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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구별, 픽셀에서 파노라마까지 ●
백남준에게 테크놀로지는 예술의 도구에 머물지 않고 인간, 기계, 자연을 아우르는 생태계의 네비게이션으로 작동했다. 1960-70년대 사이버네틱스 담론에 영향을 받아 커뮤니케이션을 생태학적 주제로 접근한 백남준은 자신의 미디어 아트로 인간과 기계와 자연의 요소들 사이의 지형을 탐사, 이들의 연결과 접속을 무한대로 증식시키고 그 상호 피드백이 진정한 글로벌 그루브가 되어 지구를 박동시키기를 원했다. 백남준은 화면을 이루는 픽셀부터 지구 전체를 조망하는 파노라마까지 미시와 거시의 시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데 탁월했다. 「촛불 하나」는 단 하나의 촛불이 카메라와 프로젝터를 통해 이미지들로 세포 분열하고 그 너울거리는 이미지들이 실재와 가상을 결합한 공간을 창출한다. 비디오 이미지를 이루는 미세한 전자들의 움직임은 「TV 정원」에서도 실재성을 획득한다. 초록빛 나뭇잎을 타고 배치된 모니터에서 각국의 춤과 음악 영상이 흘러나오는 이 정원에서 전자적 자극과 자연의 녹음이 유기체적 공간으로 수렴되며 '테크노-에콜로지'의 풍경을 이룬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의 경우 인류 태초 빛의 원천이었던 달을 주사선이 만들어내는 텔레비전 화면에 중첩시키고, 화면 속의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열두 단계의 시간을 동시에 관조하면서 지구라는 별에 살고 있는 인간의 존재를 자각하도록 한다. 인간, 기계, 자연이 하나의 지평으로 어우러지는 정경 속에서 「TV 물고기」는 화면 속의 인물과 어항 속 물고기를 마치 한 무대에서처럼 춤추게 한다. 서른 세 대의 텔레비전으로 구성된 나무가 현란한 화면 분할과 채색으로 이루어진 만화경을 펼쳐 보이는 백남준의 「사과나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안 맨」을 전자적으로 재해석한 카트린 이캄, 루이 플레리의 「원형의 파편들」과 함께 배치되어 그 시각적 생명력이 배가된다. 이 작품은 인체의 수학적 비율에서 우주의 질서와 조화의 원리를 찾았던 르네상스 시대의 원형을 16개의 부위로 분할하고 이를 16대 모니터의 동영상으로 재조합 하면서 인간 중심주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테크놀로지를 통해 인간 신체라는 장, 영상기계의 화면이라는 장, 그리고 지구라는 장을 하나로 겹쳐 놓음으로써 인간이 기계적 개체, 자연적 환경의 관계망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백남준의 사이버네틱 예술이며, 이는 백남준에게 사이버네틱스가 관계들에 관한 학문, 혹은 관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2. 호모 사이버네티쿠스 ●
백남준은 인간과 기계의 하이브리드인 로봇을 만들면서 다양한 역사적 인물, 동료 예술가와 이론가, 문학이나 영화 속 캐릭터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징키스칸의 복권」과 「마르코 폴로」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서 '유목민인 예술가'라는 주제 아래 열린 백남준의 「전자초고속도로 - 베니스에서 울란바토르까지」전에 출품되었다. 「징기스칸의 복권」은 타고 있는 자전거 뒤 쪽에 정보 수송과 관련된 기계들을 싣고 있으며, 「마르코 폴로」는 생화로 가득 채운 자동차에 올라타 있다. 백남준은 전시관의 야외 정원에 '실크 로드'를 빗댄 '스키타이 로드'를 설정하고 그 곳에 역사상 동과 서를 가로 질렀던 인물들을 로봇으로 만들어 세웠다. 서로 다른 문화가 교류하고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묻고자 한 것이다. 