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강론>(2026. 2. 21. 토)(루카 5,27ㄴ-32)
복음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27ㄴ-3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27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28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29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30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모든 사람’의 회개와 구원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1) 하느님은, 죄인들이 모두 회개해서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 돌아서라. 너희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에제 33,11)”
“의인이 자기 의로움을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는 그 불의 때문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악인이 자기의 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그것들 때문에 살 것이다(에제 33,18-19).”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고 오신 분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7)”
마태오복음 18장과 루카복음 15장에 있는 ‘되찾은 양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애쓰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비유입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은 글자 그대로 ‘모든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유다인들이나 그리스인들이나 다 같이 죄의 지배 아래 있다고 고발하였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의로운 이가 없다. 하나도 없다. 깨닫는 이 없고, 하느님을 찾는 이 없다. 모두 빗나가 다 함께 쓸모없이 되어 버렸다. 호의를 베푸는 이가 없다. 하나도 없다.’(로마 3,9ㄹ-1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로마 3,22-24).”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세리들도 만나셨고, 바리사이들도 만나셨습니다. “우리만 만나셔야 한다. 저 사람들은 만나시면 안 된다.” 라고 말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일’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2)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이지만,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예수님도 어떻게 하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강제로 구원하는 것은 구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착한 목자는 ‘잃은 양’ 하나를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만,
스스로 떨어져 나간 양은,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양은, 데리고 갈 수가 없습니다.
배반자 유다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배반자 유다도 ‘잃은 양’이었지만, 그 자신이 ‘스스로 떨어져 나간 양’이 되었고, 결국 멸망을 향해서 갔습니다.
<배반자 유다는 자기 죄를 뉘우쳤습니다. 그러나 그 뉘우침이 회개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마태 27,3-5).
유다의 뉘우침은 그냥 ‘후회’입니다. 아마도 지옥은, “나는 죄가 없다.” 라고 주장하는 죄인들과 자기 죄를 뉘우치긴 하지만 회개는 하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셨다는 말은,
‘바로 나를’ 구원하려고 오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는 구원받아야 할 존재일 뿐이다.”를 인정하는 것이 믿음과 회개의 출발점입니다.
4)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우리가 특별히 더 점검하고 반성해야 할 것은,
자기의 내면에 숨어 있는 ‘위선’입니다. 주님에게서 떨어져 있으면서도 함께 있다고 착각하거나, 아니면 항상 주님과 함께 있다고 우기거나...... 말로는 “나도 회개해야 할 죄인이다.” 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특별히 무슨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회개하는 척 하는 것과 진짜 회개를 구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나는 진짜로 ‘밀’인가?”
“아니면 밀처럼 보이는 ‘가라지’인가?” 위선과 교만과 자만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기도.’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강론 요약]
모든 사람의 회개와 구원: 하느님의 자비와 우리의 응답
1. 하느님의 뜻: "단 한 사람도 잃지 않는 것"
하느님은 악인의 죽음이 아니라 그가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에제 33,11). 예수님께서는 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러 오셨으며, ‘되찾은 양의 비유’처럼 소외된 이나 죄인(세리와 바리사이 모두)을 차별 없이 만나셨습니다. 구원은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죄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을 향한 하느님의 거저 주시는 은총입니다.
2. 구원의 한계: "거부하는 자유는 강제할 수 없다"
예수님은 모든 이를 구원하려 하시지만, 인간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십니다. 길을 잃은 양은 찾아 나서시지만, 스스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공동체를 떠난 양(배반자 유다의 예)을 강제로 끌고 가실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는 단순한 '후회'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며, 지옥은 어쩌면 죄가 없다고 우기거나 후회만 할 뿐 돌아서지 않는 이들의 장소일 수 있습니다.
3. 믿음의 출발: "나는 구원이 필요한 존재라는 고백"
'모든 사람'의 구원은 곧 '나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내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나는 주님의 구원이 없으면 안 되는 존재"임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이 바로 회개와 믿음의 시작점입니다.
4. 사순시기의 과제: "위선을 벗고 기도로 깨어 있기"
우리는 겉으로 회개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죄를 부정하는 '위선'에 빠지기 쉽습니다. 내가 '밀'인지 아니면 밀을 흉내 내는 '가라지'인지 스스로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만과 자만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진실한 회개로 나아가야 합니다.
첫댓글 ‘기도.’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