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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커들이 부활했다. 그동안 TV 음악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공연장 등 대중적인 접점에서조차 만나기 힘들었던 이들이 TV 예능프로그램에 대거 얼굴을 내밀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 중 일부는 예능 ‘블루칩’으로 각광받으며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도 보여주고 있다.
일찌감치 ‘부활’의 김태원(46)이 ‘남자의 자격’을 통해 예능계에 안착했으며, 그 뒤를 ‘백두산’의 리더 유현상(57)과 기타리스트 김도균(46), ‘부활’의 보컬이던 박완규(38), 1980년대 록음악계를 이끌었던 임재범(48) 등이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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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로커들이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 최근 20여년간 한국 록음악이 보낸 암흑기는 로커들에게도 고통스러운 나날이었기 때문이다.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한 로커들은 가장으로서 느껴야 했던 고통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 등을 털어놓으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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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로커들의 부각을 통해 록음악의 부활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로커들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져서 그들의 음악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지만, 전반적인 록음악으로 옮아가긴 힘들다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TV에서 보여지는 록음악과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는 록음악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면서 “TV를 통해 특정 로커와 그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의 공연장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TV를 통해 노출된 스타를 보러 가는 것과 일반적인 록음악을 즐기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도 “특정 로커의 공연장을 찾는 것이 고무적인 현상일 수는 있겠지만 록음악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스타에 대한 관심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박정규 PD는 “이 같은 변화와 관심이 대중음악 시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킬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2&aid=000215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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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저녁 7시 30분. 열 명을 간신히 넘긴 사람들이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의 한 빌딩 지하로 향했다. 지난 2004년부터 7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는 라이브클럽 '살롱바다비'가 있는 곳이다. 이날 무대에는 인디음악인 네 팀이 올랐다. 마지막을 장식한 일렉트로닉 앙클렛의 이승환(기타) 씨가 공연 말미에 예사롭지 않은 말을 던졌다. "살롱바다비 같은 클럽이 홍대에 계속 뿌리내려야 한다."
15일 살롱바다비 공연의 첫 순서를 맡은 '데빌 이 소 마르코'를 관객들이 지켜보고 있다. 관객의 상당수는 이날 무대에 오르는 뮤지션들이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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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살롱바다비에 들어온 유료관객은 6명. 하루 수입 전액이 7만8000원이다. 시작 당시 월 50만 원이던 임대료는 140만 원으로 뛰었다. 그 사이 계약기간은 2년에서 1년으로 줄어들었다. 매년 임대료가 오르고 있다. "얼마 전 건물주가 빌딩 외장을 다시 칠했어요. 임대료가 또 오를까봐 겁부터 나더라고요. 문 닫는 것 고민 중이에요." 살롱바다비 대표를 맡고 있는 '우중독보행' 씨는 클럽 사정을 알아주는 음악인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음악 공연 외에도 시낭송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이곳은 이미 2007년에도 경영난을 심각하게 겪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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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은 한국에서 드물게 자생적 청년문화 기반이 남아 있는 곳이다. 미대생들의 작업실이 자리한 곳에 음악애호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지식인들이 밀집하며 지역 문화가 피어났다. 갤러리와 라이브 클럽, 댄스 클럽, 출판사가 공존했고 시인과 펑크족, 힙하퍼(hip-hoper)와 행위예술가가 같은 길을 오갔다.
이곳의 문화적 특수성이 상업적 성공의 가능성을 보이자, 2000년대 초반부터 자본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철길을 낀 선술집들이 자리했던 곳은 2002년 잘 정돈된 '걷고 싶은 거리'로 변화했다. 외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홍대 인근 서교동이 하루 유동인구 30만 명에 달하는 상권으로 성장하자,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상가들의 얼굴이 바뀌었다. 예쁘장한 맛집과 고깃집들이 대거 늘어섰고, 이어서는 큰 덩치의 프랜차이즈 점포들이 이곳을 비집고 들어왔다. '홍대 문화'를 일군 주역들은 떨어져나갔다. 사람들은 걷고 싶은 거리를 '(고기) 굽고 싶은 거리'로 바꿔 불렀다.
