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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三問의 字는 謹甫라 世宗朝에 登第하다
『宣德乙卯에 生員하고 戊午에 式年하고 丁卯에 重試壯元하다』
恒侍經幄하니 啓沃이 弘多러라 英廟晩年에 有宿疾이러니 累幸溫泉에 常令三問及朴彭年申叔舟崔恒李塏等으로 便服으로 在駕前하야 備顧問하니 一時榮之러라
『성삼문의 자(字)는 근보(謹甫)이다 세종조 때 급제하였다.
(선덕(宣德)은 명나라 천자의 년호, 을묘년에 생원이 되고 무오년에 식년과에 합격하고 정묘년 중시에 장원이 되었다)
성삼문이 항상 경연관으로 세종대왕을 모시니 질문에 답변함에 있어서 식견이 풍부하였다.
세종대왕이 말년에 고질병이 있더니 자주 온천을 순행함에 항상 성삼문 및 박팽년,신숙주.최항,이개등으로 하여금 편한 옷으로 어가 앞에 있게 하여 질문에 대비하게 하니 한때의 영화로 여겼다.
癸酉에 光廟誅金宗瑞하고 幷賜集賢諸臣靖難功臣號하니 三問은 恥之러라 諸功臣이 輪設宴커늘 三問은 獨不設이러라 乙亥에 光廟受禪하니 三問이 以禮房承旨로 抱國璽慟哭커늘 光廟方俯伏謙讓타가 擧首諦視之러라 明年丙子에 與其父勝及朴彭年等으로 謀復上王하고 期以詔使請宴日로 擧事하고 會議於集賢殿하니 三問이曰 申叔舟는 吾所善이나 然이나 罪重하야 不可不誅라한대 皆曰然하다하다 使武士로 各主所殺케하다 刑曹正郞尹鈴孫이 主申叔舟러니 會其日에 罷雲劒으로 謀中止라 而鈴孫이 不之知하고 方叔舟就便房沐髮에 鈴孫이 按劒而前커늘 三問이 目止之한대
『계유년에 세조가 김종서를 죽이고 아울러 집현전 여러 신하들에게 정난공신호를 주니 성삼문은 이를 부끄럽게 여겼다.
여러 공신들이 돌아가면서 잔치를 베풀거늘 성삼문 만은 홀로 잔치를 베풀지 아니했다. 을해년에 세조가 선위를 받으니 성삼문이 예방승지로써 국새를 안고 통곡하거늘 세조가 이때, 엎드려 앉아 선위 받는 것을 겸양하다가 머리를 들어 성삼문이 옥새를 안고 통곡하는 것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다음 해 병자년에 그 아비 성승 및, 박팽년등으로 상왕을 복위하기로 모의하고 명나라 사신을 청하여 잔치하는 날로써 거사하기로 기약하고 집현전에서 회의를 하니 성삼문이 말하기를 신숙주는 나하고 잘 지내는 사람이나 그러나 죄가 중하여 죽이지 않을 수 없다 한대 회의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말하기를 그러하다 했다. 무사로 하여금 각자 죽일 사람을 맡게 했다
형조정랑 윤영손이 신숙주를 맡더니 마침 그날에 세조가 운검을 파하므로 계획한 거사가 자연적으로 중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윤영손이 이 거사가 중지 된 줄도 모르고 이때, 신숙주가 편방으로 머리를 감으러 나감에 윤영손이 칼을 차고 앞으로 나가거늘 이를 본 성삼문이 눈짓으로 신숙주를 죽이는 것을 중지시킨대
