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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소통광장 구한말 북경의 만주족 청나라는...가짜였단 증거.
궐한 추천 0 조회 405 13.11.17 13:11 댓글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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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1.17 14:40

    첫댓글 님의 글을 읽다보면... 보여집니다. 생각됩니다. 예상합니다. 는 문장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를 뭐랄수는 없죠. 님의 상상을 얘기한 것이니까... 하지만 하나는 짚겠습니다... ㅇ을 보고... 당시인들은 뭐를 ㅇ으로 표현했을까를 고민해야지... 달이나 빵으로 결론 지어놓고... ㅇ을 설명하려드니 역설만 난무하는 것입니다.

  • 13.11.17 14:44

    이는 꼬리를 갖고 몸통을 증명하겠다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 작성자 13.11.17 15:37

    그럼, 님께선 무슨 역사서를 등기소에서 확인해준 정확한 문서로 확언할 수 있으십니까...?
    개인적 확신이 있어도 예상한다, 보여진다고 해야지...단정하는게 더 건방진거라 보지 않으시는지요...?
    무슨 역사를 증명할 때 그 꼬리라도 분명 아닌게 들어나면...그 꼬리의 몸통도 가짜란 반증아닐까요...?
    정확히 전체가 완벽히 가짜란 등기부등본이라도 있단 말씀이신지요...?
    그럼, 동북삼성과 한반도만이 고려와 조선였단 명확한 증거는 있으신지요...?
    님께서도 그저 여러 유물적 증거로 예단하시는거고...
    그게 꼭히 동북삼성에 정확한 국경선이 있단 등기부등본도 없긴 마찬가지 아닐까요...?

  • 13.11.17 17:50

    님이 착각하신 내용을 지적하지요... 사서는 개인 감정이 개입할 여력이 많으므로... 참조는 하되 증거로 확정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취지의 글을 이미 올렸습니다. 이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님이 거론한 등기부등본... 대한민국 법은 등기부등본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등기부등본은 증빙에 필요한 하나의 서류일뿐이지... 그 자체가 진실만을 담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법 정신입니다... 사서도 같은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 작성자 13.11.18 01:51

    @金子 너무 철학적이랄까...?
    민사재판문서 같달까...?
    머리가 깨질듯 합니더...ㅡ. .ㅡ

  • 13.11.18 08:23

    그럼, 이건 어떤가요?... 고지도 중에서 독도를 표기한 것도 있고, 표기하지 않은 것도 있는데... 그때마다 독도가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고는 생각지 않겠죠?... 이게 집필자의 의도라는 겁니다... 필요하다 싶으면 넣고... 간단히 생각하거나, 몰라서 안넣고.

  • 작성자 13.11.18 10:05

    @金子 독도정도의 섬은...세계지도 고지도상에선 그냥 암초점도입니다.
    도(島)도 아니고...섬과 암초를 왔다갔다 하는 정도의 땅이라 이백해리 같은 해양법들이 없을땐
    그냥 의미없는 작은섬이였단 겁니다.
    현재는 그 기준으로 해양영토가 확정돼니 죽기로 지켜야 겠지만여...

  • 작성자 13.11.17 15:45

    꼬리를 잡아보니...분명 호랑이꼬리가 잡혔는데...
    몸통이 호랑이가 아니란 확률이 더 많겠습니까...?...토끼새끼일 확률이 더 많겠습니까...?
    꼬리를 잡으면 몽통은 뻔해 지는것 아닐까요...?
    토끼가 호랑이 꼬리를 달고 있는걸까요...?
    왜...?...누가...?...뭘 위해서...?
    어떤 세력이...
    고려와 조선이 대륙에도 있던 대제국이라고... 역사를 왜곡해 줄 써비쓰를 해 준다 보시는지여...?
    고려와 조선의 영토를 한반도로만 왜곡시키려하던게...
    통상적 일제와 그 하수인들인 역사왜곡자들의 목표 아니였던가여,,,?

  • 13.11.17 16:06

    당신이 호랑이 꼬리를 잡아서 이게 호랑이구나 라고 했을땐 호랑이 배설물에 당신 뼈다귀만 남을때.

