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先生)이 아이를 체벌(體罰)하면 그 부모(父母)가
학교(學校)를 찾아와 항의(抗議)를 하고
체벌(體罰)한 선생(先生)을 거칠게 몰아 부치며
심하게는 당국(當局)에 처벌(處罰)을 요구(要求)하는
사태(事態)까지 벌어집니다.
이런 일로 인하여 교사(敎師)는
아이를 체벌 했다는 이유(理由)로
다른 학교(學校)로 전근(轉勤)이 되거나
불이익(不利益)을 받습니다.
이 시대(時代)에는 교권(敎權)도 살아지고
사제지간(師弟之間)이라는 말이 없어졌습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사랑 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제자(弟子)는 선생님을 부모(父母)처럼
공경(恭敬)하고 선생(先生)은 제자(弟子)들을
자식(子息)처럼 사랑해야 하는데
현실(現實)은 그렇지가 못한 것 같습니다.
제자(弟子)는 자기를 가르치는 선생(先生)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고
폭행(暴行)을 가하거나 막말이나 욕설(辱說)을 퍼 부면서
학생(學生)의 신분(身分)을 벗어나서
도덕(道德)이 결여된 삶을 살려고 합니다.
우리는 일찍이 정부(政府)의 주관(主管)으로
스승의 날을 제정(制定)했습니다.
그리고 스승을 공경(恭敬)하고 나를 가르치고
훈육(訓育)을 한 선생님을 오늘 하루라도
기리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弟子)들도 문제(問題)이지만
우리나라의 스승들도 문제(問題)가 많았습니다.
(아랫글중에서)

(스승의 은혜 노래)
사친회비(師親會費)와 월사금의 추억
글 조 처음
사람들은 부자(富者)가 되는 것을 원하고
아버지가 돈이 많은 것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돈을 잘 쓰고 무엇이 던지 사 달라고 하면
척척 사주는 아버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철이 없는 아이들의 바램이고
누구나 십대(十代)의 나이에 철이 들기 전에 겪었던 일들입니다.
돈을 잘 쓰는 멋있는 아버지의상이 부러울 때가
우리의 삶에서 제일 그리운 때입니다.
사람의 삶에서 가난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돈이 없는 아버지 아래서 자라라고 교육(敎育)을 받았다면
그 지긋지긋한 가난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추억(追憶)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술과 노름으로 방탕(放蕩)하게
생활(生活)을 한 사람들이 있다면 지난날을 생각만 해도
등허리에 소름이 끼칠 것입니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나라의 경제(經濟)가 좋지 않고
돈이 없으면 학교(學校)도 못가는 시절(時節)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初等學校)는 의무교육(義務敎育)이고
돈이 없어도 공부를 할 수 있지만 예전의 우리 나이들은
아무리 머리가 명석(明晳)하고 재주가 뛰어나도
돈이 없으면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의 초등학교(初等學校)전신(全身) 인
국민학교(國民學校)에서는
사친회비(師親會費)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매월(每月) 내는 돈인데 그 이전에는
사친회비(師親會費)를
월사금(月謝金)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돈을 아이들에게 징수(徵收)를 하는데
학급(學級) 담임(擔任)선생(先生)이
주도(主導)를 해서를 아이들을 돈을 가져 오라고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가정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부모에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게 전부입니다.
집에서는 갑자기 없는 돈이 갑자기 생길 리 없고
아이와 구두로 언제 준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학교(學校)로 가서 월사금(月謝金)을 주는
그 날짜를 이야기 합니다.
그 시절(時節)에 지금처럼 하얀 종이에
인쇄(印刷)가 잘된 종이에
고지서(告知書)가 만들어 진개 아니고
종이에 고지서(告知書)에 등사(謄寫)를 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매월(每月)얼마씩 내는 월사금(月謝金)이
농촌이나 빈민(貧民)에 해당 되는
서민층(庶民層)의 가정(家庭)에서는 힘든 부담(負擔)된
금액(金額)이었습니다.
이 시대(時代)에 그 시절(時節)의 이야기를 하면
지금의 아이들이 말의 뜻의 언어(言語)조차
알아듣기 어려웠습니다.
사친회비(師親會費)나 월사금(月謝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드물기보다
아예 그 말의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時節)에는 책가방보다 책보라고 해서
보자기에 책을 싸서 어께에 둘러메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책보란 책을 보자기에 쌋다고 해서 책보라고 했습니다!