及事覺被收어늘 光廟親鞠問叱之曰若等이 何爲反我오하니 三問이 抗聲曰欲復故主耳니라 天下에 誰有不愛其君者乎아 我之心은 國人이 皆知之어늘 何爲反耶아 進士平日에 動引周公터니 周公도 亦有是否아 三問之爲此者는 天無二日이요 民無二主故也니라 光廟頓足曰受禪之初에 는曷不沮之하고 而乃依我라가 今背我乎아 三問이曰 勢不能也니라 吾固知進不能禁이요 退有一死나 然이나 徒死無益이라 忍而至此者는 欲圖後效耳니라 光廟曰汝不食我祿乎아 食祿而背는 反覆人也로다 名爲復上王이나 而實欲自爲也로다
『거사가 발각되어 성삼문이 세조앞에 잡혀 오거늘 세조가 친히 국문하며 꾸짖어 말하길 너희들이 어찌하여 나를 배반했느냐 하니 성삼문이 소리 높여 말하기를 옛 임금을 복위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천하에 어느 누가 그 임금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있습니까? 나의 마음은 온 나라 사람이 다 알고 있거늘 어찌 배반했다고 합니까? 나으리가 평소에 주공을 인용하여 빗대더니 주공도 이 같은 일이 있습니까? 이 삼문이 옛 임금을 위하는 것은 하늘에는 두 태양이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는 연고입니다. 이 말을 들은 세조가 화가 머리 끝까지 치 솟아 발을 구르며 말하기를 수선하는 처음에는 어찌하여 저지하지 아니하고 이에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가 지금에 와서 나를 배신하느냐? 삼문이 말하기를 형세가 불능하여 그런 겁니다. 나는 진실로 나가면 능히 금하지 못하고, 물러나면 한번 죽음이 있을 줄 아나 그러나 헛되게 죽는 것이 무익한지라 참고 여기까지 이른 것은 훗날의 효과를 도모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세조가 말하기를 너는 나의 녹을 먹지 않았느냐? 녹을 먹고 배신하는 것은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로다. 명분이야 상왕을 복위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너 자신이 임금노릇을 하려고 한 것이로다』
三問이曰 上王이 在어늘 進士何以臣我哉오 且不食進士祿이니라 如不信커던 籍我家而計之하라 光廟甚怒하야 令武士로 灼鐵로 穿其脚하고 斷其肱하라하니 而顔色이 不變하고 徐曰進士之刑이 慘矣로다 時에 申叔舟在上前이라 三問이 叱之曰吾與汝로 在集賢殿時에 世宗이 日抱王孫하시고 逍遙散步하시며 謂諸儒臣曰寡人의 千秋萬歲後토록 卿等은 守護此兒하라하던 言猶在耳커늘 汝獨忘之耶아 不意汝之惡이 至於此也로다 提學姜希顔이 辭連하야 拷訊不服한대 上이 問曰希顔도 與謀乎아 三問이曰 實不知之니라 進士盡殺名士라도 宜留此하야 用之하라한대 希顔이 由是得免이러라 三問이 車載出門에 顔色은 自若하야 顧左右曰若輩는 佐賢主하야 致太平하라 三問은 歸見故主於地下하리라하고 笑謂監刑官金命重曰 此何事耶아하더니 旣死에 籍其家한대 自乙亥以後로 祿俸을 別置一室하고 書曰某月之祿이라한대 家無所餘라 寢房엔 有苫薦而已러라
『삼문이 대답하기를 상왕이 계시거늘 나으리가 어찌하여 나를 진사의 신하라 합니까? 또한 나는 나으리의 녹을 먹지 않았습니다. 만약 나의 이 말을 못믿겠거든 나의 집을 적몰하여 헤아려 보십시오?