  • 작성자 13.11.17 16:17

    나름 멋진 비유를 하셨습니다.
    호랑이 조심하겠습니다.

  • 13.11.17 17:46

    꼬리를 잡았으면 몸통을 찾아 보시지요... 중원 어디에 ... 이곳이 한양이다... 라고 확정할 수 있는 곳이 발견되었나요?... 또 개경 터는 어디로 확정할 수 있나요?...... 내 주장은 영국의 런던처럼...수도는 한반도에 있되... 중원 대륙 상당부분을 한겨레가 지배했다는...이른바 대륙경영설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하(상)나라와 은나라의 역사는 한겨레의 영향권에 있던 역사임은 분명합니다... 그 후에도... 한나라와 수나라가 망한 것도 한겨례의 공격을 받은 탓입니다... 이런 사관이 님들이 주장하는 대륙사관보다 옹졸해 보입니까?

  • 작성자 13.11.17 21:16

    @金子 제 글을 않 보셨군여...?
    현재에도 그렇고...중국 고지도엔 늘상 현 호북성 무안이 한양(漢陽)이라고 수도없이 표기됐습니다.
    그 서북 상류가 한수(漢水)...그 서남상류가 강수(江水)...이게 합친 한양 동부부터 양자강...
    그러나 무안은 조선의 남쪽 한양같고...원 북악남부의 한성은...한수의 더 상류 화산의 서쪽 지류인 태백산 남부 한중(漢中)일대라고 전 예상합니다.

  • 작성자 13.11.17 21:17

    @궐한 그 한중주변 안강도 그 후보지인데...
    그 한중과 안강엔...수원,강원,강릉,한강대교,한남...등등...현 서울의 한강지역과 유사함 지명들 천지입니다.

  • 작성자 13.11.17 21:15

    @궐한 꼬리를 잡았으니 몸통을 잡아 보란 금자님의 격려 감사합니다.
    힘을 얻었으니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13.11.18 01:32

    제 말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요... 사서는 집필자의 개인 감정이 들어있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없다는 것 입니다. 고지도도 사서의 일종입니다. 지명이 비슷하다고해서 그곳이 한양이라 우기는 건 잘못이라는 겁니다. 그곳이 맞다면 그에대한 유적이나 유물이 현 서울보다 더 많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등기부등본이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를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 13.11.18 01:49

    @金子 서울이 한양이라 기록됀 고지도가 많은지...
    무안이 한양이라 기록됀 고지도가 많은지... 객관적으로 조사 좀 해 보십니오...
    서울은...킹도토우(경기도)...경도(京都)..한성(漢城)...왕경(王京)...북경(北京)등등... 왔다갔다 천차만별인데...
    무안은 시종일관 내내 한양(漢陽)으로 표기됐습니다.

  • 13.11.18 02:15

    궐한님 한양은 현 서울이 맞습니다. 님의 주장을 받아들인다해도 현 경복궁은 대원군이 중축이든 신축이든 한게 맞습니다.
    또한 최소한 조선중기까지는 현 한양이 현 서울이 맞습니다.
    어느 집안이든 족보가 있고 가문의 역사가 있습니다.
    전 우리 집안의 역사를 보고 최소한 조선 중기까지 한양이 현 서울이 맞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단!!! 이씨조선초기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 우리의 영토가 쪼그러진게 아마 인조때가 아닌가 사료 됍니다.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시길...
    참..
    조기 윤복현이란 인간이 전에 몇번 댓글로 대화했는데 저의 집안 사람이더군요..

    ㅠㅠ

    죄송합니다.

  • 작성자 13.11.18 02:36

    @하이고 서울이 사서가 말한 한양이려면...서쪽인 서대문방향에 큰 산이 있어야 합니다.
    현 서울은...텅빈 언덕빼기밖엔 없습니다.
    무학대사가...서쪽 인왕산을 주산으로 북쪽 백악을 좌청룡...남쪽 목멱산을 우백호로 하고...
    유일하게 트인 동남쪽 향으로 한양을 배치하자 했답니다.
    그런 지형은...한수가 있는 한중지역이 딱입니다.
    쪼한 남한산성...기록엔 한수의 북쪽에 있다 했는데...경기도 남한산성은...남쪽에 있답니다.
    기록같이 깍아지른 고바위절벽도 아니고여...

