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미술거리를 느리게 걷다
10월이면 누구나 책을 펼쳐들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괜히 사색에 잠긴다. 이 가을에 어울리는 건 책 말고도 또 있다. 바로 갤러리 산책이다. 거창한 미술관이 아니라 아담한 규모의 동네 갤러리를 차례차례 순례하는 거다. 아쉽게도 동네마다 갤러리가 있는 게 아니므로 갤러리가 모여 있는 동네를 찾아가야 한다. 서울은 북촌이나 인사동, 평창동, 청담동 정도로 압축된다. 청담동은 흔히 명품거리로 더 유명하지만, 명품거리에서 한 블록 안쪽으로 들어가면 골목 여기저기에 갤러리가 자리했다. 느린 걸음으로 갤러리들을 탐방하다 보면 청담동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훨씬 친근하게 느껴진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미술작품
건축물부터 예술작품, 호림아트센터
갤러리 산책의 시작은 호림아트센터다. 호림박물관의 신사 분관으로 건축물에서부터 예술적인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도자기와 빗살무늬토기를 모티브로 디자인했다. 호림박물관 본관에 소장된 우리나라 고미술품 가운데 빼어난 것들을 골라 전시한다. 현재 '편병'전이 열리고 있다. '편병'은 둥근 항아리를 납작하게 만든 도자기로 보기 드문 전시다. 도자기를 빚은 옛 장인들의 정성이 가득 스며든 것을 느낄 수 있다.
호림아트센터 옆에 313아트프로젝트, 길 맞은편에 오페라 갤러리가 있다. 두 갤러리 모두 유명하고 비싼 작품들을 전시 중이다. 현재 313아트프로젝트에서는 현재 프랑스 설치미술과 다니엘 뷔렌의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으며, 또 다른 해외 전시를 준비 중이다. 오페라 갤러리 역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인기 있는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다. 호림아트센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입장료가 없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열어도 된다. 호림아트센터 뒤편은 도산공원이다. 그림을 감상하다가 자연을 호흡하고 싶다면 잠시 쉬어 가도 좋다.
[왼쪽/가운데/오른쪽]호림아트센터 / 호림아트센터 전시실로 이어진 복도 / 한국 고미술을 주로 전시하는 호림아트센터[왼쪽/오른쪽]313아트프로젝트 / 오페라 갤러리
마음을 힐링시켜주는 예술작품
도산대로를 따라 본격적으로 청담동에 진입한다. 거대한 킹콩이 건물 외벽에 매달려 있는 조형물은 청담동에서 이미 오래된 랜드마크다. 청담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그 유명한 명품거리다. 크고 시원스런 건물이며 넓은 보도가 마치 유럽의 어느 도시 같은 분위기다. 기죽을 것 없이 횡단보도를 건너 청담초등학교 앞으로 가면 유아트스페이스와 갤러리 원, 갤러리 이엠이 차례로 나타난다.
갤러리 산책이 주는 즐거움은 눈 호강만이 아니다. 예술작품을 들여다보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이 맑아지는, 혹은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해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예술가들의 위트와 발랄함, 엉뚱한 상상력이 꼬인 실타래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때론 지친 마음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 어느 순간 힐링이 되기도 한다.
청담동의 랜드마크가 된 킹콩 조형물[왼쪽/오른쪽]갤러리 원의 독특한 전시 작품 / 갤러리 이엠의 전시실
국내작가 전시도 다양하게
유아트스페이스에서 청담사거리 방향으로 내려가면 또 몇 개의 갤러리가 이어진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 송은아트스페이스다. 오는 10월 6일부터 국내작가 기획전 “연기백 : 곁집”이 열린다. 다양한 방식으로 현 사회의 시공간적 맥락을 실험해 온 연기백 작가의 새로운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골목을 돌아 들어가면 주택을 개조한 유진갤러리가 있다. 마당과 계단 등 주택 고유의 느낌이 살아 있어 빌딩에 자리한 갤러리보다 더 푸근한 느낌이다. 밝고 색감이 뛰어난 작품이 많아 아이들과 함께 찾아도 좋다. 네이처포엠 건물엔 박여숙화랑 등 갤러리가 여럿 상주해 있다.
[왼쪽/오른쪽]송은아트스페이스 외관 / 송은아트스페이스 전시실 입구주택을 개조한 유진갤러리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박여숙화랑여러 갤러리가 모여 있는 네이처포엠 빌딩
다른 갤러리들과 동떨어져 홀로 서 있는 하이트컬렉션이 청담동 갤러리 산책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하이트맥주 본사 빌딩을 리노베이션하면서 지하 1층에서 2층까지 전시실로 꾸몄다. 하이트컬렉션이 상설 전시하고 있는 서도호의 <인과>는 높이 8m에 이르는 대형 작품으로 아름다운 색감과 회오리치듯 독특한 형태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작품만으로도 하이트컬렉션을 찾아가는 수고를 기꺼이 할 만하다.
하이트컬렉션 내부에 걸린 서도호 작가의 <인과>
작가의 설명과 함께하는 컬처워크
컬처워크(www.kulturewalk.kr)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북촌과 청담동의 주요 갤러리를 찾아가는 갤러리 투어 프로그램이다. 아트 가이드를 자처하는 해설자들이 실제로 활동 중인 작가들이라 더욱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소규모 갤러리들은 큰 미술관처럼 도슨트가 해설을 해주는 곳이 없다. 때문에 아무런 지식 없이 그림을 보거나 전시실 벽 또는 팸플릿에 적힌 짧은 설명을 읽는 게 전부다. 컬처워크에 참가하면 작품 설명은 물론이고 그 작가의 작업 스타일, 작품의 역사, 재미난 에피소드까지 알려줘 훨씬 재미있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시기에 따라 순회하는 갤러리가 바뀌기도 하는데 청담동에서는 그중 규모가 큰 편인 송은아트스페이스와 아라리오 갤러리, 유진갤러리 등을 주로 찾는다. 혼자 가기 어색하거나 자세한 설명을 원하는 이들에게 딱 맞는 처방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컬처워크 해설자
글, 사진 : 김숙현(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