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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연맥(兔絲燕麥)
베를 짤 수 없는 실과 먹지 못하는 보리라는 말로, 이름만 그럴듯하고 실속이 없음을 뜻한다. 유명무실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兔 : 토끼 토(儿/5)
絲 : 실 사(糸/6)
燕 : 제비 연(灬/12)
麥 : 보리 맥(麥/0)
(유의어)
남기북두(南箕北斗)
이름만 있을 뿐 실질(實質)이 없는 것 즉 유명무실(有名無實)한 것을 비유한 토사연맥(兎絲燕麥)은 남기북두(南箕北斗)라고도 하며 위서(魏書) 이숭전(李崇傳)에서 볼 수 있다.
위서(魏書)는 북제(北齊)의 위수(魏收)가 서기 551년, 즉 문선제(文宣帝) 천보(天保) 2년에 편찬한 역사서로서 북위서(北魏書)또는 후위서(後魏書)라고도 한다. 본기(本紀) 12권, 지(志) 10권, 열전(列傳) 92권 등 모두 114권으로 이루어졌으며, 중국 25사(二十五史)의 하나이다.
북위(北魏) 시대, 지배층은 불교를 숭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물자(物資)를 동원해 사원을 건축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학술(學術)이나 문화는 중요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식자(識者)들은 선무제(宣武帝)와 효명제(孝明帝)에게 글을 올려 태학(太學)을 부흥하고 전통 문화를 중시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 당시 형소(邢邵)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국자제주(國子祭酒)라는 관직을 지내는 사람으로서 전통 문화를 경시하는 태도에 대해 큰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형소는 다른 학자들과 함께 황제에게 글을 올렸고 이숭(李崇)이라는 사람은 양주자사(揚州刺使)를 지냈는데 그도 역시 황제에게 글을 올린 적이 있다.
형소나 이숭 등은 모두 “지금의 태학과 국자감은 이름뿐으로 실질적으로 조금의 지식도 전수해주지 않고 있는데 이는 어찌 토사(兎絲)나 연맥(燕麥), 기성(箕星)이나 북두(北斗)와 다르지 않겠습니까?”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今國子雖有學官之名 而無敎授之實 何異兔絲燕麥 南箕北斗哉.
금국자수유학관지명 이무교수지실 하이토사연맥 남기북두재.
자치통감(資治通鑑) 양기(梁紀) 양무제(梁武帝) 천감(天監) 15년에서 인용한 이 말에 대해, 호삼성(胡三省)이 해설하기를 “토사는 사의 이름만 있을 뿐 베를 짤 수는 없으며, 연맥은 맥의 이름만 있을 뿐 먹을 수는 없다. 옛 노래에 ‘밭 속의 토사를 어떻게 두를 수 있으며, 길가의 연맥을 어떻게 거둘 수 있으랴.’라고 하였고, 시경(詩經)에 ‘남쪽 하늘에 기성이 떠 있어도 나락을 까부를 수 없고, 북쪽 하늘에 북두성이 있어도 술을 떠 마실 수 없네.’라고 하였으니, 이는 모두 유명무실한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言兔絲有絲之名而不可以織 燕麥有麥之名而不可以食.
언토사유사지명이불가이직 연맥유맥지명이불가이식.
古歌曰 田中兔絲 如何可絡 道邊燕麥 何嘗可穫.
고가왈 전중토사 여하가락 도변연맥 하상가확.
詩云 維南有箕 不可以簸揚 維北有斗 不可以挹酒漿.
시운 유남유기 불가이파양 유북유두 불가이읍주장.
皆謂有名無實也.
개위유명무실야.
토사(兔絲)는 해로운 들풀의 이름이고, 연맥(燕麥)은 보리처럼 생긴 들풀의 일종으로서 먹지 못하며 기(箕)와 두(斗)는 모두 별자리의 명칭으로 기성(箕星)은 남방에 위치하며 네 개의 별이 사다리꼴로 배열되어 마치 키처럼 보인다.
두성(斗星)은 속칭 북두성(北斗星)이라 불리며 큰곰자리를 말하며 두성은 일곱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는데 네 개는 사다리꼴이고 세 개는 하나의 선을 이루어 전체 형상은 긴 자루가 달린 국자 모양으로 이 두 개의 별자리는 실물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 물건으로는 쓸 수 없다.
