯기고서도 그저 운이 없어서라 여기며, 다시한번 기회를 잡고자
돈을 구하러 집에 들어온 봉춘, 새로 막 살림을 합치려 결혼사진 대신 찍은 지영과의 사진을
쓰레기처럼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는 서랍곳곳을 이잡듯 뒤져댄다.
"꼭꼭 숨기봐라...내가 못찾는가.... "
안방을 다 뒤지고도 아무소득을 얻지 못하자, 마루의 방으로 향하는 봉춘 , 늘그랬듯
굳게 잠긴 마루의 방문을 작은 철사 하나로 능숙하게 풀어 열고는 구둣발로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선다.
"하아...빙고... 그라믄 그렇지... 통영사람 돈이 다 쓸려나가도, 강마루수중에 돈이 떨어질리야
없지...이게 얼마고?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제법 솔솔하네...비밀번호가 어데있노?"
서랍안을 몽땅 털어 번호란번호는 다 살펴보는 봉춘, 네개로 조합된 숫자를 찾지 못하자
서둘러 집안을 벗어난다.
통영제일요양원
병원프론트옆에 준비된 공중전화기을 들었다 놓길 몇번이고 반복하는 지영, 손에 쥔 꼬깃꼬깃한
종이에 적힌 번호들을 차례대로 누르고는 긴장감에 떨리는 두손을 꼭 움켜쥔다.
[태서그룹비서실입니다. ]
"장....회장님과 통화하고 싶은데....?"
[연락하기로 미리 선약을 하셨습니까? 회장님께선 지금....]
"강....지영입니다....회장님께....그렇게만 전해주세요...부탁...드립니다...."
매우 다급한 목소리에 머뭇거리다, 회장실에 인터폰을 하는 비서, 장회장에게 강지영이란
여자분이 통화하길 원한다는 말을 체 끝내기도 전에 전화를 연결하는 장회장이다.
"여보세요......."
"저예요...강지영.... 오랫만이예요....도훈씨...."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기를 고쳐잡는 장회장,
수화기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지영이.....? 진짜....당신이 지영이야? 대체...지금껏 어디서 어떻게 지냈던거야?
한국에...있긴 한거야? 왜 그동안 연락도 안했어? 내가....널 얼마나 찾았는지...알아? "
"할말....있어요.... 나....당신한테 할말있어요....도훈씨.... 당신이 믿지 못한대도....어쩔수
없지만....해야겠어요....나..... "
그리운 이의 목소리에 아직도 자신을 걱정하는듯한 그의 음성에....지영의 작은 어깨가
울먹임에 떨려온다. 그에게 모든 이야길 하고는 통화를 끝내는 지영, 두뺨을 적신 눈물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돌아선다.
"하아....하아.... 아프다믄서, 어델그리 쏘다니노? 한참을....찾았다....니를...."
"당신이....왜 여길...."
자신에게 다가서는 봉춘을 보며,뒷걸음질 치는 지영, 그의 거친 손이 지영의 손을 낚아채고,
힘없이 그녀가 그에게 끌려간다. 험상궂은 사내의 표정에 누구하나 말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 발에서 신발이 벗겨지도록 지영은 그에게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하지만
계단위로 끌고올라가는 그의 완력에 그녀는 힘없이 질질 끌려갈 뿐이다.
"왜 이래요....제발....그만해요...제발...."
"그러니까...말해라. 마루...통장 비밀번호... 뭔지 말해보라고..."
그의 손에 들린 마루통장을 보고는 자신의 입술을 질끈 깨무는 지영.... 온힘을 다해 그에게서
뺏으려 하지만, 번번히 그의 손에 바닥으로 내쳐진다.
"우리 마루꺼야..우리 마루꺼라구....당신이 뭔데....당신이 뭔데...."
"몰라서 묻나? 니 남편 이봉춘이다 아이가... 술집이나 전전하던 더러운 니를.... 내가 데리고
살아줬으면 이정도는 내한테 해줘야지....안그렇나?"
