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4 주일예배
본문: 롬 4:18-22
제목: 바랄 수 없는 중에
1.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롬4:18)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사도 바울이 영감을 받아 하는 해석이다.
백세가 된 아브라함의 몸이나, 태가 죽은 것 같이 된 사라의 몸으로는
자식을 낳을 수 없다. 그것은 상식이고 의학이고 과학이다.
창세기 18장에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람 셋으로 나타나신다.
“내년 이 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0절)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18)
약속대로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던 해에 아들 이삭을 주셨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믿고 바란 것은,
“네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신다”는 약속이다.
이 약속을 처음에 하신 것은 조카 룻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였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창13:14-16)
창 15장에서도 아브라함이 주께서 내게 씨를 주시지 아니하셨으니
내 상속자는 엘리에셀이라고 하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4-6)
창세기 22장에서 다시 약속을 하신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라”(창22:16-18)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다는 것은 그의 후손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말하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구원의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복 중에 가장 큰 복이 구원의 복인 것을 알아야 한다. 천국의 복이요 영생의 복이다.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다는 것은 그가 소유나 환경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았음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그의 생애와 결말은 곧 우리에게 대한 약속이고 결말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갈3:14)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을 받고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났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 가나안으로 향하였고 머물렀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75세에도, 하나님은 불러서 쓰심을 아브라함을 통해 보여주신다.
모세처럼 80세에도, 임하셔서 큰 사역에 쓰심을 보여주신다.
75세, 80세에도 하나님은 불러 쓰심을 믿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으시기 바란다.
고난의 연속이어서 이재 소망이 없다고, 나이가 많이 들어서 이제 끝이라고,
그래서 이제 은퇴할 준비, 죽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고 말들을 그럴싸하게들 한다.
하나님이 끝내시기 전에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끝이 없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롬8:35)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38)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을지라도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하신다.
아브라함을 보며, 모세를 보며, 요셉과 다윗을 보며,
바랄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고 믿으시기 바란다.
2.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은 건 약속을 의심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 것 같다.
사라의 권유로 낳은 것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
기다리는 과정에서 잠시 곁길로 갔던 것일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변함없이 믿었을 것이다.
못 믿고 기다리지 못해서가 아니고, 기다리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 중의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때 낳은 이스마엘 때문에 가정 풍파가 일어났고,
이슬람교의 조상이 되어 유대교 기독교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반목과 전쟁 중이다.
긴 기다림 가운데 사람의 연약함은 실망과 낙심, 의심으로 나타난다.
아브라함, 모세처럼 하나님과 대면하여 직접 음성으로 들은 약속이 아닌 경우 더욱 그렇다.
하나님은 여러 계시의 방법으로 지금도 자녀들에게 약속을 하고 계신다.
시편 말씀이다. 다윗의 기도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5, 11, 43:5)
다윗도 낙심하며 불안해 하는 것을 본다.
그렇지만 결국은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
그가 나타나실 것이고 역사하실 것이고 도우실 것을 믿는다.
그리고 내가 찬송하게 될 날이 이를 것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의심이 전혀 없는 믿음이란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다.
의심에 잠기기도 하고, 머뭇거리기도 하지만, 넘어서고 극복하는 것이 살아 있는 믿음이다.
‘낙심하지 말라고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둔다고 하신다.
일시적으로 낙심하고 포기하기도 하지만 일어서라는 것이다.
주님도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낙심할 수 있고, 낙심하지만 낙심으로 끝내지 말라는 것이다.
불의한 재판관도 끈질기게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구하는 과부에게는 손을 들고 응하는 법이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1-8)
그런 과정 속에서 믿음은 더욱 견고해지고 굳세어지는 법이다.
때가 이르매 거두기까지, 우리는 초벌구이 재벌구이 하며, 오르내리며 올라간다.
한 두 번 낙심하고 포기했다고 끝난 것이 아니고,
다시 일어서고 확신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일어서서 믿음의 길로 확신의 길로 가야 한다.
넘어질 뻔, 미끄러질 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은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시73:1-19)
악인들이 형통하는 것만 보이고 내 긴 고난의 세월과 비교될 때,
심한 고통이 되고, 사람은 낙심하면서 넘어질 뻔, 미끄러질 뻔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가면, 주님을 뵈면, 말씀을 들여다 보고, 말씀을 만나면,
그들의 종말과 갑작스런 그들의 황폐와 파멸과 전멸을 깨닫게 되고,
주님은 참으로 이스라엘 중에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심을 깨닫게 된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현재 내가 당하는 작고 가벼운 고난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됨을 깨닫고 믿게 된다.
3.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
사라가 불가능함을 믿고 웃었을 때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이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긴 기다림 끝에, 긴 고난 끝에, 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끝에,
마침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역사와 결말은
곧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약속이고 결말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아브라함과 요셉의 긴 이야기, 모세와 다윗의 긴 이야기, 욥의 이야기.
그냥 동화처럼 재미있게 읽으라고 소일거리로 주신 이야기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실패와 성공 그리고 멸망의 이야기가 그냥 주신 것이 아니다.
현재 믿는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이요 결말인 것을 확신해야 한다.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해야 한다.
성경을 읽으며 나를 보고, 나를 보며 하나님을 보면서,
그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우주 만물을 지금 통치하고 계신 것을 믿고,
그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한 순서대로 우리도 본받고 나아가야 한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
우리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우리도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아브라함은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
우리도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자.
홍해를 마르게 하사 건너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요단도 마르게 하사 건너게 하실 것을 확신하자.
아브라함이 긴 기다림과 인내 끝에 아들을 얻고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된 것처럼,
모세가 40년의 긴 광야 생활 끝에 40년 쓰임 받으며 출애굽의 대 역사를 이룬 것처럼,
요셉과 다윗이 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끝에 왕권을 받아 누린 것처럼.
하나님은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자.
오늘도 하나님은 크고 놀라운 대 역사를 일으키셔서,
하나님의 손이 능하고 강하심을 땅의 모든 백성들에게 알게 하시고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항상 경외하게 하실 것이다.
믿음으로 살면서, 아둘람 굴과 시글락의 고난과 수욕과 치욕의 세월들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이제 헤브론에 올라 왕권과 영광의 복을 누리며
늙었어도 여전히 결실을 맺으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게 하실 날이 올 것이다.
믿음으로 살면서, 잉태도 출산도 산고도 겪지 못한 세월을 보냈다면,
장막터를 넓히며 처소의 휘장을 널리펴고 말뚝을 견고히 하며
종려나무처럼 번성하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성장할 날이 오게 하실 것이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속히 이루게 하실 날이 오게 할 것이다.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시게 하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정하신 날에 우리는 즐거워하며 기뻐할 것이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감사하고 기뻐하며 찬양할 날이 곧 올 것이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고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지며
약속하신 그것을 하나님이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자.
오늘 이 본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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