사물의 생김새를 보고 특성을 잡아 이름을 짓게 마련이다. ‘꼴 보고 이름 짓는다’란 속담대로 무슨 일이나 사리에 어긋나지 않게 일을 처리해야 뒤탈이 없다.
이름과 실상이 서로 들어맞은 것이 명실상부(名實相符)이고, 그렇게 해야 명불허전(名不虛傳) 즉 명성이나 명예가 헛되이 전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이런 경지는 어려워 ‘이름이 좋아 불로초라’ 이름만 그럴듯하고 실속은 없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말 그대로 유명무실(有名無實)이고 토우목마(土牛木馬)다.
이름이 실제에 따르지 못하는 뜻의 성어가 또 있다. 베를 짤 수 없는 실(兎絲)과 먹지 못하는 보리(燕麥)란 뜻의 이 말이다. 兎絲(토사)는 새삼, 燕麥(연맥)은 귀리라고도 하는데 해롭거나 가축의 사료로 쓰는 들풀의 이름이란다.
이름만 있고 실질이 없는 나라의 일을 비유한 것으로 중국 남북조 시대 북위(北魏)의 역사를 담은 위서(魏書)에 실려 있다.
당시 지배층은 불교를 숭상하여 사원을 건축하는데 많은 물자를 동원했다. 반면 전통적인 학술이나 문화는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자들은 불만이 컸다. 그래서 임금에게 태학(太學)을 부흥하고 전통문화를 중시해줄 것을 건의했다. 형소(邢邵)나 이숭(李崇) 같은 관리는 선비들과 함께 황제에게 글을 올렸다.
위서(魏書) 권66 이숭열전(李崇列傳) 중에 나온다.
今國子雖有學官之名 而無敎授之實.
금국자수유학관지명 이무교수지실.
지금의 태학과 국자감은 이름뿐으로 실질적으로 조금의 지식도 전해주지 않고 있다며 글을 잇는다.
何異兎絲燕麥 南箕北斗哉.
하이토사연맥 남기북두재.
이는 어찌 토사연맥이나 남기북두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남기북두(南箕北斗)는 모두 별자리의 이름으로 남쪽에 위치한 기성(箕星)은 네 개의 별이 사다리꼴로 되어 키처럼 보이지만 쌀을 까불지 못하고, 곡식을 되는 말 모양의 북두칠성(北斗七星)으로는 쌀을 되지 못한다. 이름만 갖고 실제 물건으로는 쓸 수 없음을 말한다. 이숭전(李崇傳)에 나온다.
자치통감(資治通鑑) 양기(梁紀) 양무제(梁武帝) 천감(天監) 15년에서 인용한 이 말에 대해 호삼성(胡三省)이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言兔絲有絲之名而不可以織 燕麥有麥之名而不可以食.
언토사유사지명이불가이직 연맥유맥지명이불가이식.
토사는 사의 이름만 있을 뿐 베를 짤 수는 없으며, 연맥은 맥의 이름만 있을 뿐 먹을 수는 없다.
古歌曰 田中兔絲 如何可絡, 道邊燕麥 何嘗可穫.
고가왈 전중토사 여하가락, 도변연맥 하상가확.
옛 노래에 밭 속의 토사를 어떻게 두를 수 있으며, 길가의 연맥을 어떻게 거둘 수 있으랴.
詩云 維南有箕 不可以簸揚, 維北有斗 不可以挹酒漿.
시운 유남유기 불가이파양, 유북유두 불가이읍주장.
시경에 남쪽 하늘에 기성이 떠 있어도 나락을 까부를 수 없고, 북쪽 하늘에 북두성이 있어도 술을 떠 마실 수 없네.
皆謂有名無實也.
개위유명무실야.
이는 모두 유명무실한 것을 이른다고 하였다.
기(箕)와 두(斗)는 모두 별자리의 명칭으로서, 기성(箕星)은 남방에 위치하며 네 개의 별이 사다리꼴로 배열되어 마치 키처럼 보인다. 두성(斗星)은 속칭 북두성(北斗星)이라 불리며, 큰곰자리를 말한다.