  • 13.11.18 02:44

    궐한님 그건 조선초기 기록이지요..
    전 조선초기에 대해서는 유보합니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우리의 영토는 분명히 쪼그라들었습니다.

    역사왜곡을 가장 많이한 왕이 인조입니다.

    좀더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한듯 합니다.

  • 작성자 13.11.18 02:48

    @하이고 인조때는 서북도를 다 빼앗겨서...청해성(원조 해서지방) 동부인 황하 동부로만 몰렸다 보이고...
    태평천국에 밀리고선 원조 경성인 북경성에 모든 아세아 왕조들이 대륙조선 중심으로 짬뽕이 돼어 몰렸다가...
    동북삼성에 그 격리수용지식의 만주국이 세워지고...한반도론 대한제국 친일파들 위주로 대원군계가 들어온다 봅니다.

  • 작성자 13.11.18 02:52

    @궐한 서울에 없던 경복궁을 만들고 그런게 아니라...
    오히려 안국동이 서울의 본궁이고...서울도성은 무지 컷는데...청일전쟁으로 다 페허가 됀걸...
    안국동 석재들 끌어다가 경복궁 수리와...친일파 짝퉁 순종인 이준영이의 새 궁전인 덕수궁 석조전 건설...
    일제 총독부,은행,남산신사등의 건설에 썼다 보입니다.

  • 13.11.18 02:58

    궐한님 전 어렸을때부터 역사에 목마른 사람입니다.
    1985년인가 그때 전 외할머님한테 질문을 했지요..
    <할머니 간도땅이 어느나라 땅인가요?>
    그러자 단 한마디로 대답하시더군요.
    <우리땅이지!!!>
    전 사실 깜짝 놀랬습니다.
    물론 여러가지 질문을하고 외할머니께서 대답하는 과정에
    그당시는 간도는 우리 땅이고 일제가 만주국을 세워 간도를 만주국에 편입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님!!!

    만주국을 부정하면 님은 일제가 주장하는 바와 똑같은 주장을 하시는 겁니다.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 작성자 13.11.18 03:16

    @하이고 조금 답답해 지려 합니다.
    만주국 자리인 동북삼성은 당연 한반도 소속 고려땅입니다.
    고지도들에도 다 그렇게 나옵니다.
    문젠 이성계의 그 삼한조선인 진단(震旦)이자 진국(辰國)인 진나라(지나)의 본토가 한반도가 아니라...
    삼국유민들과 발해 금나라 거란 몽골인들의 피란지가 한반도 고려란 제 생각입니다.
    고지도에 그렇게 나와여...
    발해,금나라,거란등은 모두 자기들을 고려라 했답니다.
    몽골리아도...엄밀히 보면 몽고려(말갈고려=무쿠리)란 뜻이고여...
    고구려는 고쿠리...

  • 13.11.18 03:34

    궐한님 전 근현대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님께서는 지금 고려니 고구려를 말씀하시고 있지요..
    분명한것은 현재 경복궁은 대원군시대에 중측이든 신축이든 이루어 졌고 거기에 대해 아무도 부정을 하지않습니다!

    그리고 전 저의 할머니께서 저 한테 거짓말했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분들은 한글도 모르는 분들입니다.

    제가 하고픈 말은 조선초기나 고려 아니면 그 전 시대라면 님의 말씀이 맞을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점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전 이만 ^^~

  • 13.11.18 09:05

    대륙근세조선이 사실이라면 진실을밝혀줄 열쇠가되긴합니다 서안에있다가 북경에 있다가 현 서울로 옮겨졌다니 이런얘기들이있지만 확실히 애매모해하죠

  • 13.11.18 14:20

    궐한님/ 어지간하면 댓글을 달지 않으려 하는데... 팩트가 나와있는 것까지 왜곡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계속 댓글을 답니다...임진왜란때 불탄 경복궁을 흥선대원군이 중건한 해가... 1865~1868년이고... 청일전쟁이 벌어진 해가 1894년입니다... 청일전쟁 때 불탄 경복궁을 대원군이 중건했다함은 어불성설이 됩니다.

