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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날이 오기 전에 아무도 심판하지 말라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선을 행한대로 상을 베푸시고, 악을 행한대로 심판하실 것이다. 다만 순서만 항상 유대인일 뿐 심판의 기준은 동일하다. 그날에 우리를 심판하실 분은 예슈아시다. 여호와께서는 예슈아를 통해 복음에 따라 심판하실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판단을 받거나 사람에게 판단을 받는 것은 중요치 않고 매우 사소한 일이다. 심지어 자아 비판으로 정죄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해서 의롭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우리를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에 감추인 것까지 알 수 없다. 우리 안에 감추인 것도 모르는데 어찌 다른 사람의 감추인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물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마음의 중심까지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판단받는 것이 중요치 않은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알 지 못한채 판단할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비판적 사고를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판단의 한계를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고전4:3-5).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전4:3-5)
2. 예슈아를 재판장으로 정하셨다
우리에게는 의로운 재판장이 계신다.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재판도 없이, 최악의 범죄자처럼 취급받아, 불명예스러운 십자가 형틀에서 사형을 당하셨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의로운 죽음이며, 동시에 가장 억울한 사건이다. 명백한 의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처형해버린 인류 최악의 범죄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예슈아를 다시 살리셨고, 예슈아는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부당하게 처형당하신 예슈아를 재판장으로 세우셨고, 제자들을 통해 그 사실을 증언하게 하셨다.
세상에서는 가장 억울하셨던 분이지만, 그 날에는 의로우신 예슈아께서 모든 불의를 재판하실 것이다. 그리고 예슈아와 함께 고난당한 모든 억울한 자들의 원수를 갚아주실 것이다 (행 10:39–42).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행10:39-42)
3 율법이 가진 영광이 있다
율법(토라)을 가진 자라면, 그들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들은 율법의 가르침을 통해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고, 진정한 것을 보지 못하는 자들을 인도하며, 어둠에 있는 자들을 빛으로 인도한다. 또한 율법에 담긴 진리와 지식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가르치고, 어린 신앙을 가진 자들을 위한 선생님이 되어준다.
이처럼 율법에는 영광과 빛과 진리와 지식이 있다.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는 빛과 지혜가 율법에 있지만, 만약 율법을 가졌다고 하는 자들이 맹인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가 부패하면, 그는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게 되는 것과 같다. 문제는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맹인된 교사에게 있는 것이다. 율법도 마찬가지이다. 율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율법을 가르치는 자가 부패하였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4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말라
사람이 부패하는 이유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기 때문이다. 예슈아께서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시 많은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온 예슈아를 영접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슈아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오셨다면 영접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여호와께로 부터 오는 영광만을 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이므로 예슈아를 믿지 못한 것이다. 즉 예슈아와 다른 마음과 생각을 가진 자들이었다. 예슈아께서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셨다. 이 말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고 어울린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모이고 서로를 지지하고 세워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는 관심이 없고 스스로가 영광을 받기 원하는 자들이었으므로 예슈아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예슈아께서도 이들처럼 스스로 영광을 취하고 자신을 높이는 자였다면 이들은 예슈아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공감하고 지지했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시며 심지어 모세도 믿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셨다. 이들은 자신의 마음 중심을 알 지 못했지만 예슈아께서는 아셨다. 그래서 이들의 마음 중심을 판단하시고, 모세를 진정 믿었다면 예슈아도 믿었을 거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들은 율법을 가진 자이고 가르치는 자이다. 그러나 진짜 믿는 자들은 아니었다.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모세를 믿지 않고 그 글도 믿지 않는 자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하지 않았던 자들, 이들은 자기 자신만 중요하고 자신의 영광만 중요했던 자들이다.