두성(斗星)은 일곱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는데, 네 개는 사다리꼴이고 세 개는 하나의 선을 이루어 전체 형상은 긴 자루가 달린 국자 모양이다. 이 두 개의 별자리는 실물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 물건으로는 쓸 수 없다.
대신이 평소 덕행을 쌓으면 위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지만 재산에만 신경 쓰고 탐욕을 부리면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게 됩니다. 유명무실은 난씨 가문처럼 지금 가진 것에 도취되지 않고, 명실상부한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꼭 실천하리라 다짐한다. 한 조직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새 우두머리가 들어서면 이런 일을 하리라 떠벌린다. 지나고 나면 그런 계획을 언제 세웠는지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름을 앞세우지 말고 계획을 차근차근 실천해 나갈 일이다.
다음은 유명무실(有名無實)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겉만 그럴듯하고 실속이 없는 경우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많다. 빛 좋은 개살구, 외화내빈(外華內貧) 등이 그런 실례이다. 같은 뜻으로 쓰이는 이름은 있지만 내용이 없다는 유명무실(有名無實)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이름만 있고 실질(實質)은 없다. 평판과 실제가 같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유의어로는 도유허명(徒有虛名), 반의어로는 명불허전(名不虛傳), 명부기실(名副其實), 명실상부(名實相符) 등이 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의 상경(上卿) 난서(欒書; 欒武子)는 지위가 매우 높은 관리였지만, 권세를 이용하여 사리(私利)를 추구해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그가 가진 땅은 일졸(一卒; 100 사람이 경작하는 토지)에 이르지 못하고 상대부들 보다 더 적어서 집안에는 귀중한 제기(祭器)도 없었지만, 그의 청렴하고 결백한 봉공(奉公) 정신은 대신들 사이에서 매우 높은 명망을 얻고 있었다.
BC. 574년, 어리석은 군주인 진(晉)나라 여공(厲公)은 참언을 믿고 하루 사이에 극씨(郤氏) 성을 가진 세 명의 상경(上卿)을 죽여 버렸다. 난서(欒書) 역시 궁 안에 억류되어 나라가 혼란이 발생하였다.
난서(欒書)는 많은 신하들의 지지를 받으며 과감하게 행동하였다. 그는 군사들을 동원하여 왕궁을 포위하고 여공(厲公)을 죽였다. 그리고는 공자(公子) 희주(姬周)를 새로운 군주로 세웠으니 그는 진(晉)나라 도공(悼公)이었다.
당시의 관례에 따르면, 군주를 죽이는 것은 대역죄에 해당하였지만, 난서(欒書)는 한결같이 정당하였으므로 그에게 책임을 따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난서(欒書)가 세상을 뜨자, 그의 아들 난염(欒黶)은 상경의 관직을 물려 받았으나,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끝없이 뇌물을 탐하며, 함부로 행동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원망만을 샀다.
난서(欒書)의 손자 난영(欒盈)은 대부가 되었다. 그는 비록 사람들에게 못된 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하여 불만과 원한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점차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난영(欒盈)은 제(齊)나라로 도망하였다가, 제(齊)나라의 도움으로 진(晉)나라를 공격하였지만, 포로가 되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고 말았다.
어느 날, 진(晉)나라 대부 숙향(叔向)은 옛 친구 한기(韓起; 韓宣子)를 방문하였다. 한기(韓起)는 당시 진(晉)나라의 육경(六卿) 중의 한 사람으로서 지위가 매우 높았다.
叔向見韓宣子 宣子憂貧.
숙향견한선자 선자우빈.
숙향이 한선자를 만났는데 한선자가 자신의 가난을 걱정했다.
叔向賀之 宣子曰 吾有卿之名 而無其實 無以從二三子.
숙향하지 선자왈 오유경지명 이무기실 무이종이삼자.
숙향이 오히려 그에게 축하하자 선선자가 의아하여 이르기를 “나는 경이라는 벼슬에 있을 뿐 재산이 없어 다른 경대부(卿大夫)와 비교되지 않습니다.
吾是以憂 子賀我 何故.
오시이우 자하아 하고.
제가 이 때문에 걱정인데 당신께서 오히려 축하를 하시니 도대체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하였다
對曰; 昔欒武子 無一卒之田 其官不備其宗器.
