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웃음
조창환
텅 빈 운동장엔 땡볕만 가득했다
고요하고 적막하고 스산한 저녁 무렵
외떨어진 음악실에서 노랫소리 들려왔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핸섬한 음악선생님
빈 방에서, 혼자, 목청 높여 노래 부른 후
빈 벽 향해 머리 숙여 큰 절 올리고 고개 들자
창밖에서 들여다보던 나와 눈 마주 쳤다
음악선생님, 부끄럽고 어색하고 쑥스러워
나를 향헤 씩 웃었다, 웃음 뒤엔 알 듯 모를 듯
비밀 들어있고, 눈물 들어있어
나는 얼른 자리를 피했다
다시 만날 때도 모른 척했다
모른 척하면서도, 그 웃음, 잊히지 않았다
제대로 된 무대에서 노래할 실력은 못 되어도
빈 벽 향해 노래하고, 절하고, 으쓱대고 싶은
속마음 들키자 어색하게 짓던 그 웃음
그 웃음 속에 억울하고 억눌린 억척같은
비밀 들어 있어, 나를 평생 따라다닌다
빈방에서 노래하던 음악선생님의
억울하고 쑥스러우면서 들키기 싫은
그 웃음 같은 시, 내 시.
(손진은 시인)
빈 벽 향해 노래하고는 빈 벽을 향해 절을 하는 음악 선생님. 자랑하고 싶은 속 마음 들키자 어색하게 웃는 그 웃음. 그게 시 쓰는 마음이군요. 저도 시를 혼자서 쓰고, 아 이렇게 감동적이구나, 우쭐한데, 남들이 그걸 보고 있다 생각하면 참 부끄러워지기도 한답니다. 그래도 그게 창작의 마음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