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흔들! 우웅,우웅!"
추 하나가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언제시작되었는지도 모를 흔들림......
실은 연결되어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교한 움직임만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인영(人影)의 팔과 추는 은색의 투명한 실로 연결되어 있었다.
범인의 눈으로는 결코 알아챌수 없을정도로 얇고 투명한 은사(銀絲).
그 은사에 연결되어 있는것은 사실 추가 아니라
비수의 손잡이처럼 생긴 직육면체의 물체였고
거기에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 실을 잡고있는 존재는 출중한 미모를 가진 소년이었다.
아니, 소년이라고 하기에는 키가 너무 컸고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어려보였다.
대략 17~18세 정도나 되었을까......
특이하게도 소년의 손목에는 흑색의 팔찌가 차여 있었고,
발목에도 똑같은모양의 장신구가 차여 있었다.
소년의 눈은 지금 오장 밖에 홀로 서 있는
한 그루의 노송을 향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소년의 어깨가 들썩거리더니 손이 앞으로 뻗어졌다.
그와 동시에 흔들리고 있던 추는 소년의 시야에 놓인
소나무를 향해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청승맞게 뻗어 나온 소나무의 가지 끝에는 솔방울 하나가
위태로운 모습으로 달려있었는데
추가 노리는것은 바로 이 솔방울 이었다.
그러나 추는 문제의 솔방울을 명중시키지 못하고 옆으로 비켜 나갔다.
솔직히 거리를 따져보았을때
명중시키지 못한것이 오히려 당연해 보일정도였다.
하지만 그 미세한 순간,
다시 소년의 손가락으로 물결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이 전해졌다.
그러자 추는 소년의 조정을 받는것처럼
솔방울 주위를 한 바퀴 선회했다.
그리고 솔방울과 가지를 연결하던 유일한 생명 줄이 끊어지면서
솔방울은 지면을 향해 떨어졌다.
정작 날아가던 추는 솔방울 주위를
단지 그냥 선회했을뿐인데도 말이다.
마치 마술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추의 끝에 유성의 꼬리처럼 달린 은사가
그 예리함으로 솔방울의 끄트머리를 잘라 내었다.
처음의 빗나감은 결코 빗나감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소년의 검지가 까딱 움직였다.
그순간 얇은 직사각형 모양을한 추의 내부에서
새하얀 은색의 검 날이 반원을 그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검신의 날을 타고 날카로운 예기가 흘렀다.
다시 소년의 검지가 안으로 접히자 무형의 이끌림을 받은 듯
비도의 은빛 칼날은 섬광 처럼
솔방울의 몸을 꿰뚫은 다음 땅에 박혔다.
"휴, 성공이군. 씩!"
소년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어리더니
차츰 짙은 웃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오랜 고난과 연마의 시간, 눈물 없이 말할 수 없는
억압과 박해의 세월을 극복하고 마침내 소년은 해 낸 것이다.
물론 아직 완벽하고 완전한 성공은 아니었지만
그 동안이 성취와 비교해 본다면 이번 성공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비약적 성공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소년의 자신의 성공을 자축하는것도 잠깐,
비웃기라도 하듯 냉소가 들려왔다. 소년의 등 뒤였다.
"아직 멀었다, 멀었어!. 겨우 비뢰도(飛雷刀) 하나를 부린 것 가지고
그렇게 천방지축으로 좋아하다니. 그래서야 언제 나머지 아홉 개를
모두 다스릴 수 있겠느냐. 천년 만년 살면서 내내 수련만 할 생각이냐!"
이번엔 손목과 손가락이 함께 움직였다.
순간, 비도가 솔방울에서 빠지더니
자연스럽게 소년의 손으로 회수되었다.
비도를 회수한 소년이 뒤를 바라보자
거기에는 한손에 술병을 들꼬 째진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고 서 있는 노인이 있었다.
걸걸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사부님, 너무해요!. 제자의 첫 성공 정도는 축하해 줄수 있잖아요!
그렇게 옹졸해서야....."
소년이 뚱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사부라고 불린 노인은
눈꼬리를 하늘로 치켜 올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 류연아! 나이든 사부에게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이 사부가
나이먹다 체한거에 뭐 보태준거라도 있느냐? 그리고 새벽훈련 끝났으면
서둘러 일하러 가야될것 아니냐. 시간은 금이야 금!"
'쳇!사부가 제자나 마구 부려먹고...정말 사부 맞아?'
소년은 뚱안 얼굴이 되어 이런 말을 수없이 되뇌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뱉을 수는 없었다.
"알았어요,알았어. 가면 되잖아요."
불만스러운 투정을 내뱉은 후 비류연(飛流沇)은 산 아래를 향해
경공을 발휘하여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그 속도는 보는이의 감탄을
자아낼 만한 엄청난 빠르기였다.
"허허, 그놈 참. 벌써 비뢰도를 이렇게 정교하게 다루다니.....
현재의 내공 수위로는 불가능할 텐데, 거참 이상하군?
그건 그렇고, 벌써 7년 세월인가! 시간참 빠르군, 후후..."
이젠 능선 위의 점이 되어 버린 소년을 바라보며 노인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술병을 들어 기분 좋게 입을 적셨다.
알듯 모를듯한 미소가 얼굴 가득히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