  • 작성자 13.11.19 08:40

    대원군이 재건한 경복궁은 현 서울경복궁이 아니라니깐 자꾸 이러십니다.
    자금성 중 중심황궁이라고 전 주장한 겁니다.
    서울 경복궁은 청일전쟁으로 폐허가 됀 서울 안국동을 중심도성으로한 뭔 왕조나 제후의 왕궁 중
    서쪽 건물이란 거고여...계속 전 조선의 중심을 대륙으로 말을 하는데...님께선 계속 한반도 서울로 기준하니 해석이 달라지는 겁니다.

  • 13.11.19 09:42

    님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추려면... 이성계부터 누구까지의 묘는 서안에 있고... 그 이후부터 적어도 정조의 묘는 북경과 가까운 곳 어딘가에 있어야... 님의 주장이 완성됩니다... 그에대한 답을 해보시지요.

  • 작성자 13.11.19 11:09

    @金子 서안이아니라 한중(漢中)..이후는 무안이라니깐여...
    서안은 고려 개경(개봉)의 서도인 서경인 것이고여...
    그 왕들의 구체적 묘지까지도 저보고 일일이 증거해 내라고여...?
    저를 뭔 신으로 착각하시는가 보신데...저도 인간입니다...차차 하나씩 같이 찾어 보십시더~...ㅡ. .ㅡ
    독살됀 광서제여,,,
    전 커피사건으로 폐인이됐다 이미 절명한 순종이라 보고여...
    한반도 서울 덕수궁에서 내관이 순종대신 즉위했단 그 순종은...가찌순종 이준용이 아닐까라 강력히 의심합니다.

  • 13.11.19 13:41

    님이 증명하지 못한 조선의 왕들은 무덤이 모두 서울을 중심으로... 한반도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후와 빈, 기타 후궁들의 무덤까지 한반도에 있는데... 뭘 어디서 찾는다는 말씀인지요?

  • 만주족 청나라도 중앙아에 있었고...(궐한)//만주족 청나라는 명나라가 건축한 북경의 자금성를 접수하고 중국대륙을 통치하게 되었죠. 청나라가 중앙아시아에 존재했다고 주장하면 미친 소리라고 할 겁니다 ㅋ//청나라는 1616년에 여진족의 누르하치가 심양에 건국한 ‘금’(후금)에서 시작하여, 훗날 ‘청’으로 국호를 바꿨다.

    아무르 분지(헤이룽 강변)에서 탄생한 청나라는 초기에는 훌륭한 황제들(강희제, 건륭제)이 통치했다. 명나라뿐 아니라 주변의 몽골, 위구르, 티베트를 모두 정복하여 몽골 제국(원나라)을 제외한 역대 중국 왕조 중에서 최대 영토를 보유하면서 가장 가장 오랫동안 중국을 지배하였다.

  • 1616년 만주족인 누르하치(재위: 1616~26년)가 만주를 통일하고, 예전에 만주족의 다른 이름인 여진족이 세웠던 금나라를 잇는다는 뜻에서 후금(後金)이란 이름의 나라를 세우며 시작되었다. 그 후계자 홍타이지(재위: 1626~43년)는 국호를 청(淸)으로 고치고(1636년) 주변 각국을 침공하여 영토를 확장함과 동시에 군사·행정 제도인 팔기(八旗) 체제를 확립하였다. 홍타이지의 다음에 즉위한 순치제(재위: 1643~61년)때 청의 팔기군이 산해관을 넘어서 명나라 수도였던 베이징을 점령하고 수도로 삼았다.(1644년)