이러한 왜곡된 마음은 온통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에서 온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유익을 구하며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예슈아의 믿음이 이들에게는 없던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우상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말씀)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이 올바라야 말씀이 바르게 이해되고 왜곡되지 않는다(요5:41-47).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요5:41-47)
5.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들
당시의 종교인들은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 자들이었다. “도둑질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도 도둑질을 행하고, “간음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간음하며, “우상을 가증히 여기라”고 하면서도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한다고 책망받았다. 그들은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그분의 영광을 가리는 자들이었다. 이처럼 율법을 자랑스러워하면서 동시에 율법을 범하는 외식된 모습으로 인해,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여호와의 이름이 모독을 받고 있다고 책망하신 것이다.
6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이 말씀에 백성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라고 묻는다. 말라기 선지자는 우리가 여호와의 것을 도둑질하면 여호와를 떠난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도둑질한지 모르는 것이다. 여호와의 것은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다.
우리가 십일조와 봉헌물(감사헌금)을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재정을 주시는 분도 여호와시고 재정의 주인도 여호와시므로 모든 재정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 십일조이다. 최초 십일조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것이고 멜기세덱은 하늘에 속한 대제사장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하늘에 속한 예물이며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주신 재물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모두 써버리는 것을 책망하신다. 그로 인해 우리의 기업과 산업에 메뚜기가 몰려와 소산을 먹어버리게 되고, 포도나무의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져 우리의 노력이 헛되게 되며, 우리 땅이 황폐해지는 결과를 맞게 된다. 이는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소산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십일조를 아까워하기 때문에, 지켜 주시지 않는 재앙을 맞는 것이다. 이는 믿음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아야 한다. 그 생각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재정이 다른 곳으로 새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내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하늘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시험해 보라.” 물론 이것은 맹인의 처소를 위해 무분별하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을 분별하여 드리는 것 또한 복을 받는 중요한 비밀일 것이다. 우리는 온전한 마음으로 여호와께 돌아가야 한다(말3:7–1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3:7-12)
7 외식하면 어리석은 맹인이 된다
사람이 처음부터 맹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죄와 타협하고 자신의 영광을 구하면서 맹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들은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면서도 겉으로 거룩해 보이는 것이 중요한 자들이다. 즉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이다. 이로 인해 율법의 더 중요한 정신인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리고 십일조만 하는 자들이다. 십일조는 재정의 축복의 비밀이 있으므로 자신의 복을 위해 십일조는 하는 자들인 것이다. 이들을 향해 예슈아께서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를 삼키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다.
이런 자들은 율법의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여 어리석은 맹인들이 되고 눈 먼 인도자가 되어, 성전보다 성전의 금이 더 중요한 자신의 유익을 따르는 자들이다. 이들이 아무리 율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들은 천국 문을 닫고 자신도 들어가지 않으며, 자신을 따르는 자들마저 들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자들이다(마234:13-26).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23:23-26)
8 지식의 열쇠를 제거한 자들
율법을 자랑스럽게 가르치면서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외식하는 율법 교사들을 향해, 예슈아께서는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린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마저 들어가지 못하게 만든다. 즉, 천국문을 닫아버리는 자들인 것이다. 여기서 '가져가다'는 헬라어 '아이로'(αἴρω)이며 '취하다', '치워버리다', '없이 하다', '제거하다' 등의 뜻이다. 즉 '가져가다' 보다는 '치워버리다' 혹은 '제거하다'라는 뜻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영어로는 'taken away'로 '치우다, 없애다, 제거하다'의 뜻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처럼 외식하는 율법교사들은 스스로 천국에 들어가는 지식의 열쇠를 제거해버리는 자들이다. 예슈아께서 당시 실제 권력을 잡고 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신랄하게 비판하셨다. 이에 그들은 예슈아께 거세게 달려들어, 그분의 말에서 트집을 잡고자 끊임없이 시도했다. 예슈아께서는 그들의 마음 중심을 꿰뚫고 책망하셨지만, 이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말에만 집중하여 정죄하려 했다. 언제나 악한 자들은 의로운 자들을 말로 트집 잡아 정죄하려 한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마음 중심의 깊은 것을 볼 눈이 없기 때문이다(눅11:51-54).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눅11:51-54)
9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말세가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랑하며 교만하고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하지 않으며 거룩하지 않고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않고 모함하고 절제하지 못하며 사납고 선한 것일 좋아하지 않으며 배신하고 조급하며 자만하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사랑하고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나, 거룩함이 능력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위선자들이다. 우리는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야 한다.
