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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을 돌파하는 과정을 믿음으로 즐겨라<롬8:35~37>
금요기도회설교
2009/08/21 15:15 http://blog.naver.com/immanuel9597/10067851166 |
제네바의 피에르 렌체니크 박사는[고아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그는 인류역사에 기여한 300명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300명을 분석해 보니 고아가 많았다. 그들 중에는 알렉산더, 시저, 루이14세, 조지워싱턴, 나폴레옹, 사르트르, 루소, 데카르트, 파스칼, 공자 등이 모두 고아였다. 여자 중에는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은 것만큼 큰 아픔과 시련이 있겠는가? 그런데 고아가 세계를 주도한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이 사실은 부모가 필요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경이 인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사람이 역경을 돌파하며 얻게 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의 정신분석하자인 폴 투르니에는 曰 “슬픔이 클수록 그 슬픔이 만들어내는 창조적 에너지는 더 크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인생의 고난과 역경은 꼭 부정적이거나 파괴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고난을 잘 다루고 극복하는 사람에게는 창조적 에너지를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역경이 주는 유익이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고난을 싫어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편안함만을 추구한다.
이 세상 모든 우상의 본질이 뭔줄 아나? 편안함이다. 편안함은 우리의 생명력을 잃게 한다. 중년남자를 보라. 거의 다 배가 나왔다. 왜 그럴까? 걷지 않아서 그렇다. 그들은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도 편하게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그렇게 걷지 않고 편안함만을 추구하니 온갖 성인병이 생기는 것이다.
생명은 편안하면 썩는다. 오히려 고난이 생명을 더 활동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감당할만한 고난과 역경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을 돌파해가는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또 고난이 주는 유익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고난 가운데 도우시는 성령의 능력을 붙들길 바란다.
고난은 어떤 유익이 있을까? <시42편> 기자는 고난 중이었다. 그가 부르짖길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하나님 앞에 뵈올꼬(시42:1~2).”
사슴은 식도가 셀로판지처럼 얇다. 이런 사슴이 목마르면 식도가 달라붙어서 결국 죽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목마른 사슴은 간절하게 시냇물을 찾지만 시냇물 주변에는 너무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맹수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고, 사냥꾼들이 숨어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사슴이 시냇물을 마시러 가는건 목숨을 건 위험한 행동이다.
시편기자는 자신의 처지를 사슴과 동일시한다. 그래서 낙심이 된다고 <5절>에 말한다. 그러면서 결론을 내리길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고 한다.
고난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한다. 그래서 결국 고난은 돌파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
고난을 돌파하기 위해서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이 ‘조급함’이다. 조급함은 항상 천박함을 낳는다. 요즘 젊은이들의 모든 공부는 취업을 위함이다. 그래서인지 모든 학문이 깊이가 없다.
조급함으로 하는 모든 일에는 항상 문제가 생긴다. 조급함으로 배우자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말하길 “외로운가? 그러면 그냥 외롭게 지내라. 외롭다고 죽지 않는다.”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 만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이다.
성경을 풀때도 조급하게 푸는 사람들이 있다. 사사로이 조급하게 풀다보면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생긴다.
“너무 서둘러서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아이젠하워가 보좌관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가장 자주 했던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 너무 서두르면 실수하기 쉽습니다. 그 실수가 치명적일 때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신중한 처신, 누구든 언제나 명심할 일입니다.
고난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긴 안목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성도는 눈앞의 문제를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최종목적지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짧은 안목을 가진 사람은 제자리 멀리뛰기 하는 사람과 같다. 제자리 멀리뛰기하는 사람은 2미터이상을 뛰는건 불가능하다. 반면 긴안목을 가진 사람은 눈 앞의 문제 너머에 있는 예수님을 바라본다. 이 사람은 멀리뛰기 하는것처럼 탄력을 받아 뛸수 있다.
서 있는 기관차는 합판도 뚫지 못하지만 달리는 기관차는 콘크리트 벽도 뚫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의 광야에서 강하게 훈련받길 원하신다. 성령의 능력으로 지금 내게 있는 고난을 믿음으로 돌파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