대왈; 석난무자 무일졸지전 기관불비기종기.
숙향이 대답하기를 “옛날 난무자께서는 일졸의 땅도 없어 종묘에서 사용하는 제기와 예악 기구마저도 준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宣其德行 順其憲則.
선기덕행 순기헌칙.
그러나 덕행을 널리 펴고 법칙에 순종했습니다.
使越於諸侯 諸侯親之 戎狄懷之.
사월어제후 제후친지 융적회지.
이로 인하여 명성이 각 나라에 퍼져 제후들이 그를 가까이 하고 오랑캐들도 그를 따랐습니다.
以正晉國.
이정진국.
그래서 나라가 안정이 되었습니다.
行刑不疚 以免於難.
행형불구 이면어난.
형벌을 내려도 꺼림직한 곳이 없어 어려움을 면했습니다.
及桓子 驕泰奢侈 貪慾無藝 略則行志 假貨居賄.
급환자 교태사치 탐욕무예 약즉행지 가화거회.
그러나 난무자의 아들 환자는 교만하고 사치스러웠으며 욕심이 끝이 없고 법을 무시하고 멋대로 했으며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주고 재산을 모았습니다.
宜及於難 而賴武之德 以沒其身.
의급어난 이뢰무지덕 이몰기신.
당연히 재난을 당했으나 난무자가 남긴 덕에 힘입어 그 몸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及懷子 改桓之行 而修武之德.
급회자 개환지행 이수무지덕.
환자의 아들 회자에 이르러 환자가 행한 바를 힘써 고치고 난무자의 덕행을 이어받아 닦았습니다.
可以免於難 而離桓之罪 以亡於楚.
가이면어난 이리환지죄 이망어초.
그리하여 재난은 면할 수 있었으나 부친인 환자가 저지른 죄악 때문에 초나라로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夫郤昭子 其富半公室 其家半三軍.
부극소자 기부반공실 기가반삼군.
또한 극소자는 재력이 왕실의 반이나 되고 그의 가신도 삼군의 반이나 되었습니다.
恃其富寵 以泰於國 其身屍於朝 其宗滅於絳.
시기부총 이태어국 기신시어조 기종멸어강.
그는 재력과 지위를 믿고 국내에서 교만하다가 그 시체는 마을에 전시되었고 강 지방에 있는 그의 종족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不然 夫八郤 五大夫三卿 其寵大矣.
불연 부팔극 오대부삼경 기총대의.
그렇지 않았더라면 극씨 가문 여덟 명 중에 다섯 명이 대부를 세 명이 경을 나머지 지냈으니 그 세력은 대단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一朝而滅 莫之哀也 惟無德也.
일조이멸 막지애야 유무덕야.
그런데 하루 아침에 망했어도 아무도 불쌍하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는 그에게 덕행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今吾子有欒武子之貧 吾以為能其德矣 是以賀.
금오자유란무자지빈 오이위능기덕의 시이하.
지금 그대는 난무자 처럼 가난하니 난무자와 같은 덕을 펼 수 있다고 여겨 축하드리는 것입니다.
若不憂德之不建 而患貨之不足 將弔不暇 何賀之有.
약불우덕지불건 이환화지불족 장조불가 하하지유.
만약 당신께서 덕을 쌓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으시고 재물이 부족한 것을 근심으로 여기신다면 당신을 위로할 겨를도 없을 것인데 어찌 축하드릴 수가 있으리오.”라고 했다
宣子拜 稽首焉.
선자배 계수언.
이 말을 듣고 한선자가 무릎을 끓고 머리를 숙였다.
曰起也將亡 賴子存之.
왈기야장망 뇌자존지.
그리고 말하기를 “제가 망칠 뻔했는데 그대 때문에 몸을 온전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非起也敢專承之 其自桓叔以下 嘉吾子之賜.
비기야감전승지 기자환숙이하 가오자지사.
이토록 큰 은혜를 저 혼자서 받은 것이 아니라 저의 시조이신 환숙 이하 모든 조상이 당신의 은혜 주심에 감사드려야 겠습니다.”라고 했다.