이들은 특히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인하여 자신들의 추종자를 삼고 유익을 취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항상 배우기는 하나, 마음이 바르지 않기 때문에,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해 지식의 열쇠를 취하지 못할 것이다. 우린 이런 자들에게서 돌어서야 한다. 여호와께서는 마음이 바르지 않은 자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숨기시는 분이시다(딤후3:1-7).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딤후3:1-7)
10. 보지 못하는 것이 심판이다
예슈아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 중 하나는 심판하시기 위함이다. 물론 행위에 따라 심판하시는 일은 마지막 날에 있을 일이지만, 초림 때의 심판은 다른 성격을 가진다. 그 심판은 보는 자들을 맹인이 되게 하고, 맹인들을 보게 하시는 심판이었다. 예슈아께서는 이를 나타내기 위해 많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는 표적을 행하셨다.
당시 종교인들은 스스로를 ‘보는 자’라고 여겼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진리를 알고, 바른 길을 따라가며, 자신들이 빛에 속한 자들이라고 자처했다. 그러나 그들은 외식함으로 인해 스스로 맹인이 되었고, 결국에는 보지 못하는 자들이 되었다. 예슈아께서 그들에게 오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메시아로 볼 수 없었고, 오히려 그로 인해 완전한 영적 맹인이 되었다. 예슈아는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신 것이다.
반면, 세상적으로 보지 못한다고 여겨졌던 맹인들, 곧 율법에 무지하다고 평가받던 자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깨닫는 겸손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예슈아를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오히려 진정으로 보는 자들이 되었다. 결국 당시 ‘보지 못한다’고 여겨졌던 자들이, 예슈아로 인해 진정 보는 자가 된 것이다.
결국 이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천국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는 것 자체가 심판이라는 사실이다. 심판은 헬라어 '크리마'(κρίμα)로 '복수', '벌', '형벌', '(범죄에 따른) 결정' 등의 뜻이다. 즉 율법을 통해 천국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지식의 열쇠를 얻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벌일 수 있다. 우리가 율법이 가르치는 샤밧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절기를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아직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상태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런 상태에서도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거나, 본다고 가르친다면 그 죄는 사함받지 못하고 그대로 남게 될 것이다. 예슈아께서 말씀하심과 같다. “너희가 맹인이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 9:39–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요9:39-41)
11. 맹인이 맹인을 인도한다
여호와께서 심지 않으신 것은 뽑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자라 해도 우리가 직접 심판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게 되며, 결국 함께 구덩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맹인된 인도자나 그를 따르는 자 모두가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맹인된 인도자들은 특히 어리석고 죄에 빠지기 쉬우며 여러 욕심에 끌리는 여자들을 미혹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해주고,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인도자에게 끌리고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예슈아께서는 이러한 맹인된 인도자들을 분별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들은 겉으로는 거룩한 척, 깨끗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계명과 율법을 지키지 않고, 인간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쉽게 버리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추종자가 아니라 사람의 추종자인 것이다. 그래서 예슈아의 제자들이 전통을 따르지 않고 손을 씻지 않았다고 비난을 받았을 때, 예슈아께서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손을 씻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마음의 중심이 바르지 않으면 그런 자가 맹인된 인도자가 되고, 그런 맹인 인도자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
또한 외식하는 맹인된 인도자들을 비난하고 정죄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주께서 그날에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들의 마음 중심까지 판단하여 심판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서 떠나는 것이다(마15:13–20).