"인간도 아냐....당신....정말....인간도 아니라구 알아?"
"내가 인간이 아니믄...니는? 아무놈한테나 다리벌리가메, 누구씨인지도 모르는 마루 저놈아를
끼고 사는 니는....인간이가? 내가 내아를 낳아달랄때 ...니 뭐라했노? 마루저놈아 말고는
내새끼는 못낳아준다고 그런 니는.... 니는 내한테 그딴말할 자격있냔 말이다..."
지영의 멱살을 쥐고 일으키는 봉춘.... 그의 얼굴가득 담긴 살기에 지영의 몸은 한없이 그의
손아귀에 내쳐지고....작고 여린 그녀의 몸은 몇번이고 바닥으로 내팽게쳐진다.
배가 갑판장에 닿여지자, 줄을 가지고 배위에서 내려서는 마루,익숙하게 말뚝에 줄을 단단히
동여매고는 잡은 고기들을 배에서 내린다.
"오늘도 만선이다. 마루야...오늘은 한잔하고 가래이....일당은 두둑하게 챙겨준다 "
"예...선장님"
환하게 웃어보이는 마루의 미소에 절로 주위마저 환해지는 아우라..... 순간 재길이 저멀리서
뛰어오더니, 마루의 어깰 잡아 세운다.
"마루야....크....큰일났다....우짜노....우짜면 좋노...니...."
"뭔데 그래? 너 또 니아버지 몰래 사고라도 쳤냐? "
"그게...아니고.... 마루야.... 놀라지 말고..내얘기 똑바로 들어라.... 니 어무이가.... 니 어무이가
말이다...."
마루의 발아래로 고기가 담긴 상자가 떨어져 물고기들이 살아 펄떡이고, 마루의 발걸음이
병원을 향해 내달린다. 재길의 차가 어판장을 벗어나고, 두사람을 태운차가 도로위를
질주한다.
먼저 도착한 식당아주머니와 은기.... 하얀 이불보가 씌어진 처참한 사고현장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멈춘다.
"어떻게...된거예요? 무슨일이냐구요....대체..."
"강지영씨...보호자란 사람이 찾아왔었는데.... 작은 몸싸움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병원옥상에서
떨어졌어요...그사람은 일단 현행범으로 경찰에 끌려 갔으니 좀더 조사를 해봐야...."
"아이고...마루엄마...우야노.... 불쌍해서...우야면 좋노....."
울먹이며 주저앉는 아주머니를 뒤로하고 천천히 다가서는 은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맺혀
뺨으로 흩어지고, 떨리는 손으로 하얀천을 걷어내리자, 잠든듯 누워있는 지영의 모습이
은기의 눈에 들어온다. .....
"일어...나세요....이러면....이렇게 가시면....안되는 거잖아요....그렇게...누워계시면...어떻해요
일어나서....저랑 함께...병실로 돌아가요....네? "
천을 잡은 은기의 손이 떨려오고, 순간 그녀의 손을 누군가 낚아채 바닥에서 일으킨다.
"마루씨...."
"어떻게 된거야.... ? 엄마가....왜? 내 엄마가 왜?....."
어이없는 현실에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오는 그....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 천천히 다가서더니
이내 쓰러지듯 주검앞에 주저앉는다.
"이럴순 없어.... 이럴순 없는거라구.... 눈떠....눈좀 떠봐.... 내가...왔어....엄마아들 강마루가
왔다구.... 지금...나한테 시위하는거지? 지금...나.... 골탕먹이려는 거지? 내가... 차라리
죽으라고 해서.... 그래서....나 벌주는거지.....잘못....했어.... 내가....잘못했다구....그러니까...