백남준은 이후에도 유목이라는 주제에 천착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 호피족이 인디언 머리장식을 두르고 양 손에는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 「즐거운 인디언」은 스쿠터에 탄 모습이다. '탈것'의 모티프는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 히피 젊은이를 표현한 로봇 「이지 라이더」의 오토바이로, 「징기스칸의 복권」의 자전거로, 「마르코 폴로」의 자동차로 이어진다. 운송 수단 위에 로봇을 위치시킴으로써 '이동'과 '소통'의 관계를 드러낸 것인데 백남준은 이를 디지털 유목의 시대까지 확장한다. 정보의 고속도로에서 경계와 차단을 무너뜨리는 「하이웨이 해커」가 상징하듯, 디지털 네트워크를 타고 세상을 누비며 생각이 자유롭게 유목하는 삶이 바로 백남준의 사유와 실천이다. 백남준은 멀리 여행을 떠나 새로운 지평선을 바라보고자 하는 유목의 형질이 자신의 유전자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늘 저 멀리를 내다보고자 했던 그의 로봇 인간 군상에는 그래서 '호모 사이버네티쿠스'의 모습이 담겨있는 지도 모른다. 이 신인류는 하워드 「라인골드」가 역설한 사이버스페이스의 공동체를 가꿔나가고 있다. 백남준은 최첨단의 테크놀로지를 뒤따르기 보다는 그 테크놀로지를 인간화하는 길을 모색했다. 백남준은 이 '인간화'가 노버트 위너의 저서 「인간의 인간적 활용: 사이버네틱스와 사회」에서 가져온 것이라 설명했다. 인간과 기계, 인간과 자연의 상호 작용에 있어 주체와 객체, 창조자와 창조물이 더욱 하이브리드화되어 가는 인류 역사의 동력을 간파하고 그 안에서 이제 인간의 '인간적임'이란 무엇인지 다시 성찰해야 하는 시대임을 백남준은 시사한다.
3. 로봇 극장 ●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기계적인 신체에 대한 열망을 가중시켰다. 인간과 기계를 결합한 백남준의 첫 번째 로봇 작품 「로봇 K-456」은 1964년 제2회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서 처음 전시되었다. 슈야 아베와 공동 제작한 「로봇 K-456」은 원격 조종을 통해 자유롭게 걸어 다니며 관객과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로봇이었다. 이 작품은 거리를 활보하며 입(라디오 스피커)으로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을 재생하고 마치 배변을 보듯 콩을 배출하였다. 1964년 데뷔 이후 「로봇 K-456」은 백남준과 각종 퍼포먼스에서 함께 공연했고 1982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의 회고전에서는 길을 건너다가 자동차에 치는 교통사고 퍼포먼스에 등장하였다. 백남준은 이 퍼포먼스를 "20세기 최초의 참사"라고 명명하였고, 이를 통하여 기계적 합리성의 허구를 드러내고 인간적 고뇌와 감성을 지녔으며 삶과 죽음을 경험하는 인간화된 기계를 제시하였다. 로봇에 대한 백남준의 관심은 1980년대 중반부터 비디오 조각이라 불리는 로봇 연작으로 이어졌다. 이 로봇들은 「로봇 K-456」처럼 인간의 조종에 의해 움직이지는 않지만 구형 텔레비전 수상기가 인간의 신체를 대신하고 TV 모니터에서는 비디오 영상이 나온다. 백남준은 히포크라테스, 데카르트, 슈베르트, 당통 등의 역사적 인물에서부터 배우이자 감독인 찰리 채플린, 코미디언 밥 호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로봇으로 재탄생시켰다. 또한 선덕여왕, 율곡 등 한국의 위인들을 로봇으로 만들기도 했다. 백남준의 로봇들은 제목을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며 로봇의 신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형태의 텔레비전은 인간적인 개성을 표현한다.