"갤러리가 돈이 안 되잖아요. 라이브클럽도 마찬가지에요. 자기 색깔을 갖고 자기 문화를 즐기던 사람들이 '다른 곳과 다르다'는 홍대 문화 정체성을 꽃피웠는데, 이게 관광지역으로 소개되니 자본이 몰려든 겁니다. 정작 이곳을 일군 사람들은 밀려난 지 오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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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독보행 대표는 홍대 상업화가 이미 '예술 공동화'를 낳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홍대 신(scene)'을 일군 주역들의 공통된 지적이기도 하다. 수익을 내기 힘든 갤러리가 사라졌고, 미술가들의 작업실은 홍대 외지에 새 둥지를 텄다. 스팽글, 피드백, 발전소, 언더그라운드 등 상당수 클럽이 문을 닫았다. 마스터플랜이 사라지면서 힙합 음악인들이 설 자리가 좁아졌다. 최근에는 쌈지 부도의 여파로 쌤(ssam)마저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음악인 상당수가 망원동, 상수동 등 인근 지역은 물론, 일산, 은평구 등지로 이동했다.
서교로에 자리한 클럽 주(ZOO)는 대관료로 버티고 있다. 관객들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이곳 무대에 서는 밴드의 절반 가량은 단 한 명의 유료관객도 동원하지 못한다. "클럽 운영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확신 못하겠어요. 클럽 문화가 점점 더 알려지는 것 같긴 한데, 오는 사람들만 오니까…." 김진옥 ZOO 대표는 말했다.
클럽 대부분의 사정이 어려우니 신진 밴드들은 공연료를 받지 못한다. 그 중 '뜬' 극히 일부는 자신이 오르던 클럽을 떠난다. 클럽주는 그들을 잡지 못한다. "이미 홍대는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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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홍대는 맛집으로 더 유명한 곳이 됐다. 대형 클럽 대부분은 고급화된 댄스 클럽이다. 유명 프렌차이즈 커피숍이 큰 규모로 홍대 앞을 채우고 있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커피숍들은 생존 경쟁에 내몰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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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인들은 문래동, 성북동 등지에서 새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생존 경쟁에 내몰린 라이브 클럽에서 살 자리를 찾지 못한 음악인 일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인근과 문래동에 새로운 라이브 클럽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홍대 부근이 그토록 융성할 수 있었던 근원에는 오랜 시간 그곳을 지켜온 미술인들의 문화가 있었다. 아직 새로운 공간에는 '시간'의 두께가 묻어나지 않는다.
김민규 일렉트릭 뮤즈 대표는 "이미 홍대 문화는 끝났다고 본다. 홍대 앞이 갖고 있던 '문화적 즐거움'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면서도 "다른 곳이 홍대를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역시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의 전 지역이 재개발과 전세난으로 허덕이고 있다. 새 둥지가 자리를 잡는 순간, 이들은 다시금 떠밀려날 것이다. 당장 이리카페가 들어선 발전소 부근은 이제 새로운 카페촌으로 뜨고 있다. 자연스레 임대료 역시 크게 뛴 상태다. 홍대 앞 상업화는, 설 자리를 잃은 한국 대안예술의 오늘을 상징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2&aid=0001974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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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클럽이 1998년을 기점으로 정점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정확하게는 말 못하겠지만, 댄스클럽이 인기를 끌면서 외부 자본이 들어온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서교동에 있던 단독주택이 하나 둘 허물어지고 빌딩이 늘어섰으니까요." (김웅)
"2002한일월드컵이 결정적인 계기였어요. 외부 자본의 융단폭격이 시작됐죠. 프리마켓도 이 때 시작했는데, 어찌 보면 예술인들의 소극적인 저항이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정지연 스트리트 H 편집장)
"클럽데이는, 엄밀히 말해 홍대 인디문화의 폭발을 상징하는 사건은 아니에요. 오히려 정반대죠. 자본의 홍대 점령을 완료하는 사건이었다고 봐요. 당시 외국 담배회사가 매주말 클럽마다 담배 한 박스 씩을 뿌려댔으니까요. 외부 자본이 홍대 앞에서 '돈'을 본 거죠. 홍대 앞이 '번잡하다'는 생각이 든 게 이 무렵이에요. 음악과 예술이 홍대 앞 '청년문화'의 코드에서 탈락했어요." (김민규)
"..... 지금 홍대를 보세요. '디자인'과 '음악'이 사라졌어요. 감성이 사라진 거죠. 대자본에 의해 아무 색깔이 없는 가게들만 넘쳐나요. 강남, 신촌, 지방 중심가와 이곳이 뭐가 다른가요?" (이기용)
자본의 침식, 쓰러지는 독립 문화
홍대 폭발을 이끌었던 이들은 물밀 듯 몰려드는 자본의 힘을 견디지 못했다.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예술인들이 하나 둘씩 홍대를 떠났다. 홍대 예술을 상징하던 '씨어터제로'가 문을 닫았다. 미술인들이 먼저 밀려난 이유는 이들이 수익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익을 '크게' 못 내는 음악인들의 이전이 뒤따르는 것 또한 예정된 수순이었다. 상당수 음악인의 거주지, 연습실, 인디레이블 사무실이 서교동을 떠났다.