그만해.... 제발...그만하고... 가자...엄마....우리...집에 가자....어? "
축늘어진 자신의 엄마를 안아드는 마루.... 자신의 손에 스며드는 검붉은 피를 바라보고는
자신의 어머니를 가슴에 꼭 껴안는다.
"흐흑...으아아악......"
그의 통곡이.....그의 슬픔이..... 비가 되어 사방에 흩어진다....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그날.... 그는.... 세상 단하나뿐인....자신의 가족을.....자신의 어머니를..... 하늘로 되돌려
보냈다....
그의 어머니가 모셔진 영정앞....
장례식장안 벽에 기대 두눈을 질끈 감은 마루....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뺨을 타고
바닥에 흩어진다.
조용히 그에게로 다가가 밥과 국을 건네는 은기.... 자신도 모르게 그의 눈물을 손으로
쓸어내려 주고는 그가 천천히 눈을 뜨자.... 그에게서 물러난다....
"뭐라도...좀 먹어요.... 온종일 조문객 치르느라...아무것도 못먹었잖아...."
"잠깐....잔것 같은데....깨면...꿈일거라...생각했어...늘...원망스러웠지만....단한번도
진심으로 내어머니가 죽길 ....내곁을 떠나길...바란적없어...내가 했던 모진말들....
모진 행동들....내 어머니는....마지막순간....날 어떤 아들로 기억했을까....? 내가
내 어머니를 보살피고, 울타리가 되준다고 생각했는데....아니였나봐....내게 있는 가장
큰...울타리를 빼앗기고...길거리로 맨몸으로 쫓겨난 아이가 된 기분이야.... 아주....더럽고...
끔찍한...그런기분....당신은.... 모를거야...내가...지금...얼마나 후회하며....끔찍한
형벌을 받고 있는지를...."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슬픈눈빛에 그에게 손을 뻗는 은기... 그에게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고는 조심스레 토닥여준다.
"어머님.... 당신 아주 많이 좋아하셨고...자랑스러워하셨어요.... 얼마동안 이지만....내가
곁에서 돌봐드렸잖아요.... 늘...당신을 기다리셨어요.... 마루씨가 웃으면 함께 웃으셨고
마루씨 작은 표정하나 행동하나에도 늘.... 생각이 많으셨어....그만큼....어머니께는 마루씨가...
전부였던 거예요.... 그러니까...자책하지 말아요....그럼....어머니가 더 슬퍼하실테니까..."
"흐흑...."
그의 통곡에 은기가 그의 머릴 손으로 천천히 쓸어내리고, 마루가 그녀의 허릴 두손으로 감싸
안은체 눈물을 떨군다.... 그의 슬픔이 온전히 은기에게로 전해지고.... 그녀도....마루도....
서로에게 의지한체 슬픔을 토해낸다.
삼일장이 끝나고, 납골당으로 그의 어머니가 모셔진다. 어릴적 자신과 찍은 사진을 넣어두고는
유리문을 닫는 마루, 사진속 행복하게 미소짓는 두모자의 모습에서 시선이 떨어질줄 모른다.
"우리 엄마....참 이쁘지?"
"그걸 말이라고....니엄마 이 통영바닥에서 한미모 했다 아이가....우리 아부지도 ...마루엄마
이쁘다고 해서 우리엄마가 얼마나 구박을....내가 뭔소리하노....내...나가 있을게....차에
있을테니까... 어무이랑 있다가 나온나.... 오래오래 있다와도 된다....알았제?"
재길에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마루, 재길이 마루의 등을 토닥여 주고는 발걸음을 돌린다.
"어릴땐 참 예뻤네요...마루씨"
유리벽장앞에 하얀 국화꽃을 놓아주는 은기.... 그의 곁에 나란히 서서 유리장속 사진을 바라본다.
"지금도 나쁘진 않잖아... 우리 엄마 닮아서"
"그래요...많이 닮았어요. 마루씨랑 어머니...아니다...어머님이 요만큼은 더 이쁘신거 같은데요."