4.사이버네틱 시공간 ●
전기시대에서 전자시대로 이행하면서, 서로 다른 장소에서도 거의 동시에 정보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보를 저장하고 과거의 경험을 현재에 불러오거나 미래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이버네틱 혁명이라 불리는 이러한 변화로 인해 예술가들은 전기시대에는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시공간을 꿈꾸게 되었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첨단 기술의 활용 자체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며, 이를 이용하여 인간의 지각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통찰력 있게 제시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 작품들은 "사이버네틱스 예술도 매우 중요하지만, 사이버화 한 삶을 위한 예술이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후자는 반드시 사이버화 할 필요는 없다"는 백남준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발리 엑스포트는 「공간 보기 - 공간 듣기」에서 정지 동작을 촬영한 이미지를 화면 분할과 소리 편집을 통해 새로운 종류의 움직임으로 바꾸어 놓는다. 댄 그래험의 「과거 미래 균열된 의식」에서는 동일한 공간에 있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상대방이 방금 전에 한 말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다른 한 명은 상대방이 앞으로 할 행동을 예측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이 퍼포먼스는 정보의 기억이나 피드백만으로도 시간 경험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음을 증명한다. 백남준과 시게코 구보다는 「앨랜과 앨렌의 불만」에서 전기시대에는 불가능했던 시공간을 영상 합성을 통해 만들어낸다. 백남준이 비디오 합성기로 만든 영상에서 앨렌 긴스버그는 삼년 전에 죽은 아버지와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앨랜 캐프로는 물 위를 걷는다. 비디오를 활용한 철학적 성찰로 알려진 빌 비올라의 「지고의 존재」는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을 역전시키거나 해체함으로써 주관적으로 경험되는 시간의 다양한 양상을 제시한다. 마이클 스노우의 「WVLNT」는 아방가르드 실험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자신의 영화 「파장」을 장면들이 중첩되도록 재편집한 것이다. 이 작품은 명확한 사건이 있고 하나의 쇼트로 촬영되었던 원작을 짧은 단위로 잘라 겹치게 함으로써 영상편집을 통해 시공간의 경험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불의 「무제」는 거울과 가상도시의 모형 같은 구조물을 통해 무한증식하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 공간에서 실재세계는 가장 고전적인 매체인 거울의 환영을 통해 최첨단의 사이버 세계와 같은 '효과'를 얻는다.
5. 열린 회로, 오픈 액세스 ●
백남준의 뉴욕 스튜디오를 그대로 옮겨 재현한 「메모라빌리아」는 단순한 기술적 작업실이 아니다. 1950년대부터 백남준은 음악과 미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자공학과 인문학 등 서로 다른 분야 간에 인터페이스의 역할을 소명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구획화, 범주화에 매이지 않는 그의 예술관, 세계관이 직조되었던 실험실이 바로 「메모라빌리아」다. 「메모라빌리아」에서 상영되는 루츠 담백의 다큐멘터리 「더 넷: 유나바머, LSD, 인터넷」은 네트워크 기술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와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해 유나바머(연쇄 소포폭탄 테러범) 테드 카진스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간다. 최초의 인터넷 공동체 '웰'의 설립자이자 「지구백과」의 편집인 스튜어트 브랜드, 「디제라티: 사이버 엘리트와의 만남」의 저자이자 '엣지재단' 회장 존 브록만, 물리학자이자 철학자로서 사이버네틱스 초창기 설계자인 하인츠 폰 푀르스터 등 주요 인물들의 인터뷰와 아카이브 조사 내용이 작품을 통해 전개된다. 도입부에는 마셜 매클루언의 얼굴 영상을 전자기적으로 왜곡시키는 작품, 샬롯 무어먼과의 전위적 퍼포먼스 등 백남준의 예술적 실험이 레퍼런스로 사용되고 있다. 백남준은 비디오라는 뉴미디어로 낙관적이고 즐길 줄 아는 혁명가가 되고자 하면서, 전자시대 커뮤니케이션의 엄청난 잠재력이 영향력 있는 집단에 의해 독점적으로 발휘되는 것을 경계했다. 안토니 문타다스의 「파일 룸」은 커뮤니케이션의 권력 중 하나인 '검열'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이 작품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계 각국의 예술과 문화 분야의 검열 사례를 수집하여 검색할 수 있게 하는 데이터베이스이다. 웹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검열 사례를 추가할 수 있는 열린 구조이며 미국의 국립검열반대연합 등 관련 기관들과의 협력 하에 계속 확장되고 있는 작품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의 데이터베이스는 서류함 캐비닛 수십 개를 사방으로 쌓아 올려 만든 실제 공간의 형태로 설치된다. 어둡고 위압적이며 닫힌 공간 안에서 컴퓨터 검색으로 검열 사례를 살펴 보면서 백남준이 지향했던 쌍방향 소통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이처럼 공동체 의식으로 무장하고 사회 치유적 커뮤니티를 꿈꾸는 예술이 테크놀로지와 만날 때 백남준의 말대로 "새로운 접촉이 새로운 내용을 낳고 새로운 내용이 다시 새로운 접촉을 낳는 피드백"을 생산해 낼 것이다.
