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간 일한 사서에게 ‘보조’직책 제안...임금도 50만원 삭감
서울시를 비롯해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가 공론화되고 있는 곽노현 교육감의 서울시 교육청이 45명의 순회사서를 해고했다.
순회사서들은 2003년부터 5개년 단위로 추진된 학교도서관활성화사업에 따라 서울시교육청 산하의 공공도서관 학교도서관지원팀 소속으로 학교도서관 지원업무를 수행해왔다. 그러나 지난 2011년 순회사서 사업의 폐기로 올해 6월 30일 45명의 순회사서 전원에게 계약종료를 통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육청 소속으로 각 학교를 순회하며 도서관 지원업무를 해오던 순회사서 대신 각 중학교에 전임사서를 배치하는 사업으로 공공도서관 지원사업의 방향을 전환했다. 이에 따라 중학교 사서 배치사업과 순회사서 사업에 예산이 중첩됐고 순회사서들의 고용계약 종료가 진행됐다.
서울시 교육청관계자는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이미 지난 해 연말 사업종료 계획을 고지하면서 재취업을 준비 할 수 있는 6개월의 시간을 제공했고 학교 배치를 원하는 사서들의 지원도 받았다”며 계약종료 과정에 문제가 없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순회사서들의 서울시의 계약종료 통보가 일방적이었으며 학교 배치 지원 역시 처우와 경력을 무시한 불합리한 제안이었다고 주장한다.
“열악한 환경에도 도서관이 좋아 열심히 일했다”
서울시교육청 순회사서들은 대부분 8, 9년의 경력을 갖고 있으며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정한 성과를 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순회사서들에게 학교에 배치된 사서교사의 ‘사서보조’로 학교에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제안했다. 또한 계약 형태는 다시 비정규직으로 8, 9년간의 경력은 소거된 채 다시 경력을 쌓아야 무기 계약직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게 했다. 140여만 원의 임금 역시 90여만 원으로 삭감됐다. 서울시교육청의 이 같은 안을 받아들이지 못한 순회사서들은 결국 6월 30일 계약종료를 통보받았다.
공공운수노조 전회련 학교비정규직본부 서울지부 사서분과는 26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교육청과 곽노현교육감이 45명의 순회사서 정리해고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전회련 학교비정규직본부는 서울시교육청이 학교도서관 활성화 사업에 필요한 사서들을 고용하고 학교 공공도서관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비정규직 사서들을 용도폐기하고 있다면서 “순회사서들은 수명을 다한 기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순회사서들은 2003년 시작된 서울시교육청의 학교도서관 지원 사업 초창기부터 서울시에 고용돼 길게는 9년간 각 급 학교의 도서관 지원 사업에 투입됐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순회사서 이보경 씨는 “도서관과 책에 대한 애정으로 먼지만 쌓인 학교도서관을 일일이 청소해가며 누가 봐도 번듯한 도서관으로 가꿨는데 이제는 유통기한이 다한 소모품처럼 용도폐기하려 한다”고 말했다.
순회사서들은 서울시교육청 소속으로 일 할 때에도 정당한 노동조건에서 일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임금을 결정할 때 1년 중 근무일수를 기준으로 임금을 책정하는데, 순회사서들은 1년 중 235일만 일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실상은 방학과 주말을 포함한 365일 내내 일을 한다. 하루 8시간의 규정노동시간에서 몇 시간씩을 떼어내 주말과 방학 등의 날짜에 보충하는 방식으로 순회사서들의 노동시간이 조절되는 것이다. 결국 순회사서들은 “방학과 주말에는 임금도 없이 무료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보’ 교육감 곽노현
고동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본부 수석부본부장은 기자회견에서 “진보교육감이라는 곽노현 교육감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면서 “진보를 자처하는 교육감이라면 적어도 학교 내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은 지금 속빈 강정과 같다”면서 “서울시교육청과 학교현장에서 먼저 정규직화의 모범을 보여야 다른 모든 공공부문에서도 정규직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곽 교육감이 학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순회사서들도 “이미 수차례 곽 교육감을 일정을 쫓아다니며 대책을 요구했지만 늘 알겠다고 대답하고 자리를 피하면서도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는다”며 울분을 토했다.
기자회견이 열리던 26일에는 강원도 교육청과 ‘학교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학비연대)’의 단체교섭이 열렸다. 학교비정규직 들의 직접 고용주인 교육청이 노동자들과의 협상에 직접 나선 것이다. 그러나 가장 대표적인 ‘진보 교육감’으로 꼽히는 곽노현 교육감의 서울시 교육청은 학교 비정규직들과의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다.
공공도서관 지원 사업을 담당하는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이번 순회사서 계약 종료의 건을 곽 교육감이 승인한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공기관의 모든 사업은 조직의 판단으로 결정된다”며 곽 교육감의 허락 아래 순회 사서들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했음을 인정했다.
전회련 사서분과와 서울시교육청은 27일 면담을 예정하고 있다. 그러나 양 측의 입장차이가 작지 않아 순조롭게 협상이 타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 http://j.mp/PkqOp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