  • 청나라 군대가 만리장성을 넘어서 중국에 들어올 때 ‘양주십일(揚州十日)’,‘가정삼도(嘉定三屠)’와 ‘머리카락을 기르면 목을 자른다(留發不留頭)’는 등의 사건을 일으켰다. 당시 만주의 중원을 정복한 만주족은, 피지배층 한족들로부터 오랑캐라고 극심한 저항과 멸시를 받았는데, 이들을 기선 제압하려는 목적으로 많은 학살을 자행하였다. 몇몇 기록에 의하면 양저우 한 곳에서만 약 80만명이 학살 되었으며 근거는 부족하지만 약 5,000만 명에서 최대 1억명의 중국인이 만주족에게 학살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 만주족이 세운 청은 원나라와는 달리, 한족을 중용하였으며 그들의 선진 문화를 수용하기에 힘썼다. 순치제에 이어 강희제(재위: 1661~1722년)가 8살에 제4대 황제에 즉위하였다. 강희제는 15세 때부터 친정을 시작하였는데, 즉위한 초기까지 청나라에 걸림돌이 되는 세력들이 있었다. 즉, 오배의 난(1669년), 오삼계(吳三桂)등 3명의 번왕세력들의 반란(삼번의 난, 1674~83년)이 있었으나, 이를 진압하고 타이완의 정씨왕국을 복속(1683년)하여 청나라 영토로 편입하였다. 이로써 강희제는 진정한 중국 통일을 이루게 된다.

  • 또한 러시아가 강점한 네르친스크를 회복하기 위한 전쟁에서 승리하여 네르친스크 조약(1689년)을 체결하고, 스타노보이 산맥과 흑룡강을 따라 러시아와 국경을 확정한다. 또한 아직까지 완전히 충성을 맹세하지 않던 외몽골을 정복하여 영토를 넓혔고 자신에게 반항하던 준가르의 군세를 크게 꺾어놓았다.

    문화적으로는 한자 5만여자를 부수별, 획수별로 분류한 《강희자전》을 편찬케 하였고,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으며, 예수회 선교사(대표적으로 아담샬을 들수있다.)들을 총애하였다.

  • 강희제 치세에 이르러 광동 성을 중심으로 서양과의 무역이 크게 발달한다. 그러나 강희제는 적장자 윤잉을 황태자로 세운 뒤 폐해가 일어나 윤잉을 두 번 황태자에 책봉하고 두 번 폐위하였으며 뒤이어 자식들이 황태자 자리를 놓고 권력 투쟁을 벌여 말년에는 그리 평온하지 못하였다. 그는 6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아들 35명과 딸 20명이 있었다.

    강희제가 사망하자 넷째 아들 옹정제 (1722 ~ 1735)가 45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옹정제는 형제의 난에서 승리하여 부황의 후계자가 되었으며, 청나라의 통치체제를 완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옹정제는 세금을 단일화 하여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주었으며 문화적으로는 강희제 때 시작한 백과사전 고금도서집성을 완성한다. 그러나, 만주족을 비방하는 것을 억누르는 문자의 옥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옹정제는 하루 4시간밖에 자지않고 정무에 너무 몰두하다가 과로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옹정제의 최후에는 아직도 의혹이 많이 남아있다.

    옹정제의 뒤를 이은 건륭제 (1735 ~ 1795)는 몽골 제국을 제외한 중국의 역대 왕조 중에서 가장 큰 영토를 완성하였다. 이 당시의 영토는 몽골, 신강, 티베트를 모두 포함한 것이었다. 또한 미얀마, 태국, 베트남 등의 종주권를 확보 했다.

  • 이 시기의 중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인구가 3억 명을 넘어섰으며, 이는 명나라의 인구가 6천만 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적으로는 사고전서를 편찬, 경전과 역사서, 철학서, 문집을 모두 모아 10만권을 만들었다. 청조는 이 편찬 사업을 한족 지식인을 감시하는 방법으로 사용하였고, 청조통치에 문제가 있는 내용들은 폐기하였다. 또한 이러한 편찬사업은 금석학의 발전을 가져왔다.

  • 그러나 많은 해외정벌과 계속되는 황실의 사치로 인한 천문학적인 경비가 국가재정에 부담을 주게되어 국운이 기울어지기 시작하게 되었고, 정치적으로도 건륭제의 총신(寵臣)이었던 화신(和神)의 전횡과 관리들의 부패로 인해 건륭제 말기에는 청나라 각지에서 백련교의 난(白蓮敎─亂)을 비롯한 여러 반란이 일어났다.

