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묵시록 / 빗새
살다 보면
빨리 가는 사람이 이기는 줄 알았다
앞만 보고 걷느라
길가에 피어 있던 이름 모를 꽃도,
나를 부르던 바람도
그저 계절의 소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을
얼마나 오래 바라보았느냐로 깊어진다
아침마다
무사히 눈을 뜨게 하는 햇살 하나,
말없이 내 곁을 지켜 준
한 사람의 기다림,
늙어 가는 부모의 손등에
조용히 늘어나는 주름,
철없던 날의 후회와
용서받지 못한 말 한마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아이의 웃음소리,
떠난 사람을 생각하면
문득 젖어 드는 저녁 하늘,
오늘도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슴속에서 천천히 피어나는 감사.
이런 것들은
길가에 놓인 돌멩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지만,
한 번 놓치고 나면
평생을 돌아서 찾아도
다시는 같은 모습으로 만나지 못한다
인생은
거창한 성공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놓치지 않는 일,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
사과해야 할 때 머뭇거리지 않는 일,
감사해야 할 때 침묵하지 않는 일,
그리고
오늘 만난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남기는 일로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세월은
우리의 등을 밀어 앞으로 가게 하지만,
마음은 자꾸만
지나쳐 온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애써 붙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