6. 참여의 예술 ●
백남준은 이미 결정되고 제한된 매체라는 텔레비전에 대한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었다. 1963년 독일 부퍼탈의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열린 백남준의 첫 번째 개인전에는 물리적 조작을 거친 13대의 실험 텔레비전이 전시되었다. 실험 텔레비전 중 하나인 「참여 TV」에 설치된 마이크에 관객들이 소리를 내면 그 목소리는 앰프를 통해서 증폭되며 음향의 높낮이에 따라 TV 모니터에 다채로운 선들로 나타났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의 내부회로를 조작한 실험 텔레비전을 통하여 예술 작품을 제어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회로 시스템으로 설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단순히 전달된 정보를 수신하는 수동적인 주체가 아닌 다양한 피드백으로 작품에 참여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재설정된다. 「자석 TV」는 관객들이 자석을 움직일 때마다 전자 시그널의 이미지가 방해를 받도록 회로를 변경해 놓은 작품이다. 단순한 원리로 화면을 조작하여 아름다운 화면을 만들어내는 이 작품은 백남준이 슈야 아베와 함께 개발한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와 함께 이미지를 합성하는 독창적인 발명품이다.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는 비디오카메라나 다른 소스로부터 동시에 영상을 받아들여 실시간으로 영상편집이 가능한 기계다. 백남준은 1971년 보스턴의 WGBH 방송국에서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이용하여 조작된 영상 이미지와 일본의 상업광고를 편집한 「비디오 코뮨」을 네 시간 동안 생방송했다. 방송용 비디오 작업을 통해 수많은 대중과 소통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가 각기 다른 이미지를 하나로 합성한 반면, 「세 대의 카메라 참여」와 올라퍼 엘리아슨의 「당신의 모호한 그림자」 앞에 선 관객은 여러 개의 이미지로 나누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엘리아슨은 빛, 물, 안개와 같은 자연현상의 요소를 과학적인 원리와 테크놀로지를 통해 미술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그는 자신이 재현한 유사자연을 특정 공간에 재현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문명과 자연의 조우라는 색다른 감동을 경험하게 한다. 관객의 참여가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는 엘리아슨의 작업은 백남준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자연과 과학의 결합, 작품과 관객의 상호교류, 예술과 사회의 소통이라는 공통된 지점을 향하고 있다.
7. 백색소음의 커뮤니케이션 ●
백남준은 "백색소음은 최대치의 정보를 담고 있다"라는 사이버네틱스 이론의 창시자 노버트 위너의 주장을 여러 글에서 인용한다. 사이버네틱스 이론에서 백색소음은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내용이 최소화된 신호를 뜻한다. 위너는 메시지가 선명하고 상투적일수록 새롭게 전달하는 정보가 적고, 시처럼 메시지가 모호하며 수신자의 상상력을 자극할수록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고 주장하였다. 백남준은 백색소음의 대표적인 예로 마리 바우어마이스터의 회화를 든다. 그는 "1959년경에 그려진 마리의 유화는 '백색소음', 여러 빛깔의 눈송이와 닮았다. 이는 자동적으로 관객의 더 많은 참여를 요구하는 저해상도 정보의 대표적인 예이다"라고 말했다. 또 「노버트 위너와 마셜 매클루언」이란 글에서는 사이버네틱스와 미학의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들의 목록을 제시하는데, 그 목록은 존 케이지부터 시작된다. 백남준이 백색소음의 예술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단순화된 형태가 아니라, 마셜 매클루언의 '차가운 미디어'처럼 결정되지 않은 과정을 포함하여 관객의 상상력과 참여를 최대화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신일의 「보이지 않는 걸작」역시 백색소음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관객을 비디오로 촬영하고 나서 그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윤곽만 남긴 채 지워버리고 종이에 압인으로 표현한 애니메이션이다. 매클루언의 차가운 미디어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가는 정보가 최소화된 상태에서 상상력이 극대화되는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선을 긋지 않고 압인을 선택하여 빛의 각도에 따라 그 윤곽이 드러나거나 사라지게 하였다.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빈 필름이 돌아가면서 필름 자체의 물리적 스크래치들만 화면에 보이는 백남준의 「필름을 위한 선」은 백색소음의 극단적인 예다. 그 어떤 정보도 없다는 점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영사기와 스크린 사이에 관객들이 들어올 때 만들어지는 그림자를 통해 관객 스스로 작품에 참여하게 된다.
■ 백남준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