  • 강희제 이후 옹정제(雍正帝)·건륭제(乾隆帝)까지 3대에 걸쳐 주변 각국을 침공·정복하여 더러는 직접 지배하고 더러는 조공국(朝貢國)으로 삼아 일대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이 전성기를 강건성세(康乾盛世)로 불렸다. 그러나 건륭제 말기부터 백련(白蓮, 1796년-1804년),·천리(天理, 1813년)의 난을 계기로 청나라는 점차 쇠퇴로 기울었다.

  • 한편, 영국은 1792년 매카트니를 시작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중국에 사절단을 보내 문호 개방을 권유하였으나, 오직 광저우만 개항되었을 뿐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세기 무렵에 영국계 동인도 회사가 삼각 무역(아편 무역)으로 경제적 이익을 보려고 했으나, 청조는 이를 반대하여 아편 무역을 금하였다. 그러자 영국은 아편 전쟁(1840년-1842년)을 시작하여 승리하였다. 1842년 난징조약으로 홍콩은 99년간 영국에 넘어갔고 상하이 등 5개 항구가 강제 개항되었다. 이후 중국에서의 이권 확보를 위해 서구 열강이 쇄도해옴으로써 중국은 역사상 유례없이 휘청거렸다.

  • 작성자 13.11.19 08:38

    @동방의 태양 코리아 그냥 일본과 친일파들이 만들어 준 역사서를 줄줄 왜우시면 돼시겠습니다.

  • 13.11.19 01:39

    똥파리나, 굴한이나
    도토리 키재기내요~

    오덯게 저렇게 뇌구조가 생겼을까,
    천연기념물 등록감이네요~

    리홍장이 요동은 본래 조선땅인데,
    산해관으로 만주족이 들어간 이후
    청나라땅이 되었다고 했다.
    청일전쟁 직후 패전하고 북경의 청황실에
    보고하면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뭐?
    심양에 청나라 초기 궁궐이 세월의녹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건재합니다.
    그게 1~2백년 된것처럼 보이냐?

    그래서 가짜냐?

    유조변은 뭐고 성경통지는 뭐며,
    장백산 웅심연과
    포고리옹순 신화는 다 뭐냐,

    또 버드나무에 얽힌 만족현지 설화는 뭐며,
    만주무당의 굿속에서 드러나는 만주족 현 만주의 실상은 뭐냐?

  • 13.11.19 01:40

    굴한이 추론과 상상으로 겨우 끄집어 내는
    소설은 아예상대가 안되는 만주 북경청나라 유물 유적 실증자료가
    바닷가의 모래알보다 많도다!

  • 작성자 13.11.19 09:05

    @윤복현 내 글이...현 동북삼성과 한반도엔 문명이 없었단 얘기로 들리십니까..?
    아주 답답해 집니다.
    우리 역사가 말한 만주족의 청나라는 중국기준 서북 감숙성을 곙계로 신장성과 티벳 카자흐등지의 나라고...
    내외몽골을 흡수해 간접통치...현 동북삼성은 대륙조선의 동북 6진지역이였지만...
    구한망기엔 점점 청의 간접통치지역으로 들어간다.

  • 작성자 13.11.19 09:07

    @궐한 고로, 현 동북삼성은...
    여진족이 맞긴 맞는데...그 여진이란...발해유민을 말하고...동진(東眞)을 얘기하는 것이다.
    후대 금나라가 또 망하곤 그 유민들의 지역이 돼며...대륙조선의 6진과 야인여진 자치를 줄타기하다가...
    구한말에 이른 것이고...이들 공히 고구려의 후예이기에...
    자신들 지역을 고려(코리아)라 통칭했다는...이얘긴데...
    이해가 안 돼시져...?
    한반도와 동북삼성엔..문명이 없던걸 조선 만들려고 없던 건축물을 구한말에 마구 지었단게 아니라...
    오히려...고려(코리아)의 유적들이 파괴됐단게 제 주장이고여...간판만 대륙조선거로 바꿔 달았단 거고여...
    그래도 이해가 안 가시져...?

  • 13.11.19 22:15

    니기미 그럼 청일전쟁은 어디서 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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