지금 홍대의 모습은 90년대 초 신촌이 쓰러질 때와 정확히 겹친다. 홍대 앞은 문화생산기반시설이 밀려난 대신, 주말마다 외국인이 넘쳐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역으로 변했다. 사람이 밀려들면서 주말 홍대입구역 9번 출구는 이동이 어려울 정도다. 각종 홍보전단지가 길을 뒤덮고, 밤새 도시의 불이 꺼지지 않는다.
홍대에 더 이상 '내일은 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1998년 홍대로 이전한 클럽 빵의 김영등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찌됐든 신(scene)은 계속해서 성장하곤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급격한 상업화로 인해 클럽 고유의 개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죠. 영세한 클럽들이 온통 대관에 의존하게 된 원인이에요. 그러니 '돈 되는' 음악인만 클럽에 서게 되는 현상이 심해지죠."
"예전 홍대 앞이 가졌던 그 창조적 에너지가 부활하진 못할 것 같아요. 신 내부에서도 돈을 좇는 일부만 번성하고, 나머지는 전부 죽어가는 상황이에요. 사실상 홍대 앞의 '인디 문화'가 지역 상업화에 따라 돈을 좇는 '매스 컬처'로 변했어요. 설사 마포구에서 홍대 개발을 중단한다손 치더라도 이 흐름을 바꾸진 못할 것 같아요." (김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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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 대대적인 도시재개발 시스템 자체를 바꾸거나, 지역 특성을 보존할 수 있는 방식의 대안적 개발이 나오지 않고선 힘들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무엇보다,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는 한 홍대 앞의 고유성은 지키기 힘들다는 의견이 나온다.
"결국 한국이 경쟁사회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 다들 경쟁적으로 개발에 나서고, 돈만 좇고, 예술과 상관없는 상인들이 득세하는 것 아니겠어요? 문화소비가 성장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 관객들을 보면, 20대가 지나면 공연장에 오질 않아요. 공연에 소비할 자본과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거죠." (이기용)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721161053
P.S
록의 부활 여부를 극소수의 유명인의 예능 프로 출연 횟수로 판단한다면 모르겠으나(이들도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록이 부활할 조짐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클럽, 무대도 동료 밴드들이 관중석을 메우고 있다. 동료 밴드끼리 공연하고 서로 객석을 채워주는 그야말로 '우리들만의 잔치'가 계속되고 있다. 문화가 외부로 전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부산에서 상경해 홍대, 신촌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후배 녀석들을 만났다. 록과 재즈를 모두 소화하는데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할만큼 인지도도 얻었고, 공연, 세션, 레슨을 꾸준히 해서 당장 수입은 괜찮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가정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김도균 얘기를 들려주니 표정들이 더욱 굳어진다.
사실 록이 몰락한 곳은 한국 뿐 만이 아니다. 서구에도 록은 사양 산업이 된지 오래다.
일례로 잉베이 맘스틴, 스티브 바이 이후, 이렇다할 기타리스트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결국 문화는 결국 생산/소비 양식이라는 구조에 의존하고, 현재의 구조는 공연장을 요구하는 음악을 더 이상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추론하면,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는 뻔하다.
물론, 지금까지의 기타 중심 밴드 체제와는 전혀 다른 양식의 '록'이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비니무어, 마티 프리드만, 임펄리테리 같은 출중한 록 기타리스트들의 화려한 연주를 앞으로는 듣기 어렵게 되었으니, 역시 아쉬운 일이다.
첫댓글 홍대...솔직히 한번도 못가봤지만, 지금도 가보고싶은 곳중 한군데...그들이 홍대를 떠나기전에 한번이라도 꼭 가 봐야겠다...그리고 대형기획사들 넘 한다...징하다 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