▶ 兔(토끼 토)는 상형문자로 兎(토)의 본자(本字)이다. 본래 긴 귀와 짧은 꼬리를 가진 토끼의 모양을 본떠 그것이 지금의 자형(字形)으로 변했다. 兔(토)는 토끼, 달(달 속에 토끼가 있다는 뜻에서 달의 별칭이 됨)의 뜻으로 쓰인다. 용례로는 토끼 털을 토모(兔毛), 달의 딴 이름을 토월(兔月), 토끼 가죽을 토피(兔皮), 토끼 똥을 토분(兔糞), 토끼의 입술처럼 생긴 언청이의 입술을 토순(兔脣), 동물이 눈을 뜨고 자는 현상을 토안(兔眼), 토끼 고기를 토육(兔肉), 토끼의 잔털을 토호(兔毫), 메꽃과의 한해살이 기생 식물을 토사(兔絲), 토끼고기를 토육(兔肉), 토끼의 잔털을 토호(兔毫), 제사상에 놓은 토끼 고기로 만든 젓을 토해(兔醢),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이른바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토각귀모(兔角龜毛), 토끼 그물에 꿩이 걸린다는 뜻으로 소인은 계교로 좌에서 벗어나고, 군자가 도리어 화를 입음을 이르는 말을 토라치리(兔羅雉罹), 토끼의 죽음을 여우가 슬퍼한다는 말로 같은 무리의 불행을 슬퍼한다는 말을 토사호비(兔死狐悲), 토끼는 숨을 수 있는 굴을 세 개는 마련해 놓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미리 몇 가지 술책을 마련함을 비유하는 말을 토영삼굴(兔營三窟), 사냥하러 가서 토끼를 잡으면 사냥하던 개는 쓸모가 없게 되어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兔死狗烹), 토끼가 달리고 까마귀가 난다는 뜻으로 세월의 빠름을 이르는 말을 토주오비(兔走烏飛) 등에 쓰인다.
▶ 絲(실 사, 가는 실 멱)는 상형문자로 糸(사)의 본자(本字), 糹(사)는 통자(通字), 丝(사)는 간자(簡字), 纟(사)는 동자(同字)이다. 생사를 꼰 실의 모양이다. 絲(사, 멱)는 팔음(八音)의 한 가지로 금슬(琴瑟)과 같은 실을 매어서 만든 현악기 또는 화폐 가격의 단위로 모(毛)의 10분의 1, 전(錢)의 1천분의 1임을 뜻한다. 그래서 실, 가는 실, 생사(生絲: 삶아서 익히지 아니한 명주실), 견사(絹絲), 명주실, 가는 물건, 팔음(八音)의 하나, 가늘다, 적다, 작다, 약간, 조금, 가는 실(멱), 매우 적은 수(멱), 가늘다(멱), 적다(멱)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실 누/루(縷), 줄 현(絃), 줄 선(線)이다. 용례로는 사(紗)로 만든 두건을 사건(絲巾), 거문고의 별칭을 사동(絲桐), 수양 버들을 사류(絲柳), 실처럼 가늘고 긴 모양을 사상(絲狀), 실 보무라지나 실의 잔부스러기를 사설(絲屑), 몹시 적은 수량을 사호(絲毫), 목재의 모서리를 대패로 가볍게 밀어 날카로움을 없앤 부분을 사각(絲角), 거문고와 피리를 사관(絲管), 좁은 길이나 작은 길을 사로(絲路), 실 가닥을 사루(絲縷), 비단실과 무명실을 사서(絲絮), 실처럼 가늘게 내리는 비를 사우(絲雨), 몸이 가느다란 파를 사총(絲葱), 비단실로 만든 신을 사혜(絲鞋), 실과 머리카락이라는 뜻으로 썩 적음의 비유로 사발(絲髮), 일이 얽히고 설키거나 더욱 번거로워짐을 사래선거(絲來線去) 등에 쓰인다.