은기의 괜한 너스레에 웃어보이는 마루, 그의 손이 유리문속 자신의 어머니를 천천히 쓸어내리고는
고갤 떨군다.
"지난세월.... 미련같은거 없었을까? 한남자한테 제대로된 사랑도 받아보지 못하고, 평생을
험하게 궁상맞게 산...시간들.... 후회되고 아까워서....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우리 엄마"
"그래도....이세상에 태어나 자신을 닮은 분신은 남겨두고 떠난거니까.... 그 아이만 행복하다면
자신처럼 살지않고 잘살아간다면...그또한 의미있는 삶 아닐까요? 어머님은 마루씨를 아주아주
많이 사랑하셨으니까...."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우리엄마 맘속에 들어가보지도 못했으면서..."
"다 알아요... 다른건 다 속여도 그사람의 눈빛만큼은.... 속일수 없는거니까...마루씨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은...정말 따뜻하고... 편안했다구요....그러니까... 부디...좋은곳에
가셔서도...마루씨 지켜보실거예요.....늘그랬듯이...따뜻하고...편안하게...."
"............."
자신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짓는 은기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쥐는 마루... 은기가 서둘러 그에게서
손을 빼내려 하자, 마루가 두손으로 그녀의 손을 감싸쥐고는 부드럽게 그녀의 손등에
입맞춘다. .... 그의 갑작스런 입맞춤에 놀라 두눈이 커다래지는 은기... 천천히 고갤 들어
자신을 마주보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주춤거리며 뒷걸음친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3.07.31 11:4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3.07.31 11:45
첫댓글 날 더운데 고생하시네요 션한 커피드시러 오세요 ㅎㅎ
정말 아이스커피한잔이 간절한 시간입니다...ㅠㅠ 제가 곧 날라갈테니 준비해 두시길....ㅋㅋ
마루아빠가 회장님?!..
출생의 비밀같은 뻔한 이야기라....그저 죄송할따름입니다....마루의 고단한 삶이 부디...아버지로 인해 보상받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제 작업장..위치는 사격장 입구 에 있습니다..ㅎㅎ 가구점 이에요..ㅎㅎㅎ
헉...들어가면 조준하는건가요~후덜덜~~^^
설마요...ㅎㅎ 사격장입구 사거리 편의점 맞은편 입니다..ㅎㅎ
ㅋㅋ...무더운 날씨 지치시지 마시고, 쉬엄쉬엄하면서 일하세요... 그리고 틈틈히 제 글도 찾아 읽어주시구요...항상 힘이되는 응원....감사드립니다.
봉춘이이자식너무하네요ㅜㅜ마루엄마도딱하고......그래도은기가있어서조금은덜힘들겠어요ㅜㅜ잘읽고갑니다!
그러게요....은기가 있어 다행이긴 한데...마루에겐 너무큰 상실감이 닥친터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요....부디...은기에겐 마루가...마루에겐 은기가 함께 하길 바래볼수 밖에요....
서글픈 인생입니다
어뜩하믄 조아요~~~ 마루와 준하 배다른 형제ㅠ
안그래도 사이 안조은데~~~
오늘도 잘보고갑니다
잼나게 잘 보고 갑니다 ^^ 은기랑 마루 얼른 행복 해 지길 바래요
잼잇게잘읽엇습니다~ ㅋ
재밌게잘보고가요^^
마루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ㅠㅠ 잘 읽었어요!
휴가 가신듯 얼렁 돌아와유~~~~^^
잘보고갑니다!
부자 아빠가 역쉬 대기 하고 계시군요~~ 다행이네요~^^
처음부터 정주행했는데 정말 재밌어요!!!ㅠㅠ
애잔해지네요ㅠㅠ
무슨 일 있으세요? 담글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잘보고갑니다~
회장님과는 어떻게 만날까요 기대~~~
엥 그럼 마루와 준하가 배다른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