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세계가 코로나 19로 불안에 떨고 있다. 하늘길이 막히고 국가와 국가의 소통의고리가 마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바이러스가 이처럼 무섭다는 것을 실감한다. 우리나라도 대구와 경북지역의 감염자수가 늘면서 병상과 의료진 부족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 아니한가.
전염을 막고자 마스크 착용을 해야 하지만 마스크 부족으로 대란을 겪고 있는 뉴스를 보며 온갖 번뇌는 불면증과 편두통으로 이어졌다.
문득 전염병인 홍역으로 자식을 셋이나 잃은 부모님 생각이 났다. 거기다 아홉 살 된 언니는 물에 빠져 죽었다. 아버지는 술로 벗을 하셨다고 했다.
어렵게 밤톨 같은 삼남매를 두었으나 막내가 백일도 안 되어 지아비를 폐결핵으로 보내야 했던 내 어머니.
초라한 아버지 마지막 길을 난 잊을 수가 없다,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는 상가엔 발등거리 등불만 졸고 있었다. 집안은 온통 크레졸 냄새가 동동 떠 다녔다.
어머니 치마꼬리를 붙잡고 일곱 살이던 난 따라 울었다. 꽃가마(상여)가 아닌 들것에 하얀 천으로 덮여 마지막 당신 집을 떠나시던 아버지의 영상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1950년 나라는 6,25전쟁 직후라 가난했다. 의식주와 가장의 병 바라지로 지친 엄마는 젖이 나오지 않았다. 분유도 젖병도 없었다. 백설기를 쪄 말려 미움을 풍로 불에 끓여 먹이시던 애달픈 모습을 보며 동생들을 지금도 많이 사랑한다.
전화도 없고 교통이 불편하여 아버지가 세상을 뜬 줄도 모르고 이모는 소고기를 사들고 왔단다. 고기를 넣은 미역국을 먹으니 말라붙었던 막내의 젖줄이 열렸단다. 얼마나 어머니가 스트레스와 영양실조로 고생을 했으면 그리 되었을까.
어머니는 오직 자식 배불리 먹이고 등 따습게 잠재우려는 집념으로 사셨다. 어머니는 밭에 콩을 심어 두부를 만들어 파셨다.
밤새워 두부콩을 맷돌에 갈아서 땔감이 시원치 않아서 풍구로 왕겨를 때서 두부를 만들었다. 연기와 뿌연 김이 서린 부엌, 어머니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던 땀방울들, 팔은 무쇠같이 보였다.
언 손을 녹일 새도 없이 땀의 결정체인 두부를 이고 칼바람을 앞세우고 새벽길을 나서던 어머니 모습들, 그 힘든 삶을 보며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전염병인 장티프스는 어머니를 또 괴롭혔다. 어머니 입술은 열병으로 타서 가문논바닥 갈라지듯 터져 피가 흘렀다.
석유곤로는 있었지만 우리 집엔 없었다. 지푸라기를 때 어머니 미움을 끓여 놓고 학교를 가면 단골지각이었다. 약이 귀해 무즙을 소화제로 먹었으니까.
어머니 머리는 빠져 흉한 꼴이 되었고 후유증은 오래갔다. 난 전염병이 무섭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어머니는 다정다감하지 않았다. 몸을 돌볼 여유도 없이 자식을 희망의 등대로 삼고 참으로 열심이 희로애락의 고개를 넘고 넘으며 일생을 사셨다.
전염병은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코로나19로 사망하신 분들과 환자들에게 위로를 드린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지 공감이 간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가 나서서 코로나 19 퇴치 사업을 역학 조사까지 하면서 하고 있지 아니한가. 또한 의료비 지원도 해주고 무엇보다 환경이 깨끗해서 바이러스는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온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코로나 예방을 위하여 애쓰고 있으니까. 탁월한 의료진들을 믿고 자기 관리에 힘쓰다 보면 잠잠해 질것이란 희망을 기대 할 수밖에... ... .
첫댓글 그런 시련을 겪으셨으니 코로나 19가 더 무섭고 아프시겠어요
어서 빨리 다 지나가고 원상회복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평범한 일상을 소망하게 하는 작품 잘 읽었습니다
아픈 기억을 안고 사셨네요. 겪어 본 사람들은 전염병이 무서운걸 알지요. 호흡기가 좋치 않은 저 또한 이 코로나19가 무섭기만 합니다. 조금 잠잠한 이시기일수록 더 예방수칙을 잘 지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돌이켜 보고 싶지 않은 과거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며 썼지요.
이작가님 슬픈 기억에 동감합
니다. 우리 세대엔 6.25 동란
후 누구나 힘들었을 꺼예요
학교 다닐때 장티푸스 예방
주사 맞을때 불주사 기억이
납니다 코로나19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길 기도 하겠습
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김선생님 항상 멋진 분으로 기억합니다. 코로나가 점점 세계 이곳저곳에서 난리이니 어쩌면 좋을까요.
스트레스 안받고 즐겁게 사는길이 최선이랍니다. 자기 관리가 중요한 때인것 같아요.
지금의 환난이 더 남다르게 여겨지실 그 마음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선생님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니 얼마나 아리시겠어요. 치료가 어렵던 시절이었으니 애만 타셨겠지요. 어머니의 수많은 고생에 눈물이 흐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 다 함께 기운내야지요. 후손들이 방긋방긋 웃고 뛰 놀고 있잖아요.
저도 선생님처럼 대책없이 살았던 옛날이 생각납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들어 앉아 있으면서
운동도 혼자서 하는 무심천 걷기, 미호천 자전거타기만으로 매을을 보내려니 죽을 지경입니다.
선생님 말씀 대로 조금만 참으면 잘 해결될 것이라고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가슴아픈 지난 날입니다. 저희 친정집도 증조할머니가 역병으로 돌아가신 다음날 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네요. 대농이었던 집안이 풍지박산이 났었다고 어릴 적, 옛날 이야기처럼 들었었지요. 코로나가 선생님의 아픈 과거를 끄집어 냈네요.
어린시절 일입니다. 어머니께서 고생이 많으셨지요. 코로나로 두문불출 하면서 어머니께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 를 생각하게 합니다. 여러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가난속에서 병으로 남편과 자식을 먼저 보내야 했던 어머님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하셨을까요.
어렸지만 그것을 지켜봐야 했던 선생님도 ...
아픈과거 잊으시고 뜰안에 피어나는 꽃들 보며 미소지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