6*25전쟁(戰爭) 후에 우리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오십년 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 책보를 기억(記憶) 할 것입니다.
이 달이 가정(家庭)의 달이고 내일이 15일 스승의 날입니다.
오래전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때리면 맞고 저항(抵抗)이나 대꾸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작은 체벌(體罰)을 해도 체벌(體罰)을 받은 그 부모가
학교(學校)를 찾아와 난리(亂離) 법석(法席)을 떱니다.
오늘날의 우리의 교육현장(敎育現場)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우리 시절(時節)에는 선생님한테
매 안 맞아 본 사람들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했습니다.
지금의 현실(現實)은 어떻습니까?
교권(敎權)이라는 것은 무너지고
사제지간(師弟之間)이라는
개념(槪念) 자체(自體)가 없어졌습니다.
선생(先生)이 아이를 체벌(體罰)하면 그 부모(父母)가
학교(學校)를 찾아와 항의(抗議)를 하고
체벌(體罰)한 선생(先生)을 거칠게 몰아 부치며
심하게는 당국(當局)에 처벌(處罰)을 요구(要求)하는
사태(事態)까지 벌어집니다.
이런 일로 인하여 교사(敎師)는
아이를 체벌 했다는 이유(理由)로
다른 학교(學校)로 전근(轉勤)이 되거나
불이익(不利益)을 받습니다.
이 시대(時代)에는 교권(敎權)도 살아지고
사제지간(師弟之間)이라는 말이 없어졌습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사랑 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제자(弟子)는 선생님을 부모(父母)처럼
공경(恭敬)하고 선생(先生)은 제자(弟子)들을
자식(子息)처럼 사랑해야 하는데
현실(現實)은 그렇지가 못한 것 같습니다.
제자(弟子)는 자기를 가르치는 선생(先生)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고
폭행(暴行)을 가하거나 막말이나 욕설(辱說)을 퍼 부면서
학생(學生)의 신분(身分)을 벗어나서
도덕(道德)이 결여된 삶을 살려고 합니다.
우리는 일찍이 정부(政府)의 주관(主管)으로
스승의 날을 제정(制定)했습니다.
그리고 스승을 공경(恭敬)하고 나를 가르치고
훈육(訓育)을 한 선생님을 오늘 하루라도
기리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弟子)들도 문제(問題)이지만
우리나라의 스승들도 문제(問題)가 많았습니다.
선생님들 자신(自身)이 노동자(勞動者)라고 해서
스스로 품위(品位)를 낮추었습니다.
선생님 들 자신이 전국(全國) 교원(敎員)노조(勞組)를 만들어
노동자(勞動者) 행세(行勢)를 했습니다.
정치(政治)나 사회(社會) 전반(全般)에 걸쳐
간여(干與)를 하며 투쟁(鬪爭)이란 표현(表現)을 썼습니다.
제자(弟子)들을 볼모로 잡고 정부(政府)와 맞섰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진보적(進步的)
성향(性向)의 교육(敎育)을 시키고
어느 교사(敎師)는 아이들에게 이념교육(理念敎育)을 시켜서
교육(敎育)의 질을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스승이 되는 것을 포기(抛棄) 했습니다.
그 중에도 여기에 합류(合流)하지 않고
끝까지 교단(敎團)을 지키며
제자(弟子)들을 사랑 하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행(多幸)스럽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교사(敎師)는 노동자(勞動者)가 아닙니다.
교사(敎師)는 이 나라의 표상(表象)이고
우리들의 미래(未來)입니다.
곡식(穀食)을 잘 가꾸어 가을 들어 추수(秋收)할 때에
창고(倉庫)에 걷어 들이는 농부(農夫)와 같습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옵니다.
전교조(全敎組)가 있다 해도 우리는 스승을
존경(尊敬)하고 사랑 합니다.
미래(未來)의 아이들 때문입니다.
과욕(過慾)을 버리고 초심(初審)으로
돌아가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선생님은 정치인(政治人)이 아닙니다.
정치인(政治人)이 될 수도 없고
정치인(政治人)이 되서도 안 됩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선생님은
중요(重要)한 일부분(一部分)을 차지합니다.
월사금(月謝金)을 내고 공부(工夫)하던 때의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월사금(月謝金)은 세월(歲月)이 지난
추억(追憶)의 그림자이고
그리움의 산물(産物)이고
공경(恭敬)의 대상(對象)이기도 합니다.
스승의 날에 師親會費 월사금(月謝金)이 모두 그립습니다.
선생님 감사(感謝) 합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종(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