한편, 어떤 사람들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오해해, 무엇을 먹든 상관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된다는 가르침이 아니다. 음식 규례에 관한 교리가 아니라, 외식하는 전통주의를 책망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마15:13-20)
12. 스스로를 높이지 마라
예슈아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근거로 바리새인들이 전통을 지켰으므로 우리도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계명을 지키지 않고 전통을 지킨 것은 그들의 위선적인 행위였다. 회당에서는 모세의 율법을 읽고 가르치면서, 실제 삶에서는 전통을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의 계명은 뒷전으로 미뤄둔 자들이었다. 예슈아께서 말씀하신 “그들이 말하는 바”는 곧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고, 본받지 말라고 하신 것은 그들의 전통주의적이고 외식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전통주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교만한 자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외식하는 자들이었고, 자신을 높이는 자들이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거룩한 척하고,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을 즐겼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한 분 선생만 계시며, 아버지도 한 분, 지도자도 오직 한 분이시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슈아처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슈아처럼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역하며, 오직 그분의 영광만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땅에서 자신을 높이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조차 미워하여 스스로 낮추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높이는 순간, 우리는 맹인이 되며 외식하는 자가 되고, 천국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날에 주께서 우리를 땅끝까지 낮추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두려워하고, 항상 주 앞에 겸손해야 한다(마23:3–11).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23:3-11)
13. 여호와께서 교만한 자를 혐오하신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것은 일곱 가지가 있다. 여기서 ‘미워하다’는 히브리어 '토에바'(תוֹעֵבָה)로, '구역질 나는 것', '혐오', '가증함', '우상숭배', '가증한 관습' 등의 의미를 가진다. 또한 ‘싫어하다’는 히브리어 '사네'(שָׂנֵא)로, '증오하다', '미워하다', '원수가 되다' 등의 뜻이다. 즉 여호와께서 구역질 날 정도로 혐오하시고 원수로 여기실 정도로 증오하시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그 중 첫 번째는 ‘교만’이다. 교만은 히브리어로 '룸'(רוּם)이며, '높다', '스스로를 높이다', '자신을 칭찬하다', '오만한', '거만한'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교만은 여호와 앞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태도이며, 그분의 미움과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또한 여호와께서 혐오하시고 싫어하시는 다른 죄악들로는 거짓말을 하는 자,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자, 거짓 증인,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 등이 있다. 이 모든 죄들은 공통적으로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려는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될 수 있다. 결국 교만은 다른 모든 악의 뿌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높이려는 교만한 마음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천사장이었던 루시퍼도 하늘에 자신의 자리를 높이려 하다가 하나님께 대적하게 되었고, 결국 스올, 곧 지옥의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형벌을 받았다. 교만은 그처럼 하나님의 보좌를 탐내는 죄이며, 결국 파멸을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성경의 번역 문제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루시퍼를 ‘계명성’으로 번역하였고, 요한계시록에서 예슈아도 ‘계명성’ 또는 ‘새벽별’로 번역되어 있어, 많은 사람이 루시퍼와 예슈아를 동일하게 혼동할 수 있다. 그러나 영어 성경에서는 이사야 14장에 등장하는 루시퍼를 “Lucifer, son of the morning(아침의 아들 루시퍼)”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그 히브리어는 '헬렐'(הֵילֵל)이다. 이는 ‘빛나다’, ‘자랑하다’, ‘소란스럽게 하다’, ‘허세부리다’, '지껄이다', '(떠들썩하게)어리석어 보이게 하다'는 뜻을 가진다. 즉, ‘계명성’이라는 번역은 예슈아(새벽별)와 루시퍼(아침의 아들)를 혼동하게 할 수 있는 잘못된 번역이며, 루시퍼는 어디까지나 스스로를 높이고자 했던 교만한 자의 상징이다. 반면 예슈아를 상징하는 새벽별은 끝까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킴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셨다. 즉 겸손의 상징이며 본보기이다. 이렇게 상반된 대상인 아침의 아들과 새벽별을 동일하게 번역한 것은 빠른 시일내에 교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사14:12-15)
샤밧 예배: 토요일 10시반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깃발 재작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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