▶ 燕(제비 연)은 상형문자로 㷼(연)은 본자(本字), 鷰(연)은 동자(同字)이다. 제비가 나는 모양을 본떴다. 음(音)을 빌어 주연(酒宴) 또는 쉬다의 뜻으로 쓰인다. 燕(연)은 제비(제빗과의 새), 잔치, 향연(饗宴), 연회(宴會), 연나라, 나라의 이름, 잔치하다, 즐겁게 하다, 편안하다, 예쁘다, 아름답다, 얌전하다, 함부로 대하다, 업신여기다, 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燕(연)의 나라로는 ①주대(周代)의 제후국으로 무왕 때 소공석이 지금의 하북(河北)을 영토로 하여 북경에 도읍(都邑)하고 점차 북동으로 발전하여 전국시대에는 칠웅(七雄)의 하나로 되었다. 기원전 222년, 진(秦)나라에 망했다. ②4~5세기에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중 선비(鮮卑)의 모용씨(慕容氏)가 세운 나라이다. 전연(前燕), 후연(後燕), 서연(西燕), 남연(南燕)의 네 나라가 있었다. ③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하나로 북연(北燕)이라 불리었으며, 후연(後燕)을 정복하여 건국했다. 용례로는 면과 면을 맞추기 위하여 문짝 따위 기구의 모서리를 을모지게 엇벤 곳을 연구(燕口), 잠깐 들러 쉬게 베풀어 놓은 방을 연실(燕室), 하는 일없이 집에 한가히 있음을 연거(燕居), 하는 일없이 집에 한가히 있음을 연식(燕息), 일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있음을 연석(燕席), 주연을 베풀고 놈을 연유(燕遊), 아무 근심 걱정이 없고 몸과 마음이 한가함을 연한(燕閑), 조상이 자손을 편안하게 도움을 연익(燕翼), 제비의 꼬리를 연미(燕尾), 제비의 집을 연소(燕巢), 제비의 발을 연족(燕足), 제비와 참새를 연작(燕雀), 제비의 새끼를 연추(燕雛), 볏과에 딸린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 풀을 연맥(燕麥), 제비가 날아올 즈음 기러기는 떠난다는 뜻으로 사람이 서로 멀리 떨어져 소식 없이 지냄을 이르는 연안대비(燕雁代飛), 자손을 위하여 숨겨 놓은 계책을 연익지모(燕翼之謀), 소인의 무리를 연작지도(燕雀之徒), 안심하고 있어 재앙이 닥쳐오는 것도 모름을 연작처당(燕雀處堂), 제비 같은 턱과 범 같은 머리라는 연함호두(燕頷虎頭), 봄과 가을에 엇갈리는 제비와 기러기처럼 서로 반대의 입장이 되어 만나지 못함을 한탄하는 말을 연홍지탄(燕鴻之歎) 등에 쓰인다.
▶ 麥(보리 맥)은 회의문자로 麦(맥)은 통자(通字), 麦(맥)은 간자(簡字)이다. 來(래; 보리)과 뒤져올치(夂; 머뭇거림, 뒤져 옴)部의 발로 밟는 일의 합자(合字)이다. 麥(맥)은 보리 밟기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본디 來(래)가 보리를 뜻하는 글자였으나 온다는 뜻으로 쓰게 되어 보리의 뜻으론 麥(맥)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麥(맥)은 보리, 귀리, 메밀, 작은 매미, 묻다, 매장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보리 모(牟)이다. 용례로는 여물지 못하고 까맣게 병 든 보리 이삭을 맥노(麥奴), 보리를 심었거나 베어 낸 논을 맥답(麥畓), 이삭이 팬 보리나 밀이 바람을 받아서 물결처럼 보이는 모양을 맥랑(麥浪), 보리나 밀이 익을 무렵의 약간 서늘한 날씨를 맥량(麥涼), 보릿 고개를 맥령(麥嶺), 보리 농사를 맥작(麥作), 보리를 심은 밭을 맥전(麥田), 보리쌀로 빚어 담근 막걸리를 맥탁(麥濁), 볶은 보리를 끓여서 만든 숭늉을 맥탕(麥湯), 밀을 빻아서 체로 가루를 내고 남은 무거리를 맥피(麥皮), 보리 흉년을 맥흉(麥凶), 익은 보리를 거두어 들이는 일을 맥추(麥秋), 보리의 이삭과 기장의 윤기라는 뜻으로 고국의 멸망을 탄식함을 맥수서유(麥秀黍油), 보리만 무성하게 자란 것을 탄식함이라는 뜻으로 고국의 멸망을 탄식함을 맥수지탄(麥秀之嘆)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