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수필 7
맛있는 책
류인혜
요즘 일본 사람이 그린 것으로 <초밥 왕>이라는 제목의 만화를 보는 재미에 빠져있다. 초밥을 배우는 10대의 '세키구치 쇼타'라는 소년이 주인공인데, 고향 <오타루>를 떠나서 유명한 초밥 집에서 초밥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초밥뿐만 아니라 그 외의 음식에 대한 특별한 감각과 솜씨를 가져 여러 대회에서 우승하며 승승장구 실력을 쌓아 가는 이야기다. 그 만화를 통해서 얻은 지식이지만, 지금까지 알고 있던 초밥과는 달리 그것의 다양한 종류와 조리하는 법과 요리에 쓰이는 부재료와의 조화와 엄격함이 놀라울 정도다. 같은 재료라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조리하는 법이 달라진다는 상상력은, 음식이란 단순히 조리해서 먹어 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안목과 과학적인 근거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작품이라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어렸을 적에 먹던 것을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그가 원하는 상태의 맛을 지닌 음식을 만들어 주려는 진지한 노력과 어떤 음식이든지 먹을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지닌 주인공의 마음이었다. 그것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나쁜 사람도 나오고, 그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어려운 과제를 주는 심사위원도 있어 이야기의 골격은 갖추어서 다음 편에는 어떤 것으로 흥미를 더해 줄까 기다리게 되었다. 20권이 넘는 연재물을 다 보고 나니 허망한 느낌도 들었지만 일본 음식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난 번 짧은 일본 여행을 경험하여 그곳과 우리의 음식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오사카에 도착한 첫날에는 일본 문인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샤브샤브 종류로 도자기 그릇에 부운 뜨거운 두유에다 얇게 썬 고기를 넣어 먹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의 아침은 뷔페식이었다. 이틀 동안에는 아침마다 차려진 같은 종류의 여러 음식 중에서 골라 먹었는데, 우리가 먹는 것과 비슷한 생선구이와 두부와 계란을 조리한 것과 청국장과 무, 멸치, 매실 등으로 만든 조림반찬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회용의 작은 컵을 하나씩 가져가서 아주 맛있게 먹어 궁금해서 쳐다보았더니 청국장이란다. 그것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가 없어 맛보지 않았다. 그리고 된장국과 밥이 있어서 이국이라도 먹을 것에 대한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는 공식적인 일정이 끝나고, 여행지를 옮기고 나서가 문제였다. 네 명의 일행이 각자 일본 음식에 대한 기대를 갖고 갔기에 사람마다 원하는 게 달랐다. 그래서 이틀 째 되는 날, 저녁 한 끼는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찾아 먹기로 했다. 두 사람의 의견이 달라서 나머지 사람은 따로 양편을 좇아가게 되었는데, 작은 덮밥 집에 들어가는 윤회장을 따라가서 그날 내가 먹은 것이 소고기 덮밥이다. 그저 다른 곳보다 싼 맛에 소고기가 별로 없는 소고기 덮밥을 8000원 정도 주고 먹었다. 내가 값을 지불했다면 소화가 되지 않았을 것인데 얻어먹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다음 날, 오전 중에 계획했던 일정을 끝내고 여자들끼리만 쇼핑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점심을 백화점 근처에서 우동을 먹었는데, 감기 기운이 있어 한국말로 계란을 확- 풀어 달라니 그대로 해 주었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가장 값이 싸면서도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은 느낌으로 오후 내내 만족한 기분으로 지냈다. 마지막 저녁이라고 특별한 것을 먹자는 의견을 내어놓았지만 모두들 피곤해서 길도 모르는 곳을 헤매고 다니는 것보다는 호텔에서 해결하자고 이천 엔의 일본 정식을 주문했다. 아침보다 몇 가지 반찬이 더 나왔는데 쇠고기 요리는 손가락 만하게 잘라서 세 쪽이 담겨 있었다. 일본의 특색 있는 먹을거리에 등한히 했던 것은 워낙 비싼 물가 탓도 있지만 찾아 먹을 시간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유명한 일본 라면과 게는 먹을 수 없어서 그것을 원했던 두 분은 섭섭한 채로 돌아왔지만 나중에는 사전에 방문하는 지역의 음식점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고 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좀 특별한 음식은 팔운지방(八雲이즈모)에서 일본 역사의 시작이라는 곳을 구경하고 점심으로 먹었던 손으로 만든 메밀국수다. 우리 일행을 안내하던 일본인 택시기사가 추천하여 준 음식점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오고 있었다. 둥근 나무판에 담겨져 나온 메밀국수는 발이 두텁고 거칠거칠한 것을 간장에 비벼 먹었다. 감기 기운이 있고, 추운 날씨여선지 별맛을 느끼지 못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보니 뜨겁게도 먹고 있어서 서울의 메밀국수 집에 갔을 때처럼 국물에 말아 달라고 할 것을, 후회했다.
호텔에서는 객실마다 전기로 물을 끓이는 주전자가 준비되어 있고, 매일 차 두 봉지를 얌전히 갖다 두어 맛있는 차를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오차라니 생각이 난다. 문학행사가 끝나고 주체 측과 멀리 다른 지방에서 온 문인들이 모여서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전날의 엄청난 비용이 생각이 나서 정중히 사양을 하고 우리끼리 간단히 먹기로 했다. 마침 휴일이라서 문을 열고 있는 음식점을 찾아 헤매다가 어느 골목의 작은 초밥 집으로 들어갔다. 부부가 일을 하고 있어 남편은 음식을 만들고, 아내는 심부름하는 조수였다. 즉석에서 만들어 주는 초밥이 어찌나 맛이 있었는지, 배가 부른 상태였는데도 주는 대로 다 먹었다. 따로 주문한 삶은 문어도 일미였다. 식사가 끝나니 오차를 만들어 주었다. 커다란 컵에 부어주는 뜨거운 차가 음식을 마무리 해주는 우리나라의 숭늉과도 같았다. 먹은 음식에 대해 흡족한 생각이 들게 해주었다. 그 만화책에도 당연히 오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주 요리인 초밥과 어울리는 오차를 만들어야 되는, 차 맛을 좌우하는 물에 대한 것인데 오차도 요리의 일부분으로 취급을 하여 엄격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만화를 흥미롭게 읽었지만 건성으로 지나버린 부분이 조금 후회가 된다면 그것을 그린 사람은 이미 성공한 작가이다. 만화를 읽으면서 음식을 상상하고 입맛을 다셨으니 매우 특별한 독서를 한 셈이다.(2002) |