세조가 매우 노하여 무사로 하여금 불에 달군 쇠로 허벅지를 지져 뚫게 하고, 팔뚝을 끊어 버리라 하니 삼문은 그래도 얼굴색이 변하지 않고 천천히 말하기를 나으리의 형벌이 참혹합니다. 그 때에 신숙주가 세조 앞에 있는지라 삼문이 신숙주를 꾸짖어 말하기를 내가 너로 더불어 집현전에 있을 때에 세종대왕이 매일처럼 왕손을 안으시고 노닐어 산보하시며 여러 유신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과인의 천추만세후토록 경들은 이 아이를 수호하라 하던 말씀이 오히려 귀에 쟁쟁하게 남아 있거늘 신숙주 너만 홀로 잊었느냐? 너의 악함이 여기까지 이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도다
제학 강희안이 이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으로 문초해도 승복하지 아니한대 세조가 삼문에게 묻기를 희안이도 모의에 가담했느냐? 삼문이 대답하기를 희안이는 이 모사를 진실로 알지 못합니다. 나으리가 명사들을 다 죽일지라도 마땅히 이 강희만은 살려 두어 쓰라 한대 강희안이 마침내 성삼문의 이 말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벗어나더라
삼문이 수레에 실려 형장으로 성문 밖을 나갈 적에 안색은 태연자약하여 좌우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너희들은 현주를 도와 태평세월을 이루도록 하라 나는 돌아가서 지하에 계신 옛 임금을 찾아뵈리라 웃으면서 감형관 김명중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것이 무슨 일인가 하더니 성삼문이 이미 죽음에 그 집을 적몰한대 을해년 이후로부터 녹봉을 특별히 한 방에다 적치하여 두고 아무달 받은 녹봉이라고만 써 놓은대 집엔 무엇 하나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침방엔 그저 거적자리만 있을 따름이었다』
有子五人하니 長曰元이라 妻爲官婢하야 全節하다 方光廟受禪也에 勝以都摠管으로 入直터니 聞禪位事하고 送奴政院數問한대 三問이 不答久之러니 三問이 起如厠이라가 仰天太息하고 曰事畢矣라한대 奴以白勝하니 勝亦太息하고 促馬歸家하다 奴竊仰視之하니 迸淚如泉이러라 卽告病하고 臥一室하니 家人도 亦不得見面이라 惟三問이 來면 辟左右與語라 三問의 爲人이 詼諧放浪하야 喜談謔하고 坐臥無節하야 外若無持守나 內操堅確하야 有不可奪之志云이러라 有詩曰
食君之食衣君衣하니 素志를平生莫願違하라 一死에固知忠義在하니 顯陵松柏이 夢依依라
『아들이 다섯이 있으니 장자는 원이다 아내는 관비가 되어 온전히 절개를 지켰다 바야흐로 세조가 선위를 받을 적에 성승은 이때 도총관으로써 궁중에 들어가 숙직을 서고 있더니 세조가 선위한다는 일을 듣고 종을 승정원에 보내어 삼문에게 자주 물은대 삼문이 오래도록 답변을 주지 않더니 삼문이 일어나 뒷간에 가다가 하늘을 우러러 크게 탄식하고 말하기를 만사가 끝이 났다 한대 종이 삼문의 말로써 성승에게 아뢰니 성승도 또한 크게 탄식하고 말을 재촉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종이 성승을 우러러 그윽히 살펴보니 샘물처럼 눈물이 흘러 내리는 것이었다. 즉시로 병이 생겼다고 고하고 방에 누우니 집 사람들 조차도 성승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오직 성삼문이 오면 좌우를 물리치고 더불어 말을 하는 것이었다. 삼문의 사람됨이 익살스럽고 천성이 얽매이지 않아 농담하기를 좋아하고 앉으나 누우나 제약이 없어서 외관상으로는 뜻을 가지고 지키는 것이 없는 듯 하나 마음속으론 지조가 견고하고 확실하여 가히 누구도 뺏을 수 없는 뜻이 있더라
시에 이르기를
食君之食衣君衣 : 임금님이 주신 밥을 먹고 임금님이 주신 옷을 입으니
素志平生莫願違 : 본래의 지조를 평생토록 어기지 말라
一死固知忠義在 : 한 번 죽음에 진실로 충과 의가 있음을 아니
顯陵松柏夢依依 : 현릉(문종대왕릉)의 송백이 꿈속에서도 아련하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