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의 거리
여행 가방에 할머니 시신을 골목길에 버린 피의자는 아들처럼 생각한 이웃이고, 사람을 죽여 토막내 유기한 살인 사건의 진범은 동거 남자였다. 인면수심에 세모의 거리가 한파보다 춥고 시리다.
오스카 와일드는 빈곤이 범죄를 낳는 어머니라면 무지가 그 아버지란 말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삶의 질이 나아지고 교육 수준도 훨씬 높아졌지만 범죄는 해마다 증가하고 죄질은 포악해진다.
범죄원인을 보다 근원적인 원형에서 찾기도 한다. 망령세계를 다스리는 여왕 헤카테가 인간을 괴롭히는 악마를 세상에 보낸 것이라 한다. 유령과 마술의 여신인 그녀는 밤이 되면 몸소 지옥의 개들을 데리고 횃불이나 채찍을 들고 지상에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하게 만든다.
그녀의 사주를 받은 인간은 누구나 막된 짓을 아무런 가책 없이 행하게 된다.
헤카테의 망령들이 득실대는 곳은 어김없이 범죄현장이다.
태양신의 딸인 키르케는 악의 화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남편을 독살하고 아이아 섬으로 건너와 바다길목을 지키며 그 곳을 찾아오는 나그네들에게 독주를 마시게 하여 짐승으로 변하게 했다는 그리스신화도 있다. 졸지에 사람을 짐승으로 만드는 키르케야 말로 가장 악랄한 악마인 것 같다.
짐승으로 변한 인간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범죄는 이렇게 막된 악령들에 의해 영혼이 점령당할 때 행해지는 악업이란 견해다. 결국 인간은 순수본성으로 파렴치한 범죄를 할 수 없다는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악을 행할 자유는 있어도 그 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는 없다. 악행과 죄업은 고스란히 되돌아와 자신의 업보로 남고 결코 인과응보의 사슬에서 풀려날 수 없다. 중생들의 자업자득이다.
또 한해가 저물고 그림자도 유난히 음침하다. 세월호 사고가 온 국민의 집단스트레스로 작용했고 경기마저 침체해 어깨가 무겁다. 세계 곳곳에 온갖 테러들이 극성을 부리며 인간이 얼마나 악랄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테러와 그를 응징하는 전쟁은 아직도 곳곳에서 피로 물들이고 있다. 인권의 사각지대인 북한 동포들은 목숨을 걸고 탈출하고 있다.
신문을 펼치면 예외 없이 천륜을 거슬리는 흉악범, 비정한 살인극과 인면수심의 막된 범죄들이 연일 사람들의 수치심까지 마비시키고 있다. 마음들이 얼어붙는 연말이면 온갖 범죄들이 더욱 극성을 부린다. 사람을 짐승으로 만든 키르케의 야수성은 신화 속의 정지된 화면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간(肝)이 병들면 눈이 멀어지고 신(腎)이 나빠지면 청력을 잃는다고 한다. 병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부위에 기생하지만 그 징후는 바로 얼굴에 나타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죄를 짓지 않으려면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마음을 다스리고 행실을 바로 해야 한다는 것이 채근담의 가르침이다.
분명한 것은 악령 키르케의 독주를 마시고 짐승이 되는 일도, 헤가테의 망령을 뒤집어쓰는 패륜도 결국 자신의 의지요 선택이다. 세모의 거리를 흔드는 찬바람이 한기를 더하고 있다. 2014. 12. 29 경북일보 아침광장의 글
제갈 태일 / 32회 동기. 경북일보
편집위원
첫댓글 제갈태일씨가 우리 동기동창인줄 이제일았내. 편집위원쯤되면 실력이 대단한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