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세컨드1 ♣
- 김경미-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다
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부모든 남편이든 친구든
봄날 드라이브 나가자던 남자든 여자든
그러니까 나는 저들의 세컨드야, 다짐한다.
아니, 강변의 모텔의 주차장 같은
숨겨놓은 우윳빛 살결의
세컨드, 가 아니라 그냥 영어로 두 번째,
첫 번째가 아닌, 순수하게 수학적인
세컨드, 그러니까 이번, 이 아니라 늘 다음, 인
언제나 나중, 인 홍길동 같은 서자, 인 변방, 인
부적합, 인 그러니까 결국 꼴찌
그러니까 세컨드의 법칙을 아시는지
삶이 본처인 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적자생존을 믿지 말 것 세컨드, 속에서라야
정직함 비로소 처절하니
진실의 아름다움, 그리움의 흡반, 생의 뇌관은,
가 있게 마련이다 더욱 그 곳에
그러므로 자주 새끼손가락을 슬쩍슬쩍 올리며
조용히 웃곤 할 것 밀교인 듯
나는야 세상의 이거야 이거
'세컨드'란 표현이 한국에만 있는 건지 외국에서도 그렇게 말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리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는 말인 건 확실하다.
'날 얼만큼 사랑해?'라고 묻는 말의 배후에는
'네가 제일이야!'란 말이 도사리고 있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탓인지
아이들도 태어나면서부터 제 형제들과 먼저 경쟁을 벌이려고 한다.
첫째가 둘째를 시기하고,
둘째는 셋째로부터 위아래로 치고 받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말씀들 하시지만
당하는 당사자로서야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생각해보면 난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도 첫 번째가 되어 본 기억이 없다.
우리 집안의 장남 자식이므로 장손으로서의 책무나 부담감은 백배지만,
든든한 배경이 되었어야할 할아버지가 요절하신 탓에
좋은 건 하나도 없고, 부담만 턱살처럼 늘어진다.
그래서 나는 시기와 질투를 숨기는 법을 어려서부터 익혀야 했다.
사실 이제는 그런 감정으로부터 어느 정도 초연해지기도 했다.
승자독식사회니까,
첫째가 된다.
1등이 된다는 건 그만큼 많은 자원을 차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승자가 된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고금의 진리가 증명하는 건,
물질적 자원의 풍요와 행복은
기초생활 보장의 차원을 떠나면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김경미 시인이 말하는 세컨드의 의미도 그것이다.
당당하게 나는 세컨드, 하류인생이라 말할 것...
"나는야 세상의 이거야 이거"하며 씨익 웃어줄 것...
나는 당신과 이 사회의 세컨드다.
그렇다고 내가 당신이나 이 사회를 질투할 것 같은가?
천만에 말씀, 변방에도 행복은 있다.
삽입곡 :Jacqueline Te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